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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 도마와 철학자 데카르트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10-28 (목) 07:19 7개월전 592  

(요20:24-25)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Now Thomas (called Didymus), one of the Twelve, was not with the disciples when Jesus came./
So the other disciples told him,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the nail mark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where the nails were,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ot believe it."


1. 데카르트는 수학자요 또한 물리학자 철학자로서

데카르트에 관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 사건은 다음과 같다. 

그는 아침에 길을 가다가 기다란 뱀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바빠서 그 뱀을 처치하지 못하고 도랑을 건너가서 밭둑으로 돌아갈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그가 볼일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보매 아직 그 뱀이 거기 가로 놓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뱀이 아니고 썩은 새끼 줄이었다. 그 새끼 줄이 꾸불꾸불 하게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 경험은 데카르트에게 참으로 청천벽력이었다. 자기가 가장 믿고 의지하였던 눈이 자기를 속였다는 것이다. 눈을 이미 나를 속였으니 그렇다면 귀도 친구도 선생도 형제나 부모도 믿을 수 없고 목사나 하나님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적 표어가 나는 모든 것을 마땅이 의심 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이 청천벽력에서 일조광명이 찾아온 것이다. 코기토 어르고 숨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것망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할지라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나온 것이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확실한 신념을 얻기 위한 의심, 극단적 의심으로 결과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근본적 진리에 확립을 위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 인용,, 데카르트는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된 철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서 근대 합리론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근세 합리주의자의 조상으로 자아의 발견자라고 말한다. 그가 중세철학의 문을 닫을 수 있었던 것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찾았다.)


1. 도마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의 약속을 그의 죽으심으로 즉 너무나 큰 실제적 사실에 대한 충격으로 까먹은 것 같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하여도 믿지를 못하였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의 약속의 말씀도

삼년 여 같이 생활한 동료제자들의 말도 믿지를 못하였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그리고 열심이었던 도마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 믿는 다고 하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아도 가짜 즉 비슷한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인가.

동료 제자 한 사람들도 아니고 동료 제자들이 보았다는데 못믿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본 동료제자들이 전하는 부활의 사실을 믿는데도 요구사항이 많군요.

1). 손의 못자국의 보고 – 눈으로 손의 못자국을 보고,, 이 정도면 된 것 아닌가 확실한 것 아닌가, 이 정도면 분명히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도마는 그래도 아직도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눈을 못믿겠다는 것인가,

2). 자기의 손가락을 그 손가락에 넣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눈으로 보고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인가, 이 정도면 확실하지 않는가, 아직도 무슨 다른 증거가 필요한가, 그러나 도마는 더 증거를 구했다. 아니 정도껏 해야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손의 못자국을 보아야 하고, 그 손의 못자국에 자기의 손가락을 넣어 보아야 하고, 이제 됐지요. 아니요 더 필요합니다.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내 손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창자국에 넣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도마 씨, 아니 도마 제자 정도껏 하셔야 하지요.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3). 즉 자기의 손을 그 옆구리 창자국까지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다행이 여드레 후에 찾아온 주님을 보고 ,,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주는 나의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하나였던 도마의 이 선언이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요20:28-29)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부록

도마복음서에 관하여

그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도마의 기록 같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도마가 복음서를 썼다고 하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보고 고백한 그 사건은 도마에게 영원히 기억될 사건이기 때문이다. 도마가 썼다면 그러한 내용으로 썼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것이 아닌 것이 이상하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으로도 충분하고 넘친다. 그럴리도 없지만 만약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을 뒤늦게 근래에 발견하였다면 온 교계 교회가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을 통해 기록하게 하신 책이 그렇게 뒤늦게 발견되었다고 나타날리도 없지만 말이다.

요한복을을 뒤늦게 근래에 찾았다면 문장이 쉬우면서도 그 내용의 깊이 심오함 영적감동에 온 교계가 경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소위 도마가 기록했다는 가볍게 보았는데 무슨 도사 도인의 명상록 같기도 하고 도마의 신앙 고백의 핵심인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주제와 다른 듯 하다는 것이다. 그 책에 별 관심을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책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방치되게 나두실리도 없었을 것이다.

요한은 중요한 곳에 세사람, 예수님의 죽으시는 장면에 있었던, 부활의 날에 베드로와 함께 달려간 사람, 예수님의 모친을 모시고 , 밧모섬 , 교회 목회를 하였고,, 더할 나위 없이 잘 준비된 준비시킨,, 베드로 서신이 있고 베드로 복음서는 없지만 나는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 왜냐하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이었다는 것,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하였다는 것,, 누가 복음은 사도바울의 동역자 의사 역사가 문학가인 누가가 생생체험 후 기록하였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레위세리 출신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이었다.

혹 뒤늦게 발견되었다며 혹 모르겠다. 그럴리도 전무할 것이다. 주의 복음서가 그렇게 오래 어디에 있다가 발견되게 하시는 주님이 전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계시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다가 시간 다 지나간 후에 어디에서 발견하게 하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도마복음은 도마가 썼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 할 것이다. 만약에 도마가 썼다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일관선을 썼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도 아닌 듯 하다. 그리고 공관복음서 4복음서로도 예수님의 복음과 말씀 행적이 기록이 충분하고 넘친다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썼다면 그 내용이 인류에게 필요했다면 그 동안 어디에 감추어져 있었을리가 전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주님의 말씀의 기록이면 어디에 감추어두게 하시겠는가, 종말계시록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닌 것이다. 그 기록이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


1. 어떤 사람이 봄이 와서

봄을 찾기위해 아침에 집을나가 사방으로 찾아다녔다고 한다.

봄 봄 봄이 왔는데 봄을 찾자 하며 사방으로 돌아다닌것이다.


그러나 그는 봄을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핀 개나리를 보고 아 봄이 왔구나 하며 봄을 찾았다는 것이다. 


1. 솔로몬의 인생론 결론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자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 지혜 권력 가졌으며 일생 지식탐구 열심을 다하였다.


그런데 그의 인생론 결론은

(전12:13)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3 Now all has been heard;

here is the conclusion of the matter: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for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

인생론의 결론을 모든 것 많이 찾아보고 많은 시간을 보낸 후 내리는 것이 유익한지 인생의 좀 더 이른 시기에  바로 그것을 찾는 것이 유익한지는 각자 판단해 볼 일이다.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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