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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의 교과과정 (curriculum)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01-12 (수) 08:13 2년전 727  

1. 이시대에 서구의 한국의 모든 신학교의 신학의 교육 교과 과정을 한번 검토해 본다는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대단히 유의미하고 유익할 것이다.

최근에 어떤대학의 신학과에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이라는 사태가 있었다. 그 학교가 어느정도 역사가 깊은 학교라면 그 윈인을 검토해 보는 것을 좋겠다.일반적으로 어떤 대학에 경쟁률이 이러한 상황에 여러가지 이유를 검토해 보는 것은 의미 있다 하겠다. 시대상황  교회상황 학교의 커리큘럼 외 등을 보는 것도 좋겠다. 일반적으로 어느 학교가 이미지가 좋고 실력있는 교수진 졸업후 진로가 보장되고 등등이면 경쟁율이 천정부지로 높을 수 있다.

신학의 교육 교과 과정에 서구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의 기독교 역사가 오래되었고 서구를 통해서 전도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학에서 성경보다 어떤 사람의 학설이나 배우고 논문을 쓴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리고 서구의 신학교육의 결실이기도 할 교회를 보면 그 신학교육과 교과과정은 서구에서도 검토하고 보강 새롭게 할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신학 교육과 교과과정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한다면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특별히 서구의 일부 신학이 성경을 연구 검증 또는 정반합으로 그 진리의 풍부함 절대성 생명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설픈 비평적 학설이나 가르치다가 만다면 그곳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은 막중할 것이다. 그곳에서 공부한 학도들은 그 학설을 가장 신봉하고 배울 것이고 결국에 그 교수는 고국에 돌아가서 그 학설을 학도들에게 가르치고 그 학도들은 그것을 교회에 전하는 결과가 되게 할 것이다.

1. 학교에 실력 있는 신학교수 있다면 그 영향력은 막대할 것이다. 신학이라는 이 중요한 학문을 공부하 것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어떤 경우 신학이라는 분야에 거의 백지상태에서 흡인력 있게 받아드리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우기 이 십대라면 세상을 리더해 나가려고 성직을 준비하는 인생의 어떤 기초를 갖게 하고 감수성이 좀 더 풍부 예민한 때라고 한다. 학구열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떤 학설에도 일생의깊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의 교수의 영향력은 상당하거나 대단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학생들과 교회를 위해서 실력있는 신실한 교수진이 필요하고 절실할 것이다. 시대상황과 교회에 대한 인식등 이유가 있다하지만 그래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가르칠 교수진 일 것이다. 교수진이 학생을 가르치고 그 학생들이 교회에서 목회를 감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는 얼마나 막중하고 부담이고 실력이 있어야 할 것인가 알 수 있다.

동서양 막론하고 신학교수들이 하나님께서 율법의 요약을 돌판에 손수 써 주셨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을 못 믿는다면 신학교수가 될 자격이 없는데 만약 그러한 분들이 서구의 신학교의 교수로 있고 그러한 교수에게 배우고 이상한 튀는 비평적 유행학설이나 배우고 돌아온다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할 것이다. 세계각지에서 유학을 간, 지금 한국유학생을 제외하고 외국 유학생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대단한 것 배운 것인양 배우고 수입하여 그대로 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 가서 무엇을 특별하게 새롭게 얼마나 배울 것이 있는지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신학 간 그때 배운 실력으로 가르치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을 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혹 그러하다면 구태여 외국까지 갈 이유가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때 그 실력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학위얻으려 배우려고 갈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하며 함께 세계역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기독교의 역할을 찾는 유익을 위해 토론하며 서로 유익과 비젼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넷 유브등으로도 모든 정보 강의를찾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시대에 서구의 한국의 신학의 교육 교과 과정 전반을 검토해 보아야 하고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신학교까지 관여할 수는 거의 불가능하고 일단 한국의 모든 신학교의 신학의 교육 교과 과정을 한번 검토해 본다는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대단히 유의미하고 유익할 것이다.

어떤 성서에 대한 비평이 있다면 정반합으로 결론에 이르게 하는 것은 좋은데 반정도로 그친다면 오히려 신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안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1. 처음 갈릴리 바다 호수 방문하고 놀랐는데 그 이유는 그동안 듣고 배운 것을 생각하며 전혀 아닌 데, 그후 십 수년 후 함께 방문한 동역자 외국에서 공부도 하고 학위도 있는 그 분도 역시 어 아닌데 그런데 왜 우리가 그렇게 배웠지 하였다. 내가 십수년 전에 처음 방문할 때 느꼈던 생각과 똑 같았다.

유학을 하고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얻고도 ,, 갈릴리 바다 호수가 어떠한 모습인지도 모르고 가난한 자 민* 운운하며 외쳤는데 ,, 갈릴리 전경을 알기나 탐방이나 하셨는지,, 그곳은 천혜의 관광지 같은 곳이고,, 아니 거기 풍부한 물고가 있는 곳으로 베드로 일행은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기도 한 곳이다. 환경적으로 경제적으로 전혀 어렵게 사는 그러한 곳이 아니었다. 그 갈릴리 바다에 풍부한 물고기가 있는데 어업을 하면 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3차 절기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 성막의 설계도,, 그 설계도 중의 금촛대의 살구나무 문양,, 히스기야 턴널,, 엘리야의 갈멜산 상에서 본 지중해의 그 망망하고 풍부한 바닷물 그 다른 편의 삼년 장마의 이스르엘 평야의 모습을 동시에 바라보았을 엘리야의 심정,, 네게브 의 자연적 지리적 특성,,

그 광야 지역에도 폭포수가 흐르는 이유,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의 성취 ( 8: , 광야에서 그곳은 어떠한 곳이라고 말하였는가, 그 예언의 성취의 생생한 현장, 가이사랴 빌립보를 오르며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곳을 보는 심정, 물이 살아 있는듯 용솟음치며 생동감있게 흐르는 시냇물,,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그 예언의 성취,,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살아 용솟음치며 생동감 있게 흐르고 있는 그 현장을 보는, 보아야 할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밋등은 어떤 노동력으로 세워졌을까, 그런데 그 외에도 잘 배우면, 너무나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왜 그런데 그 동안 한 두 번은 모르지만 무엇을 배우러 서구로 신학 유학을 가야했던 것인지. 그 신학으로 지금의 유럽의 미국의 교회가 어떠한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할 것인가, 유학을 가려면 이스라엘 유학 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길게 할 필요 없이 잘 준비한 후 한 달 정도도 어느 정도 충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구는 유학으로 누구 학설을 배운다며 몇 년 힘든 고생할 것이 아니라 가서 초청하여 디스커션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실력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몰론 어떤 기준에서 평가하는냐가 문제이지만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1. 한 때 한신의 전신인 조선신학교 교수진은 대단한 실력자들로 가득찼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그렇게 말하므로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분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는데 나중에 보니 채필근 교수 목사님에 대해서는 참 실력있는 분이었겠구나 하였다. 그 분이 쓴 비교종교학을 이십 대 때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읽으면서 배울 것이 많고 대단히 유익하고 학문적인 내용이었다. 그 당시 채필근 이라는 이름으로 쓴 책을 읽은 것이다. 선친의 서재에서 보고 읽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분이 신약성서 주해서가 있어서 가끔 읽었다. 또한 그 분이 쓴 이야기 철학이라는 책은 목회중 얻은 해학의 유머가 담긴 책이었다.

이 분의 비교종교학이라는 책등을 쓴 이 분은 소문없이 실력있는 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자의 유명함이란 학문의 풍부함과 깊이 보다도 자신의 또는 누군가의 포퓰리스트적 선전의 결과가 많은 듯 하다. 어떤 학자가 이름이 유명하게 알려졌다고 그 유명한 만큼 실력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무명인사들 중에 실력 있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p 교단을 위해서는 학교에 또한 신학과에 실력 있는 뛰어난 학자를 양성하고 그 직무를 감당하게 하였어야 할 것이었다. 한편 대학교야 말로 참으로 파벌과 라인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타대학 어떤 교수로부터 오래 전에 들었다. 몇 십년 만에 우연히 만나 그 이야기부터 하였다. 학교에 실력을 포함하여 학자적으로 잘 갖춘 교수팀이 중요하다. 신학대학 신학과이면 진즉 성경 주석을 쓴 한 분 이상은 배출했어야 그 학교가 인정받을 것이며 학문적인 분위기와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판에 써주신 돌판을 주신 것을 그리고 그 내용을 믿는다면 축자영감설 목적영감 설 , 그것은 자기의 무엇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일 뿐 일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 축자인가 목적인가, 간단히 말하면 한낱 가치없고 의미없는 논쟁이다. 교단 분열 자신들의 분열을 합리화하기 위한 일부의 목적일 것이다. 꼭 말해야 한다면 성경의 기록은 축자이기도 하고 목적이기도 하다.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1. 서구 신학자들의 학설에 대해서도 우리나 그들이나 성경시대 그 당시 살지도 않았다. 본 사람들의 증언을 믿어야 하겠는가 아니면 우리와 같이 그 당시 살지도 않은 사람들의 학설을 믿어야 하겠는가,

그 당시홍해바다를 건넌 여호수아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야 하겠는가, 그 당시 살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학설 때로는 그럴듯한 학설을 들어야 하겠는가, 직접 본사람의 사실적 증언을 믿어야 하겠는가 역사적 사실을 보고 듣지도 못한 사람들의 학설을 믿어야 하겠는가, 서구의 어떤 신학교에서 이러한 가설의 학설을 보고 증언한 사람의 말보다 더 신뢰하고 그것을 최신 유행학설이라고 가르친다면 한 사람의 신학교수의 가설이 끼치는 영향력은 어떠하겠는가, 그것이 사실이아니라 가설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구약의 십계명 돌판에 하나님이 손수 써 주신 것을 믿느냐 못 믿느냐 못 믿는다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돌판에 직접 새겨 써 주신 그것을 믿는다면 더 이상 못 믿을 것이 없고 신학으로 왈가 왈가 할 것도 없다. 그 안에 하나님의 창조 구원 사랑 능력 예배 거짓 증거 하지말라 등 가장 중요한 내용이 압축하여 다 들어있다. 만약 못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일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돌판에 친히 써 주신 것을 그리고 그 내용을 혹 믿지 않는다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고 더구나 교수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면 무슨 비평학 등의 학설은 가소롭고 구차하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서구의 학설을 보면 이것을 믿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아니 믿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이상한 튀는 유행학설이 나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돌판에 손수 써 주셨다는 것 그리로 그 내용을 못 믿는다면 신학교수가 될 자격이 없는데 만약 그러한 분들이 서구의 신학교의 교수로 있고 그러한 교수에 의하여 이상한 튀는 비평적 유행학설이 세계에서 유학을 오고 간 사람들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대단한 것 배운 것인양 배우고 수입하여 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신학 간 그 때 그 실력으로 그것을 더하여 가르치는 것 일 것이다.      

그런데 그 교단의 대외적 이미지 그리고 대외적 튀는 말들 홈피에서 완전 기독교를 비방 조롱하는 듯한 글들이 있어도 무엇이 두려운지 아니면 그것에 공감한다는 것인지 아무 관심도 책임도 그 무엇도 없다. 간혹 우리가 최고다 하며 어떤 소리나 하지 말이다. 참 희한한 교단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한 신학교라면 신실한 믿음의 가정의 부모님이나 전 생애를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학도가 그학교에 지망하려고 할까 할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언젠가부터 예수님보다 수평이동의 교회 숫자 외형 성장 스타 소위 무슨 세상의 민주화 운동가 실력보다 외국의 학위를 높이 평가하는 이러한 것들이 미화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말이다. 예수님 자리에 이러한 숫자 무슨운동권 학위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1. 나는 경전의 한글 개정번역이 이렇게 이 정도로 개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외국의 학위를 가진 것이 곧 실력이 있는 것을 판단을 하여 그 결과를 보니 너무 성경을 모르고 국어실력까지를 포함하여 성경적 실력이 부족함을 단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약 성경을 예로 든다면 이스라엘 문화 지리  

전통 등 모든 것에 익숙한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원어로 읽고 암송한 사람 정도의 실력을 가진 분이 가장 잘 번역했을 것이다. 또 그러하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젊은이들을 위하여 쉽게 번역한다고 그것을 결의하여 출판한 이후 그 보급은 참으로 신속하고 정착시키는 일은 놀라웠다 

몇 년 전까지 청년 대학생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화제가 되는 교회가 있었다. 물론 청년이 많이 모이다 보니 더욱 청년들을 찾아서 갈수 있다. 그런데 보니 청년들에게 어필할 그 무엇도 없는 듯 하였다. 외면적으로 보면 무엇 때문인지, 설교도 젊은이들에게 맞는 소위 그들이 보기에 멋진 끌림도 아닌 듯 하고 오직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잘 전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청년들에게는 끌림이 된 것이다. 성경말씀 그대로 오히려 몇 십년 전의 그 때 그 시절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을 위한다며  쉬운 성경들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1. 신학도 시절에 어떤 교수님은 미국의 명문대에서 학위취득을 위해 신학 논문을 쓰는데 그 논문을 다 완성한 다음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시는 그 논문을 쳐다보기도 싫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다해 학위논문을 쓰는 것이 정작 성경연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무엇에 무슨 유익이 있었을까 검토해 본다면 깨닫는 바가 있을 듯 하다.

한국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최소 수백권 이상 또는 천권 이상의 독서를 하였을 것이다. 한국의 목회자들의 독서는 세계적일 것이다. 일주일의 예배 인도 새벽기도회 준비을 위해서 만도 그 독서는 세계적일 것이다. 한국의 목회자 분들중 수천권 이상의 독서가가 많을 듯하다. 이러한 점에서 외국에 공부하는 박사보다 목회자들이 훨씬 더 많은책을 읽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목회자들은 신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동안 쎄미나등 많은 연구,,외국의 학위 취득자는 학위 취득에 올인하느라고 더구나 모국어 아닌 외국어로 책도 많이 읽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이 부분은 따로 한번 주제토론할 필요까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외국에서 공부한 학위 취득한 내용등에 관해서 말이다. 이것은 외국에 유학을 하려는 후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신학자들 운운하기도 하는데 이제 여기가 한국이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이고 신학적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급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 숫자적으리 많은 십대교회에 한국에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신학공부를 위해 어느 나라 어느 지방 어느 학교로 간다는 것인가, 아니 거기에서 새삼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물론 배울 것이 있다면 이제는 유트브, 인넷으로 가능 충분하고 서로 토론하면 될 것이다.

( 신학과정의 1,2년 때에 철학사의 강의등 어떤 강의를 들으며 학문의 세계가 참으로 재미있구나 하였다. 군대 전역 후 3,4년 때 강의를 들으며 참 지루하고 지루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교수의 명강의는 학생들에게 행운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교단의 모모 목사님의 신학에서의 강의는 영향력도 크고 소문이 대단하였다. 그러한 목회하시는 교수님들의 신학교에서의 강의의 영향력은 일평생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풍부하고 깊은 내용을 쉽게 90분의 강의의 연속을 한학기 듣는다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강의 70녀분에 질문의 응답에서 배울 수 있는 명강의의 교수님들이 차고 넘친다면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의 주석을 쓴 분 정도의 실력으로 풍부하고 깊은 내용을  그분들의 강의로 쉽게 잘 배울 수 있다면 학도들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 경험까지 풍부한 이러한 교수님들이 있다면 그 학교는 미래가 소망적이고 교회에도 큰 유익이 될 것이다. 신학은 이러한 내용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한국교회가 언젠가부터 예수님보다 수평이동의 교회 숫자 외형 성장 스타 소위 무슨 세상의 민주화 운동가 실력보다 외국의 학위를 높이 평가하는 이러한 것들이 미화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말이다. 예수님 자리에 이러한 숫자 무슨운동권 학위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한국에서 신학교육의 교과 과정에 대하여 조금 또는 너무 늦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쯤은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인가를 찾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의 후진들과 한국 교계와 교회를 위해서도 말이다. 한국교계는 공동으로 그것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실행하는 것도 교계와 교회를 위해서 유익할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교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후렴)

신학의 교과과정에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성경안에 율법의 요약인 십계명 과 성막, 하나님의 그림 예수님의 모형인 성막, 성막에 대해서는 필수로 학기 필수로 강의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돌판에 친히 써주신 십계명과 성막의 설계도 강의를 위해서 가능하면 이스라엘에서 탐구 공부한 교수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 지리 전통 문화 계절등을 알아야 성경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부록 (supplement)

교회사에서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은 죠지 뮬러 목사님은 성경 연구를 보자.그는 6개국어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같은 서양어이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동양어와 너무나 다른 서양어를 이렇게 많이 공부한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성경은 한글성경 뿐 아니라 원어가 좋지만 중 초등부터 배운 영어가 세계어이기도 하기에 잘 번역된 한영 성경을 익숙하여 교회 뿐 아니라 영력 국력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물론 영어성경을 읽으면서, 읽기위해 영문과 졸업정도의 영어의 실력을 갖춘다면 좋을 것이다.

내 개인의 견해로는 이왕에 배운 세계어이기도 한 영어와 원어는 사전 찾아 볼 정도만 되어도 성경 연구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다른 일과 다른공부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더 하는 것도 좋을 것이지만 말이다. 죠지 뮬러가 목회 중 성경 연구에 대해서 보자.

 

* 그는 6개국어-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독일어, 불어, 영어- 에 능통하였고 화란어와 두세 가지 동양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한권의 히브리어 성경, 세권의 헬라어성경 , 헬라어 용어색인과 사전, 여섯 권의 다른 성경판과 몇몇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경책들로 그의 서재가 메꿔졌다고 한다. (이것은 그 시대의 유럽문화권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신학적 학문적으로도 기본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뮬려는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한 때는 성경만을 제외하고, 그는 그 후 많은 종교서적들도 읽었다고 한다. 성경만은 제외하고. 그러나 이제는 성경만을 읽기를 집중한다. 성경의 귀함을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 * He mastered six languages- Latin, Greek, Hebrew, German, French, and English. He read and understood Dutch and two or three Oriental languages. His library consisted of a Hebrew Bible, three Greek Testaments, a Greek concordance and lexicon, with a half dozen different versions in several languages. These constituted his entire library! /

 

Muller never studied the Bible for others. He studied only for himself to find out what His Father required of him. He became so impregnated with God's truth that, when he spoke of God, his listeners would be reminded of the words of our Savior in John 7:38, for from him seemed to flow " rivers of living water." /

 

I was growing in the faith and knowledge of Jesus, but I still preferred reading religious books instead of the Scriptures./ I read tracts, missionary newletters, sermons, and biographies of Christian people. God is the author of the Bible, and only the truths it contains will lead people to true happiness. A Christian should read this precious Book every day with earnest prayer and meditation. But like many believers, I preferred to read the works of uninspired men rather than the oracles of the living God. Consequently, I remained a spiritual baby both in knowledge and grace. // from ' The autobiography of George Muller' ( * 이 영문의 내용은 뮬러에 관한 위 글의 원문.)


(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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