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만남.
목사님의 따님과 보살님의 아드님이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 만남은 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시작된 거니까,
인연으로는 참으로 여러가지가 겹친 인연이었다.
* 빙장어른, 결혼식 거부.
양가의 여러가지 점을 감안하여 두 사람은 조심 조심 하였지마는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니 주례를 세우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장인 어른이 되실 목사님은,
주례에 목사님이 서지 않으면 결혼식에 참여치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였으니 걱정이었다.
*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주례.
일반적인 예로는 신랑 측에서 주례를 선정하든지 아니면 양가에서
합의하여 좋은 분을 찾아 부탁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 두 사람을 안타깝게 여긴 주변의
선배들이 사방으로 목사님을 찾으러 다녔다.
그렇게 헤매다가 만나게 된 주례가 " 흰쾨끼리 " 였다.
* 주례의 고민.
사연을 들으면서 흰쾨끼리는 얼른 승락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짐을 덜어 줄 생각으로 쉽게 대답하였지마는 고민이 계속된다.
이제 어린 사람들이 이렇게 이해 할 수 없는 어른 들의 벽에 막혀서
괴로와 하는 게 딱하여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면서 같이 괴로와 하였다.
더군다나 결혼 닷새 전에 인사차 찾아왔던 두 사람을 보니 아주 좋은 얼굴이었다.
그 때 신랑은 돌아가는 자리에서 아무도 듣지 않게 내게 다가와서,
목사님, 결혼식장에서 " 하나님 " 소리가 나오지 않기를 요망합니다.
그렇게 염려하는 신랑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서 보냈다.
* 결혼식 순서의 파격.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다행이도 시간은 느지감치 4시 반이어서 여유가 있었다.
매사에 빡박한 게 싫은 흰쾨끼리는 미리 예식장에 도착하여 둘러보았다.
평소에 내 목소리가 작은 게 염려되어 마이크 볼륨을 높여 놓고 묵상하며 기다린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혼인서약을 할 차례가 되었다.
흰쾨끼리는 혼인서약을 생략하였다.
신부드레스를 입고 , 결혼식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너무나 거리가 먼 일이었다.
성혼 선언도 생략하였다. 그것도 무의미하기는 전과 동이었다.
서로의 맞절이 있은 후에 두 사람을 내려 가서 의자에 앉게 하였다.
긴장하던 두 사람과 양가의 분위기를 풀어 주려고 그리 하였더니,
하객들이 좋아하였다.
* 주례사를 생략하다.
신랑과 신부는 양가의 부모님가까이에 서로 같이 앉아서 듣는다.
그 두 사람에게 무슨 말씀을 들려 주기 보다는 양가의 어른에게와 이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하객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보니, 시경의 첫구절 관저편이 생각됩니다.
관관 저구여, 재하지주로다.
(關 關 雎 鳩 , 在 河 之 洲) : 까악 까악 울어대는 저구새는 물가에서 짝을 찾고요.
요조 숙녀는, 군자호구로다.
(窈 窕 淑 女, 君 子 好 逑) : 어여뿐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공자님이 편집하신 시경의 첫귀절이 이렇게 지혜있는 신부와 잘 생긴
신랑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이 두 분의 만남을 축하하는 듯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언의 맨 끝에 현숙한 여인을 누가 찾아서 얻을 수 있겠느냐?
그 귀중함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만인의 지혜서인 잠언이, 재덕이 겸한 자매를
만나는 걸 사람이 찾아서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늘이 정하여 준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신부는 현숙한 자매입니다.
달성 서 徐씨는 이미 삼한의 갑족이라고 공인 된 집안인데 그 런 귀한
자손으로 태어나고, 어린 나이에 법무사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 서초동 법원 앞에서
법무사 일을 잘 하고 있으며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귀히 여김을 받고 있으니,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기 오신 하객 여러분께서도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이 신부님에게
찾아가셔서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말없는 신랑은, 삭령 최 崔 씨 낭장공파 28대손으로 나서 이렇게 좋은
일꾼으로 신부와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삭령 최씨라고 하면 얼른 알아듣기가 어려운데, 세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영의정을 지낸 최 항 恒 ( 어른을 이렇게 부르는 게 아닌데 )의 자손이 되십니다.
영광스런 자손이지요.
이런 두 분이 살아가는 동안, 양가의 부모님께서 많은 이해를 먼저 해주셔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시부모님 을 향하여 물으니 그렇다고 끄덕 끄덕 하신다. 처부모님도 동감을 표시한다.
논어에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노인들을 편안케 하고; 老 者 安 之
어린 사람들을 가슴에 품어주고; 少 者 懷 之
친구를 믿으며 살리라.; 與 朋 友 信 之
양가의 부모님과 여기 오신 어른께서 이 두 사람이 혹시나 잘못하는 게 있거든
덮어 주시고, 나무라지 마시고 기다려 주시면 두 사람은 더 잘 하리라 생각됩니다.
* 신랑 신부 행진에 앞서.
이제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새 출발하는 행진을 하려고 준비하고 섰다.
모두가 일어서서 축하 하려는 시간이었다.
이 때 즉석에서 한 마디를 하게 되었다.
사람이 일생을 가는 것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를 아니합니다.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고, 성공하는 일 보다는 실패가 더 많은 세상입니다.
바람 부는 날도 있고, 구름 끼는 날도 있으며, 비 오는 날도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 중의 선비요, 그렇게 지혜가 많으신 정약용 선생께서 유배 18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청춘이 다가고육십이 다 됐습니다. 그 때 부터 모든 걸 다 기록하여 정리하고 칠십이 넘어 세상을 떠나실 무렵에 남기신 말씀이 이렇습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할 수가 없으니,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으랴.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 발로 걸어가는 거 같아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 분에게 일생을 맡겨서 잘 걸어가시기를 부탁합니다.
하늘의 아들 최 군자. 하늘이 주신 딸 서 숙녀.
두 분이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신랑 신부 출발.
우리 다 같이 축하하는 박수를 보냅시다.
2009. 5. 23.토요일 16 : 30.
미아 전철역 궁전 웨딩 홀 .
평지교회 목사 .신 흥 식 .
그 후에 들은 얘기는
양가의 부모님이 좋아 하셨고, 그 날 하객 여러 분도 이런 결혼식 처음 본다고 반기셨단다.
그날 문밖에 까지 가득 찬 손님들 , 떠드는 말 하나 없이 , 분위기가 조용하였던 것으로 보아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