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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교단에게 주는 글 3 - 민*신학 외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04-27 (수) 07:21 1년전 886  

지금 한국에 여러교파가 있지만 이제는 내용적으로나 분위기로 별차이가 없다할 것이다. 물론 예배의 분위기등 혹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같은 교파안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파에 따라 예배 분위기가 다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배 분위기란 좀 더 조용하고 엄숙하게 드리느냐 좀 더 축제적 열정적으로 드리느냐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가 어떤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교파에 따라보다 추운지역이나 더운지역 등 지리적인 이유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의 성향이라할까 기질에 따라 외형적인 모습은 달라질 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교회당의 건물모습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 계명은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1. 신학이란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위한 교회를 섬기는 신학이어야 하고,

천하만민을 위한 신학이어야 할 것이다. 즉 남녀노유 빈부귀천 인류 모두를 위한 신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도 제외 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천하만민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계급 계층이나 진영이나 그 무엇을 구분하여 편가르기 하는 것같은 용어의 특정인 만을 위한 신학이 있을 수 있는지 바람직한지 필요한지 부터 먼저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언젠가 한국에 민*신학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학교다닐 때 가끔 또는 자주 들었던 듯 하다. 언젠가 초교파 학위 과정에서 공부를 하는데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로 민중신학인가 하는 단어를 말하니 어떤 교단의 학도가 그 용어를 처음 듣는 듯 굉장히 호기심을 가지고 듣는 것이 기이하였다. 그 용어를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러한 신학이 무엇인가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어떤 교파에서는 학교 때 가끔 들은 듯 하지만 이제는 휴지통에 버렸을 단어가 그 말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듯 그 용어를 듣고 그것이 무슨 말인가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기이하였다. 그런데 근래에도 가끔 민* 신학이라는 말을 듣는데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없는 용어라 할 것이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있는 것인데 민*신학이라는 것은 그 내용은 무엇이고 그것이 교회에 무슨 유익이 있는지도 그러하다. 아니 교회는 또 따로 언급한다고 하여도 소위 그들이 말하는 민중에게 무슨 유익이나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민중이나 누구에게 무슨 유익이 되었는지, 그들이 말하는 민중은 그러한 학설에 전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도움도 되지 않을 그것을 신학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학이 성경의 어디에 근거해서 나오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오리무중이라 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신학용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민중이라는 용어를 이상하게 포장하여 어렵게 말하는데 복음서에서 민중은 무리, 사람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1. 그 용어가 세상의 실제적인 현장에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과 적용이 전혀 실제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는 탁상공론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선명하고 설득력있는 내용인지하며 뜬 구름 잡는 듯한 내용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신학 입장에서는 받아드릴 수 없다해도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소위 민중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었는가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이라고 하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민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보기위해 모인 사람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민* 신학은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그러하다고 본다. 내용이 무엇인지도 잘 알 수 없다. 아마 세상에서 어렵고 소외된 대상을 위한 신학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신학이라고 하기에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이론이 세상의 어렵고 소외되고 힘든 분들에게 실제적으로 무슨 유익이 되었나 하는 것이다.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받아드릴 수 없지만 그것이 그냥 이론이나 학설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중을 위하여 무슨 유익과 도움이 되었는지, 신학이라고 할 수도 없고 탁상공론이 아니었는지 그 주창자들은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언급한 바 있지만 이스라엘의 갈릴리를 처음 방문하고 놀란 것은 야 참 멋진 곳이구나, 그 풍경 모습이 관광지 같을 정도 이었다. 내가 생각하였던 갈릴리와 전혀 달랐다. 그 때 생각하기를 아 예수님은 무리들을 가르칠 때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장소에서 가르치셨구나,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같은 갈릴리 호수가 보이고 야자수 들풀 맑은 하늘 신선한 공기 이 아름답고 평온한 장소에서 가르치셨구나 하였다. 그 동안 생각했던 갈릴리와 전혀 다른 것에 즉 그 아름다고 시원한 관광지같은 전경에 놀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것을 잘못 배웠거나 잘못 알았지 하였다. 갈릴리 호수와 대면한 그 들판은 갈릴리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음향효과까지 있어 마이크가 없는 그 당시에 더욱 최적의 야외교육 장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두 번째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 같이 갔던 동료 목회자가 하는 말이 똑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렇게 배웠지 하는 것이었다. 글쎄 우리의 신학도 시절에 가르치는 분들이 서구에서 신학은 배웠지만 혹 이스라엘 그리고 갈릴리는 한번도 방문 탐방해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기도 하였다

(갈릴리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갈릴리 호수가 있고 배가 있는데 어부 생활을 하면 무슨 의식주의 어려움이 있겠는가 말이다. 또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는 배의 소유자이기도 하였기에 요즈음으로 말하면 중소기업 사장 정도로 경제적으로 가난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무리는 한문으로 민중이라고도 하는데, 왜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 무리, 민중의 이름으로 신학이 나오느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시, 예수님이 무리, 민중을 가르치셨는데 무리들이 민중이 누구를 가르치셨다는 것은 아닐 것이고 말이다

1. 한글 개역성경에서 민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것은 헬라어로 오클로스이다. 그것은 대부분 무리라고 번역이 되었다. 오클로스는 사람들 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을 오클로스 즉 무리 또는 민중 이라고 번역을 하였다. 예수님이 그들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런데 민중신학이란 그 민중이 예수님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에 헬라어로 오클로스 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대부분 무리로 번역을 하였고 민중으로도 번역을 하였다. 무리와 민중이 헬라어로 동일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몇 부분만 보자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 * 민중, 원)오클로스,, 무리, 다수, (사람의), 백성, people , multitude, company ,crowd, number of

people.)

5 Herod wanted to kill John, but he was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they considered him a prophet.


[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 무리/ 오클로스)

Large crowds from Galilee, the Decapolis, Jerusalem, Judea and the region across the Jordan followed him.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무리/ 오클로스)

1 Now when he saw the crowds,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 무리/ 오클로스,,)

28 When Jesus had finished saying these things, the crowds were amazed at his teaching,


( * 아니 예수님께서 무리들 민중을 가르치시니 그들이 듣고 놀랐다는 것인데,, 민중신학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민중이 무리들이 신학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인가, 

민중을 가난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말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신학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신학이라는 말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클로스 라는 말이 무리를 말하는 것인데 특정인들을 말하는 것으로 제한한다면 그러한 면에서도 성경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그러하다. 성경신학은 천하만민에게 복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특정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천하만민을 위한 인류를 위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1. 한편 이른바 민중신학이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억압받고 등등의 사람들을 위한 신학이라면 신학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성경신학은 어떤 특정계층만을 위한 신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학이 아니라 단지 특정대상을 위한 이론이나 학설이라고 해도 그것이 소위 민중들에게 무슨 유익을 주었고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성경신학 또는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민중은 누구이고 특정 계층을 말하는 것은 성경신학 교회신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의 계명은 예수님이 주신 계명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웃에대한 해석을 내려주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은 지리적 계층적 혈연적을 초월한 모든 사람인 서로 인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계층의 신학은 신학이라고 할 것도 없는 탁상공론의 이론이 아니겠는가,

이 민중신학이 누구 특정인들을 위하는 신학이라는 것인가,, 그것이 신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지만 그건 그렇고 그러한 학설과 이론과 주장이 소위 그들이 민중이라고 하는 가난 궁핍 억압당하는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되었고 되는가, 실제적으로 계급 투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건 그렇다고 하고 그 신학이 어떤 특정계층에 어떤 유익이라도 있었는가, 탁상공론이요 실제적 실용적이지도 않고, 허공의 메아리이지 누구에게 실제적 유익이나 도움이라도 되었는지나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그리고 갈릴리 지역에 대하여 경제적 궁핍들을 말하지만 전혀 그렇게 볼 수도 없다. 갈릴리 바다같은 호수가 있으면 경제 문제 해결할 수 있다. 의식주 해결이 어려운 사막이나 광야도 아니다. 그 지역에 누구나 일하면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는 지리적 배경이다. 베드로는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면 배의 소유자로서 요즈음으로 말하면 중소기업의 사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예수님이 무리를 민중을 가르치셨는데 민중 신학이라,, 민중이 누구를 가르친다는 말인가, 또한 민중만을 위한다는 말인가, 민중이 특정 사람들이라는 것인가, 무리, 사람들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거기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명이라고 하였기에 남녀노유 다 모인 무리들 인 것이다.(마14:21)

민중신학이라는 것은 신학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고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학설이라고 하여도 그 학설이 민중을 부요케 한다는 것인가. 그 신학 내용은 잘 알 수 없는 학설이고 성경신학 입장에서는 받아드릴 수 없는 신학이라 할 것이다.

오클로스를 민중이라고 하여 민중신학을 말하니 서구의 누가 성경연구를 하면 되는데 학설을 추구하다가 한국에서 민중신학을 말하니 뭐 새롭고 신기한 것 무슨 학설인가 하였다는 것이다. 무리를 민중이라고 번역하여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무리를 한문으로 민중을 가르치셨다는데 민중이 누구를 가르쳤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중이 신기한 용어가 아니라 복음서의 오클로스 즉 무리의 한자어 번역 그 이상하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 외국에서 신학도들에게 민*신학을 말하면 민중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묻는다며 마치 그 신학이 관심을 받는 듯한 뉘앙스로 받아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생각하기를 복음서에서 오클로스란 무리 사람들 이라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민중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여 민중신학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기도 하지만 받아드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클로스는 무리 사람들이라는 뜻이지 특정계층의 사람들이라는 뜻은 없다는 것이다. 마14:5 에서의 민중도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사람들 이라는 것이 분명한 뜻이라는 것이다.)

( * 후렴, 민중신학이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신학을 말하는 것인가 민중을 위한 신학이라는 것인가, 이 두가지 경우가 다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예수님께 배워야 할 민중이 주체가 되어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고  민중을 위한 신학이라고 할 때 여기에서 민중을 특정인들만 지칭한다면 그것도 맞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천하만민 즉 인류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특정인들만을 위하거나 제외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특정인만을 위한 신학이라면 그러한 신학이 성경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복음서에서 무리 (오클로스) 라는 단어를 다 올릴 수 없다. 4복음서에 너무나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 올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몇 구절을 더 보자.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 무리, 원) 오클로스 )

1 When he came down from the mountainside, large crowds followed him.

 

[8: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18 When Jesus saw the crowd around him, he gave orders to 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8 When the crowd saw this, they were filled with awe; and they praised God, who had given such authority to men.

( * 민중은 무리 사람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민중이라는 단어를 이상하게 해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무리 사람들을 한자어로 민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중 신학이 혹 가난 어려움 소외자 로 제한 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 신학이 그 사람들에게 무엇이 유익이 되었는가 한번 검토해 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 용어가 성경 신학적으로 가능한 것과 별개로 말이다. 만약 전혀 유익되지 않았다면 신학적용어로도 그렇고 누구에게 유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 용어인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 갈릴리 바다같은 호수는 참 평온하여 그곳에서 그 광풍이나 폭풍이 불 것이라고는 상상이 잘 안된다. 그럼에도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의 천국복음 비유 전파 후 오병이어의 기적 후 이 호수를 건너가다가 광풍 역풍을 만나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강 훈련을 받는다. 베드로는 이 때 물위를 걷기도 하였다.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갈릴리 지역은 천혜의 교육의 장소 그리고 훈련의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마13: , 마14:, 요6: )


마가복음

[막2: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 무리/ 오클로스)

4 Since they could not get him to Jesus because of the crowd, they made an opening in the roof above Jesus and, after digging through it, lowered the mat the paralyzed man was lying on.


[막2:13]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13 Once again Jesus went out beside the lake. A large crowd came to him, and he began to teach them.


[막3: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

7 Jesus withdrew with his disciples to the lake, and a large crowd from Galilee followed.


[막4:36]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6 Leaving the crowd behind, they took him along, just as he was, in the boat. There were also other boats with him.


[막5:21]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1 When Jesus had again crossed over by boat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a large crowd gathered around him while he was by the lake.


[막5:24]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

24 So Jesus went with him. A large crowd followed and pressed around him.


누가복음

( 눅5: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 무리 /오클로스)

1 One day as Jesus was standing by the Lake of Gennesaret, with the people crowding around him and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눅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3 He got into one of the boats, the one belonging to Simon, and asked him to put out a little from shore. Then he sat down and taught the people from the boat.



요한복음

[요6:2]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무리 / 오클로스)

2 and a great crowd of people followed him because they saw the miraculous signs he had performed on the sick.


[요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5 When Jesus looked up and saw a great crowd coming toward him, he said to Philip, "Where shall we buy bread for these people to eat?"

(* 이 사람들, 원) 후토스, 대명사, 이 사람들, 이들, 그들,  these. )


[요6: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 무리 /오클로스)

22 The next day the crowd that had stayed on the opposite shore of the lake realized that only one boat had been there, and that Jesus had not entered it with his disciples, but that they had gone away alone.


[요6: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4 Once the crowd realized that neither Jesus nor his disciples were there, they got into the boats and went to Capernaum in search of Jesus.



[요12: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 무리 /오클로스)

18 Many people, because they had heard that he had given this miraculous sign, went out to meet him.


[요12: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 무리 /오클로스)

29 The crowd that was there and heard it said it had thundered; others said an angel had spoken to him.


[요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 무리 /오클로스)

34 The crowd spoke up, "We have heard from the Law that the Christ will remain forever, so how can you say,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Who is this 'Son of Man'?"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35 Then Jesus told them, "You are going to have the light just a little while longer. Walk while you have the light, before darkness overtakes you. The man who walks in the dark does not know where he is going.
36 Put your trust in the light while you have it, so that you may become sons of light."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Jesus left and hid himself from them.
37 Even after Jesus had done all these miraculous signs in their presence, they still would not believe in him.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8 This was to fulfill the word of Isaiah the prophet: "Lord,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 (* 사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1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

신약성경에서 구약을 인용하는 구절에 여호와 라는 칭호는 주( 헬, 큐리오스) 로 번역하였다. 구약의 여호와라는 칭호를 영어성경에서는 the LORD (주 ) 로 번역하였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칭호가 나오면 아도나이(히브리어로 '주') 로 읽었다고 한다.)/


1. 교단에서 출판한 성경 신구약 주석서가 한권이상 없다면,, 거의 모든 교단에서 주석서가 있거나 거의 비슷한 학문적 서적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 교단에 그 영향력이 클 것이다. 그러한 학문적 실적은 그 교단 후배들에게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한편 기독교에 또는 각 교단에 어떤 유명인사분들로 인하여 그 교단에 유익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교단의 경우 자유를 이용하여 마음 껏 튀는 소리를 하여, 자신은 유명인사가 되지만 교단에 많은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교단은 크게 각성하고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1. 한편 P교단은 교단의 한 특징인 교단의 좀 더 자유스러운 풍토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무슨 튀는 말을 하므로 그 사람은 유명인사가 되고 교단 교회에서는 받아드리기 난감한 경우가 있다. 그러한 교단 교회에서 성경적이라 할 수 없는 그러한 튀는 용어나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 것이고 타교단 교회에서는 그러한 신학이 p교단의 신학으로 알게 되어 교단 교회에 목회에 너무나 막대한 손해나 무익을 주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타교단의 어떤 목회자에게 두어번을 들었을 듯 하다. p 교단의 어떤 목회자 그 분이 만약 교단만 p 교단이 아니었다면 지금 보다 그 이상의 수만 명의 교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이 p 교단대부분 또는 전체의 현실 역사이었을 것이다. 외부로 알려진 교단의 어떤 이미지 때문에 교회현실에서의 내용과 달리 목회가 대단히 어려운 경우가 많고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지금도 전혀 받아드릴 수 없는 튀는 소리들을 하므로 지금도 앞으로도 목회에 막대한 어려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각 지교회의 목회와 달리 대외적으로 이러한 튀는 소리 학설을 말해도 그것을 자유로 아는지 방관하는지 하여 교단의 어려움을 겪는 현주소가 되었던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목회와 상관이 없는 교계인사들이 교단 교회에 책임감 없는 성경교리에 반하는 학설은 교단 교회에 많은 손해를 주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을 정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책임있게 이끌어 가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을 듯 하다.

학문적으로 교회 교단이라면 적어도 성경 주석이 그 교단 인사가 쓴 성경 주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경주석을 가지고 있는 교단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학문적 무게감이 있을 것이다. 너무 늦었는지 모르지만 성경에 관해서는 없는 실력에 무슨 튀는 소리나 하여 자신들은 유명인사가 되고 교단에 많은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었는가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너무 늦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을 주석을 내놓을 정도의 실력자를 계속 양성해야 한다. 이스라엘 성지 탐방 연구 이스라엘 과 주변의 역사, 성경의 원어는 사전 찾아 볼 정도이면 될 것이고 잘 번역된 영어성경으로 익숙하게 읽을 있으면 좋을 것이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을 수 있고 교단의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교계와 더우기 교단의 현실을 보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너무 그러할 때가 있다.

교계 교단은 성경으로 달려가고 더욱 성경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신학 외에 다른 허망학설이나 잠시 왔다 사라지는 유행학설이나 이론을 버리고 성경 하나님의 계시의 선포의 말씀을 기록하라하신 그 말씀을 현실을 보며 더욱 연구 묵상하여야 할 것이다.



=. 성경연구 (Bible study)

창6: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5 The LORD saw how great man's wickedness on the earth had become, and that every incl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all the time.  6 The LORD was grieved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his heart was filled with pain.
7 So the LORD said, "I will wipe mankind, whom I have created, from the face of the earth--men and animals, and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and birds of the air--for I am grieved that I have made them."


창9:11-16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1 I establish my covenant with you: Never again will all life be cut off by the waters of a flood; never again will there be a flood to destroy the earth."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2 And God said, "This is the sign of the covenant I am making between me and you and every living creature with you, a covenant for all generations to come:
13 I have set my rainbow in the clouds, and it will be the sign of the covenant between me and the earth.
14 Whenever I bring clouds over the earth and the rainbow appears in the clouds,
15 I will remember my covenant between me and you and all living creatures of every kind. Never again will the waters become a flood to destroy all life.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6 Whenever the rainbow appears in the clouds, I will see it and remember the everlasting covenant between God and all living creatures of every kind on the earth."


창22: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8 and through your offspring all nations on earth will be blessed, because you have obeyed me."


막16:

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5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요1:29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9 The next day John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said, "Look,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요1:36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6 When he saw Jesus passing by, he said, "Look, the Lamb of God!"


요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독생자,,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을 세상언어로 한글로 번역할 적절한 단어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역사상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시, 세상에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 만나라는 이름이 없었던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래서 만나 이름은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뜻이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독생자 라는 용어는 의역으로서 독특하게 오신 , 하나님이 독특하게 오신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외아들이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독특하게 역사상 육신으로 오신이라는 뜻이 다 담겨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외아들을 독생자로 번역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외아들이나 유일하신 아들은 오해하기 쉽다. 사도신경의 원문에  his only begotten Son 이라고 하였다면 독생자 라고 번역하였어야 적절할 것이다.

독생자 라는 단어가 어려워도 그 내용이 담겨있다 할 것이다.독특하게 오신 아들 이라고 의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시, 지금까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일이 없었기에 거기에 맞는 단어가 없을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독생자가 가장 적절한 번역이고 요3:16은 독생자로 번역하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 독생,, 원) 모노게네스 , 독생한, 독(생), only begotten , used of Christ, denotes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 자,, 원)휘오스,,아들, son. )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kj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nkj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nas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niv 1984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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