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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4일 (금) 일점일획_“죄인”에 대한 묵상(IBP)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3-02-23 (목) 23:19 1년전 352  
“죄인”에 대한 묵상

갈릴리 호수가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고백은 "나는 죄인입니다"이다(눅5:8). 원어로는 ἀνὴρ ἁμαρτωλός εἰμι(아네르 하마르톨로스 에이미)인데, 여기서 ἁμαρτωλός(하마르톨로스)는 sinful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직역은 "나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혹은 "나는 죄 된 사람입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 앞에서 베드로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인데, 이 베드로의 고백 속에서 "죄"는 무슨 뜻으로 해석해야 할까?

"죄" 문제는 종교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서 동물 제사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드렸다. 레위기 4장은 동물제사가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이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27~30 일반 평민 가운데서 한 사람이 실수로, 나 주가 하지 말라고 명한 것 가운데서 하나를 어겨서, 그 허물로 벌을 받게 되면, 그는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는 대로, 곧 자신이 지은 죄를 속하려고, 흠 없는 암염소 한 마리를 제물로 끌고 와서, 그 속죄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다음에, 번제물을 잡는 바로 그 곳에서 그 속죄제물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제물의 피를 얼마 받아다가, 손가락으로 찍어서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모두 제단 밑바닥에 쏟아야 한다.

이 단락은 일반 백성 한 명이 죄를 지었을 경우 암염소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지침을 보여준다. 이 단락 앞에는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3절), 이스라엘 온 회중이 공동으로 죄를 지었을 때(13절), 최고 통치자가 죄를 지었을때(22절),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이 담겨 있는데, 이 단락과 별로 다를 것 없다.

"죄"가 있어야, 제사도 필요하고 제사장도 필요한 것이니, 종교는 대개 "죄"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기독교 교리도 "죄"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아래는 이재철 목사가 쓴 <새신자반>의 목차이다. 신론 다음에 인간론이 나오고, 기독론이 그 뒤를 잇는 것을 볼 수 있다. 2장 인간론이 주장하는 핵심은 하나이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필요하고, 성령의 도움도 필요하고, 성경의 계시도 필요하고, 기도도 필요하고, 예배도 필요하고 교회도 필요한 것이다. 인간이 "죄인"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논리적 전개는 필요하지 않다.


 기독교가 말하는 "죄"는 무엇인가? 흔히 "죄"를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설명한다. 충분한가? 성경이 말하는 "죄"를 이 문장은 포괄하고 있는가?

성경은 "죄"에 대하여 더 풍부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범위를 살짝 좁혀 보자. 남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를 "범죄"라고 한다. 성경에 이런 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ex. 막 14:41-2), 이 글의 논의에서는 빼기로 하자. 범죄는 성경이 설명하는 죄이기 이전에 세상의 법률로 규정된 죄이기 때문에 여기서 논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범죄를 빼고나면, 성경이 말하는 "죄"와 "죄인"의 용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특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죄"라고 여겼고, "그런 사람을 죄인"이라 여겼다.

1. 보편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한 상태를 "죄"로 보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디모데전서 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고백 역시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유대교가 제시하는 율법 준수나 성전 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이 죄인이라 불렸다.

누가복음 15:1~2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누가복음 18: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 9:13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3.초대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신앙적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을 죄인이라 불렀다.

야고보서 4:8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

야고보서 5:20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

4.이방사람들, 곧 이스라엘 선민의식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죄인이라 여겼다.

갈라디아서 2: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죄"와 "죄인"은 기준에 미치지 못한 상태와 사람을 이르는 언어였다. "기준"이라는 것은 늘 "바운더리"로 작용한다. "죄"와 "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순수하게 신앙적으로 작용하였다기 보다는 사회적 바운더리로도 작용한 언어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2번의 죄 개념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맞닥뜨린 문제였다. 예수님께서는 2번의 죄 개념을 통하여 형성된 바운더리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그 기준에 의해 밀려나 "죄인"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을 "죄의 굴레"에서 해방하기 위해 애쓰셨다. 예수님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죄"의 굴레를 씌우고 자신들은 의로운 체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도전하고 맞서 싸우기까지 하셨는데, 그 결과 죽임 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의미는, 막연한 고백이 아니라 이런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의 방향에서 나온 고백이다.

반면 바울 사도는 4번의 죄 개념에 맞서 싸우셨다. 이방인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죄" 개념과 그것이 쌓아 올린 강고한 벽에 맞서 싸웠고, 그런 도전 중에 칭의론도 나오게 된 것이다. ]

성경의 죄 문제는 1번 개념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다. 이때 "죄인"은 인간의 한계성을 표현하는 신앙 고백적 표현이다. 그러나 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다는 명분 아래 종교적 권력과 규범이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2번, 3번, 4번 죄 개념들이 만들어졌고, 이런 죄 개념들이 "바운더리 마커"(boundary marker)로 작용하면서 죄는 약자들에 뒤집어 씌워지는 굴레가 되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다 죽임 당하셨고, 바울 사도는 그의 뒤를 따랐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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