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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교단에게 주는 글 2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01-11 (화) 19:12 4개월전 313  

한 때 교단에서 몇 분이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일부 정치인들과 함께하며 투사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교단 각교회가 그러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대외적으로는 교단전체가 그러한 교단이라는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다 논하기는 그렇다.그런데 그렇게 함께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P교단의 목회자와 같이 활동하였다면 그 정치권 인사들이 p교단의 교회에 호감을 갖고 적절하게 분배해서 출석할 수 있는데 알고 보면 그러한 정치권 등의 인사들이 교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p교단에는 거의 출석하지 않고 대부분 다른 교단의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다.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그렇다.

왜 그러할까 두 세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정치권 인사들이 어떤 정치적 이슈 예를들면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도 막상 교회를 종교를 생각하면 교회에서 어떤 투사적 투쟁적 그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위로와 안식 격려를 받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교회말고 어디에서 영혼의 안식과 위로 평강 격려를 받겠는가 그것은 교회이고 그러한 교회를 찾는 인간 본성의 심성이 그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교회에서 아니면 어디에서 찾겠는가, 비록 어떤 목적 고상한 목표를 가지고 투사적 투쟁적으로 일한다고 하여도 교회에서는 영혼의 위로와 평강 안식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누구나 위로와 격려 안식과 평안을 당연히 교회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상 누가보아도 p교단의 교회를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고 더 선호는 아니라 해도 덜 선호는 아니어야 상식적인데 그러하다는 것이다. 종교 본연의 교회 본연의 그 무엇을 찾는 것일 것이다. 물론 대형교회를 다녀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러한 면도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내 양을 치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생명의 위로의 평강의 말씀 대신에 그것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찾겠는가. 교회가 양을 치고 먹이는 일에 전무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것인가, 외양간의 소 키우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소를 키우겠는가, 양의 무리에 양치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양을 키우겠는가, 어디에서 그 꼴을 찾을 수 있겠는가,

교단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는 것은 좋을 수 있지만 교단 교파를 우상화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교파인이라고 교단에 인자 붙여 말한다면 예수님께서도 그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냐 할 것이다. 성경에도 없는 그 이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언젠가 인용을 하였지만 나는 언젠가 너무 허탈한 심정이었기에 다시 인용할 수밖에 없다. 주중에 어느 교회에 여성 분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그 교회 교인들은 아닌 것도 같았다. 그래서 저분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북의 모 여고의 동창회라는 것이다. 그 분들이 교단에 역할을 크게 하는 분들과 연결된 분들인 것을 알았다. 그때 아 교단 교파라는 것이 지역적 이유 때문이었구나 . 그러면서 교단에 대해서 그렇게 거창한 무엇을 말하고 하지만 실상은 지역적 이유로 되어진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꼈다.  그 후 거창한 명분들을 붙이고 그렇게들 외쳤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치며 어떤 생각과 함께 허탈하였다. 

각 교단에 어떤 대표적 또는 상징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그 분들은 존경받는 인물일 것이다. 그래 몇 교단의 목회자 분들의 설교를 보면 놀랄 정도로 참으로 놀랄정도로 설교 억양과 폼이 그 교단의 상징적인물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얼마전까지 그러하였다. P교단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 분은 자신도 자신은 목회자적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그 영향은 컸다. 지금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만큼 각 교단의 상징적인 인물들은 영향력이 컸고 지교회의 숫자적 부흥에 유익도 주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방의 어떤 교회의 주보에 보면 우리 교회는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목회 하시는 무슨 교회와 같은 교단입니다 라고 알리는 것도 보았다. 어떤 종교의 교단의 존경받는 어떤 인사 때문에 그 종교가 그 교단이 세상에서 더 존경받고 각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교계가 반성할 것은 얼마전까지 수평이동의 교회 성장으로 각 지교회 숫자 성장으로 어떤 목회자가 스타가 영웅이 되고 그러다가 인간적인 연약함때문에 부족함이 과장하여 드러나므로 교계가 함께 손해를 보기도 하였다. 교인 숫자 성장의 어떤 스타 영웅목회자가 그러할수록  더욱 겸손하게 예수님을 높이고 알리고 그의 말씀만을 전했다면 모두가 좋았을 것이다 

신학을 공부한다면서 너무나 당연히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무슨 학위 하나 받아오는 것이 그간의 현실이었다. 외국에 가서 과연 무엇을 배웠던 것인가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을 잘 모르고 학위에 올인하다가 그러한 분들이 경전을 개정한 것을 보면 너무나 성경을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주제로 외국 학위하나 취득하기 위해 올인하다보면 그것이 무엇에 얼마나 유익할까 이제 한번 검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의 교회사 초기는 몰라도 지금의 시대상황에 외국에서 학위받는 것이 얼마나 무슨 도움이 될까, 이제 여러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수준이 아닌가, 신학분야도 그러할 것이다.

한국에 세계 십대 대형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수평이동의 그 숫자가 평가기준이나 우상이 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편으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무엇을 배우러 와야 하지 않았겠는가,

부산에서 wcc 있었을 때에 그 입구에서 반대하는 일부 성도님들의 외침이 있었다. 그중에 어떤 중년 여성분이 예수님보다 칼 바르트를 높이는 단체라고 외치며 각성을 촉구하는 외침이 있었다. 한국에 일부 교단에서 누군가들은 칼 바르트가 이십세기의 최대의 신학자 운운하며 말하지만 wcc  안에서 바르트와 같은 나라의 분들이 그 분을 높이평가 하는지 모르겠다. 세계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그 신학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냥 인용하고 높이는 것이 신학지식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책이 영문으로 팔천페이지라면 누가 과연 그 책을 다 읽었겠는가, 한번 읽어 알겠는가, 읽은 사람들마다 저마다 또 하나의 학설이 분분할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한 외국학자의 그 분 신학에 대한 간결한 해설서를 읽고 말씀 중심의 학자라는 그 한마디에 공감은 하였지만 말이다. 어느 할머니가 칼 바르트에게 성경의 요약이 무엇입니까, 예수 사랑 하심은 성경에 써있네 라고 하였다던가. 그것은 누구나 잘 아는 성경에 있는 귀한 말씀이다. 그것을 배우러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그렇게 어렵게 배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칼 바르트는 어느 정도 검증은 된 분으로 안다. 그래 어떤 분은 신학계의 부흥사라고 하였다. 

한편 예수님보다  wcc에서는 그 학자를 더 높인다고 규탄한 그 분은 집사님 아니 권사님 정도로 생각하였고 어느 목사님 한데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하였는데, 혹 이 분이 신학자나 목회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그 후 해 보았다. 또한 wcc에서 칼발트를 높이기는 고사하고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전혀 관심도 없는 듯 하다. 막상 칼발트와 같은 나라 같은 동네의 동료들이 한국에서 누군가 그를 그렇게 대하듯이 하는지도 궁금하다. 집안에서는 영웅도 없다지 않는가,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분들에게 더 높게 평가해 올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여성의 외침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wcc를 일방적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편 교회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었는가 그것이 우선순위이었는가 하는 것도 냉정히 자성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자리에 무슨 투사들을 미화하고 우상화까지 했다면 이것 또한 자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교계는 한국 아니 세계적으로 코로나와 그 외로 어려운 시기에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교단의 게시판은 그 교단의 분위기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기독교 교리를 부정한 듯한 내용 그리고 목회자의 교인의 신앙을 완전 부정하고 조롱하고 장난하듯하는 글들을 왜 오랫동안 방관하는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심지어 옹호하는 하고 두어 펜들도 있다면 희한한 교단이라는 말도 아까울 것이다. 그것은 목회자가 설교하는 교리의 내용을 조롱하고 비웃고 장난하는 내용인데 그것을 모르는지 동조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내버려 두는 것이다. 역시 희한한 교단이라는 말도 아까울 것이다. 그러한 교단에 속해있다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한 교단 교회의 이미지로 교단이 목회가 가능할까 하는데도 그대로 방관 심지어 두어펜도 있다는 교단에 속해 있다는 것이 유구무언이다. 이것만 본다면 타교단외의 비판이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혹 교단의 교회의 실제내용은 그러하지 않아도 대내외적으로는 그러한 이미지로 비취일 것이다. 다른 교단의 누가 또는 교단에 신실한 교인들이 그것을 보고 또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누구나 그것을 그 교단의 내용으로 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방치 심지어는 옹호하기도 한다면 역시 희한한 교단이라는 말도 아까울 것이다. 그러한 교단의 교회나 학교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겠는가, 목회자와 담당자들이 그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그것들을 모르는지 아는지가 동조하는지 직무가 무엇인지 그것만 보면 희한한 교단이라는 말도 아깝다는 것이다. 이러하니 그 교단 교회나 학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을 방관하는 그러한 기이한 교단에 속해 있다는 것이 유구무언일 것이다. 다른 교단의 게시판을 안보았지만 아마 그러한 교단은 없을 것이다.

어떤 신학대학도 왜 그렇게 미달되었는지 시대상황등도 있겠지만 척하면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단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교수진이 좋아야 하고 한 두분 정도는 신실하고 실력있는 명강사로 대내외적으로 알려지면 그 분을 보고도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광야가 있었기에 놀라운 하늘 양식 만나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가는데 광야가 있었기에 놀라운 하늘 양식 만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광야가 없었다면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하늘 양식 만나는 없었을 것이다. 광야는 물이 없고 건조하고 전갈과 불뱀이 있는 무시 무시한 사람 살기 힘든 곳이다. 굶어 죽기 꼭 알맞은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따라 신앙 행진 중 외부의 공격 등 외 여러 가지 문제와 도전들이 있었다. 

그 어려운 광야에 만나가 있었다. 그 광야에서 반석에서 생수가 있었고 불 구름기둥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풍성한 은혜의 역사가 그 광야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한국 교회가 교단이 성경으로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광야가 있었기에 만나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살기 힘든 광야가 없었다면 만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따라 함께 행진하여 간다면 코로나등 좀 어려운 과정에서도 육신의 양식 하늘 양식을 기대할 수 있는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광야가 있었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 만나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출16:, 신8:1-4 )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meditation)

1. 출16:,

1. 신8:1-4

1.  내 양을 먹이라

(21:14-17)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4 This was now the third time Jesus appeared to his disciples after he was raised from the dead. 

15 When they had finished eating,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more than these?" "Yes, Lord," he said,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lambs." 

16 Again Jesus said,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He answered,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Take care of my sheep."

17 The third time he said to him,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was hurt because Jesus asked him the third time, "Do you love me?" He sai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sheep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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