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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7일 (화) 로중(Lousung)_하나님은 내면을 살피시고 행위대로 갚으신다(이주형목사)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3-02-06 (월) 21:51 1년전 277  




[새벽에 선포되는 말씀으로 준비되기에 부득이 하루 전 로중(Lousung)말씀 본문 묵상을 올립니다.]

예레미야 17:9-10 (구약 1078쪽).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갈라디아서 6:9 (신약 309쪽).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cf. 창 6:5). 선한 분은 하나님 뿐이다(마 19:17; 눅 18:19). 하나님은 심장[›마음‹]과 폐부를 시험하신다(cf. 롬 8:27). 마음은 이해와 생각과 판단과 의지의 기관이다. 폐부는 ‘신장’[콩팥](die Nieren)이다. 사람의 가장 은밀한 곳 즉 실질적인 중심이다(cf. 렘 12:2). 자신조차 들여다볼 수 없는 공간이다. [마음은 사람이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과 통제가 가능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면] 폐부는 사람이 작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어떤 가변적 담즙 상태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의해 사람의 삶이 기쁨과 눈물 또는 행복과 괴로움으로 갈린다. [우울증이란 영어 단어(Melancholy)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검은 담즙이 몸에 가득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홍수가 땅을 덮듯이 어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까지 화살이 꽂히게 하신다(애 3:13). [마음이 이성이 자리한 곳이라면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은 폐부이다]. 그러므로 속을 살피셔서 – 오늘날의 의학지식으로 말하자면 피검사나 조직검사를 통해서? 아니면 내시경을 통해서? – 의로움 여부를 확인하신다(렘 11:20; 20:12). [멀리서 보시는 것은 망원경을 통해서인가?(cf. 시 138:6). 현미경으로 관찰을 하시듯 뜯어보신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의인은 없다(시 14:1; 53:1; 롬 3:10).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cf. 시 26:2). 하나님이 제대로 살펴보시고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시면 그의 기준에 만족할 합격자는 없다. 그의 시험을 통과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에게 선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인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속임수로 대할 수 없으며 연막을 쳐서 그분 앞에서 의로운 체 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을 선하게 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행실이 나오기 때문이다(마 12:34-35).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믿음의 길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겨 선한 의도에 사용되도록 내드리는 것이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헌신이란 악한 자신을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되게 하는 길이다.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욕망과 본능 너머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이에게 자신을 의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길의 인도를 목자에게 맡긴 양이다]. 하나님은 겉과 함께 속을 살피시고 그 행동과 함께 그 행위의 동기를 심판하신다. 하나님 앞에선 온전히 정직하고 새로운 사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선을 행하는 것은 선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무수한 낙심의 과정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선한 것이 곧바로 만족하고 흐뭇한 결과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씨를 뿌렸다고 바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것을 늘 계산에 넣어야 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세 종류의 밭은 실패한 경우이다. 옥토만이 큰 결실을 거두었고 그것으로 모든 실패가 상쇄된 것이다(cf. 마 13:3-9.18-23.24-30.37-43)]. 장애물이 있고 방해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을 꿰뚫고 극복하며 하는 것이다. 잘 한다고 칭찬을 들을 것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말할 것도 없이 뿌린 대로 거두는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7-8절).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하다. ‘터널의 끝은 있다. 다만 끝까지 가는 이에게만 말이다!’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열매가 맺힐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씨를 뿌리며 참으며 기다리는 사람만이 얻는 선물일 뿐이다. 야고보 사도의 권고는 이를 상기시킨다.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약 5:7-8a). 또는 선행은 의도를 의심받을 수도 있다. 뒤에서 하는 비난은 대놓고 하는 직접적인 반대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길의 옳음을 두고 주변을 개의치 않을 만큼 확신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너를 비난한다면 너는 네가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라!’ 관건은 결실하는 때까지 –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 포기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나무의 열매를 내다보는 이만이 포기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서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선은 선을 위해 애쓰는 과정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불확실성은 그러나 오히려 생산적인 모험을 위한 기회가 될지언정 포기를 위한 합리적 이유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cf. 전 11:1-6). 개간을 위하여 준비된 미지의 땅인 것이며 적극적인 삶을 위하여 개방된 미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동기부여의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지 반대로 지레 그만두기 위한 구실이나 게으른 삶을 위한 좋은 핑계거리로 작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속에서부터 깨끗하고 정직하게 하시되 선한 일을 위하여 굳건하게 하시옵소서. 좋은 일을 한다는 순진한 자부심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상황이 힘들다 하여 포기하지 않도록 옳은 길을 가고 있을 때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음에 대한 확신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일을 할 때 쉽지 않음을 예상하지 못하여 높은 파도를 만나고 시련의 마파람에 부딪힐 때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주님이 극복의 능력이 되어 주시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시고 지속해갈 수 있도록 기쁨과 보람이 되어 주시옵소서. 지혜롭게 그러나 용감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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