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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구 14- 성경의 진리와 가설의 학설들,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11-09 (화) 08:00 6개월전 518  

1. 성경의 진리와 가설의 학설들

성경진리와 허망 학설들에 대해서는 다시 따로 언급할 수도 있지만 일단 몇 주제 써보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신학 학설계에도 유행신학이나 허망한 학설들이 잠시 화제를 가지면 사람을 현혹할 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설의 학설들이 성경의 진리를 대신하면 안될 것이다.

     

1. 복을 약속한 하나님,

그런데 복을 구하는 것을 혹자는 기복신앙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한 복과 은혜를 구하고 바라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종교의 신앙이 무슨 사상이나 이념을 추구하는 것인가, 윤리도덕 철학을 구하는 것인가 말이다. 그러한 것들은 세상 단체나 학회나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 아니어도 말이다. 단지 우상에게 복을 구하는 것은 허망하다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당연히 은혜와 복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줄것이 없다고 괴로워하시거나 능력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하지도 않으시고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뻐하시고 구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1. 근본주의 신앙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하는 근본주의 신앙이 아니면 무엇이라는 것인가,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의 반석에  교회를 세우시기로 약속하시고 세우셨는데 그 근본의 고백이 아니면 무엇을 고백하라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자들을 사용하여 그 말씀에 근본을 두는 종교개혁에 기독교 개신교가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다.그러한 사람을 택하여 그의 뜻을 이루어가신 것이다.(13:22 )

하나님의 도구로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개혁하게 하신 내용이 말씀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선 근본주의 신앙은  신앙인의 출발점이고 기독교 출발이고 다시 그것을 새롭게 하는 기독교 개신교의 출발이라 할 것이다. (1:, 1:,16: )

한국의 선교사들이 근본주의 신앙이 아니었다면 어찌할 뻔하였던가, 한글 성경이 저마다의 자기의 소견으로 번역하였다면 그리고 저마다 자기의 소견으로 나아간다면 사사시대의 혼돈 그것 일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도구로 사용하셨을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할 것이다.


1. 홍해바다 갈라지다

어떤 분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가지고 와서 성경의 깊은 내용을 잘 가르치는 것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홍해바다가 아니라 갈대바다를 건넜다는 주장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컴백한 것으로 알 고 있다. 이 경우 그 당시 혹자는 그 교수가 모르는 처음 듣는 주장을 하니 실력이 있겠구나 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가설은 외국까지 나가서 학비내며 기껏 배웠다는 것으로는 너무나 그러한 것 아니겠는가, 성경을 잘 배워 가르치면 되는 것인데 그러한 실력은 없는지 성경 비판적인 소리나 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닌 것이다.

아니, 홍해바다가 갈대바다라면 (원어에 갈대의 뜻이 있다해도 내용적으로)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바로와 그 군사들은 그 바다를 못건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홍해 바다가 아닌 갈대바다를 건넜다면 바로와 그 군대는 갈대바다를 왜 못 건넜을까, 이러한 갈대바다설은 삼척동자도 받아들일 수 없는 가설인 것이다.

성경의 모세의 지팡이를 내어미는 순종을 갈라지게 한 홍해바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에서 인용한 이 사건을 갈대바다라고 한다면 어떤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지, 홍해를 가르신 인용의 그 연결 된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진정 얕은 갈대바다를 건넜다면 그것은 수 백만 사람들이 집단으로 겪었는데, 왜 소문이 안났겠는가, 진정 갈대밭이었다면 그후 수백 만명 중 단 몇 명이라도 갈대바다를 건넜다고 말하였을 것이고 금방 소문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겪은 이스라엘에서 그러한 소리가 있는가, 조상들이 거기 있지도 않고 지금도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이방나라에서 서구신학자 중에도 그러한 주장을 한 경우가 있는 듯 하는데, 예전에 대나무 의 죽순이 하룻 밤에 자란 것을 못본 사람의 틀린 주장이 오히려 이긴다고 했던가,

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감사 기도는 또 어떻게 이해하고,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치고 찬양하며 춤을 추었다는 기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겠는가, 성경의 실제적인 사실의 기록을 말도 안되는 가설의 학설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에게 홍해바다를 몇 명이 건넜느냐고 물으면 그때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이스라엘인이 건넜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전해 준 성경의 사실을 사실로 믿을 뿐 아니라 현재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들도 홍해를 건넜다는 현재로 읽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을 읽는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시103: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He made known his ways to Moses, his deeds to the people of Israel:'

 

1. 낙타와 바늘 귀

낙타가 아니고 밧줄이라면 뭐 졸면서 기록하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제자들이 다 잘못들었다는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낙타가 아니고 밧줄이라면 부자는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내용이 된다. 부자라고 천국에 못들어간다면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왜 부자라고 천국에 못들어가겠는가, 이것은 성경적으로도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낙타로 비유하므로 이것은 하나의 파격적인 유머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유머적 비유적 표현인 것이다. 부자는 무슨 이유로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인가, 어렵다는 것을 유머적 비유적으로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밧줄이 될 경우 유머가 아니라 사실이 되어 부자는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왜 부자라고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유머적 표현으로 어렵다는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1. 신약에서 무슨 큐(Q) 자료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도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신약 성경의 사복음서가 있고 공관복음서가 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사용한 무슨 큐(Q) 자료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아니 예수님의 열두 제자보다 더 정확 세밀하게 보고 듣고 훈련받고 삼년 여 풀타임 동행한 제자들 말고 누가 기록한 무슨 자료가 있었다는 것인지,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가설일 것이다. 이것 역시 말도 안되는 가설의 학설일 것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1.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레위 세리 출신 마태가 기록하였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말고 더 잘 보복 듣고 아는 누가 큐자료를 기록하였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큐 자료라는 것이 있다는 말정도 해야 뭐 신학적 유식이 있는 것으로 아는 듯 너도 나도 큐자료가 있다는 설을 검증없이 남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마태가 기록하였고,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통역자이기도하였던 마가가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복음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하기도 하였다. 마가의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말씀을 거의 베드로 정도 알 것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베드로가 전한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말씀을 복음의 내용을 통역하여 전하였을 것이다. 또 사석에서도 들었을 것이다. 통역자는 통역할 그 사람이 전할 내용을 가장 잘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마가는 베드로가 내 아들이라고 하였다. 믿음의 아들이라고 할 정도이었다.

1.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의 집의 다락방은 예수님이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하시던 곳이고 부활하시고 두번이나 그곳에 모인 제자들을 찾아 오신 곳이다.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하므로 죽을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게 되어 그 기도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던 다락방의 주인의 아들이다.

마가와 베드로의 관계를 보면 그 보다 더 복음서를 잘 기록할 사람 찾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가복음을 일명 베드로복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였던 것이다.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관한 많은 귀한 사실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복음전파를 통역했다면 어떠하였겠는가,

마가는 그만큼 복음서를 잘 기록할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마가가 누구의 무슨 자료에 근거했다는 것인지, 베드로가 구두로 준 자료보다 더 무슨 귀중한 자료가 있다는 것인가, 또한 열두 제자 말고 그 보다 더 잘 기록할 자료를 누가 갖고 있었다는 것인가, 베드로와 열 두 제자가 주는 자료외에 더 무슨 자료가 있다는 것이고 필요하다는 것인가,


1. 누가는 역사가 문학자 사도 바울의 동역자 주치의 의사로서 사도들의 말과 자료를 근거해 기록하였던 것이다. (눅1:1-4)

1.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에 대해서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복음서 기록을 위해 그 보다 더 잘 준비된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제자들이 가장 확실한 목격자들인데 그리고 삼년 여 풀타임 예수님과 동거동락인데 이 열두제자 말고 누가 기록한 무슨 Q자료가 있다는 것인가.  열두 제자들보다 더 잘 목격한 누가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인데 독일의 누군가 가설의 학설을 이야기 하니 너나 나도 이 말을 하면 뭐 신학을 좀 한 것같이 보이게 하는 이유인지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설은 신뢰 할 수 없을 것인데 이 학설을 거의 누구도 부정적으로 애기를 하지 않아 찾아보니 큐자료설은 신뢰할 수 없는 학설이라 주장하기도 하는 글이 있기는 하였다. 큐자료설은 신뢰할 수 없는 가설일 것이다. 

(사복음서 또는 공관복음서 중 마가복음은 나는 일명 베드로의 복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이면서 베드로가 전한 내용을 너무나 잘 알았을 것, 사석에서도 많은 사실을 들었을 것,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아 부를 정도이었다. 믿음의 아들이라고 말이다. 비록 마가가 기록하였지만 베드로의 전한핵심이 들어 있을 것, 1:1절은 마16:13-21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일치한다. 마가복음은 문장이 간결하다고 한다. 베드로로부터 생생하게 들은 내용 그리고 자신의 다락방에서 되어진 일들을 알고 또는 보고 알았던 내용 외에 무슨 큐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리고 큐자료가 있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들 또는 베드로 외에 자기 집에서 되어진 일을 알고 목격한 마가 외에 그보다 신뢰할 어떤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그 무엇을 썼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또한 기록자를 신뢰할 수 없다면 기록한 내용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1. 신빙성이 부족한 도마가 기록했다는 어떤 책, 신뢰성이 있는 복음서라면 그 책이 세월이 그렇게 지난 1945년에야 발견되었겠는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필요한 복음서라면 무엇때문에 그렇게 두셨겠는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 전파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무슨책이 뒤늦게 발견케 두실리 없었을 것이다.

혹 누구보다도 복음서 기록 준비가 잘된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가 그렇게 뒤늦게 발견되었다면 상당한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이 그렇게 뒤늦게 발견될 일도 없을 것이며 내용도 도마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고백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그러한 내용의 책을 썼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도마가 기록하였다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주제로 증거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도 아닌 듯하며 한마디로 전혀 신빙성이 없다 할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것이 도마복음이라며 뭐 대단한 듯 한데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 세 사람의 제자들만 데리고 갈 때가 있었는데 도마는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1. 그런데 만약에, 그러할리는 없지만 만약에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이 근래에 발견되었다면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충격과 유익이 있었을 수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나 그 이후의 체험이 너무나 특별나고 그 내용이 너무나 깊고 심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요한복음이 없었다해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며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결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은 그만큼 쉽고 깊이가 있고 요한의 제자로서 사도로서 그리고 밧모섬에서 그리고 목회생활을 하였다는 점 등에서 예수님이 특별하게 훈련시키고 역할을 맡기신 것으로 보인다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기록한 그 내용은 참으로 깊고 놀랍고 그표현은 쉽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를 준비시키고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시고 계시하시고 감동케하셔서 기록하게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1. 개역 성경을 수정한 개정 번역을 보면 학위와 실력은 거의 무관하다 할 정도 인 것을 알 수 있다. 개정의 수정은 너무나 부족하게 수정이 되었는데 이것에 대하여 말하는 학자가 거의 없고 교계 리더들도 드물다는 것이다. 교계가 수평이동의 교인수 성장에 올인하다가 보니 학문적 성경지식의 내실있는 발전이 부족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신학교육의 교과과정을 전반적으로 재 검토 하여야 하고, 어떤 외국의 신학교는, 들은바에 의하면 한국의 유학생들에 의해서 그래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외국에서 학위 얻기 위한 유학은 좀 지양하고 탐방하며 견문을 넓히고 필요하면 서로 디스커션하면 될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성경도 일반서적도 더 많이 읽어 오히려 실력이 더 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잘 번역 된 구약성경 중 특히 시편 번역이 어려울 수 있는데 잘 준비된 사람들 통해서 성경의 구약과 시편 신구약 한글 성경을 번역케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전달 번역 편집 배열에도 관여 인도하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분명할 것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하나님께서 한국에 주신 은혜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이미 강조해서 말한바 있다. 그것은 갇힌 시대의 소망의 구원의 생명의 말씀이었고 한글과 한국문화사에도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유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든 신앙인들과 한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이고 알려야 할 것이다. God bless you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meditation)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벧후1:16-21)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16 We did not follow cleverly invented stories when we told you about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17 For he received honor and glory from God the Father when the voice came to him from the Majestic Glory, saying,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18 We ourselves heard this voice that came from heaven when we were with him on the sacred mountain.

19 And we have the word of the prophets made more certain, and you will do well to pay attention to it, as to a light shining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s and the morning star rises in your hearts.

20 Above all, you must understand that no prophecy of Scripture came about by the prophet's own interpretation.

21 For prophecy never had its origin in the will of man, but men spoke from God as they were carried along by the Holy Spirit. (niv1984)

16 ' For we have not followed cunningly devised fables, when we made known un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kj)

16 For we did not follow cunningly devised fables when we made known 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nkj)

16 For we did not follow cleverly devised tales when we made known 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nas)


(딤후 3:16 -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kj)

16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17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niv1984)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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