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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란 무엇인가 (요20:24-29)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3-01-03 (화) 07:25 1년전 451  

신학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신학이라는 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신학자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성경에는 율법학자 서기관 선지자 예언자라는 말이 있다. 율법학자라는 말은 성경학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구에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를 신학자라고 칭한 것으로 시작한 듯하다. 신학자라는 말은 성경 뿐 아니라 인문학등을 같이 연구하는데서 시작하였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신학이라는 용어가 애매하다. 신학이란 신을 연구한다는 말인가 말이다.

 

그런데 서구에서 언젠부터인가 중세시대 부터인가 오히려 성경을 비평하는 학문으로 역할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 내용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비평학이 성경의 권위를 떨어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도들에게 무익하게 하는 경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엠 바운즈 등은 그러한 서구 신학을 비평하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이십 대에 그러한 검증되지 않은 비평학을 가르치므로 평생을 안좋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개탄하였다.

 

서구의 신학에서 비평학을 가르친 내용인지 몇 가지 회자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것은 홍해바다가 아니라 갈대 숲이었을 것이라는 것,, 아니 그렇다면 갈대 숲을 바로왕과 그 군대는 못 건넜다는 것인가, 그 갈대 숲 바다를 못 건네고 후퇴하였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후 되어진 모든 일 그리고 젊은 시절 홍해를 건넌 여호수아가 선언한 내용 그리고 시편과 신약에서 그것을 인용한 모든 내용도 삭제하여야 할 것이다. 홍해를 가르신 이후 불 구름 기둥의 이동등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홍해 바다가운데서 더 이상 전진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홍해가 갈라졌다고 하여도 말이다. 홍해가 히브리어로 갈대라는 발음도 있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지만 갈대 숲이라면 더 이해 못할 일들이 많다. 홍해가 아니고 갈대 숲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한 바로 왕과 애굽 군대는 어떻게 되었는가 말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이 가르킨 것인지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고학적으로 증명하여 여리고성이 일반상식과 달리 안으로 무너졌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가나안의 정복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성취이었지만 가나안의 우상숭배의 심판이었던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잘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왜 하나님께선 가나안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은 구원하시는가 이해를 못할 수 있다. 15:16,,

 

이러한 어설픈 신학을 서구에서 가르치고 그것이 세계로 퍼지므로 교회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할 것이다. 신약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하나님의 표적으로 보는 것보다 한 소년이 오병이어를 내어 놓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것에 감동을 받아 다 꺼내놓아 다 배불리 먹고 열두광주리가 남았다는 해석은 웃음이 나오게 할 뿐이다. 이러한 어설픈 학설이 서구 신학교에서 신학이라고 가르친다면 그리고 그것을 무엇 새로운 굉장한 학설을 배운 듯 받아쓰기하고 가르친다면 웃음이 나올 지경일 것이다

그러한 홍해바다 오병이어의 표적에 대하여는 불신자들도 그렇게 비평할 것이다. 그러한 것을 배우려고 했다면 신학교를 들어갈 것도 없이 불신자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다원적 주장을 먼저 불신자들이 주장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불신자들이 이미 주장할 내용을 그것을 신학교에서 신학이라고 가르친다면 그것도 웃음 나올 정도라는 것이다.

차라리 버트런트 러셀 같이 세계에 8대 종교가 있는데 저마다 진리라고 하니 어떻게 절대 진리가 하나인데 ,, 하며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를 받아드릴 수 없다고 했던가,, 러셀은 차라리 자기 사상에 대하여 솔직 정직하였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다른 러셀의 책을 읽어보니 성경을 잘 몰랐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한 것보다 소문으로만 들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단지 서구 기독교 문화 분위기에서 기독교는 이미 잘 안다고 착각한 것 같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도 그러한 도발적 외침 때문에 일약 더더욱 유명인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이 모순이 있지 않은가, 아니 신은 없다라고 하였다면 모르지만 신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외침이다. 신은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신이 죽는다면 신이 아닌 것이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외침은 오히려 이름만인 신앙인들에게 도전이고 경고이고 자기 자신의 신앙의 절규인지도 모른다. 한편 그의 책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시적 명문으로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 문체가 명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니체 역시 버트런트 럿셀은 적어도 자기 사상에 정직 하였다고는 할 수 있을 수 있다. 서구 신학교에서 불신을 주는 비평학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불신을 가진 듯 하면서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한다는 것은 정직할 수 있을까 비교해 보면 말이다. 

도대체 가르치는 내용을 핵심이 무엇일까 아는 학도들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한 학설을 배우고 그것도 받아쓰기 하며 어설프게 배웠다면 무엇을 전할 것인가,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개역의 개정을 보면 그것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어떤 무가치한 자유주의적 비평학설 어설픈 받아쓰기보다 이스라엘 탐방 연구 성경연구 인문학 연구이면 서구의 어떤 곳에서 꼭 배워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상당한 교육과 연구를 하였다면 유학을 가서 상호토론으로 서로 배우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었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감옥에 들어갈 때에 신약 성경 책 한권을 누군가에 의해 받았다는 도스토옙스키는 신학학위 없는 뛰어난 신학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가장 철저한 무신론자는 가장 철저한 유신론자에 가장 가까이에 와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진리이기에 진짜이기에 그렇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사람인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철저하게 의심하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간혹 자유주의 신학을 배우면서 오히려 신앙이 부정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설픈 것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의심하려면 차라리 철저히 의심하고 부정하려면 차라리 철저히 부정한다면 차라리 가장 확실한 신앙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순금은 가장 철저히 검증할 때 오히려 순금인 것이 증명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은 어설픈 비평학으로 죽도 밥도 아닌 학설들을 만들고 그것을 배우고 그것을 전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크게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한 이유가 어떤 신학을 배우고 공부한 후 직을 가진 인사가 개인방송에서 가나안의 여리고성 무너진 것을 부정하는 듯 조롱하는 듯 하며 잘난끼인지 뭔지를 섞어 말하는 것을 보고서 이다. 선 무당이 뭐 어떻다고 어설 픈 배움은 교만을 주고 손해를 주는 경우를 본다. 차라리 럿셀같이 니체같이 도마같이 철저히 부정하다가 진리를 찾든지 할 수 있지만 어설픈 비평학 신학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은 것이 결국 그것인가 하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것을 무슨 타이틀을 가지고 아는체 하며 전하는 모습에 아연할 것이다

신학이란 무엇인가 을 배우는 과정의 내용이 무엇인가, 신학을 배우는 오히려 비평적 지적교만과 믿음의 무익을 가져오게 하는 것인가, 신학 교과과정과 내용을 점검 토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서구에서 신학교의 신학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더 역사 깊은 서구에서 그 질문에 대답하여야 할 것이다. 그 질문에 올바르고 정확한 대답이 신학의 시작일 것이다.

 

=. 묵상 (meditation)

도마를 신학도로 가정하고 질문한 것으로 본다면, 다른 제자들이 보고 만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한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증명해 주셔서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려고 입문한 학도들은 이미 입학 할 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출발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증명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 성경과 그 내용을 확증하며 이스라엘 문화 역사 지리 인문학 등을 배우며 깊고 확고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또는 그 이후 오히려 성경을 불신하고 비평한 듯하며 그것을 마치 뭐 ** 신학이니 신신학을 가진 듯한 교만한 인사를 만드는 경우는 없는가도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로서 삼년 간 배우고 훈련받은 후에도 아직도 의심 많은 도마에게 압축하여 한 순간에 증명해셨다는 것이다. 도마는 압축하여 배우고 선언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께 삼년간 듣고 보고 배운 그럼에도 불신하였던 도마를 신학도라고 대입하여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20:24-31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7 Then he said to Thomas, /
"Put your finger here; / see my hands. /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Stop doubting and believe."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4 Now Thomas (called Didymus), one of the Twelve, / was not with the disciples /when Jesus came.

25 So the other disciples told him, /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 

 "Unless 

 1) see the nail marks in his hands / 

 2) and put my finger where the nails were,/  

 3)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 I will not believe it."

26 A week later / his disciples were in the house again,/  and Thomas was with them. / Though the doors were locked, /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 and said, "Peace be with you!"

27 Then he said to Thomas, /
 "Put your finger here; / see my hands. /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Stop doubting and believe."

28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29 Then Jesus told him, /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 blessed are those / who have not seen / and yet have believed."

30 Jesus did many other miraculous signs /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 which are not recorded in this book.

31 But these are written / that you may believe /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 and that by believing / you may have life / in his name.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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