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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과 종교개혁 5- (시편 '묵상' 의 번역을 보며)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12-01 (수) 07:52 2년전 817  

개정번역과 종교개혁 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이즈로 쓴 바 있다. 대단히 잘 번역된 개역성경을 개정번역이 너무나 부족하게 수정이 되어서 시리이즈로 쓴 것이다.

개역성경과 종교개혁이라는 제목은 개역성경이 번역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주신 잘 번역된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인 개역성경을  더욱 알리고 많이 부족하게 수정된 개정번역을 보며 말씀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이다. 개정번역의 부족한 수정을 한국 교계에 내어 놓았다는 것은 한국교회사에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러하다.

한국 교계가 근래 수평이동의 성장론에 올인하고 외국에서 무슨 학위만 얻으면 마치 실력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그리고 교회보다 세상 정치의 이념에 관심을 더한 어떤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기도 응답을 오만 번 받았다는 죠지뮬러 목사는 알고보면 신학자 성경학자로 불리워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인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상당한 분들에게 기도라는 주제로 널리 알려진 이엠바운즈도 많은 독서로 문필가 학자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이다. 말씀 묵상과 기도가 함께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편의 묵상이라는 단어의 개역 번역과 개정 번역을 비교해 보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십대 후반에 어떤 쉽게 번역하였다는 성서를 보고 번역의 신뢰감을 주기가 그러하였다. 16 : 의 불의한을 고약한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아 이러한 수준과 신학으로 번역하였구나 하였다. 개역 번역의 8:58 아브라함 전에 '있느니라' 를  어떤 새 번역에 있었다 라고 과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 번역 팀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였구나 하였다. 개역의 아브라함 전에 '있느니라 (I am!)'가  맞다. 그럼에도 신학을 갓 졸업한 목회 초기에 가장 최근에 번역된 현대 번역이 아무래도 좀 더 나은 점이 있지 않겠는가 하여 그 새로운 번역을 집중적 본격적으로 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보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부터 전혀 본적이 없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목회를 하는 중 성경을 연구하면서 개역한글 성경이 얼마나 잘 번역이 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번역 본 중에 좀 더 쉽게 그리고 현대어로 번역하였다는 어떤 번역을 보면 특히 시편의 어떤 부분의 번역을 보면 자신들의 작품활동하였나 할 정도이었다. 원문을 정확히 번역하는 것보다 번역팀의 과도한 의역과 번역자의 시상을 담아 번역한 것이 너무나 역력하였다. 그렇다면 성경의 원문의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번역자의 의역적 작품활동의 시적 표현의 경전을 읽게 되는 것이다. 몇군데 읽으면서 그것을 역력히 보았다. 그 이후로 그러한 번역은 전혀 안보고 있다. 서재에 있지도 않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잘 번역된 영어 번역을 최초의 한글성경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경의 시편의 번역이 참으로 어려울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정확하게 전하는 참으로 적절한 번역자가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번역자를 준비시키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한글성경의 번역을 주관 인도하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잘 준비된 사람들로 번역케 하여 한국에 그의 말씀을 주신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대적으로 옛글이나 어떤 부분은 변화된 한글 맞춘법에 맞게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잘 번역된 개역성경도 더욱 완전함을 위하여 검증에 검증을 거쳐 아주 극히 일부분의 수정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 * 그런데 개정이 나오기 직전에 개역 성경의 하단에 주석과 어려운 단어 설명이 있는 해설성경이 있었기에 개정판은 출간하지 않았으면 한국교회사에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고 나는 너무나도 확신하고 있다. 그러한 하단 해설성경은 개정번역 출간을 계획할 즈음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계에 관주성경이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은 의아하다. 개역성경의 아주 극히 일부분들은 수정할 수 있고 그것도 좋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뒤늦게 나마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개역번역을 오히려 너무나 부족하게 번역한 개정에 또 부분적 개정을 계속 한다면 너무 이상한 번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글개역을 아주 일부분 정밀 검토하여 수정하는 것이 최상이라 할 것이다. 한글 개정의 부족한 번역과 그 보급은 한국교회사에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가 그렇다. )

그리고 요즈음은 컴퓨터에 입력하여 원문 한글 영어성경을 같이 볼 수가  있다. 원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사전만 찾을 수 있을 정도이면 활용이 가능하다. 나는 십수년 이전부터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전을 활용하지 않았더라면 성경 본문의 정확한 이해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기도 한였다. 이러한 사전 기능은 이제 평신도분들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글성경과 잘 번역된 영어성경과 함께 보면 신앙인으로 한국인으로 세계인으로 너무나 유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국력과 영력에도 유익하다고 거의 노래하듯이 말하고 있다. 


119: 을 보자. 

(개역)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 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개역)

( * 시119: 97,98 ,, 묵상 원) 씨아,,  숙고, 기도 meditation, reflection, devotion, musing , prayer, study.)


* 개정 시119: 97, 99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 묵상을 개정의 이 번역대로 한다면  어느 누가 과연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릴 수 있을까요.)

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 

(*개정은 묵상을 읊조리다로 수정하였다. 읊조리다는 뜻을 음미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다. 그런데 실상은 종일 낮은 목소리로 늘 읊조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뜻인 묵상이라는 단어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을 늘 읊조리다로 제한해서 수정한 것은 적절한지 그러하다. 그리고 원어 씨아에 그러한 뜻이 있는지도 그러하다.)

개역의 묵상을 개정은 읊조리다로 수정하였는데, 누가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림이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혹 속으로 읊조림이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묵상이라는 말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개정의 읊조리다는 원어의 뜻도 그러하고 그 문장에서 적절한 번역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 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단어로 수정한 것이다. 개정의 번역팀은 실제의 실력보다 어디 외국에서 학위를 얻었다는 것을 실력의 근거로 보고 선정하여 개역을 불필요하게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 구절과 원문과 한글의 언어에 대하여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쉽게 번역한 성경 번역 중에는 시편 번역에 과도한 번역자의 의역과 자기 시상을 담아 번역한 것을 볼 수 있다. 시편 번역에 번역자의 작품 활동한 것인가 할 정도로 말이다. 시편을 읽으면서 그것이 보인다. 물론 언제 이후로 그러한 번역본을 보고 있지 않다. 원문과 개역한글과 영어번역으로 내용을 정확히 안다면 그러한 불필요한 의역과 가감 등등의 번역을 더 보기는 그러할 것이다. 

     

(시1:1-2)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개역)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개정)


* 시1: 2의 묵상의 원어 '하가'

* 원) 하가,, 묵상하다 신중히 생각하다, 상상하다, 속삭이다, 중얼거리다, 말하다, 연구하다, 이야기하다.  meditate , imagine , study, utter, talk, muse, mutter, mourn, speak, 

(* 시1:2 절에 하가 라는 원어에 중얼거리다 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이 뜻은 묵상이라는 뜻에 다 포함되어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중요하지만 그 문맥 그 문장에서의 뜻도 중요하다. 가령 예를 들면 한글의 먹다, 가다 라는 단어도 어떤 문장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축구 시합에서 한골 먹었다 하였을 때 축구 공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모국인들은 그것을 다 알고 있다. 초등 유치원생도 문장에서 그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묵상이라는 단어에 중얼거림이라는 뜻이 있다 해도 이 문장에서는 주야로 중얼거림으로 해석하기는 적절하다고 보기는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원문의 모국인이 잘 준비하여 번역한다면 경전의 경우는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 부분은 이미 언급하였고 나중에 더 언급할 것이다.)

(* 개역 성경의 시편에서 한글로 묵상이라고 번역된 하가’ (1:2) 나 씨아(119:97) 는 영어로 meditate, meditation 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림보다 소리없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다, 깊이 생각하다는 뜻이 있다. meditate,, 묵상하다, 숙고하다, 깊이 생각하다. meditation,, 묵상 , 명상 , 숙고,,)

(* 시1: , 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일까요, 하나님의 계시의 선포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은 볼 수도 없지만 그 계시된 선포된 하나님 자신과 같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수 1:6-8)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원, 하가)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 묵상,, ) 하가,, 묵상하다, 중얼거리다신중히 생각하다, 상상하다, 속삭이다, 말하다, 연구하다, 이야기하다, 감명하다 , meditate, speak, imagine, study , mutter ,utter, talk,meditated


(시119:103,105.)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3 How sweet are your words to my taste, sweeter than honey to my mouth!

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부록

* 시119: 97, 99 의 묵상 (원, 씨아)은 읊조리다 보다 묵상 이라고 번역하여야 적절하다 할 것이다. 개역이 이미 잘 번역하였던 것이다.

어느 누가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릴 수 있겠는가, 원어 씨아 에는 읊조리다라는 뜻이 있는지도 그러하다. 혹 씨아 에 읊조리다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다고 하여도 묵상이라고 번역하였어야 할 것이다. 읊조리다라고 번역하면 묵상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묵상이라는 단어에는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문맥 문장에서 정확한 뜻을 볼 수 있다.

(* 묵상 원) 씨아,,숙고, 기도 meditation, reflection, prayer, devotion, complaint, musing, prayer , study ,)

1:2  묵상 (* 하가) 의 원어에는 중얼거림이라는 뜻도 있기는 하다. 조용히 생각하고 중얼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야로 중얼거린다는 것은 상황이 허락되면 어쩌다 한번은 몰라도 매일이라면 일터나 직장에서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119:97 절의 씨아 라는 원어의 사전적 의미에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라는 뜻이 있는지 그러하다. 그런데 문맥상 문장 내용상 맞지 않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라는 번역을 어떻게 하였는지,  기이한 일이다. 어떻게 하루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일 수 있겠는가, 물론 잠시동안 작은 소리로 읊조릴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은 묵상이라는 단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지만,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로 수정 번역함은 적절하다 할 수 없다. 여기에서 씨아 즉 묵상은 오히려 소리 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의 주관의 생각대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 묵상 이라는 뜻에 읊조리다가 혹 있다고 하여도 묵상이라고 번역하였어야,, 묵상은 읊조리다에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1. 한글 개역성경의 개정번역의 수정은너무나 부족하게 수정되어서 종교개혁의 때라는 의미의 제목이다.

개역 번역과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위 내용과 같다. 그러므로 개역 번역이 잘 번역이 되었기에 개역 번역을 중심으로 극히 일부분 개정을 하는 말씀 중심 말씀 흥왕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을 말한다

개정 번역의 수정의 문제점을 수백군데 지적하였다. 그것은 사실 지적하려고 하여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깊이 있게 잘 번역이 되고 문학적으로 로도 적절하게 그렇게 잘 번역 된 많은 구절을 개정번역 팀이 그 깊은 내용을 이해를 잘 못했는지,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잘못 번역 하였다고 판단하였는지, 그리고 수정이 불필요한 곳에 수정 숫자 늘이기인지 자신들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잘 번역된 부분을 수정하였다.

1, 개정 번역을 언제까지 더 수정 완성하려고 한다는 어떤 기사를 보았는데 그렇게 하면 절대 안될 것이다. 부족하게 수정된 부분에 근거하여 더 수정한다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인 분명하다

하나님의 인도로 너무나 잘 번역되고 검증된 최초의 개역성경을 기준으로 극히 일부분 아주 극히 일부분 정밀검토하여 개정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경전의 수정과 몇 번역 본의 등장으로 유익한 점이 있는지 모르지만 암송의 열심도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잘 번역된 경전으로 암송한 많은 부분들이 수정되었기에 암송의 혼돈이 오고 이제 암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을 것을 생각하며 너무나 안타깝다 할 것이다.

1. 경전의 번역 중 시편의 번역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 언어 등을 거의 완벽히 이해하고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까지 적절한 분이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편 번역을 보고 번역자의 작품활동을 하였나 할 정도로 번역, 자기의 무엇에 제멋에 겨워 자기 수준 자기 기준으로 자기 시상을 담아 번역한 것이 역력히 보이고 있다. 개정의 번역은 한국교회사에서 자성할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한국교회가 수평이동의 성장 과시에 올인하다가, 정작 경전인 성경 연구 에 등한 하고 성경보다 서구의 학위 학설에 올인하다고 보니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성경보다 인생들이 만든 학설들 원문 어학과 한글 그리고 언어감각 인문학 부족 등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학자들의 실력보다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면 실력 있는 것으로 자타가 공인해 주는 분위기에서 온 큰 시행착오가 아니었는가 교계는 통감해야 할 것이다.

1. 죠지 뮬러( George Muller) - 목회시절 그의 서재에는

그는 세상과 성경의 깊이 없이 오직 기도만 하는 분 이상의 말씀 연구에 있어서 대단한 학구파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가 성경 연구하는데 6개국어를 읽을 수 있는 기초라면 당연히 지성적인 학자라는 평가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 모든 기도의 사람들은 그렇게 가볍게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적 경험적 그리고 나름대로의 시련과 방황의 과정을 거쳐서 기도의 사람으로 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는 6개국어-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독일어, 불어, 영어- 에 능통하였고 화란어와 두세 가지 동양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한권의 히브리어 성경, 세권의 헬라어성경 , 헬라어 용어색인과 사전, 여섯 권의 다른 성경판과 몇몇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경책들로 그의 서재가 메꿔졌다고 한다. (이것은 그 시대의 유럽문화권의 어느 누구못지 않게 신학적 학문적으로도 기본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1. 이엠 바운즈 (E.M. Bounds) 

기도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 엠 바운즈의 기도에 관한 책을 말하고 대단히 높이 평가하는 말을 듣는다. 여러번 그러한 말을 들었다. 몇 번 그의 소책자를 읽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격찬하는 것에 비해 특별하게 새로운 그 무엇을 찾지는 못하였다. 이미 성경에 다 있는 내용이고 기도에 도전을 주는 내용이 많은데 어떤 면에서 그렇게 특별하다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성경에 얼마든지 풍부하고 놀라운 내용이 가득하고 기도를 실천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의 어떤 책을 읽으면서 이 분이 기도를 많이 강조하였지만 신학적인 깊이와 논리가 깊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의 말씀에 대한 열정과  깊이 있고 지적이고 논리적이고 학구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기도에 관한 글들은 성경의 깊은 묵상과 많은 독서 그리고 영적 체험의 바탕에서 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 가득한 탁월한 문필가로서도 평가되고 있다. 성경에 근거해서 열정과 지성의 사람으로서 기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 하나님께선 직접적인 계시의 말씀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그 말씀이 정확히 잘 번역이 될 수 있도록 그 번역도 관여하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앙인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라 할 것이다.

( * 시편 개정에 손을 대지 않았어야 했다. 다른 부분도 그러하였지만 특히 번역이 어려운 시편을 부족한 실력으로 잘 번역된 부분을 수정하였기 때문이다. 시편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너무나 잘 번역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편은 많은 분들이 읽고 또 읽고 암송하는 노래이기도 하여 더 더욱 그러하다. 중요한 할 말이 너무 많아 유구무언으로 대신 할 수 밖에 없다. 다음을 보자.

개역 구약성경의 시편 번역을 한 피터스 목사님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계 인사로 어렸을 때부터 히브리어로 시편을 암송을하며자랐다는 것이다. 한글성경 개정번역 팀은 이십 대 이후에 외국어로 히브리어를 배웠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문화 정서 뉘앙스 등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책으로 문법을 배웠을 것이다. 만약에 이스라엘의 문화역사 지리 전통 잘 모르는 분들이 번역하였다면 어떠할 뻔 하였을까요.

개역 번역 아닌 어떤 쉬운 번역을 보고 이것은 원문 정확 번역이 아니라 번역자의 작품이구먼 하였다. 이곳이 자신들의 작품활동하는 곳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문장의 단어가 쉽다고 그 문장의 이해가 쉬운 것도 아니다.

( * 구약 성경의 최초의 한글 번역은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이다. 1895년 한국에 와서 3년간 한국말을 배운 후 1898년 시편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시편 촬요를 출간 한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이 된다

알렉산더 피터스는 1871년 러시아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피터스는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타고 났다. 히브리어는 물론 라틴어 희랍어와 같은 고전어, 독어, 불어, 영어, 이디쉬어(독일어와 히브리어 합성어)까지 구사하는 어학의 귀재였다그가 서울에 온 후 3년 만에 구약성경 중에서 번역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시편을 번역했다. 그가 한국어 운율에 맞은 유려한 우리말로 시편을 번역했다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어학적 재능을 잘 말해준다. 특히 시편을 소리 내어 읽으면 우리말의 운율이 잘 들어맞어 감탄이 나올 정도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분들을 준비시켜 한글성경의 번역하게 하고 검증 완성하게 하여 출간된 경전이 한글 개역 성경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한국에 주신 은총의 선물이다. 이 번역이 우리 나라가 일제강점기 시점에 출간되었다는 것은 갇히 곳에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이 더욱 실감나는 것이다.)

(*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된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한 한국인이 누가 있겠는가,

어떤 번역의 시편 번역은 심지어 자기의 작품활동 하였나 할 정도이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원문을 전하는 것보다  번역자의 사상이나 시상이 담긴 내용을 담아 번역하였다는 것이 역력 하게 보인다. 번역자의 수준에 맞게 번역한 것이다. 자기의 시상에 따라 의역을 한다면 그리고 읽는 사람이 또 한번 의역을 한다면 그그 뜻이 어떻게 되겠는가, 일점 일획도 틀림이없게의 자세로 번역하였어야 했다. 독자는 번역자의 작품활동이 담긴 것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 한글 개역 성경을 읽을 즈음에 이 번역이 어떻게 되어왔나를 읽어본다면 누구나 이 최초의 개역완간 번역이 하나님께서 한국에 주신 특별한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개정의 번역 수정 내용이 이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읽는 중에 너무 부족한 수정을 많이 발견하고 이미 몇 년전에 많은 부분을 올려 놓은 적이 있다. 경전 번역이나 번역의 수정 그리고 찬송가 가사의 개정등은 가장 진지하고 신중하고 정밀 검증한 후에 교계가 공인하였어야 할 것이었다. God bless you,)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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