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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 근 현대 교회사 와 전망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02-10 (목) 07:26 2년전 774  

1. 한국 초대교회사에서,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평양 장대현교회 성경사경회의 심령부흥회는 한국 초대교회사에 놀라운 일로 기록하고 있다.

1907 1 14 , 15 일 양 이틀간에 놀랍게 임한 성령의 역사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일 후 장대현교회는 날마다 신도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성령의 불길은 이윽고 평양 시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령부흥의 역사는 전국의 여러 곳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 한국역사에는 무슨 큰 일이 있었는가,

1905년에, 기록에 의하면 한일 을사조약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뭔가 불안한 기운이 가득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 1905년 11월20 일 황성신문에 올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의 글을 통해서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이란 '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 라는 의미다.

 

1. 그리고 한일합병이 1910년 인데 평양 장대현교회의 심령부흥회 의 역사가 1907년에 있었고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글 신구약 성경이 1910, 1911년에 완간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던져주신 생명선이 아닌가 할 것이다.

이미 완간된 신약 성경에 이어 구약 성경이 1910년 완전 번역 완간되고 이어 신구약 한권의 단권 성경이 1911년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기도 한 하나님의 말씀을 일제 강점기에 생명선으로 한국민에게 던져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 없었다면 그 암담하고 절망적인 시기에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이 민족에게 주시며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라.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ㅏ리라, 내가 너를 보호하리라. 내가 너를 돕기 위해 지켜보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시며 말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 다시 구원하리라 하신 말씀을 주신 듯이 말이다. 인간역사는 사람의 계획과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 한국은 조선은 기적적으로 1945년 해방을 얻는다. 한국의 한국민의 힘으로는 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그 때 의지할 곳이 없는 신앙의 국민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고 붙잡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렘1:11-12 의 말씀등 수 많은 위로와 생명의 하나님을 말씀을 안다면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람 살기 힘든 광야 사십 년 바벨론의 풀무불 같은 칠십 년은 하나님의 표적들을 더 많이 목도할 수 있었고 영적 훈련의 장소도 되었다는 점과 연결하여 볼 수도 있을 것이다초대교회에 1907 년 장대현 교회의 부흥회 부흥사경회 역사는, 1910,1911년 한글 성경의 출간은 일제 식민지에서 하나님께서 한국민들을 위해 준비시키기 위한 역사가 아니었겠는가, 한국의 해방 그 후 한국교회사는 세계교회가 놀랄 일이 일어난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그 시대의 많은 독립지사 민족의 지도자들이 기독교를 접하고 그 역할을 다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영향이 있었고 미국이 강국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구하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며 성경이라는 것도 배웠던 것을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후 한국의 최근의 교회사는 어떠하였던가,, 

최근 기독교 현대사를 보면 지금은 더 숫자적으로 성장이 덜하거나 하다는 것인데 현대를 교회사적으로 보면,,


1. 서구 유학이 한국 교계에 끼친 영향은,

한글 성경주석서를 쓴 분들은 외국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분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서구나 외국의 유학을 간 분들은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막상 외국 유학을 가서 더 무엇을 많이 배우고 온 것인지는 각자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간혹은 여기에서 극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자유주의적 신앙이랄까 하는 모습으로 돌아온 분들도 상당한 듯하다.

서구유학이 유익도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배우기 위해서 오직 외국으로 가는 것이 유익보다 무익한 것이 더한 것이 아니었나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한국에서 공부한 것이 더 유익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정보공유의 시대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구등에 유학보다 서로 디스커션의 기회를 갖고 서로배우는 것이 좋을 듯하고 이스라엘에 몇 개월 정도 이상을 유학가서 성경의 역사 배경 문화 지리등을 배우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고 하였다.

기독교의 신학을 배우기 위해 서구 유럽으로 많이 갔는데 거기서 성경학 보다 이상한 신신학 유행신학 비평학을 배우고 와서 그것이 마치 무슨 최신신학인 듯이 가르친다면 그것은 실속 없는 내용일 것이다. 서구신학교육과 그곳에서의 그 결실을 참고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내용을 가르치면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은 상식적이라 할 것이다.

한국도 그러한 신학으로 가르친다면 결과가 동일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성경을 잘 가르치는 교육보다 학문이라는 이름아래 성경 비평학이나 가르치고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 아닌가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서구신학이 그렇게 가르친대로 가르친다면 그 결과도 같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태여 서구에 가서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아는 분들은 알 것이다.

그래 유학을 가야 한다면 이스라엘을 탐방연구 하여야 할 것이며 서구에는 가서 학위취득보다 같이 디스커션 하며 서로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역설한바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학위 목적을 하는 경우도 필요할 것이지만 말이다.지금 한국에서도 잘 번역된 책들이 얼마든지 있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꼭 원서가 필요하면 한국에서 구입하여 읽어도 되는 것이다. 지금 모든 면에서 한국이 수준이 세계 최상급인데 왜 꼭 서구에 유학을 가서 어떤 학위를 받아와야 하는지 진지하고 검토하고 심지어 자성하여야 할 시기가 되었다 할 것이다.

( * 한글개역 성경을 개정한 내용을 읽으면서 꿈에도 이렇게 개정한 것인 것을 상상도 못했다. 비교적 적은 부분이라 그나마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확하게 잘 번역된 개역번역의 여러 부분을 이상하게 개정한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그러해하여 성서공회 담당자에게 두어번 전화했다. 그런데 그 분 왈 각 교단에서 추천한 외국의 학위를 가진 분들이 개정하였다는 것이다. 혹 평신도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한다면 개역의 번역은 잘 준비된 실력 있는 분들이 번역 후 십수년 수십년 검증 후 개역 주석가 분들의 검증 등등이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하였다.

이전의 개역 번역 분들  즉 우리 선배님들이 오히려 성경실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개정번역이 한국교회사에 어떻게 평가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훨씬 부족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번역을 보고 있는 기간은 어떻게 해야할지 이다. 이제 그 해결 방법은 개역을 원본으로 극히 아주 극히 정밀 검증하여 한국교계에 내어놓은 방법이 최상이라고 본다. 지금 개정번역이 문제있기에 또 그 위에 재개정하면 더 혼돈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번 언급을 하였다. 그런데 한국교계는 개정이 개역에 비해서 너무나 부족하게 번역한 것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교계 학자들도 그러한 듯 하다. 이것이 지금 한국 교계의 말씀에 관한 한 현주소일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신학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적절한 면도 있다고 본다. 성경학이라고 하면 몰라도 신학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신을 존재를 연구한다는 것인가 무엇인가, 신학이란 성경학 교회사학 목회학 성경을 배우기 위한 인문학 성경 원어등의 목회자가 필요한 모든 학문을 포함한 학문이라을 뜻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1. 무슨 이념적 자생신학들

그것은 남미인가 어디에서 성경책을 인용하여 해방신학도 누가 주장한 듯하다. 그것은 어떤 시대상황에서 잠시왔다 사라지는 유행신학 그 이상도 아니었을 것이다.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적절하였는지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것을 주창하는 사람들외에 누구에게 유익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잠시 있었던 신학이라기 보다도 주장이랄까 학설은 이미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원래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적절했던가도 보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상황적 영향으로 무엇인가하고 호기심등으로도 잠시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자생적 이념신학이라는 성립할수 없는 유행신학이 잠시 등장했다 할 수 있다. 성경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 궁핍한 자 약자들을 민중이라는 이름을 붙여 무슨 계급적 신학론을 일부에서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그러한 신학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 등 약자를 보호하는데 조금이라도 무슨 도움이 되었나 하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입으로 글로 주장하는 것일 뿐이고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거의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이론을 위한 이론 일 뿐이 아닌가 자성해 보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적인지 즉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신학이 성경적인지도 평가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신학이 성립될 수 있는지도 그러하지만 실제적으로 누구에게 유익하게 영향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검토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 어려운자 궁핍한자 약자들을 위한다는 계급적 또는 이념적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도 적절한지 그러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을 위한 이론과 주장 이상의 어느 누구에게 무슨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는가, 그러한 신학을 이론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과 입술에 머무는 것 이상의 누구에게 유익이 되었는지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신학이 성립이 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1. 수평이동 교회 성장학

한국 초대교회는 그러한 것이 전혀 거의 없었다 할 것이다. 오직 이 민족을 그리스도에게도 이었지 수평이동의 교회 성장론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현 근대 한국교계가 수평이동의 교회성장학이 휩쓸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결론이 수평이동의 교회성장학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이왕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수평이동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는데도 교계의 어떤 분위기에 의해서 그러하였다.

근래 얼마동안 거의 모든 쎄미나의  내용이 어떻게 하면 수평이동의 교회성장론이 목회자나 교인들이나 중직들이 함께 하였을 것이다. 아니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초대교회사에 없었던 꼭 세상 기업이 이윤추구 발전 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 때는 한국의 초대교회사의 이 민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분위기와 달랐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연구에 약해졌고 교회성장론 이론과 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이 교회 수평이동의 교회 성장론이 교계를 덮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경전 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나 목회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세계적으로 격찬받고 있는 영어번역 성경 niv 1984 판이 한국에서 사라질 지경이 되어도 누구도 알지도 못하는지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교계의 학자나 리더들도 심지어 모르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세상이 맹목적으로 또는 교회를 훼파하기 위해 교계 교회를 비판하면 어설픈 개혁과 진보인 줄 알고 같이 비판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자기자신이 바로 교회인 줄도 모르는 듯이 말이다. 자신이 교회인데 누구를 비판하느냐 말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목회자가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 않게 목회를 하는지도 모르는지 말이다.

대형교회 위주로 티브이에서 보고 목회자가 굉장히 힘이 있는 것으로 오해 그 모든 것이 목회자 소유로 부자이고 권력을 가지고 있고 명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 ,, 교회가 목회자가 비판의 타켓이 되고 자체적으로 부터도 교회를 보호하고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판하는 자칭 리더 교인들이 많아졌다. 수평이동의 교회성장학이 좋은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해도 이것이 한국 현대교회사에 문제였다할 것이다.성경 연구가 오히려 과거보다 향상하였는지도 의문이다. 오직 수평이동의 숫자에만 올인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목회자나 교회 중직이나 교인들이 함께 그러한 분위기였다. 물론 그러한 열심으로 좋은 결실이 없다 할 수는 없다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학사 서기관 율법학자 제사장 이었던 에스라가 하나님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언약의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된 사실에 대해서 그 이유를 너무나 분명하고 크게 깨달았던 것이다.그러므로 에스라가 고국에 돌아와 그 무엇보다 율법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결심한 것을 깊이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계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 연구와 묵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일 것이다. 그렇케 한다면 다시 더 큰 소망이 있을 것이다.


(에스라, 스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For Ezra had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and observance of the Law of the LORD, and to teaching its decrees and laws in Israel.'

(* 에스라,,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 시드기야 왕 때 제사장이던 스라야의 아들로서 제사장, 모세의 율법에 능한 서기관 율법학자,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바벨론 포로시대(B.C586 - B.C 597) 바벨론에서 성경연구, 학사 에스라가 주도하여 바벨론 2차 포로귀환, 예루살렘 귀환해서 종교개혁 주도.역대기 기록자.) 


(행6:3-4)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 교회도 불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교인들 구제중 착오인지 어떻게 일부 교인들 명단 누락으로 불만이 있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도들이 합당하고 지혜롭게 하여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었다.)

Brothers, choose seven men from among you who are known to be full of the Spirit and wisdom. We will turn this responsibility over to them  / and will give our attention to prayer and the ministry of the word."

(* 한국교계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면 한국교회사의 초대교회에 말씀사경회로 부흥의 역사를 보았듯이,그리고 한국에 심령 부흥회의 어떤 외면적인 뜨거운 모습들 율동하며 박수치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외면적인 모습도 좀 더 세련되고 엎그레이드하여  활성화하여야 할 것이다. 말씀과 축제적 찬양이 있는 부흥회와 예배와 집회 말이다.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것도 좋치 않으니라고 하셨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생들이 우울하고 고독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광야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며worship  절기를 festival 지키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출3:12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2 And God said, "I will be with you. And this will be the sign to you that it is I who have sent you: When you have brought the people out of Egypt, you will worship God on this mountain."


*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so that they may hold a festival to me in the desert. 출5:1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into the desert to offer sacrifices to the LORD our God,출5:3

*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This is what the LORD says: Let my people go, so that they may worship me.출8:1 )

(* 제사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 worship, serve),  희생을 드리는 (to offer sacrifices),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는 (hold a festiva)l 것인 것을 알 수 있다. )                         


= . 부록

한국이 자유와 해방을 얻고 독립한 그 후 세계사에서 불가사의 하다고 할 정도로 기독교가 짧은 시간에 확장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한국을 사랑하셔서 한국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다른 이유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동족상쟁의 아픔을 겪었지만 남북의 지도자와 기독교와 연관하여 본다면 연구해 볼 기이한 일이라 할 정도이다  

역사를 하나님의 이야기라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역사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하신다면 인생들은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생들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하신다면 인생들은 계계나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인생들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사용하여 합력하여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조금 민감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예레미야는 그 당시 남왕국 유대왕 시드기야에게 순순히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은 친애굽정책으로 외세 애굽을 의지하고 끌어들여 바벨론에 대항하였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볼 때 바벨론에 항복할 수 없다하여 싸우다가 실상은 피차 인명피해가 많았을 것이고 결국 멸망하였다. 또한 시드기야 왕 개인과 가족적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비극이 되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말을 들었다면 즉 바벨론 포로는 하나님의 징계이고 그것을 감당하고 칠십 년만에 돌아오게 하리라는 말씀을 근거하여 순순히 항복하고 칠십년만에 돌아오게 예언을 받아드렸다면 어떠하였을까, 피차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남왕국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저항없는 항복은 받아드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일을 행하나 하나님은 그것까지를 사용하여 합력하여 그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 없는 기계적 존재로 만들었다면 세상에 죄는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로벗 같은 기계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담과 하와 예,, 죄를 짓지 않게 만드셨으면,, 그렇다면 기계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인생들이 신앙인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이다.

다음의 바울의 간증이고 신앙이고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 내용은 바울이 어쩌면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지 못할 것을 생각하며 쓴 로마서의 한 구절이다. 그 선언이 바울의 생애에도 기독교 역사에도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로마서를 쓴 후 로마에 가게 되어 복음을 전한 것이고 그 당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을 복음화 하게 된 것을 우리는 지금 보며 이 구절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개인의 신앙여정과 한국기독교회사 세계기독교 교회사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것이 모든 기독교인들의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이어야 할 것이다.

(롬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kj)

28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nkj)

28 And we know that God causes all things to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nas)

28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niv 1984)


=. 부록  2

한국의 근대사에서 일제 36년의 강점 기간이 있었다.

다음의 년도에 한국사에 한국 교회사에 있었던 큰 일은 무엇인가,

1905

1907년

1910

1910 년에 한국사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그 해에 한글 신구약 성경 출간, 완간이 1910, 1911 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글성경을 주신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과 같다 할 때에 하나님 자신을 던져 주신 것이다. 나라의 주권잃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어찌할 뻔 하였던가, 한국의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았을 것이다. 애국가의 가사를 보라.

조선 한국의 민족적으로 암담한 시기에도 신앙은 멈추지않았기에 기독교 백년 역사에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앙의 성장 발전이 되는 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시대의 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 경영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되었고 될 것이다. God bless you,,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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