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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적 3 / 시몬, 다대오, 야고보(소, 작은)

김창환 (서울남노회,강서교회,목사) 2022-03-22 (화) 20:52 2년전 608  
복음서에서 시몬의 행적
눅 6:15시몬은 열심당원 출신이었다.
예수 시대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마지막으로 강력한 지파로 등장한 셀롯(열심당)등 여러 파가 있다. 시몬은“열광적”을의미하는 카나나이오스(Kananaios)라고 한다. 사실상 카나나이오스는 열심당에 대한 아람어인데 이는 누가가 고쳐서 “세롯이라는 시몬”이라고 부른 단어이다(눅 6:15).
마 10:4가나나인 시몬
가나나인이라고 잘못 쓰여진 단어는 지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옳게 쓰여진 카나나이스라는 단어는 “정치적인 명칭”이다. 시몬은 유대의 극단주의자이다.


십자가를 위하여 칼을 포기한 시몬은 계속 예수님을 좇았다.
십자가의 처형이 있던 전날 밤에 그는 다락방에 주께서 열 명의 제자앞에 나타나신 첫 부활절에도 참석하였다. 주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하여 시몬의 정치적인 야심은 온화한 포부로 바귀어 부드러워졌다. 호전적인 기질은 전도활동의 동기로 변하였다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Mauritania)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영국에서도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개종시킨 후, A.D. 74년에 영국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다대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에서 전도할 때 그곳 신상을 부쉈는데 흥분한 이교도들이 다대오를 죽이고 시몬은 거꾸로 매단 채 톱으로 몸을 잘라 두 동강이 나는 형을 받고 순교했다고도 한다.
 시몬의 상징은 성경에 누운 물고기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어부가 말씀을 전파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을 가리킨다. 이는 오순절 후에 시몬이 그 어떤 제자보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철저하게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복음서에서의 다대오 행적
요 14:22성경에 꼭 한 번만 나타난 제자였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마 10:33
막 3:18
눅 6:16


가룟 유다의 오명 때문에 유대 대신 다대오라고 불렸다.
그 당시에 흔한 이름인 유다라고 불리운 사도가 열 둘 가운데 두 사람 있다. 요한은 유다가 다락방에서 예수께 질문한 때를 기록하면서 배신자와 조심스럽게 구별하느라고 "가롯 유다가 아닌 유다가.."(요 14:22)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아마도 유다라는 오명 때문에 마태와 마가는 유다의 다른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마태는 유다를 "레베오, 성을 다대오"(마 10:3)라 불렀으며 마가는 다대오라고 불렀다(막 3:18). 그러나 누가는 그를 ‘야고보의 아들 유다’ 라고 했다.(눅 6:16)


이 제자는 이름은 없었으나 이름값을 하고 간 제자였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긴 제자, 유명하지 않았으나 필요했던 제자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 제자를 주님께서는 열 두 제자 중 한 몫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나는 베드로 같이 될 수 없다. 나는 하루에 삼천 명을 회개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얼마든지 우리 가운데 유다 다대오는 될 수가 있다. 내가 비록 유명한 사람이 안 되어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면 내 이름값을 다하여 조용히 이름 없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이 삶을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사는 사람이 되자.


시리아로, 아라비아로 ,페르시아로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특별히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중심지는 '아르메니아'이다. 그 도시에서 그는 정말 놀랍고 눈부실만한 선교 활동을 한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특별히 바돌로매라는 제자와 둘이서 동역하면서 A.D. 301년에 벌써 그 나라가 기독교화 될 만큼 복음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는 다시 해외 선교를 나갔다가, 시리아라는 곳에서 칼을 맞아 순교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야고보(소, 작은)의 행적
마 10:4‘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명단 가운데 야고보가 둘임을 알 수 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세베대의 아들보다 키가 작았으므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성경에는 그가 어떤 말을 했다거나 어떤 질문을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한때 훌륭한 애국자였다. 그러나 후일에는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누구보다도 힘썼던 제자였다. 열 두 제자 중에 가장 많이 기도를 한 사람이었다.”  야고보는 시몬처럼 열심당원 출신이다.


그는 시리아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후 예루살렘에 돌아와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게 된다. 돌에 맞아 그가 죽지 않자 그들은 톱을 가지고 와서 야고보를 켜서 죽였다. 그는 처음에 예루살렘에 묻혔다가 나중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로마에 야고보가 묻힌 교회를 처음에는 성 빌립과 성 야고보의 교회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지금은 “거룩한 사도의 교회”라고 바꾸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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