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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면 볼수록 신비한 그대

김민수 (,,) 2007-07-27 (금) 23:10 15년전 4718  
▲ 연하디 연한 이파리와 새순과 줄기
ⓒ 김민수
사무실 뒷편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두른 자그마한 산이 있다. 그곳에서는 새가 울고, 가끔은 다람쥐가 나무를 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이제 막 날개짓을 배우는 새들의 소리가 아침 숲을 채워갔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이라서인지 청미래덩굴이 있었지만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꽃이 없으니 당연히 열매도 없지만 여전히 청미래덩굴은 나뭇가지나 철조망을 타고 햇살을 맘껏 쪼일 수 있는 하늘로 향한다.

그냥 그렇게 무덤덤하게 그와 마주치곤 했다. 그리고 장마 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서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 제 역할을 마친 후 말라버린 것일까, 말림을 당한 것일까?
ⓒ 김민수
덩굴식물의 손이라고 해야 할까? 동글동글 말리면서 다른 식물들이나 물체들을 휘어감으면서 하늘로 향하는 덩굴식물에게 도움을 주는 작은 줄기들이 있다. 오른쪽감기도 있고 왼쪽감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 살아있는 줄기인데 덩굴손들은 비썩 말라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청미래덩굴은 어느 정도 자라면 덩굴손에 의지하지 않고도 다른 것들에 기대어 꼿꼿하게 설 수 있다. 그리고 줄기가 질겨서 잘 꺾어지거나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덩굴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로 가는 수맥을 차단하고, 하늘을 향하는 줄기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물론 상상이고 유추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읽고자 하는 것,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를 묻는 일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 비교-연약할 때는 푸른 줄기, 홀로 설 수 있으니 말라버렸다.
ⓒ 김민수
자, 이제 비교를 해보자.

어릴적에는 쑥쑥 자라면서 주위의 것들을 휘감아 꼿꼿하게 자라도록 도와주고, 바람의 흔들림이나 휘어짐으로 인해 줄기가 꺾어지지 않도록 덩굴손이 큰 역할을 한다. 주위의 사물을 꼭 부여잡음으로 인해 연약한 줄기가 계속 하늘을 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강인해진 줄기만으로도 충분히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 즈음이면 덩굴손은 비썩 말라있다. 원줄기는 물론 푸릇푸릇 살아있다. 전지가위 같은 것을 사용하면 쉽게 잘라지지만 손으로 청미래덩굴을 끊으려고 하면 쉽지 않다. 얼마나 질기게 비썩 마른 덩굴손들이 서로를 부여잡고 있는지 모른다.

스스로 원줄기를 위해서 비썩 말라감을 택한 것인지, 아니면 원줄기가 "이젠 네 역할은 끝났어!"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나는 자연의 삶의 행간을 한 줄 읽는다.

자연은 남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도 더 이상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버릴 수도 있다. 조금 인정도 없고, 쌀쌀맞은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자연의 속성이 그렇다. 그냥 자기대로 존재하는 것 뿐이다.

지난 장마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아픔을 당했다. 자연은 그렇다. 비가 내릴 적에 그 비로 인해 인간들이 어떤 아픔을 당할까 배려하지 않고 그냥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 건드리기만해도 부러질 것 같이 연할 때는 가시도 많다.
ⓒ 김민수
맨 처음 센 바람, 혹은 꺾으려고 하면 '톡!'부러져버릴 것 같은 연약한 줄기일 때는 가시가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제법 단단해졌을 때에는 가시는 사라지고 없다. 가시 역시도 덩굴손마냥 필요할 때 내어놓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청미래덩굴의 삶의 일면을 보면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신비한 그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다소 냉혹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을거야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그들의 삶의 전략이 지혜로워 보인다. 그래서 바라볼수록 신비한 것이 자연이다.

들에 피는 야생초들은 한번 뿌리를 내리면 아무리 곤란한 일이 있어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이 아무리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그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햇살이 부족해서 올해 꽃도 피우지 못한 청미래덩굴, 그러나 주변의 것들을 부여잡고 기어이 소나무 위까지 올라가 여름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청미래덩굴의 삶이 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한 때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덩굴손이나 가시를 다 내어버렸어도 그것이 밉상스럽지 않은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사랑하는데 충실한 자연, 그로 인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나눔의 경지까지 나아가니 인간의 이기적인 자기사랑이나 배신과는 차원이 많이 다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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