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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시각에서 본 조선역사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06-27 (월) 20:28 1년전 625  

1. 성경적 입장에서 보는 조선역사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연을 경영 운영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역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인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특별 은혜가 아니어도 일반적인 은혜와 공의와 사랑과 능력의 속성이 일반 역사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에서의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인간만사 세옹지마, 진인사대천명, 사필 귀정, 인과응보 등의 격언과 고사성어가 역사를 보고 세상 사람들도 격언과 고사성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국사를 쓰고 있던 어떤 역사가가 붓을 꺾었다는 것이다. 바로 눈 앞에 보고 있는 사실도 반대로 알았는데 어떻게 직접 자신들이 보지 못한 역사를 쓸 수 있겠는냐는 것이다. 한편 지나간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에 어던 이해관계 없이 좀더 균형감있고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바벨론 대제국 칠십년 어찌된 일인가,, 성경에서 보년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었다.

출애굽이후 이스라엘 역사와 앗수르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헬라 로마 그리고 그 이후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으로 절대적으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아래서 그의 뜻대로 간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말이다. 8:28 )

 

1. 조선의 역사를 보자. 다음은 절대적으로 정확한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얻을 교훈은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조선의 초대 왕은 이성계이다. 이성계의 조상 또는 부친의 이동은 그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가 부친을 따라 이동하여 어쩌면 그 당시 원나라가 정복되었던 개경에서 태어났고 다시 개경을 회복하여 고려인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성계와 가별초는 대단한 사병부대로 알려져 있다. 이성계와 그 가별초는 원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고려로 도망 온 홍건족이 백성들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그 홍건적을 격파하였다는 것이다. 

홍건적은 고려의 수도 개경을 정복하고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이성계와 그 사병 군대가 홍건족을 물리치고 격퇴하였다면 그 당시 그곳 사람들은 이성계를 어떻게 생각하였겠는가, 백성을 구한 영웅으로 보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왜구는 고려에 들어와 곳곳에서 백성들에게 갖은 고통을 주고 만행의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역시 이성계와 그 사병 군대가 왜구를 격파하여 백성들을 그 어려움에서 구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바닥에 흐르는 이성계에 대한 민심은 어떠하였겠는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그의 친구 정도전에게 이성계를 한번 만나보라고 하였다는 것 아닌가, 그 정도라면 이성계는 일부의 백성들 뿐 아니라 고려의 지배층에게도 상당히 알려지고 높이 평가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알려져 있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상당히 잘 준비된 듯한 정도전은 정몽주의 말을 듣고 이성계를 찾아가 그 사병 군대 가별초의 훈련 모습을 보고 이렇게 잘 준비된 군대가 있었나 하고 놀랐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새로운 세계를 또는 나라를 위한 인물로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정도전은 이성계를 통해 백성을 위해 자기의 정치철학을 실천하는 새나라를 구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성계를 통해 자기의 나라를 위한 정책 비젼을 이루고자 하는 일정부분은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 국민적 기대감 그리고 권력층에서도 이성계를 주의 깊게 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충신으로 알려진 정몽주가 그의 친구 정도전을 이성계를 만나보라고 하였던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정도전은 나라를 위한 개혁정신으로 자기의 정치철학을 실천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성계를 찾았고 그의 가별초 군의 훈련 상황을 보고 이 성계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전을 이성계를 통해서 나라를 위해서 무슨 큰 일을 해보고자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백성들의 기대 인기를 얻었을 그리고 사대부들도 높이 평가하였을 이성계는 그 이유 때문에 그 당시 고려왕 우왕과 고려의 충신들의 우려스러운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이것은 성경에서 사울왕과 다윗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으로 공격으로 부터 나라를구하고 그 후 되어지는 것도 말이다. 어쩌면 어느 나라나 역사는 권력관계는 비슷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동서고금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 때 고려의 우왕이 이성계를 요동정벌의 장수로 보내려고 하였을 때 이성계는 고뇌어리고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사불가론을 우왕에게 정중하게 보내었을 것이다. 이것은 신하로서 참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과 자기의 군사들의 생명과 안전과 요동정벌과 그 결과를 예상하고 쓴 고통스러운 글이었을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형식은 왕에게 보내는 정중한 상소문의 형식이었을 것이다

이성계의 사 불가론은

첫째 작은 나라 고려가 큰 나라를 궁격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둘째 농번기인 여름철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셋째 온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북쪽으로 가면 남쪽의 왜구가 공격할 수 있어 불가합니다.

넷째 곧 장마철이라 활에 있는 아교가 녹아서 활이 약해지고 군사들이 질병을 앓게 될 확률이 높아 불가합니다

고려 우왕과 고려의 충신인 최영 장군이 이성계를 요동정벌의 장수로 보냈다는 것은 요동정벌에 그 목적이 있기도 하였지만 이성계 세력을 약화내지 그 이상의 목적도 있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왕조시대에 왕보다 더 높은 자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는 고려의 충신 최영장군에게도 왕에게 충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아는 왕조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고려 왕 우왕이 이성계를 요동정벌의 장수로 보내려고 하였을 때 이성계는 사불가론으로 왕에게 정중히 그 사정을 이야기 하였고 왕이 그것을 받아드렸지만 하룻 밤 사이게 최영장군이 이성계를 보내도록 다시 왕을 설득하여 가게 하였다는 것이다. 고려의 존경받는 충신 최영 장군의 입장에서는 고려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인 왕조시대의 사고에서는 어쩔 수 없는 또는 당연하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금에 충성이 왕조시대에 최고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계와 그 부대는 요동정벌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은 객관적 상황은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성계는 왕의 명령으로 요동정벌 출발을 하였지만 막상 전선에서의 극한 어려움 병사들의 사기저하 고통 질병 등등을 보고 위화도 회군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위화에서 회군으로 개경에 돌아왔을 때 개경에서 그와 군사를 막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그 시대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할 것이다.


1.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혹 고려의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을 명한 것은 이성계 세력을 약화 또는 제거할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설도 있는데 나는 그것이 상당히 공감이 된다고 본다. 그 당시 이성계는 홍건적 왜구등의 힘없는 백성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상황에서 그들을 격파한 이성계에 대한 기대와 인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었을 것이다. 고려 왕과 왕에대한 충성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왕조시대의 사고를 가진 최영장군이 요동정벌의 가능성이 적은 이 곳에 이성계를 보내었다고 하는 것은 고려왕조를 위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어쩌면 왕조시대에 고려왕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일 수도 있다 할 것이다.

(한편 정도전은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에 이어 조선을 세우게 한 후에 그의 정치철학을 상당히 실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성계는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세우고 정도전은 일등공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1. 이방원과 정도전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그리고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과 정도전의 관계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친구 정몽주의 말을 듣고 이성계를 찾아갔고 결국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설계 실행하였다. 정도전은 조선의 개국에 상당히 큰 역할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그는 이성계를 기대하고 함께 하며 역할을 하였지만 이성계 이후에는  자신의 조선설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조선의 두 번째 왕이 된 이방원과는 어쩔 수 없이 외나무 다리에서 경쟁자로 만나는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은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후계자가 되고 그 자손 중에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있다. 태조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참으로 귀한 신하 또는 그의 생애에 귀중한 참모이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성계의 후계자를 이방원이 아닌 다른 아들이 되기를 바랐고 일정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장자는 아니었지만 조선 왕조에 대한 기대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정도전이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 대신에 다른 아들을 왕의 계승자로 생각하고 추진하므로 이방원과 정도전은 적대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젊은시절 새로운 나라를위하여 의기투합하고 이성계를 새 나라의 왕으로 삼으려는 기대와 우정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이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현실화 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도전에게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자기의 그러한 정책의 그림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적절하지 않거나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 정도전이 이방원을 제거까지 하려고 하였을 수 있으나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무엇이라고 할까 참으로 잊지못할 우정어린 충신일 수도 있었다.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젊은 시절 자신을 찾아와서 자신에게 정치적 안목과 비젼을 주고 조선을 세우고 자신을 왕으로 삼은 일등공신을 역할을 한 둘도 없는 인물일 수도 있다. 한편 이방원은 이성계의 장자는 아니지만 실행력 있는 든든한 아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한 그 이후 함흥차사의 이야기는 이성계의 심정 심중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쉬어가기 ~

기록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1392년에 조선을 건국, 1393년 국호를 조선으로, 1394년 한양천도, 1398년 제1차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은 태조를 물러나게 하고 이방과를 왕으로 즉위시키는데 이가 바로 조선의 제2대 임금 정종, 정종은 이방원의 권유로 왕위에 올랐지만 실권은 이방원에게 있었다. 정종이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셋째아들인 이방간이 난을 일으켰고 이를 제2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이방원은 정종에게서 임금자리를 물려받아 제3대 태종이 된다.)


개국공신이고 조선 태조왕에 대한 충신과 그 나름대로 왕조를 지키려는 아들 이방원과 사이는 이성계의 심정을 설명하기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의 다음 왕이 되고 세종이 그 뒤를 이어서 왕이 되므로 조선 한국인에게 한글창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역사는 일 이차 방정식 그 이상일 것이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역사 역시 무한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지혜로 판단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무한 수학의 법칙이 자연과 역사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창조와 운행 역사의 진행은 사람의 판단으로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운행 경영하신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드리며 그 앞에 순종하고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역사의 진행을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고 놀랍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내용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각으로 측량할 수가 없다. 인간 모두가 각자의 자유의지로 판단하고 진행하기에 혼돈스러울 때도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려 하나님의 좋으신 뚯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분명이 믿는 것이 신앙인들의 태도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학문을 많이 하고 유대교에 철저하였던 사울바울 교회를 핍박하다가 극적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사울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했던 그 사울바울이 롬8:28 절을 선언하고 간증하였다. 그 선언은 예수님이 약속한 이방선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로마로 가기를 그렇게 소원하였지만 여러번 막혀 어쩌면 로마에 못갈지도 모른다는 결론에서 로마서를 썼는데 그 로마서에 기록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귀한 로마서를 써서 온 인류에게 줄 수 있게 하시고 로마를 가게 하였고 결국 로마 제국이 복음과 기독교 국가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 왕조를 신앙적인 성경적인 시각에서 해석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 역사를 주관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은 곳에서도 아시고 보시고 관여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영 경영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쉬어가기 2 ~

조선의 마지막 왕은 누구일까요?


기록에 의하면,

조선26대 왕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왕에서 황제로 등극하며 조선 왕실은 더 이상 왕족이 아닌 황족이 되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1대황제 고종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일제강점기 시작 9년 후 1919년 승하, 고종의 아들 이척 승계 (순종 황제) 하여 1907년부터 한일 합병되던 1910년까지 황제이었지만 일제와 이완용 등 친일파에 휘둘리는 꼭두각시 황제라고 할 수 있다

고종인지, 순종인지 혼동이 있습니다. 조선 왕조 마지막에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선포하면서 황제국 대한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은 고종이 1897년 선포하였고 대한제국의 황제는 1910년까지 존속하였는데 대한제국 초기 10년간은 고종황제가 재위했고, 1907~1910년에는 순종 황제가 재위 하였다.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순종을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 어떻게 보든 역사적 사실이 이렇다는 것이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에 대한 해석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의 대가 누구까지 이어졌는가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왕의 직임을 어떻게 불렀든 즉 황제라 불렀다 해도 말이다. 학계에서 어떻게 보든 역사적 사실이 이렇다는 것이다.)



1. 조선에서 한국으로 전환기의 민족지도자와 기독교 

조선시대 후기의 역사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조선 역사 오백년의 왕조시대를 지나는 그 시기는 조선반도 한반도의 전환기적 시대상은 어떠한 상황이었는가, 그 전환기의 어려운 시기에 자주적 사고를 가진 백성들이었고 지도자들이었는가, 우리의 선조들이 지은 작자 미상의 애국의 첫절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는, 소위 강대국들 사이에 있는 우리의 지정학적 입장에서 더떤 나라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 하였다는 것에서 신앙적이고 자주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 외세 의존적인 아닌 자주적, 자주적 이고 무엇보다 신앙적이었다는 것이다.

(* 초기의 애국가 가사 중 신의 칭호를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 하느님이었다가 다시 하나님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한국 한글에서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신을 칭하는 이름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더 적절할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에 계신 이라는 뜻의 하느님이라는 칭호도 무방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칭호가 더 적절할 듯 하다. 신6:4.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영원이 절대적인 절대자 하나 그리고 인격을 뜻하는 님을 붙이는 칭호는 세계에서 신의 칭호로서 가정 적절하고 그 내용을 잘 담은 신의 칭호라 할 것이다. 혹자는 하나님 하느님 어떤 칭호가 더 표준말인가 할 수도 있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표준 말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의미에서도 하나님이 더 적절할 것이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미 하나님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에서 신의 칭호로 그 내용이 가장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절대 진리는 하나,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인격적 존재이기에 님을 붙여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신의 칭호로서 너무나 의미깊고도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신앙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역사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 교훈을 할 때 역사를 운영하시는 보이지 않는 힘 아닌 인격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천지를 운영하시고 경영하실 뿐 아니라 역사를 결국 그의 뜻대로 이루어가신다면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생들은 기계와 로벗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판단하고 실천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신앙인의 신앙고백일 것이다. 그것은 개인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나라의 세계의 역사 자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History 라는 영어 단어가 어떻게 탄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문자적으로 보면 그의 이야기 그의 역사인 것이다

세계 역사 또한 조선 역사가 아직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들어오지 않아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 때까지 아직 예수 믿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지혜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그의 뜻대로 이루셨고 이루신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8:28 


1. 근세 조선 오백년 역사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우리 역사를 시험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조선시대는 현대와 가깝기에 좀 더 역사적 기록이 어느 정도 잘 보전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각자의 사관을 가지고 평가 판단 할 수 있을 것인데 신앙인들은 성경적 시각에서 역사를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현재와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는 역할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사람은 영적존재로서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모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자유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은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기계적인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 주신 존귀한 자유를 가지고 잘 사용하여야 할 것이었다. 사람이 그 주신 존귀한 자유를 사용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다른 짐승들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일을 한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와하고 고통받았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로 없었고 없을 것이다.

사람만이 죄를 의식할 수 있다. 사람 외에 어떤 피조물도 죄에 대한 개념이나 죄의식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제외한 모든 피조물은 본능적으로 생존하고 사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그것은 이스라엘 광야 사십 동안 그들에게 그들을 통해 전 인류에게 가르쳐 주셨다.

조선시대에 창조주 하나님 자연와 역사를 주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몰랐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자연과 역사에서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과 좀 더 가까운 근세 시대 조선의 역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있어야 할 것이다.)

 

 = . 성경연구  

14:14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현대의 역사를 보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과거의 역사를 보고도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28:

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토인들이 바울을 독사가 무는 것을 보고 신의 공의를 말하다가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신이라고 할 정도이었다. 바을은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였고 그 멜리데 라는 아주 작은 섬나라는 지금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행 28:

2:15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공의 은혜는 자연과 역사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용어로도 ,, 사필귀정, 순천자는 흥하고,, 인과응보 ,인간 만사 세옹지만 등등의 세상의 격언은 세상 역사를 보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으로 취하고 적용할 것이 있을 것이다.


=. 부록 (supplement, epilogue)

( * 조선 한국은 많은 내적 외적 등의 시련을 겪었다. 많은 외침도 받았다. 인사 밤새 안녕하십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 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동족끼리 전쟁  동족상쟁, 수 많은 외침, 보릿고개, 일제강점기 ,, 6.25 동족상쟁,,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다. 원치 않는 이 시련을 통해서 한편으로 연단 단련되고 소중한 교훈을 얻었고 얻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이 시대에 혹 남북의 충돌은 가공할 현대 신무기와 외세의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의 개입이 있다면 한반도는 공멸 폐허가 되고 다른 민족이 이 땅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꿈에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남북의 평화 공존 협력 번영 평화경제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은 여기에 맞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자주적 평화 외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주관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한국을 사랑하여 이러한 부분에 맞는 지도자를 세우실 것이다. 그리고 남북의 평화 번영을 바라는 동포들이 수준 높은 사고로 그러한 일의 실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역사를 주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계사에 주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는 그릇으로 선택되었을지도 모를 조선 한국, 

힌국의 국가를 보라, 애국가의 가사를 보라,
소위 열강들의 압박의 그 시대적 상황 속에 끼여있는 그 당시는 약한 조선의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겠는냐 , 한반도의 이 지정학적인 상황에서 말이다.)누구를 의지하여야 하겠는가 말이다. 사대주의 식민지적 사고가 아니라, 그 열강 이상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운영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는 것이다. 애국가를 지은 선조들은 자주적이고 의식있는 신앙인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국가를 누가 지었는지 작자미상이다. 어쩌면 자주적 의식있는 공동의 작사자가 아니겠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지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의미깊고 놀랍고 기이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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