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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살림운동]하나님, 죽어가는 생명의 몸부림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열번째 날.

관리자 2014-07-01 (화) 10:05 9년전 1744  

오늘 광화문에서는 김창규목사님과 함께합니다. ^^*
땡볕 아래, 정말 쉽지 않은 한시간하고 삼십분이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당!!

**목사님의 단상 함께합니다.^^*



<광화문 일인시위>
광화문 네거리 일인시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청주를 떠났다. 날씨가 좋다. 집회시위를 많이 해 본 나이지만 서울에서 일인시위는 처음이다. 19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 응원하기 위해 한신대학 선배들과 동아일보사옥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속으로 혼자 웃었다.
그 후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제적 당하고 선교교육원에서 민중신학을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에 참여하는 목사가 되었다.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억울한 일에 40여년을 보냈다.
4대강 싸움에서 두 번 양수리 배수탑에 올라 펑펑 함박눈을 맞던 기억과 댐 반대를 위해 함께 싸웠던 지난 시간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제주 강정,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밀양송전탑 반대, 유성가업, 쌍용자동차 사태 노숙과 투쟁으로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일인시위였다. 그러다보니 환갑의 나이를 맞이 하였다.
광화문 네거리는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투쟁때 노숙을 여러번 했던 곳에 내가 서 있다. 아, 아, 나는 여기 왜 혼자 아닌 민중들과 서 있는가. 목사이기 때문이다. 1시간30분 짧은 시간 나의 다리는 천근만근의 무게로 유신공주 권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내성천과 영주댐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셀러리낸들 그들과 1987년 6월10일 항쟁을 촉발시켰는데 그 때도 내가 여기 있었는데 오늘도 여기에 서있다. 나는 바보다, 서 있어야 할 교회 강단보다 거리에서 너무 많이 서 있다. 일인시위를 마치고 발을 떼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겨우 발을 옮겼다.
나는 시위 중에 천사를 만났다. 물 한병을 내게 주었다. 마태25장 최후의 심판장이 떠올랐다. 그가 예수님 아니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인 것이다. 일인시위를 마치고 잡에 오면서 그 자리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내 옆에 세월호 304명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안시위를 하던 젊은이들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너무 고맙고 눈물이 났다. 청주에 내려와 7월의 첫날을 맞이한다. 도와주신 이현아 전도사남께 감사드린다. 또 불러주면 또 하겠다.

일인시위 마친 청주의 바보 목사가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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