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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구 20 - 기독교 교리와 바울신학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11-23 (화) 08:29 2년전 791  

1.

기독교 교리와 바울 신학의 핵심

기독교 교리가 무엇인가,

기독교 교리를 많고 많은 내용인 줄 알고 어렵다고 하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교리를 알기를 무슨 방대한 내용이나 방대한 조직 신학책의 어떤 학설들을 교리라고 아는 듯 하다. 사람들이 만든 방대한 내용의 학설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리를 무시한다고 하는 교인들이 있다면 그것은 교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럴 수 있다. 교리는 어렵고 복잡하고 방대하고 긴 내용이 아니다.

성경에서 기독교 교리인 신앙의 핵심 고백은

1).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창1:1-, 출20: )

그 하나님은 구원의 주 대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고 약속대로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인들 안에 함께 계셔 교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핵심교리라 할 수 있다.

2).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마1: ,16:13-21, 막1:1, 눅1:  요1:1)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하신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교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분이 주신 계명은 구약의 율법과 그 요약인 십계명이고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더 요약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율법학자의 질문에 대답하여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영과 진리의 말씀 안에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예배 안에는 영적교통 송축 찬양 감사 순종 드림이 담긴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영이시기에 영적교통을 통해서이다.

이웃사랑에서 이웃은 거리적 이웃 이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웃이다. 나도 모두로부터 이웃이다. 그러므로 이웃은 모두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로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한편 기독교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그러하다. 이스라엘에는 신학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글쎄 신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연구한다는 것인가, 신의 존재를 연구한다는 것인가, 저마다의 다양한 학설들을 말한 것인가. 그것은 사실은 신학이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다양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별별 학설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용적으로 본다면 신학이라는 말은 성경학 성서학 이라고 하여야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신학에는 교리학 목회학 교회사 비교종교학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무슨 유행학설들을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바울의 신학이라고 한 것은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1. 사도 바울의 원래 히브리식 이름은 사울이었다. 바울(paul)은 로마식 이름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기에 로마어(헬라어)를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바울은 원래 교회를 핍박한 교회 핍박자였다. 누구보다도 열렬히 그리고 심지어 살기등등하여 교회를 핍박한 철저한 유대교 신자 즉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의 신앙인이었다. 그는 누구못지 않게 유대교 구약의 신앙에 확고하고 열심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교회를 핍박한 것이다. 

그 바울이 예수를 핍박하러 이방의 수도 다메석으로 가다가 말씀으로 나타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결국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되고 예수 이름을 전한 것이다. 혹자가 말하듯이 중동의 무더운 여름의 강렬한 태양 빛에 잠시 헷가닥하여 무슨 소리를 환청을 들을 것이 아닌가 장난하듯 말하는 그러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한 두 마디 들은 정도가 아니었다.

어떤 목소리가 사울에게 말씀하시고 사울이 누구이신가를 묻고 자신은 예수님이라고 하신 분이 또 말씀하시고 이렇게 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한 두마디 들었다면 혹 환청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성령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이 직접 사울에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다메석에 가면 누군가 네게 할 일을 가르쳐 주리라고 하셨다. 혹 직접 말씀하셨다면 그 간증을 듣는 사람은 잘못 들었다고 하거나 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므로 증인이 있게 되었다. 사울도 지나고 나서 혹 내가 내 귀가 무엇을 환청으로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아시는지 예수님께서 그 곳에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다메석에 가면 거기서 누가 사울에게 말하여 주리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메석에서 소경된 자신의 눈을 안수하여 뜨게 하여 준 아나니아 제자를 통해서 사명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슷한 시기에 아나니아에게 그의 성령으로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찾아가라는 말씀을 들었다. 아나니아는 처음에 사양하여 거부하다가 가게 된 것이다.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예수님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다메석에 도착한 사울에게 가보라는 말씀을 듣고 결국 사울을 찾아가서 기도하고 안수하므로 바울 된 사울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사울의 교회 핍박자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데는 이러한 사건과 과정이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그 사명을 받아 복음을 특별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졌다. 당연히 로마어(헬라어)로 모든 이방인들에게 소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울은 이러한 점에서도 이방의 사도로 잘 준비가 된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준비된 사람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신 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한편 바울은 모든 이방인과 같은 입장이기도 하였다. 모든 이방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직접 본적도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이방인과 바울은 동일하다. 

그런데 그 이방인들에게 막상 전도하기가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까 생각해 볼 수 있다. 

1). 이방인들을 만나 하나님을 믿으세요. 우리는 이미 신을 믿고 있는데요. 무슨 신을 믿으라는 것이예요. 또는 우리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하는 과정이라면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2).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가 누구예요. 예수가 하나님이예요. 예수님이 사람이예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것을 잘 받아드릴 수 있도록 설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뭐요??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라구요. 왜 사람이 되셨지요.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시기 위해 오셨고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기에 하나님을 보고 믿을 수 있겠다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시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보면 전도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 있는데 표적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표시가 되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참 놀랍고 그 말씀이 사실인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도 처음 복음이 전파된 곳에 또한 예수를 믿는 초기에 기적 즉 표적을 더 많이 체험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행15:12, 28: , 롬15:18)

 

2.    

기독교 교리를 다시 요약한다면

나는 창조주,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그 이름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과 직접 언제 어디서나 교통할 수 있다. 그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배를 포함하여 영적 교통이며 이웃 사랑은 지리적 혈연적 이웃 이상의 모두가 서로 이웃이게에 서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 당시 세계어 헬라어(로마어) 그리스도로 번역하여 전한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자,, 구약에 약속하신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

 

바울의 신학의 핵심은 교리의 핵심은 정확,, 예수님께서 이방선교의 도구로 지명하였기에 정확한 내용을 전하는 것임은 말 할 것도 없다.

기독교 교리, 교회의 교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는 것의 핵심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누군가가 교리 비판하는 것은 교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 비판하는 듯 하다. 아마  교리를 사람들이 만든 복잡한 신학 이론들 또는 조직 신학이라는 이름하에 방대한 신학의 내용을 교리로 알고 비판하는 듯 하다. 그러나 교회의 핵심 교리가 없고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교인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1. 교회의 신앙고백인 교리 요약

1). 창조주 하나님 (창1:1-)

1). 구원의 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마16:13-21)


그러므로 기독교 교인들의 신앙고백은, 교리는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 을 믿는다 것이다.


(*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이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from) 나오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다시 잘 알게 하신 것이다.(요16:27-30)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16:27-28)

'  (No), the Father himself loves you because you have loved me and have believed that I came from God./
 I came from the Father and entered the world; now I am leaving the world and going back to the Father."'

(요7: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 but I know him because I am from him and he sent me." (* 이 두가지 내용이 동시에 적용될 사람은 없다.)


1. 기독교의 계명은

구약에서 율법의 요약인 사랑의 언약 십계명을 하나님께서 돌판에 직접 써 주시고

예수님은 율법의 요약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한 율법학자가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 주신 것이다. 여기에서 이웃사랑의 이웃은 서로 지리적 혈연적 이웃을 말하는 것이거나 불우이웃을 말하는 것 이상의 모든 사람이 서로 이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해석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영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육신을 가지시지 않고 영이시기 때문이다. 예배를 포함하여 영적 교통을 하고 예배를 통하여 드리는 모든 순종과 표현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지리적 혈연적 거리과 관계를 떠나 서로 사랑인 것이다. 나 자신도 상대방에게 이웃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사랑 서로 사랑은 상대방  뿐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은 특정인 예를들면 불우이웃이나 구제대상의 어려운 이웃으로 알고 그러한 이웃 사랑하라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그 이상인 것이다. 상대방 뿐 아니라 내가 바로 상대방의 이웃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웃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3.

1. 이스라엘에는 신학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바울신학이라고 하였다. 내용적으로는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면 예수가 도대체 누구인데 믿으라는 것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는 이미 신을 믿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것인가. 예수님이 사람이라면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를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처음에는 받아드리기 어려울 수 있는 복음을 전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육신으로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은 지금 어디계시는가,

그 분은 부할 후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지금도 교회 교인들 믿는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을 듣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 받아드리는 사람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직접 볼 수 없기에 참 받아드리기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는데 이 복음을 전하고 믿고 받아드린 사람들에게 많은 증거와 표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영 성령께서 함께 역사 하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간증하기도 하였다.

(행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The whole assembly became silent as they listened to Barnabas and Paul telling about the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God had done among the Gentiles through them.


(롬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I will not venture to speak of anything except what Christ has accomplished through me in leading the Gentiles to obey God by what I have said and done--

 

1.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 하나님을 모를 수 있고, 예수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다면 말이다. 그리고 예수가 누구인가 왜 믿어야 하는가 설명도 어쩌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누구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것인가, 또는 예수도 하나님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다로 있다면 하나님이 두분이라는 것인가, 참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을 전하면 우리도 신을 믿고 있는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이러한 이론 적인 어려움을 하나님은 많은 표적을 보여주시므로 믿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 예수님도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처음 복음 전하는 곳에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사 또는 성령행전이라고도 하는사도행전에서 그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1. 사도행전

행 22:-26:

행 27:-28:  

사도행전 28장 예 몰타섬은 지금 가장 작은 국가이고 전 국민이 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다. 아덴에서 복음 실패 같았으나 그리이스 정교회로 역시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다. 생명의 말씀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의 감동으로 뿐 아니라 표적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은 28장까지 있다. 29장은 오늘의 교회 성도 각자가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도님들의 교회 교인들의 신앙여정에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시기를,, God be with you and bless you.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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