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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이타마...

김종수 (,,) 2009-08-07 (금) 13:31 14년전 4842  

도쿄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도시의 바람이 몰려 한 낮의 평균기온이 40도를 웃도는 사이타마(埼玉).

이 사이타마(埼玉)현의 뜨거워진 거리에 한ㆍ日ㆍ在日人들이 86년전에 있었던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선다.

 

1923년에 이 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커다란 지진으로 인해 도쿄의 거리가 갑자기 갈라지고, 건물들은 무너져 내렸으며, 순식간에 온 천지가 불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뜨거운 불길을 피하는 일로 혼비백산이 되어버린 조선인들은 설상가상으로 일본정부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가 들씌어져 '不逞鮮人(조선인을 비하하거나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인물)' 혹은 '일본인의 적(敵)'이 되어 사방팔방에서 조선인을 체포하거나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죽이는 일이 용인되었다. 그렇게 1923년 9월 1일부터 채 10여 일도 안되어 무려 6 천여 명 이상이 학살되어 일본  關東-kantou 지방의 대지와 강이 조선인의 피로 물들여졌다. 

 

   
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되고 있는 조선인들 

 

이 사건은 일본에서조차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누구도 자유로이 발언하기 어려웠으며,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인 조사활동과 연구논문들이 발표되면서 조선인학살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3년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이 사건이 일본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적 범죄였다고 단정하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권고문을 당시 수상인 고이즈미에게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아힘나운동본부는 2007년부터 해마다 일본의 關東-kantou 지방을 찾아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 드러내기 위하여 도쿄도 요코아미쵸 공원과 도쿄도 부흥당, 스미다구의 아라카와 하천변의 봉선화 밭, 치바현의 觀音寺와 학살된 조선인의 유골이 발굴된 나기노하라, 그들을 위령하기 위하여 한국인들이 세운 보화종루(普化鐘樓), 나라시노 조선인 포로수용소, 후나바시 송신소 등을 찾아가 현장연구자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은폐ㆍ왜곡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가고 있다. 

 

2006년 도쿄에서 열렸던 아힘나 평화캠프에서 關東-kantou 조선인학살을 목격했던 야까가야 타에코 (1913년生, 목격당시 10세)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이 진실규명의 노력은 지금까지 네차례의 현장연구와 네차례의 1923 간토조선인제노사이드 국제심포지움을 통해 한국사회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 다섯 번째 현장연구를 하는 곳은 사이다마(埼玉)와 군마(群馬)지역이다. 이 지역들은 여러 關東-kantou 조선인학살사건과 확연히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여타의 지역에서는 대부분 군대와 경찰 혹은 軍과 警 그리고 민간의 自警團이 합동작전으로 조선인을 학살하였지만, 이 사이타마와 군마지역에서는 지진의 피해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일본정부가 흘린 유언비어만을 믿고 흥분한 이 지역의 自警團들이 조선인들을 대량학살하였던 것이다.

 

   
자경단이 습격해 조선인을 끌어내어 학살했던 혼조경찰서

 

이들은 경찰서를 습격하여 조선인을 끌어내어 죽였고, 경찰트럭을 세워 이송되는 조선인을 그 자리에서 죽였으며, 거적 밑에 숨어있던 두 여성도, 심지어는 방적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인노동자들을 습격하여 죽이는 등 조선인제노사이드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사이타마와 군마지역의 학살사건인 것이다.   

이번 현장연구활동에는 한국에서 13명의 민간연구자들과 [關東大震災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ㆍ日ㆍ在日 시민연대]의 연구자들이 참여한다.  이 연구를 위해 안내를 해 주실 분들은 <日朝협회 사이타마현연합회>의 이사이신 다카하시 다카수케선생님과 <역사교육자협의회>의 세키하라 마사히로 선생님, <아시아대학>법학부교수이신 야마기시 시게루 선생님, <사이타마현 조선인 강제연행진상조사단> 일본인측 대표이신 이시다 타다시 선생님,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사무국장이신 이노우에 테루오 선생님 등 여러분들이 이 현장연구에 협력할 것이다.

 

   
학살당한 조선인을 추도하는 추도비에도 일본의 가해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

 

비록 40도를 웃도는 사이타와와 군마의 살인적인 더위이지만 1923년 간토지방에서의 조선인학살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한 민족과 국가를 넘어 1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민간연구자들의  발걸음에 신의 보살핌이 있기를 빌어본다.

 

1923 간토 조선인제노사이드의 진실을 찾아가는 민간연구단 김종수 

관동대진재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한일재일시민연대 한국상임대표

한국기독교장로회 느티나무 교회 목사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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