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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한기양 목사(총회 평화통일위원장) 강좌 원고

관리자 2014-06-12 (목) 14:14 5년전 1783  
 
평화통일과 교회의 과제
 
한 기 양 (위원장, 총회 평화통일위원회)
 
김정은을 보면서 느끼는 것 몇 가지
 
우선 상상력이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뭔가 대단한 복안을 갖고 치킨게임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지켜볼수록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서 재미를 봤던 수법을 좀 더 심하게 하면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대담한 발상이 없다고 본다. 나이를 생각하면 그런 경륜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연령대를 고려하면 좀 더 참신한 관점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조상들이 써먹었던 수법을 그대로 우려먹을 정도라면 이건 상상력 여부를 떠나 지적으로 무척 게으르다는 반증이다. 상상력은 변화와 발전을 위해 기대하는 덕목이지만, 지적인 성실성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이다. 북측은 앞으로 지금까지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 것 같다.
 
핵개발은 한 미 일 중국 등 어느 나라보다 북측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되기 쉽다. 왜냐하면 핵개발의 성과로 인해 북측이 이른바 비가역적인 조치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젊은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 가운데 하나가 비가역적인 조치, 발을 빼기 어려운 선택을 덜컥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노회하고 경험 많은 지도자라면 무엇보다 이것을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런 지혜와 경륜도 없거니와 주변의 노련한 지원세력마저 멀리하는 것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하다. 이것은 김정은으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권위가 빈약한 상태에서는 주위 노련한 경륜에 귀를 기울일 여유조차 갖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조심스러운 예상이지만, 필자는 김정은이 강경 기조를 오래 유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만한 배포나 소신이 없어 보인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배포는 철저한 계산과 실력에서 나온다. 김정은과 그 주위에는 그런 계산을 할 만한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월 위기설
 
2013년 3월~4월의 긴장상황
보위부의 북 인민들에 대한 여론파악 및 판단
북중관계 속에서의 김정남과 장성택, 김정은의 선택 (김원홍의 역할)
“군량미를 풀다.”(‘고난의 행군’ 시절 김정일도 하지 않았던 조치)
장성택 숙청 이후 급랭한 북중관계 → 남북이산가족상봉의 급진전
2014년 4월 위기설(북 식량사정의 중대 고비)
NGO의 대북 인도적 협력사업에 대한 남북 당국의 비판적 결론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본격화 가능성(원동현 북 민경련 부위원장)
남북정상회담 성사될까?
 
1. 문명적 위기
 
문명적 대전환 시기인 21세기를 맞아 생명세계가 과연 다음 세기까지 지속가능한가에 대한 과제를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학자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지구촌 생명세계’가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예측들을 내놓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그 문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황해와 동해를 연하여 살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15억의 생명조건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이 얼마나 밀집된 지역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인류 최후의 결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가 가장 많은, 그러면서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은 세계 최대 쓰레기발생지역이며, 최대 인구이동지역이며, 최대 에너지소비지역이며, 최악의 환경오염지역이 된다. 곧 지구촌 문제의 핵심지역임을 의미한다. 한국은 바로 황해와 동해의 중심이며, 북경과 동경을 잇는 동북아 대도시 회랑(回廊)지역의 중심이다. 지구촌 문제의 핵심지역의 중심이 바로 한국인 셈이다. 그런 한국의 각 지역에 근거를 두고 실재(實在)하고 있는 한국교회야말로 그 책임이 실로 막중하다 하겠다.
 
이런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갖는 의미는 민족적 차원을 넘어서 세계사적 의미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 통일의 과정과 결과의 내용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비중은 다르겠지만 세계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극단적인 대립을 화해와 상생으로 평화를 이루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이야말로 이 시대 세계평화의 주요한 역사적 과제일 것이다. 또한 이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평화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부합해야 함과 동시에, 세계성과 보편성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교회는 이렇게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제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 또 가장 주요한 선교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점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은, 평화통일과 이른바 ‘북한선교'의 긴박성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나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여러 교파와 교단으로 나누어져 있는 만큼이나 다양하고 분분하다. 즉, 제대로 정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 평화통일이어야만 하는지?' ‘왜, 교회가 앞장서야만 하는지?' ‘통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북측의 주체사상과 과연 화해가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신앙적 실천과 한국교회의 평화통일선교는 어떤 연관이 있으며, 어떻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이런 질문에 대한 보다 성서적이면서도 역사성과 보편성을 지닌, 체계적이고 정교한 신학적 응답이 성실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2. 분단현실의 극복, 절박한 과제
 
세계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 민족의 분단에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이래 이렇게 철저하게 단절된 분단선(155마일의 휴전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따라서 세계평화의 문제는 바로 이 한반도의 분단 극복의 과제와 잇닿아 있다.
한반도의 분단현실, 세계역사의 주역들의 의식 내부에서부터, 또 이들이 만들어낸 불의한 세계상황 내부에서부터 분단된 세계가 안겨준 민족분단의 현실에 직면하여 이 한반도는 의와 평화에의 궤도를 이탈하여 오늘에 와서는 그 궤도의 단서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한반도 상황은 바로 오늘의 주요한 세계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력하다고 자처하면서 세계의 위기를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명적 위기와 민족분단, 핵무기의 위협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논할 수는 없는 우리 한반도의 절박한 분단 상황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적 책임은 ‘지금 여기' 구체적으로 이 민족에 대해서이다. 우리의 절박한 상황이 신앙양심과 슬기와 용기로써 극복되는 방향에로 접어들기만 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훌륭하게 세계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와 평화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분단은 분명히 죄악이요 비극이지만, 이것이 또한 역설적으로 새 역사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여전히 강대국의 눈치나 살피고 그들로 하여금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나라를 향한 새 역사의 계기를 영영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교회의 신학은 ‘지금 여기' 한반도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질문하고 응답받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족과 세계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그래서 새로운 미래와 하나님나라의 의와 평화를 제시할 수 있는 역사를 변혁하는 실천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2-1) 화해의 자리
 
남과 북의 대화하는 만남의 자리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가치'와 ‘주체사상적 가치'가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거기에 기독교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자리는 없는 셈이다. 우리의 자리는 회담장 ‘바깥'이다. 그런데 그 회담장 바깥은 대중이 서성거리는 자리이다. 우리의 할 일은 회담장 안에서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 되었을 때, 백성의 소리를 대변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그 소리를 대변할 곳이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소리와 함께 백성의 소리를 크게 외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단순하지 않는 점은 이렇게 첨예한 대립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은 실은 교회 안에 있다. 한국교회는 너무 허물어져 있다.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표피적인 것까지 복합적으로 단절되어 있는 현 상황에 대처할 교회의 관점들이 너무나 서로 다르다. 그렇다고 우리는 지금 신학과 교리의 다른 점을 조정해서 하나의 교회로 통합할 의지와 신뢰, 시간과 열정도 없어 보인다. 하여 급박한 지금 남과 북의 만남의 현실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안과 밖의 복잡 미묘한 문제를 차분하게 차근차근 풀어가면 좋겠지만, 격동하는 현 상황은 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만 실천적인 동참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이 백성, 이 민족에게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지금 여기에서' 이 민족의 결정적인 관심사에 같이 해야 한다. 이는 성육신의 신앙을 오늘 이 땅에서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 민족의 평화통일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세계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하나님나라운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민족의 비원을 외면하고 한국교회의 신학이 무엇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평화통일을 위한 신학이 하루 속히 모색되어야 한다. 그것은 유물론자들인 북의 주체주의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신학이어야 한다. 교회를 박멸하던 그들, 도저히 한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피차 생각하던 그들과 한 형제가 되는 화해의 신학이어야 한다. 적당히 덮어서 얼버무리는 화해가 아니라 살을 베어내는 ‘회개'와 자기혁신이 요청되는 신앙적 실천이 전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근거를 둔 ‘화해의 신학'이 절실한 것이다.
 
 
3. 한국기독교와 민족분단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화해를 논할 때, 남과 북의 정권이 구체적으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협상해서 합의하여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말하겠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분열과 분단의 중층적인 원인을 찾아 서로 분단된 민족 자체의 진정한 화해가 없이는 통일은 불가능하든지 혹은 일방에 의한 통일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진정한 통합에는 이르지 못하고 또 다른 갈등상황이 전개되고 말 것이다. 때문에 ‘평화통일'만이 최선의 길이다. 때문에 ‘통일의지'도 중요하지만 ‘민족화해'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다.
갈등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아 거기서부터 헝클어진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진정한 ‘민족화해'를 도모하려면 이념적‧사상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기독교와 사회주의 정권과의 충돌과 대결, 오늘에 와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상과의 대립과 갈등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좌표를 읽어야 한다. 실로 70년의 분단 상황은 인류역사 이래 유례를 찾기 힘든 극단적인 대립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을 통해 쌓아올린 분단의 장벽은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민족이질화(異質化)의 걸음을 서로 ‘원수관계'로 지속해 왔다.
이와 같은 민족 내부에 켜켜이 쌓아온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민족화해나 평화통일은 어려울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남과 북의 상반된 구호로서는 ‘반공(反共)'과 ‘반미(反美)'가 바로 그것이다. ‘화해'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사회주의와 기독교, 주체사상과 한국기독교가 대화를 통해 공존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이 가능한 길을 찾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한국기독교는 기독교의 역사적 문제와 마르크스주의 및 주체사상을 철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는 북측으로부터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으며, 남측의 한국기독교에 의해 전개되어야 할 과제이다. 한국기독교가 아무리 마르크스주의를 성서적인 근거에서 재해석한다 해도 북측의 응답이 없이는 민족분단을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못 된다.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사상적 대화는 물론이고, 6자회담 당사국 및 동아시아 기독인들의 구체적 실천적 대화가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한국기독교는 그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이데올로기적인, 또 정치적인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열어놔야 한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기독교는 북측의 주체사상을 새롭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3-1) 민족분단과 갈등의 역사적 뿌리
 
민족분단은 우선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의해서 도발된 결과이다. 한반도의 분단선(38선)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우연하게 설정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배세력들의 교체의 표지였으며, 일본제국주의 침략세력은 이 새 지배세력들의 밑거름이었다. 즉 민족분단의 요인들은 첫째로 일본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자본주의 지배세력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둘째로 미국과 소련의 분단 상황의 일환이며, 셋째로 보수적 근본주의 기독교의 편당과 공산주의자들의 반종교 성향에 의한 좌우 이념대립의 격화가 이념적으로 밑받침되어 왔다. 이 세 가지 분단요인들이 그대로 1920년대 이래의 민족사 자체 내에서 작용하기 시작했으며, 8‧15 이후 민족사의 온갖 비극적 상황을 빚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를 주축으로 하는 세계분단은 서구기독교‧문화‧사회의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이미 오랫동안 예비되어 온 것이며, 이것이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표면화되고 규명된 것이다. 이들의 비판에 의하면, ‘기독교는 특권층의 이데올로기, 예컨대 중세기에는 봉건영주들과 통치자들을 위한, 18세기 이래에는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 부각된 시민부르주아계급을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는 일반 대중, 인민, 혹은 무산자(無産者), 민중으로 하여금 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모순을 올바르게, 사실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이들이 당하고 있는 굶주림과 고통을 ‘신'으로부터 주어진 섭리‧운명인 것처럼 견디도록 하며, 그 대신 피안(彼岸)의 어떤 영적인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담보해주는, 그래서 이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이른바 ‘인민의 아편'이라는 것”이다. “그런 기독교의 ‘신'은 결국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관념이나 환상, 현실 문제를 은폐하고 유지시키는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공산주의의 무신론과 유물론은 바로 그런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반립(反立)으로서 출현한 것이다. 기독교의 ‘신'은 무산자‧민중이 현실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극복하고 역사를 변혁시킬 수 있는 주체적 잠재력을 마비시켜버린다고 해서, 무신론과 유물론은 역사변혁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자유를 제창하는 휴머니즘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역사의 구원자 하나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은 단순히 무신론과 유물론에 대한 반립‧정죄, 즉 반공으로써 되지 않고, 역사의 현실적 죄악과의 투쟁과 극복과 새로운 미래 창출이 아니고는 올바르게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될 수 없다.
서구 문화‧기독교의 선교는 서양 자체 내에서의 문화‧기독교의 문제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으므로 서양의, 또 일본의 지배세력들과 결탁할 수 있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를 몰인식(沒認識)했던 것이다. 따라서 피선교지의 교회들은 서구 기독교로 예속되어버리게 된 것이다. 러시아혁명에 있어서 귀족 기독교와 부르주아 기독교 계층은 반혁명 저항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역사적 기독교‧문화에 있어서 오랫동안 예비되어 온 것이다. 그런 내적 분단‧갈등상황이 중국과 한반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재현되고 말았다.
 
한반도에서는 1920년대 초부터 분단 상황이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초반 기독교계의 민족운동가들이나 청년계층이 사회주의운동의 등장과 민중의식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민족독립이 국제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봉건사회체제 극복과 사회계급 타파를 필요로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민족해방을 위해서는 새로운 민족사회의 건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의식되었다. 기독교계의 이 새로운 의식은, 바로 기독교라는 것 때문에 약(弱)하기는 했으나, 주어진 서구 기독교의 역사적 문제와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이었다. 그러나 이런 민족적 기독교의 잠재력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갈등의 세계적 상황과 압력 아래서 상실되고 말았던 것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시도되었던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의 연합전선 시도들은 그런 민족적 잠재력을 역력히 반증해준다.
이 잠재력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세계의 분단 상황(냉전체제)과 미국의 경제적 지배세력 아래에서 우왕좌왕 분열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의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이 살아있는 한 그 잠재력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 민족분단과 세계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바로 이 민족적 민중적 잠재력은 오늘의 분단 상황에 있어서,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화해의 길'의 가능성을 암시해준다고 본다.
한반도의 식민화에 있어서의 일본의 무기는 서구의 산업기계문명이었으며, 영‧미의 세력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므로 항일민족운동은 동시에 반서양(反西洋)투쟁이어야 했으며, 보수적 위정척사파와 민중의 기반을 가졌던 동학파, 갑오농민전쟁의 “척왜양(斥倭洋)사상”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했다. 그러나 위정척사파도 동학파도 농민군도 결코 제국주의세력들을 막아낼 수는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일본제국주의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서구의 산업기술이 필요했으나, 이 기술이 서구 침략세력의 도구였다는 사실은 한민족의 자주적 서양문물 수용의 길을 차단해버렸던 것이다. 동도서기(東道西器)파는 민족의 자주적 정신, 즉 동도(東道)라는 것을 의식했고 이에 입각해서 서기(西器)를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동도라는 것은 너무도 깊이 종래의 봉건체제와 관련되어 있었으며, 자본주의적 서기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재해석과 변혁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동도라는 것의 이런 재해석의 잠재력도 침략세력들과의 급격한 접촉과 이것들의 위협 아래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3-2) ‘화해의 길, 연합전선’의 좌절
 
기독교선교가 서구 침략세력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추상적으로 영적 구원이니 인류 사랑이니 하면서 서구문화를 대변했으니, 침략세력의 죄악이 은폐되고 미화되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19세기의 ‘서구문화기독교(Kulturchristentum)'는 바로 서구문화의 이상화(化)였고, 기독교선교는 그것을 전제하고 있었으며, 한민족의 정신을 거기에 예속시켜오는 과정에 있어서 이념적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도 잔존해 있었던 반(反)서양 저항의식이 역설적으로 ‘일본적 기독교'의 출현에 함축되어 있었고 이것을 정당화시킨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일본적 기독교는 친(親)서양 기독교에 입각해서 그 선교모국들인 영‧미 타도를 선전하는 기막힌 자가당착에 빠져버렸다. 이러한 혼란이 침략세력들의 책략과 지배관계의 변화에 의해서 약소민족에게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기독교의 맥락 안에서의 한국기독교의 결정적 과오는 친일 기독교이든, 이에 대립한 민족적 기독교이든 서구의 문화기독교의 전제 때문에 어떠한 신학적‧성서적 고민이 없이 ‘반공'에로 응집되어 민족분단의 민족 내적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단 상황을 더욱 굳혀왔고, 결국 세계의 갈등(분단)세력들 사이에서부터 해방되기 어려운 민족상황을 초래해왔다는 사실이다.
항일민족운동의 민족주의진영은 일제의 식민화세력과 결부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민족독립과 해방을 호소하는 국제적 상황에로 나아갔으며, 따라서 서구의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민족주의진영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항일 민족주의진영의 첫 번째 한계는 그로 인해 서구의 자본주의‧제국주의 세력을 극복할 수 없었고, 이 한계성이 항일민족운동 사회주의진영과 대면하면서 표면화되었던 것이다. 항일민족주의진영의 두 번째 한계는 자주적 민족국가와 사회질서, 즉 민족‧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가 전제한 민족‧사회는 서구의 부르주아 시민사회였는데, 일제 아래서 그것을 실현할 수도 없었거니와 이미 그것 자체가 문제화된 갈등상황, 즉 그것에 내재된 사회적 모순을 통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진영은 민족분단과 세계분단의 질곡에서 넘어설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 실패는 세계사적 상황에서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의 새로운 방향이 간취(看取)된다. 즉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의 연합전선의 시도들과 8‧15 직후의 여운형, 김규식, 김구, 그 외의 철저한 민족주의자들의 통일노선이 바로 그러한 새로운 방향을 암시해준다. 그것은 민족주의진영의 두 가지 한계점들을 넘어서는, 그래서 민족분단과 세계갈등 상황을 넘어서는 ‘화해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전선의 시도'들은, 국제적으로 또 민족운동 자체 내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민족‧사회의 새로운 방향, 즉 민족혁명과 사회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8‧15 직후의 활발했던 통일노선은 미군정, 이승만 정권 상황 속에서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독교의 반공세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뒤집어서 지금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화해의 길'을 앞장서서 추구해야 할 책임 또한 한국기독교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8‧15 민족해방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승리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해방이 연합군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보는 견해는 미국에의 민족적 예속을 의미하는 ‘사대주의'적 태도이다. 8‧15 해방은 일단 일제로부터의 해방임에는 틀림없고, 이 점에서 연합군 승리의 결과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해방의 배후에는 항일투쟁의 고난과 희생, 항거와 죽음, 세계평등을 위한 사회주의운동의 역사가 있었으며, 피지배민족들의 이런 역사가 해방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연합군의 승리에 의해 확정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민족은 다시 세계열강들의 지배구조 속으로 굴러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민족적 상황은 바로 분단의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8‧15 직후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남북의 모든 갈등, 암투, 암살, 분열책동, 기독교의 반공투쟁과 기독교 박해, 6‧25 민족상쟁과 희생, 이 모든 비극적 사건들의 진상은 대부분 은폐돼 밝혀지기 어려우나, 어쨌든 세계분단의 지배세력들 아래 있었던 우리 민족의 비참한 갈등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민족과 한국기독교의 우매함과 역사인식의 부재, 신학적 무지함은 당시의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할 능력이 거의 없었다. 남측 이승만 정권은 미국의 지원 아래 친일파와 부르주아 지식인들과 기독교세력에 토대를 두고 성립되었으며, 북측 김일성 정권은 소련의 지원 아래 사회주의운동세력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는데, 이것은 민족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민족적 잠재력'을 완전히 봉쇄해버리고 말았다.
 
3-3) ‘북한선교'의 이데올로기적 경향
 
흔히 ‘북한선교'라는 말을 한국교회에서 무신경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보편성이 결여된, 반공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이 내포된 용어이다. 분단 이후 6‧25전쟁 기간에 처음으로 남측 교회지도자들(주로 월남한 목사들)이 수복된 북측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 북측 출신의 월남한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유엔군과 더불어 북측지역에 들어가 선무활동, 신앙전도와 선교활동에 나섰다. 특히 군종으로 활동한 미국 선교사들과 남측 목사들이 북측지역에 들어가 반공주의적 선교를 전개했다. 기독교인들은 공산당을 쳐부수는 ‘십자군'으로서 북진통일을 꾀하였다. 심지어 월남한 기독교인들이 참전하여 북측지역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특히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휴전반대에 앞장섰고 이승만 정권 때는 북진무력통일을 강하게 주장했다. 휴전 이후 남측 기독교인들은 멸공을 주장하는 십자군적 선교를 마음에 두고, 끊임없이 북측 공산정권의 멸망을 열망했다. 1970년대 이후 이런 십자군적 선교론자들은 방송선교 등을 통해 ‘북한선교'를 말하면서, 소위 “핍박받는 지하교회만이 참된 교회”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1993년부터 보수진영의 한국교회들에서 이른바 ‘북한교회 재건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대북선교론이 대두되었다. 이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북측 정권의 급격한 붕괴를 예견하며 기획되었다. 이런 교회재건의 발상은 남측이 북측을 흡수통일할 것을 전제한 것이었다. 교회재건론자들은 북측에 진입하여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땅(지역)을 구획정리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했다. 이후 현실적인 실행이 불가능하게 되자 중국의 동북3성을 떠도는 탈북자들과 이른바 ‘지하교회'에 대한 물질적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반공주의를 지지하며 북측의 주체체제를 거부하고 북측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북측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북한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과거 참혹한 전쟁의 경험과 증오의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 냉전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상대방을 원수로 여기는 대결적 의식이 담겨지게 된다.
 
‘북한선교'라는 말은 분단을 넘어서려는 과제를 암시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기독교선교의 오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반성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 말은 마치 북측만이 선교를 필요로 라는 피선교지인 것처럼 들리게 하므로, 평화통일을 위한 ‘화해선교'라는 용어가 더 좋다고 여겨진다. 이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들어 쓰시는 한민족 전체이다. 반(反)기독교적인 북측이 어떻게 선교의 주체로 부름 받을 수 있는가? 반기독교적인 북측은 물론 많은 과오를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적 서구의 식민지배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기독교선교 문제를 각성시킨 ‘현실'로서,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선교의 계기가 되었으며, 그러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선교의 지평을 열어주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분단은 남북 쌍방에 의해서 민족의 엄청난 참극, 세계분단(냉전체제)의 속죄양의 유혈을 사무치게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의의는 여기서 덮어버리거나 멈춰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계의 분단을 넘어서는 주체로서의 한민족과 화해와 평화‘선교'의 새로운 계기로서, 즉 “역사 종말론적 하나님나라”를 전망하는 적극적인 방향에로 재해석되어야만, 한민족과 기독교는 지배세력들의 이념적 우상을 무장 해제시키고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도록 역전시키는 의의를 획득하게 된다. 이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니, 한민족 전체가 그의 복음을 새롭게 들어야 하며, 북측이 피선교지라면, 남측도 피선교지요, 하나님의 선교에 상응하는 한민족 전체의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선교이다. 북측의 우상화된 주체사상은 극복되어야 하지만, 남측의 자본주의의 맘몬이라는 우상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분단된 양편을 다 초월하며, 이 때문에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궁극적인 화해의 가능성이며, 교회로 하여금 남과 북 사이에 설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다.
 
 
4. 한국교회의 역할과 과제
 
4-1) 한국교회가 지향해온 통일과 선교
 
그동안 남측사회에서 진행되어온 통일운동은 정부도 그러하지만 평화통일론에 근거하고 있다. 평화통일론의 대전제는 교류와 협력관계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연착륙 방식의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어가자는 것이고, 북측이 주장해오는 연방제통일론도 실제로는 평화적인 방법과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을 이룩하자는 평화통일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평화'적 방법이라고 할 때 어느 일방의 포기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며, ‘연방'적 방법이라고 할 때 통일의 대안은 될지언정 통일 그 자체는 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적화(赤化)' 포기를 확약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유의할 것은 한반도 통일논의에 있어서 미국은 막대한 정보를 독점한고 있는 상황에서 남측을 배제하고 북측과 협상할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남측은 북측과 미국 모두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북측사회의 불안요인이다. 심각한 경제난과 지도체제와 관련된 정치 불안으로 인한 변수는 그 파장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북측의 산업구조 자체의 변혁과 북측체제의 문제여서 근본적이며 장기적인 접근과제일 것이다. 그런데 남측은 오히려 대북 인도적 지원보다는 북측의 조기붕괴를 바라는 극우세력의 영향력이 강화되어 대북 식량지원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는 ‘연평도포격사태'와 아울러 대북지원 식량의 소위 ‘군량미로 전용될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남측 국민들에게 대북지원을 대적(對敵)지원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는 것이다.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교회는 강력한 보수화 경향과 북측에 대한 물량지원우선 입장이 맞물려서 통일도 선교도 자칫 혼돈에 빠질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통일 이후의 대비 또는 북측의 붕괴 이후를 대비하는 준비로서 보수적인 교회들이 지향하는 것은 교파중심주의와 실지회복, 또는 교회지상주의에 따른 선교사 양성과 교회설립자금 확보 등을 통한 선교적 선점이다. 이런 상황은 앞서 언급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창출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다.
여기서 한국교회가 감당해가야 할 선교적 과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민족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민족공동체로서의 가치를 이루어가며 생명과 정의와 평화에 기초를 둔 하나님나라를 향한 전망 속에서 화해와 통일의 역사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이런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한국교회는 민족적 합의와 함께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적인 합의에 기초를 둔 통일운동을 이끌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교회와 민중의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는 세계교회와의 연대가 절실하고, 나아가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의 관계도 더욱 두터워져야 할 것이다.
 
4-2) 하나님나라백성공동체로서의 죄책고백과 회개
 
먼저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민족분단과 관련하여 저질렀던 모든 죄과(罪科)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우리의 모든 민족적 삶에서 지은 죄―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88년 2월29일 88선언에서 민족분단과 그 고착화에 대한 죄책을 시인하고 고백했다. 이것은 한국교회로서는 최초의 공식적인 죄책고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분단을 정당화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다'는 것,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했다'는 것, ‘민족의 자존심을 포기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상실하는 반민족적 죄악(롬9:3)을 범해 온' 것 등 한국교회는 민족분단과 관련하여 저질렀던 죄책을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특히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요13:14~15,4:20~21)를 범했다'는 것도 고백했다. 이 죄책고백은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한국교회는 역사적 현실에서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 있는 사회적 삶을 사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고백해야 한다. 특히 사회주의체제 아래 살게 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 새로운 민족공동체 건설에 긍정적인 참여와 공헌에 실패한 것, 북측교회와 교인들과 북측사회를 버리거나 등지고 월남한 것 등을 회개해야 한다. 민족공동체를 위해 교회가 감당했어야 할 선교의 사명, 민족 간의 화해와 평화의 증진이란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유기했으며 그 대신 반공에만 열을 올렸던 일 등에 대한 구체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북측교회와 하나 됨을 유지하지 못한 것, 오히려 북측교회를 한국교회의 일부임을 부인하고 남측교회 단독으로 총회를 개최함으로써 민족분단 이전에 교회의 분단을 저질렀던 죄, 정치적 문제를 비롯한 민족적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또 복음을 자본주의체제 안에 유폐시키고 독점하려는 과오를 범했음을 고백해야 한다. 남측의 기독교인들은 마치 복음을 독점한 듯이 착각하고 북측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측 동포들을 사실상 복음에서 제외시키는 일을 감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의 전진을 가로막는 죄를 지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역할을 하려는 교만한 생각이며 행동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세계변혁의 사명을 저버리고 현존 질서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체제옹호자가 되고 현상 질서에 안주해왔다.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인, 반민족적인 불의한 독재정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을 회개해야 한다. 죄책고백은 회개를 수반해야 한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에 대한 시인과 감정적인 뉘우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죄의 행실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뒤따라야 한다.
분단의 신학을 버리는 것, 통일과 반대되는 모든 행동을 버리는 것, 반북적인 모든 언행을 버리는 것 등을 포함해야 한다. 소극적인 죄와 적극적인 죄, 의식적인 죄와 무의식적인 죄, 말해야 하고 실천해야 할 것들을 말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았던 죄와, 말하지 말아야 하고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행했던 죄 역시 모두 회개해야 한다. 총체적인 회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4-3) 이데올로기의 포로에서 해방
 
기독교는 마르크스나 공산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보다 천편일률적으로 변명,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고 더 나아가 적대감을 가지고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대항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반대한 기독교는 어떤 기독교였느냐고?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비판한 마르크스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당시 서구교회였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어찌 보면 교회에 대해 교회 밖에서 비판한 사회적 예언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기독교 비판의 근거와 동기, 또 비판의 내용 역시 아모스와 미가 등 예언자들이나 예수가 비판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비판은 기독교가 등한시했던 민중에 대한 사랑의 실천, 사회정의, 인도주의, 사회‧세계변혁적 예언자적 사명을 등한시한 데 대해 각성시켜 주었다. 부패한 기독교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 걸머지고 있는 사명에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종교개혁이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일으켰듯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운동은 교회의 사회적 선교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킨 공로가 컸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오로지 자체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 집단이 될 때, 지배체제와 동맹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지배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적 이데올로기나 체제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반공 이데올로기는 기독교적인 친근성이 없다. 이데올로기적 회심은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새로운 태도와 입장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맹목적으로 매여 있었던 반공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란 예수의 복음과 교훈에서 아주 멀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들과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기독교가 북측의 주체사상과 대화하려면 남측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자본주의와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포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4-4) 신뢰관계의 회복
 
주체사상이란 말만 들어도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기독교인들이 남측에는 너무나 많다. 반면 기독교란 말만 들어도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북측에 또한 많을 것이다. 이런 알레르기적 거부반응은 지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서로 간의 철저한 적대감과 불신의 표현일 뿐이다. 물론 이런 적대감과 불신은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남측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체사상은, 그리고 북측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에게 십자가의 도(道)는 다 같이 ‘거리낌'이 되고, ‘어리석은 것' 또는 ‘미련한 것'(고전1:18,23)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만남이나 대화라는 말에 대해 쌍방 모두 크게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아마도 한국기독교에게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난 분단 반세기가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줄곧 ‘반공교회'로 있었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그리스도인다운 태도인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북측―북측 정권, 체제와 동포–에 대한 불신은 매우 뿌리 깊다. ‘88선언'에서도 표현했듯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북한 공산정권에 대하여 깊고 오랜 불신과 뼈에 사무치는 적개심을 그대로 지닌 채 반공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불신적‧배타적 태도는 매우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독선적 인간성과 저급한 도덕적 수준에서 비롯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기독교와 대화를 위해 손을 내미는데 교회가 거절한다는 것은 사랑과 화해와 평화를 내세우는 기독교공동체로는 ‘가장 비기독교적(m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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