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2023년 3월 24일 (금) 일점일획_“죄”에 대한 묵상-2(IBP)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3-03-23 (목) 20:33 1년전 380  

"죄"에 대한 묵상2

우진성목사(과천영광교회)




"죄"에 대한 세 가지 상징언어 

Gary Anderson이라는 노틀담 대학의 교수가 쓴 Sin: a History라는 책이 있다. "죄"에 관한 인류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성경이 이 추적의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죄"는 기독교 교리의 출발점이 된다. 죄에서 출발해서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뼈대이다. 그렇기에 "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으며, 앤더슨 교수의 책은 "죄" 이해는 기독교 신앙을 넓게 이해하는데 큰 통찰을 준다.   

그에 따르면 성경에서 죄는 세 가지 상징적 언어로 표현되었다. 첫째는 stain(얼룩 혹은 더러움)이고, 둘째는 weight(짐)이고, 셋째는 debt(빚)이다.  이 세 상징 언어의 공통점이 있다. 그대로 안고 살 수는 없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무엇이라는 점이다. 온전한 삶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무엇이 "죄"라는 말이다. 그래서 "죄"는 그냥 더러움, 짐, 빚이 아니라, "씻어 내야 할 더러움"이고, "벗어야 할 짐"이고, "갚아야 할 빚"인 것이다. 

성경에서 "죄"에 관한 이런 언어들을 찾을 수 있다. 


1.씻어져야 할 더러움으로서 죄 


이사야 1: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이 구절 뿐만 아니라  율법에서 부정하게 된 것을 씻는 규정(예를 들어 레13:54, 58, 14:9, 47, 15:5, 10, 11 27, 마15:2)이나 세례자 요한이 베푼 죄를 씻는 회개 등은 모두 죄는 씻어내야 하는 얼룩으로 생각한 전승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내려 놓아야 할 무게로서 죄  


레위기 16:21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내야 한다. 22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낸다.


인간이 "지고 있던 죄의 짐"을 숫염소에게 대신 지워 하나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광야로 보냄으로, 공동체 내의 죄 문제를 해결 하던 방식을 보여준다. 이 속죄 예식 속에서 죄는 "지고 있는 짐"으로 상징 되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이 유명한 구절에서 "수고하며 무거운 짐" 역시 이런 배경에서 해석한다면, 인생의 고달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고 있는 죄의 짐을 뜻할 가능성이 높다. 


3. 죄가 갚아야 할 빚으로. 


이사야 40:1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2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2절에 나오는 "죄에 대한 형벌" 히브리어 아온עָוֹן이다. 빚을 다 갚지 못했을 때, 진 빚을 갚기 위하여 감당해야 하는 종살이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를 그렇게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께 빚을 졌는데 그 빚을 갚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빚을 갚을 때까지 이방 민족 아래에서 노예살이를 했다는 식으로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이해하였다. 이런 이해에서 속에서 "죄"는 "갚아야 할 빚"이다. 갚지 못하면 갚을 때까지 노예살이를 해야하고, 빚이 커서 평생의 노예살이를 통하도 갚지 못한다면 죽도록 노예살이를 해야하는 그런 빚이다.   

죄에 대한 어떤 논리적 설명보다 고대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 상징적 언어들이 죄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설명해 준다.  


앤더슨 교수는, 순서로 보면 포로기 이전까지는 앞의 두 상징이 더 강력하였지만, 포로기 이후 제2성전 시기에는 "빚" 상징이 강력하였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포로로 잡혀 간 자신들의 신세를 신앙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기 때문에 "죄=빚"이라는 비유 언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약시대에도 이 상징이 죄에 대한 지배적 언어였다.   


두 가지 어카운트


제2성전시기에 여기에 더하여 재밌는 사상이 발전한다. 죄를 진 것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 것인데,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플러스 통장을 만드는 길이 있다는 사상이다. 누구에게나 두 가지 계좌(account)가 있는데, 하나는 땅의 계좌로, 죄를 지으면 빚(debit)이 쌓이는 계좌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계좌로, 선행을 베풀 때마다 플러스(credit)가 쌓이는 계좌이다. 마지막 심판 날에 두 계좌의 잔고가 정산되어 플러스인 사람과 마이너스인 사람이 각각의 대우를 받게 된다.  

하늘에 크레딧을 쌓는 선행은 무엇인가? 이 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구절인 다니엘서에 따르면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다니엘서 4:27   그러니 임금님은 저의 조언을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의를 행하셔서 임금님의 죄를 속하시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죄를 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임금님의 영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서의 문학적 배경은 포로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2세기 중반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위 구절을 읽어야 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면" 죄가 속하여진다.  아래의 두 마태복음 구절은 이런 전승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태복음 6:19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20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5: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빚


유대문화 속에서 발전한 "죄=빚"이라는 사상은, 그리고 "선행을 행하면 죄를 갚는 크레딧이 쌓인다"는 사상은 기독교 안에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으로 보았고, 그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의 "죄=빚"을 갚아줄 수 있는 무한정한 크레딧이 쌓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골로새서 2:13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5)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빚"을 대신 갚아 주셨다는 예수 이해는 지난 호 일점일획말씀묵상 "죄에 대한 묵상"에서 보여주었듯, 초대교회 케리그마 속에 녹아들었다. 


죄 문제, 서로 용서를 통하여 해결


이런 전승의 연장 선상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발전한 사상이 하나 더 있는데, 우리도 서로 빚진자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빚을 갚아주셨으니,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하고 그렇게 할 때에 또 하늘에 크레딧이 쌓인다는 사상이다. 

대표적으로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 안에 이런 사상이 분명하다. 

누가복음 속 주의 기도는 이렇다. 


καὶ ἄφες ἡμῖν τὰς ἁμαρτίας ἡμῶν,

καὶ γὰρ αὐτοὶ ἀφίομεν παντὶ ὀφείλοντι ἡμῖν·


직역하면, 

우리가 지은 "죄"(하마르티아)에 대해 우리를 용서하소서,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빚진 모든 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어떻게 사하여 지는가? 누가복음의 주의 기도는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 줄 때 사하여 진다. 우리에게 빚진 자들의 빚은 우리에게 지은 "죄"를 말하는데, 사실 "죄"라는 말은 여기 사용하기에 너무 큰 말이다. "잘못" 정도가 적당하겠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참아주고 너그럽게 대해 줄 때,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크레딧이 쌓인다는 말이다. 


마태복음의 주의 기도는 이와 같다. 


καὶ ἄφες ἡμῖν τὰ ὀφειλήματα ἡμῶν,

    ὡς καὶ ἡμεῖς ἀφήκαμεν τοῖς ὀφειλέταις ἡμῶν

   

직역하면, 

우리가 진 빚을 우리에게 탕감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자들의 빚을 탕감하여 준 것 처럼. 


누가복음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죄"라고 번역되는 하마르티아를, 우리가 용서해준 잘못에 대해서는 "빚"이라는 뜻을 지닌 오페이레마타ὀφείλημα를 사용한 반면, 마태복음은 양 쪽 모두 오페이레마타를 사용하였다. 

마태 누가 모두,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준 것(빚을 탕감해 준 것)이 하늘에서 우리 죄가 사하여지는 조건이 된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마태복음 18장에 나온 빚진 노예의 비유 역시 이와 마찬가지 전승 위에 있다.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너그럽게 대하고 그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죄 용서, 아가페 공동체를 세우는 토대


이상, 죄에 대한 사상의 흐름을 게리 앤더슨 교수의 도움을 받아 살펴보았다. 죄를 빚으로 이해했다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또 있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죄를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 규정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생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간극을 넘을 수 있다는 담론을 통하여 이해해 왔다. 이런 죄 담론의 문제는 죄를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용서의 문제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죄에 대한 지평이 수직적인 차원으로 좁아졌다. 그러나 "죄=빚"이라는 담론 안에서 죄의 문제는 수평적인 차원을 획득하게 되었고, 죄와 용서의 문제는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용납하고 용서해 주어야 하는" 공동체적 문제로 확대 되었다. "서로 용서"를 통하여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제사장을 통하여 개인이 죄 문제를 해결해 오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서로 행하는 죄 용서를 통하여 아가페 사랑이 흐르고, 서로 죄 문제를 해결해(진 빚을 탕감해) 줌으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새로워진다. 

이렇게 죄를 서로에게 진 빚으로 이해하는 상징 언어를 통하여 죄와 용서의 문제는 개인적 구원의 문제에서 아가페 실천의 중심적 문제로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