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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란을 통해서 사순절기의 의미를 보다

운영자 2007-03-14 (수) 21:03 17년전 5723  

 

 

야생란을 통해서 사순절기의 의미를 보다

 

 

3년 여 전에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후배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언제 한번 내려와서 쉬고 가요. 낚시도 하고 야생란도 캐러 갑시다."

대학 시절부터 친했던 후배, 그리고 80년대를 보내면서 함께 '동지가'를 부르며 거리를 배회했던 후배가 보고 싶었다. 최대한 빨리 시간을 내어 후배의 집으로 향했다.

중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모두를 통과해야 하는 거리니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그가 목회하는 교회도 보고 싶고, 오랜만에 낚시도 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야생란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여름휴가를 맞아 그곳에 갔다. 그리고는 야생란 서너 점을 구해왔다. 꽃집에서 파는 것들과 비교해보면 외양은 볼품이 없지만 가장 눈길과 애정이 많이 가는 야생란.

정성스럽게 분갈이를 했다. 그런데 겨울 유난히도 추운 바람에 난이란 난은 전부 얼어 죽었다. 딱 한 점 남은 것이 있는 데 그것이 바로 이름도 모를 야생란이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정성스레 가꾸어주었더니 이젠 제법 잎에 생기가 돈다.

죽은 놈들을 뽑아 여기저기 화단에 흩어 놓았는데 가만히 보니 마른 뿌리 사이로 푸르르 싹을 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살포시 들어보니 역시 죽은 줄 알고 버렸던 야생란이 한 달여 만에 연녹색 잎을 수줍게 내밀고 있다. "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 (사진제공 김민수)  
 
그러나 이제 그 야생란은 나에게 버림을 받았다. 더 이상 온실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그에게 자유를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를 자연에 심어줄 요량으로 가장 좋은 곳을 생각해보았다.

그를 발견했던 곳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떠올렸다. 그를 신문지에 싸서 햇볕이 적당히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소나무 밑에 조심스레 심어주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품고….

이제 당분간 그곳에 자주 가볼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야생란의 생명력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나 같은 소유욕이 지독한 사람을 만나면 또다시 어디론가 옮겨질 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라도 당분간이라도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길 바랐다. 다시 나의 화분에 심는다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김민수)  
 
죽음에서 부활로 나타난 야생란. 사순절기인 이 계절에 야생란의 생명력은 새로는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참 신기하더라. 다 죽었는데 야생란만 산 것도 신기하지만, 죽었는줄 알고 버렸는데 거기서 또 싹이 나왔으니 말이야."
"형, 또 놀러 와요. 다시 한번 갑시다."
"그래, 이제 조금 있으면 시간이 많으니 수난절이 끝나면 우리 산행이나 하세."

우리의 삶도 때로는 이럴 때가 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하고, 희망을 잔뜩 걸었던 곳에서 절망을 보기도 하니 말이다.

봄의 계절을 배반의 계절이라고도 말한다. 예수가 그의 제자 가룟 유다에게, 베드로에게, 민중에게, 하나님에게 배반당했던 계절이다. 그러나 이 배반을 예수는 십자가와 부활로 흡수함으로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어준다.
결코 그를 배반한 제자들이나 민중들을 비판하거나 교정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몸 안에 이 모든 배신을 흡수해버렸다. 그래서 예수는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었다.

   
 
  ▲ (사진제공 김민수)  
 
야생란도 나에게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았으나 죽음을 넘어 생명을 피웠으니 이젠 나의 소유가 아니다.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이 단 며칠만이라도…. 그러나 난 믿는다. 그 정도의 생명력이면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도 야생란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여리고 여려서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받고, 조바심을 내지만 남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오히려 강한 척 한다. 아니, 어쩌면 그런 척 하면서 정말로 강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가진 것은 보잘 것 없지만, 하우스에서 자란 양란 같은 아름다운 꽃이나 향기를 가지지 못했지만 야생란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조그마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자. 그것이 진정 강함이다. 견딜만한 아픔을 주시는 이에게 감사를 드린다.(총회 본부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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