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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상가들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04-29 (금) 07:44 1년전 786  

1. 세계의 사상가들 (무순)


괴테 - 이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문호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의 첫 부분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

' 모든 학문을, 법학 의학 철학 그리고 신학까지도 학문을 다 마쳤는데 아무 낙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 아, 나는 이제 철학도, 의학도, 법학도, 그리고 애석하게도 신학까지도 모두 다 마쳤구나.
그럼에도, 오히려 아무런 기쁨이 없구나. 이제 아무 낙이 없이 이렇게 사는 것은, 그 누구라도 원치 않을 것이구나, 이렇게 사는 것은 ,,이라도 원치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도,,  여전히 옛날 보다 나은 것이 없는 낙이 없는 가련한 인생이구나,.

이것은 괴테가 인생 여정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은 후 자신의 고백을 그의 소설 파우스트를 통해서 표현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우스트의 주인공을 통해서 하는 말은 괴테 자신의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이 고전 명작으로 평가되며 오랫동안 인류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성경의 욥기의 어떤 내용과 비슷함을 느꼈다. 그의 글을 쓰는데 욥기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하였다.

 

니체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는 책은유명하다. 그 책의 명문을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나도 여러번 읽었다. 너무나 유명하다는 책이라고 해서 읽었고 그 유명한 책이 생각만틈 크게 공감이 없어서 무엇이 있는가 하여 또 읽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말 또한 유명하다. 그런데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역설적인 말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신은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고 신은 죽었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이 말은 가령 아빠 미워 또는 그대가 너무 미워했을 때 밉다는 문자 말 그대로의 미워한다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 그런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또는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은 죽었다고 외쳤을 것이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사실 누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말이다. 어떻게 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인가, 신은 영원하신 분이라고 했는데 신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전지 전능 영원하신 분이 신의 속성인데 어떻게 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 신은 없다라고 하였다면 몰라도 신이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면 그 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인가, 신은 죽을 수가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철학자 니체는 말도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신은 죽었다고 했을까, 그것은 역설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빠 미워, 너무 미워요. 당신은 미워 너무 미워, 진정 누구을 미워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침묵하든지 할 것이다.

 

에릭 프롬 - 진리는 가장 오래 타는 촛불이다.

사회 심리학자로서 예언자적 사상가로도 불리운다.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등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의미 깊은 내용이다. 그가 세계의 대 학자들의 논문을 모아 편집한 지식의 향연 같은 심포지움의 아티클 소논문을 모아 편집하였다. 그 책의 편집 서론에서인가 ' 진리는 가장 오래 타는 촛불이다' 라는 말은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이십 대 신학도 때에 나 자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우찌무라 간죠 - 역사는 복음의 대서 특필이다.

평신도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 (내촌감삼)는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에 비전 반전 평화주의를 말하므로 학교에서 가르칠 수가 없어 해직교수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자유스럽게 강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문하에서 공부한 또는 영향을 받은 많은 사회 정치 지도자가 배출되었다. 한국의 일부 기독교 인사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함석헌 선생외 상당히 알려진 어떤 종교인 들도 그곳에서 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도 이십대 때에 그의 저서와 전집을 읽었는데 그의 신앙적 사상의 내용의 글이 간결 명쾌하다. 글이 간결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내용도 매우 공감이 되었다. 이 분은 성경 주해서도 썼고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었다. 이 분의 성경 주해서가 일반 서점에 없었기에 출판사에 직접가서 구입하기도 하였다. 참 대단히 해박한 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드믈 것이라 할 정도로 많은 연구와 학식이 보인다. 그는 동서고금의 해박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글은 쉽고 간결 명쾌하고 복음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관한 이러한 에피소드도 있다. 일본에서 어떤 사람이 이 분의 글을 읽고 이 분을 너무 흠모해서 그 분을 찾아갔는데 마침 아침에 마당에서 상의는 내의만 입고 세수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갔다던가 하는 일화도 있다. 아침에 집 마당에서 세수하는데 정장하여 잘 갖추고 세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말이다.

이 내촌감삼의 주창대로 일본이 군국주의를 버리고 평화주의로 나아갔다면 일본의 그 큰 비극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 분의 글 중 역사는 복음의 대서 특필이다이 글에 너무 공감하였다. 그것은 신학도 시절에 역사를 독학하면서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스피노자 - 유대계 철학자.

 

스땅달 - 어떤 청년의 외침

많은 문학도들이 스땅달의 적과 흑 이라는 책을 추천하였다. 나는 그 책을 보면서 특히 후반부에서 외치는 사회 부조리 등을 고발하며 외치는 그 내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았다. 나의 이십세 전후의 마음을 들킨 것 같이 놀랐다. 꼭 내가 청소년으로서 이 사회에 외치고 싶었던 내용을 그 청년 주인공이 그대로 외치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란 것이다. 이래서 명작, 명작 고전 명작하는구나 하였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공감을 하였기에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청년과 한국의 청년이 동일한 그 무엇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인류 모든 사람들은 동질감이 있을 것이다. 지성 감성 본성등 외에서 말이다. 

 

버트런트 럿셀 - 절대 진리는 하나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고 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여러 방면에 해박하고 박식한 자유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어떤 그의 책을 보고 여러 방면에 박식하지만 성경에는 그렇게 박식한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에서 상식적으로 아는 정도이지 성경을 깊이 연구 탐구하여 아는 것은 아닌 것을 알았기에 종교에 대한 그의 말을 너무 비중있게 받아드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말은 인상적이고 그의 학문에 대한 위선 없는 정직성을 볼 수 있다.
그가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이유을 말하였다. 세계에 팔대 종교가 있는데 각 종교가 저마다 진리라고 하닌 진리는 하나인데 어떻게 진리가 여럿일 수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어떤 종교도 받아 드릴 수 없다고 하였던가 하였다.

 

톨스토이 - 사과나무에서 사과는 왜 떨어지는가,

문호 톨스토이의 장편 전쟁과 평화 에서 ,
사과나무에서 사과는 왜 떨어지는가 의문에 대해서 역사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호 문필가 역사철학자의 모습이다. 톨스토이는 문학가 문호 사상가 역사철학자이기도 하였다
.
고전 명작안에는 문학 역사 철학 사상 명언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단편 소설 부활,  

기독교에 대해서 성경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산상수훈 교훈,

 

도스토엡스키 - 과연 무엇이 죄인가, 과연 어떤 것이 인류를 위한 일인가,,

도스토옙스키는 학위 없는 대 신학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고 하였다. 톨스토이와 같이 말이다. 톨스토이도 성경을 많이 연구한 듯 하다. 톨스토이의 산상수훈 강해의 책도 있었다.

신학도는 도스토예스키의 죄와 벌은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 청년의 고민과 의문인데 그것은 인생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 진정 인류를 위한 사랑이고 정의인가 하는 한 청년의 밤세우며 깊은 고민은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공감하기에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일 것이다.

 

에밀 브루너 정의 ( 정의와 자유)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정의 라는 책은 유명하다. 책 제목은 정확이 기억을 못하다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이다. 정의라는 책으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신학자이다.

그런데 근래에 하버드 대의 마이클 센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갑자기 화제가 되었고  베스트 셀러가 가 되었다. 왜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정의론이 또 화제가 되고 정의란 무엇인가 가 새삼 화제가 되고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이 좀 의아하였다. 출판사의 약간의 어떤 영업 상술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혹 그 저자 학자 교수를 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한 때 화제가 되었던 주제가 왜 이제 다시 관심과 화제가 되는 것일까 의아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그 내용을 널리 알린 마이클 센델 교수도 이 시대의 사상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적절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잡게 될 것이지만 누구나 물을 법한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확산시킨 점은 일단 평가할 만 하다고 할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여도 사회가 비도덕적으로 살 수 밖에 없게 하는 어떤 모순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다.

대략 이러한 내용이 있다. 그가 어느 날 설교를 마친 후 한 소년이 찾아왔다. 목사님 목사님은 설교중에 늘 도덕적인 인간이 되라 도덕적인 인간이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는 입장인데 어떻게 하지요. 저는 홀어머니가 병들어 누워있기에 신문을 좀 더 많이 빨리 배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가끔 새치기도 하여야 하곤 합니다. 그래야 좀 더 벌어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병든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새치기도 하는 비도덕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요.

그 때 니버 목사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지금까지 내가 허공을 치는 설교를 하였구나 하며 디트로이트 자동자 회사에 가서 즉 산업현장에 가서 목회를 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도덕적인 설교를 하다가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알고 그가 자동차 공장의 현장 목회를 자원하여 목회를 하였다는 것이다.


카알라일 -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입시를 위한 공부외에 문학 역사 등등의 작품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입시를 포기하는가 하는 분위기이어서 그러한 책을 읽기가 쉽지 않다. 입시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원하는 학교를 가는 것이 거의 모든 학생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러므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즈음에 몇 권의 책을 읽은 듯 하다. 그중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대단히 배울 것이 많고 유익이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고 여러나라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를 위한다면 연설은 지금 다 기어할 수는 없으나 그 당시 느낌으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력으로 정복하는 그것은 그것이고 병사들과 정복지의 사람들에게 연설은 그 연설 내용으로만 보면 감명적이로 명문이었다고 기억이 된다. 병사들을 이끌려면 병사들의 사기를 주는 마음을 움직여야 할 것이고 혹 어떤 지역을 정복하였다면 그곳의 사람들의 마음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 연설문으로만 본다면 공감할 수 있는 명문이었다는 인상이 기억에 있다.

그 당시 프랑스와 유럽의 나라들과의 외교관계에서 배울 것도 많았다. 지금도 그 이름들도 기억이 되고 가끔 역사책에서도 보는 그 당시 외교장관의 활동상이라고 할까 수를 보기도 하였다. 그 때는 그 책을 누가 썼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책이 유명한 카알라일이 썼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청소년 시절에 카알라일의 명언들은 많이 인용되었고 들었는데 그 카알라일이 썼다는 것을 알고 약간 놀랐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이라는 명작을 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기에 카알라일 카알라일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책으로 이 책은 역사를 보는 어떤 안목과 사상과 철학과 경륜을 갖춘 인사가 쓴 책이라는 것이다. 그 책의 내용을 보아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세세한 내용은 없으나 역사를 해석하는 눈 그리고 명문이 많았던 것으로 배울 것이 많았던 책이었다는 것이 아직까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 책이 그렇게 많이 방송등에서 카알라일 명언을 인용하였는데 그 카알라일이 썼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실력있는 사람이기에 그러한 책을 썼구나 또한 그러한 책을 쓴 저자이기에 그렇게 그의 명언을 많이 인용하였구나 하였다.

한편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교수도 대단한 실력자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그 책을 번역한 이 분은 나중에 비례 국회의원도 하였다는 것이다.


세르반테스 - 돈키호테 를 쓴 세르반테스

돈키호테가 세계 사대 희극 중의 하나라면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도 사상가 반열에 올려도 적절하다고 본다.

고등학교 시절에 여러가지 중에 대부분 오직 입시압박에 시달리며 그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당시 대부분 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할 것이다. 나도 당연히 거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시절에 더 어렵고 아니 대부분 다 어렵게 보내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어렵게 보낸 사람들도 많고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책을 찾아 읽고 싶었다. 그래 셰계 4대희극이라고 알려진 좀 방대한 희극책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은 것이다. 좀 더 많이 웃고 싶었고 많이 웃어야 마음의 균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놀란것은 풍차를 막강하고 강력한 적진으로 상상하여 공격하고, 돈키호테가 고귀하게 마음껏 격상시킨 사모하는 둘네시아를 연인으로 그리고 참으로 기괴한 전투복을 만들어 입고 등등의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모습이 있었지만 그 문장의 내용은 참으로 진지하고 깊이있는 신앙적 교훈적인 명문의 내용이가득하다는 것이다. 한번 보기는 아까운 책으로 생각될 정도로 많은 명문의 내용들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외면의 모습과 달리 그 내용은 대단히 신앙적으로 되새길 명문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태의 어떤 행태들과 달리 내용은 참으로 진지한 성직자가 전하는 신앙의 말씀같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희극은 비극에서 나온다고 하였던가, 저자 세르반테스는 극한 고생을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교훈적이고 재미있는 우화를 쓴 이솝이 그러하듯이 저자 자신을 극한 어려움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유머가 풍부한 것은 그 나라가 너무나 힘든 여정을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나 민족이나 희극은 비극에서 탄생된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스페인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였겠지만 그 당시 스페인 수상은 침대 머리맡에 돈키호테 책을 두고 읽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수상으로서 힘들고 격무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황에서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은

많은 사상가들과 문학가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문학적이고 감명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성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과 구원의 책이라는 것 외에도 우리가 배울 것이 너무나 많고 스릴 넘치고 유머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많은 비유로 많이 가르치셨는데 그 비유 속에서도 유머가 있다는 것이다.

야외에서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시는데 어렵고 재미없고 지루하였다면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성경 책으로 쉽고 감동적으로 재미있게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과 열심이 더 필요하다 할 것이다. 성경보다 어떤 불필요한 신학서적들이나 학설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고 불필요한 에너지만 낭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도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문학가 사상가 역사가들은 거의 모두 성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죄와 벌외 명작을 쓴 도스토옙스키는 그 시베리아 유배지에 성경(신약 만인지도) 한권 받아가지고 가서 명작들을 썼다는 것이다. 어떤 신학서적들은 없었다. 오히려 어떤 신학서적들은 성경을 읽고 감동을 받고 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좋은 신학 성경서적은 큰 유익을 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기도,

역사를 주관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진리의 말씀인 것을 압니다.

또한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가운데 오셔서 거하신 것을 알고 믿습니다.

이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더욱 쉽고 재미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묵상 (meditation)

솔로몬은 하나님이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신 지혜자이다.

그 솔로몬이 쓴 전도서의 결론은,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그 지혜자의 결론은 우리 인생들의 결론일 것이다

1:1-4


12:12-13

12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2 Be warned, my son, of anything in addition to them. Of making many books there is no end, and much study wearies the body.
13 Now all has been heard; here is the conclusion of the matter: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for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


10:38-42

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8 As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on their way, he came to a village where a woman named Martha opened her home to him.
39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what he said.
40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all the preparations that had to be made. She came to him and asked, "Lord, don't you care that my sister has left me to do the work by myself? Tell her to help me!"
41 "Martha, Martha," the Lord answered, "you are worried and upset about many things,
42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계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때, 원) 카이로스)

3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it and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 because the time is near.

(* 이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는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된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들은 복수이다. 성경은 정확하다. 그런데 성경이 잘못 기록된 줄 알았는지 어떤 번역은 읽는 자 뿐 아니라 듣는 자 지키는 자를 단수로 개정하였다. 무엇을 모르고 또는 잘못 기록된 줄 알았던 모양이다. 개역 번역과 영어 번역이 맞다.

또한 때는 카이로스의 때이다. 달력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영원한 시간 가장 감동적이고 복된 시간이다. 그러므로 달력의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감동과 생명의 시간인 카이로스를 때의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예언의 계시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은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다. 가깝다는 것도 거리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은 복있는 사람, 복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God bless you,, )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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