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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일 (금) 일점일획_"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에 대한 묵상(IBP)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3-06-01 (목) 22:20 10개월전 205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에 대한 묵상

- 우진성 목사(과천영광교회)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7장에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 나누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는 장면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 이 대화 장면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비연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 운동 맥락 속에서 태동한 것은 분명하지만, 예수님의 운동은 세례 운동의 단순한 연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더 넓은 지평을 활짝 여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운동을 "예비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의 "후계자"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분명한 다른 점 하나는, 세례자 요한은 금욕주의 전통 위에 서 있었던 반면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례자 요한과 달리 예수님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을 들었다. 마태와 누가가 공히 전하는 이 표현 앞 부분 원문은 다음과 같다. 


ἄνθρωπος φάγος καὶ οἰνοπότης (안드로포스 파고스 카이 오이노페테스, 마11:19, 눅7:34)


개역개정은 이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번역한 반면, 새번역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라고 번역하였다. 개역개정이 더 좋은 번역으로 들린다. 새번역의 번역 "마구 먹어대는 자"는 지나치게 행위 자체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번역으로, 이 단어가 함의하는 바를 놓치게 한다. 

두 단어를 풀어보자. 

  • φάγος(파고스)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먹는 것을 좋아하니 "많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 οἰνοπότης(오이노포테스)는 "와인"이라는 뜻을 지닌 οἶνος(오이노스)에 "마시다"는 뜻을 지닌 πίνω(피노)의 변형 πότης(포테스, 마시는 사람)가 더해진 합성어이다. 그래서 뜻은 "와인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예수님께 이 두 단어가 사용되어, 예수님을 "파고스와 오이노포테스의 사람"이라고 묘사하였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각각 해석하여 적용할 필요가 없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여 만들어내는 뜻은 "심포시온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먹음 + 마심"이 어떻게 심포시온을 뜻하는지는 아래 링크를 통하여 이전에 쓴 심포시온 묵상글을 참고하라.) 예수님께서는 심포시온에 즐겨 참여하셨다는 것을 확실성을 가지고 추측할 수 있다. 이 표현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사용한 비난성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비난을 완전히 거짓 주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심포시온 자리를 통하여 죄인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친구로 만나 먹고 마심으로, 그들을 묶고 있던 죄인의 굴레에서 그들을 해방하시기를 즐겨하셨다. 예수님의 치유나 축귀 사역만큼이나 먹고 마시는 일에 열심을 내셨다. 비난한 사람들의 문제는 전혀 근거없는 평을 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태만 보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참여하신 심포시온의 모습과 예수님처럼 심포시온을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던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가 하나있다. 아테내우스Athenaeus가 쓴 데이프노소피태Deipnosophitae라는 책이다. 주후 3세기에 쓰여진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문화 속 심포지움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라렌시스Larensis라는 호스트가 심포지움을 개최하는데, 손님 중 한 명이었던 Athenaeus가 그 심포지움을 묘사한 책이다. 저자 아테내우스는 호머의 작품과 플라톤의 작품을 포함한 많은 고전 작품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교양인으로,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움을 재현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3세기에 쓰여진 이 책의 가치는 3세기 작품 그 이상이라 하겠다.  


이 책 1권에 심포시온의 분위기가 잘 요약되어 있다. 에피토마터라는 심포지움 게스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묘사되었다. 


라렌시스는 그 시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을 심포지움 게스트로 초대하였다. 그런 게스트들 덕분에 심포지움에서 나눈 그들의 대화는 뭐하나 빠진 것 없는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심포지움의 대화는 예를 들어, 온갖 물고기의 용도와 이름, 모든 종류의 채소와 육류의 용도와 이름,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 저자들(말하자면 지혜로운 사람들),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끝없는 조크, 그리고 심포지움용 술잔이의서로 다른 용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왕들의 재산, 커다란 배들, 그리고 여기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걸 다 말하려면 하루 종일 말해도 부족할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가! 그는 마치 아테네의 오레이터 처럼 멋지게 말의 성찬을 베풀었다. 


한마디로 유쾌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온다. 그동안 고대 지중해 문화의 심포시온을 주로 플라톤이나 플루타르크의 <향연>을 통하여 이해해 왔는데, 데이프노소피스태는 고대 심포시온의 모습을 궁금해 하는 우리에게 생생하고 디테일한 묘사를 통하여 새로운 사료를 제공해 준다. 이 인용문을 통하여 아테내우스 심포시온에 참여한 게스트들의 흥겨움이 느껴진다. 

아테내우스 심포시온의 게스트들은, 각각의 음식이 나올 때 마다 고전 문학작품의 명문장을 따서 그 음식에 대한 헌사를 했다.  음식이 서빙되는 동안 음식과 음식이 중심이 되는 페스티발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입을 다물 틈이 없을 정도로 마신다. 이 점이 플라톤이나 플루타르크의 심포지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중용을 중시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심포시온은 말logos의 향연이 있을 뿐, 먹을 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먹는데 집중하였다. 먹는 행위는 대화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내우스의 심포시온에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과 그런 자리의 유쾌함이 살아 있다.  

그리스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 즉 영양보충 때문에 먹는 음식을 시토스σιτος라고 한다면, 거기 더하여 먹는 즐거움 때문에 먹는 음식을 옾손ὄψον이라고 하고 이런 음식을 먹는 사람을 옾손파고스ὀψο-φάγος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대에는 두 종류의 심포시온, 곧 로고스의 심포시온과 옾손파고스의 심포지움이 있었다고 대별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심포시온은 어땠을까? 말의 성찬만 있었을까? 플라톤이나 플루타르크의 심포시온처럼 로고스의 심포시온이었을까? 아니면 아테내우스의 심포시온처럼 옾손파고스의 심포시온이었을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참여하신 심포시온 분위기가 후자에 가까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기 참여하신 예수님도 유쾌하고 흥겨우셨으리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이, 마냥 진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옾손파고스 심포시온이 보여준 유쾌 쾌활 재미가 넘치길 바란다. 

(심포지움에 대한 앞 선 두 개의 묵상글. "오병이어에 나타난 심포시온에 대한 묵상", "심포시온에 관한 묵상2")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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