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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번역과 종교개혁15 ( 마9:2,22 막2:5 ,5:25, 눅8:43-44)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2-12-20 (화) 07:51 1년전 490  

1.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Take heart, son; your sins are forgiven.")


9: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2 Some men brought to him a paralytic, lying on a mat.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Take heart, son; your sins are forgiven."

 

9: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22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from that moment.

 

1). 소자야는 아들아 라는 뜻이다.

2:5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개역)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개정)

(* 개역의 소자를 개정은 작은 자야 라고 수정하였는데 참으로 할 말을 잃게 한다. 아들아를 뜻하는 소자를 작은 자야 라고 수정하다니,,

그리고 작은 자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누구를 어떤 사람을 작은 자라고 하는 것인가, 개정번역의 수정에서 어린 아이로 보고 작은 자 라고 개정 번역한 듯 한데 전혀 적절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개역성경의 소자야 에서 자는 한문의 아들 자 로서 자야 라고 번역하지 않고 소자야 라고 번역한 듯하다. 그런데 개정 번역은 소 자를 작을 소 자로 이해하고 작은 자야 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아 가 어떻게 소자야를 거쳐 작은 자야 로 바뀌었는지 역시 유구무언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부족하게 수정하였다 하여도 경전의 번역이므로 유구무언할 수 밖에 없는 심정도 있다. )

(* 다시, 작은 자야 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사람을 작은 자라고 부르는 것은 어떠한 사람을 작은 자라고 하는지 이 내용에서 한국말이 더 어렵다. 아마 어린 아이 라는 뜻으로 작은 자야 라고 수정하였는지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 어린 아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아이라면 부모가 업고 오든지 하였을 것이다. 이 중풍병자는 네 사람이 침상에 메고 온 사람이다. 작은 자가 어린 아이를 의미한다면 내용상 적절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라면 파라디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18:2 )

 

1. 개역 번역의 수정을 보고 참으로 한국교계가 말씀 만으로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 개정 번역의 문제 점에 어떤 학자도 아니 거의 모든 학자도 언급이 없는 듯하다. 어떤 아니 거의 모든 교계 리더들도 모르는지 언급이 없다. 각 교단에서 외국의 유수한 신학교에서 학위 받아 온 분들이 수정하였다는 설에 다 그러한지 말이다. 그럼에도 개정 번역 팀은 실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이해, 히브리어 헬라오 한국어 실력 그리고 언어감각도 대단히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성경을 읽으면서 아 이건 아닌데,, 아니 그 깊은 내용의 잘 번역된 내용을 내 이렇게 수정하였지, 어떤 때는 강단에서 그 동안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개역의 내용을 인용하려고 하니 그 단어가 사라져 버려 당황하나 적도 있었다. 번역팀의 모국어 언어실력과 감각도 부족하고 거기에 감수자의 감수도 부족하였을 것이다. 개역 번역은 여러 번 반복하였지만 신뢰받을 주석가 분들에 의해서 결과적으로도 검증이 되었던 것이다한국 교계는 말씀으로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  소자,, 자식 , 아이, son, a child, descendants 

본문의 상황상 어린이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라면 부모가 업고 오든지 하지 네 사람이 침상에 메고 올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파라디온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18:2

( * 단어의 뜻은 문장에서 상황에서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축구경기에서 한골 먹었다 하였을 때 공을 빵 먹듯이 햄버거 먹듯이 먹었다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 막2:5 절을 영어번역으로 보자.

5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unto the sick of the palsy, Son, thy sins be forgiven thee. / kj

5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you." / nkj

5 And Jesus seeing their faith *said to the paralytic, "My son, your sins are forgiven." / nas


(* 개역의 소자(아들)야를 개정의 작은 자야 로 수정한 것은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다. 몇 년전에 지적하였지만 다시 읽어도 참 말이 안나올 정도이다. 유구무언일 수 밖에 없다. 너무나 강하게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정하였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래를 부르듯이 반복에 반복하였지만 , 혹 언제까지 개정을 또 또 또 개정 보완한다면 더 이상한 수정이 될 것이고, 개역을 극히 정밀 검토 검증하여 내어놓는 것이 최상일 것이다

예수님이 아들아 , 딸아 부르심으로 부르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아들아 부른다면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장성한 성인을 아들아, 딸아 부르셨다면 예수님이 누구이실까요,)


( * 개정 번역을 보고 적어도 이백 여군데 이상을 지적한 듯 한데 이렇게 수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적하려고 찾은 것이 아니라 읽다가 아니, 아니 왜 이렇게 수정을 하였지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너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동받고 귀하게 생각하였던 구절들이,, 만약 부족,,하게 수정이 되었다면 그것을 읽는 그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수정을 보고도 지적하는 학자는 없거나 거의 극소수라는 것이다, 교계의 유명인사 분이나 리더들도 침묵이다. 원어는 사전을 찾아볼 정도 그리고 잘 번역되고 검증되고 인정받은 한영성경과 같이만 보았어도 개정번역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알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정이 그래도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면 원본의 개역번역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개정 번역은 몇 번역본들이 그러하듯 개정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듯한 실력에 체 하는 모습이 너무나 역력이 많이 보인다

대략 부족한 수정 심지어 오역등 이백여 군데 내외를 지적하였다. 2:5 는 명백한 오역일 뿐 아니라 심지어 내용을 오해할 수 있을정도는 아닌지 모르겠다.)

 

(* 후렴, 아들아 딸아 했을 때 예수님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얼마나 놀라운 내용인가, 그런데 아들아를 ,, 작은 자여로 ,, 한문으로 아들을 자 라고 하는데 한글 번역으로 자라고 하기는 그러하므로 소자로 번역한 것 같은데 그것을 개정팀은 작은 자여 라고 수정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부분은 한문의 소자가 아들을 뜻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이 부분은 아들아 를 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단어의 뜻은 문장 문맥 상황에서 더 잘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므로 한영성경등 외국어 성경과 대조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진 죠지 뮬러 목사님은 몇 권의 사전과 외국어 성경을 함께 보았다는 것인가,

예를 들면 시내, 조각목 이라는 단어는 문장에서 보아도 무슨 뜻인가 할 수 있다. 그 문장에서 두 가지 뜻이 다 가능하다면 어떤 뜻인지 알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어는 사전 찾아볼 정도 그리고 잘 번역된 한영성경과 같이 보면 기대 이상의 유익이 있었다는 것이 거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1.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Take heart, daughter," 

9:20

2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20 Just then a woman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21 She said to herself, "If I only touch his cloak, I will be healed."

22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from that moment. / niv1984

22 But Jesus turned him about, and when he saw her, he said, Daughter, be of good comfort;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And the woman was made whole from that hour. /kj

 

5:34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4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and be freed from your suffering."

 

8: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8 Then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 막5:25, 8:43-44 )



1. 주다 와 베풀다

1: 8-9 / 개역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개역)

(* 주다, 받다) (개역)

 

1:8-9 / 개정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개정)

(*주다를 베풀다로 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시, 정확하고 알기 쉽게 잘 번역한 주다를 베풀다로 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어가 더 어렵지 않다는 것인가요, 그 무슨 이유인가요, 대략 이백 부분 내외를 지적하였으니 새삼 지적하기도 그러하지만, 더구나 경전이기에,, 경전이기에 잘 번역된 경전이기에 수정을 가볍고 경솔하고 교만하게 개정을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한국 교회사에서 말이다.)

8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9 At that time Jesus came from Nazareth in Galilee and was baptized by John in the Jordan.


(고후5:5)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개역)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개정)

5 Now it is God who has made us for this very purpose and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1. 주다 를 베풀다 로 수정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차라리 베풀다를 주다로 수정하였다면 적절한 수정이었을 것이다. 

번역팀의 실력은, 각 교단의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분들이라고 한다. 어떤 외국에서 학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 받은 탁월한 성경 주석가 분들도 있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러한 면이 있듯이 이미 입학전에 상당한 실력을 갖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도 외국에서 무엇을 배웠다기보다 학위 받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글 개정성경의 번역을 보면 외국 유학이 심지어 허망하다는 표현을 한다면 지나칠까 말이다.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유학가서 소통하려면 어학에 올인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나 인문학 서적 등 풍부하게 공부까지 같이 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외국의 교수들이 한국의 실력있는 학도들이 받아쓰기 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지도 그러하는 것을 뒤 늦게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오히려 실력이 있었다 라고 깨닫게 된 것은 아닌가 말이다. 언어 소통이 문제가 클 것이다.

영어등을 그들에게 배우듯이 신학도 그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서로 디스커션 할 일이지 받아쓰기 하고 학위 얻을 일은 아니었는데라고 뒤늦게 깨닫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문명기기로 대학의 거의 모든 강의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시대가 되었다. 문명기기의 발전으로 이제 외국어 소통도 기기를 이용하여 거의 동시 직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므로 더욱 모국어 세계어 그리고 영적으로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최고의 책인 한영성경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한영성경은 영력 국력이고 일평생 읽어야 하고 읽을 수 있어 잊혀지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기억하게 하는 최고의 교육자 이시기도 한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영력 국력이 된다는 것이다. ( 신6:4 - 

그러므로 이것은 신앙인으로서는 물론 한국인으로서 세계인으로서 한영성경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하는 것은 영력 국력을 위해서도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유익이고 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앙인들의 행운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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