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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비극 [마 12:25] - 강흥수 목사

비전2015부 (기타,,목사) 2014-03-17 (월) 11:50 5년전 2219  
[회보 2] 19578.9월호
 
분열의 비극
총회 부회장 강흥수 목사
 
스시로 분쟁하는나라마다 멸망할 것이오, 스시로 분쟁하는 동리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12:25).
 
서로 분쟁하면 망한다는 진리는 이같이 말씀하신 것뿐아니라 바울도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하리라”(5:15) 하였다. 또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고 현시롤 보아서도, 잘 아는 진리이다. 불행하게도 선조(宣祖) 초년에 두 사람의 개인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동인 서인의 분쟁은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의 분쟁으로 확대되어 三四백년 내려오며 수많은 사화(士禍)를 빚어내여 수백 수천의 무고한 의인의 원통한 피를 이 땅 위에 흘리고 필경은 이조망국의 비극으로 결말을 지었으며 이 민족적 분열 심리는 해방후 국토양단이란 눈물겨운 상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날이갈수록 분열상은 더 심각하여 불교의 대처승 비구승의 대립, 유교의 주류파 권력파의 대립, 기독교에는 감리교의 총리원과 호헌파의 대립, 장로교의 예장 기장 고신파의 대립이 서로 얼키어 소위 신성과 도의를 고조하는 종교계의 내막이 이러하니 이 나라의 국민정신과 민족사기가 어떻게 되어있는가 하는 것을 가히 짐작할 일이며 국가와 민족의 전도(前途)가 어찌될 것인가 하는 것을 전망할 때 뜻있는 자의 장태식을 금할 바이 없는 것이다.
 
분쟁은 육신에 속한 일이다. (고전 3:3)
 
고린도교회의 파쟁에 대하여 바울은 저들이 아직까지 성신에 속한 자가 못되고 육신에 속한 자로 사람을 중심하고 육체적인 생각으로 서로 시기하고 분쟁한다 하였다. 그 신앙이 아직 젖을 먹는 유치한 정도의 신자로 평가하였다. 저 비록 하나님의 뜻을행한다고 하고 성경을 사수한다 외쳐도 분쟁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냄새는 하나님의 받을 수 없는 일이다. 에베소 교회는 교리를 옹호하고 이단을 배격하는 점은 좋았으나 첫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등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책망하였다. (2:5) 하나님의 뜻은 저들로 하여금 다 - “하나이 되게 하사...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 된 것 같이 하소서”(17;21~22)하는 일이다.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분쟁의 파동을 일으키는 자 누구나 다 그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호삼으나 그 마음은 육신에 속한 불순한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있는 것이다.
 
2. 분쟁은 많은 죄를 파생(派生)한다.
 
유명한 설교가 죠엣트박사는 죄의 성질을 Disruption(분열), Corruption(부패), Eruption(폭발)으로 표명하였다. 당파와 분쟁이 생기면 마귀가 곧 그에게 침투하여 여러 가지 죄악을 만들어 낸다. 당파심리를 가진 자는 정당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내편이면 그른 것도 옳게 주장하고, 상대편이면 옳은 것도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이 당파적 군중심리의 특징이다. 비록 인격있고 신앙있는 사람이라도 당파분위기의 탈을 벗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인은 설 수 없고 그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당파 있는 곳에는 시기와 질투의 불이 붙고, 모략과 허위의 그물이 벌어진다. 상대편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범죄하되 이를 하나님의 뜻과 정의의 이름을 빌어 그 양심의 입을 틀어막고 담대히 죄를 감행하는 마귀의 관용 수단을 우리는 잘보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는 벌써 혜은은 사라졌고 신앙은 죽었으며 사랑은 자취를 감추고 찬바람이 부는 마귀의 일터로 화하여 가는 것이다. 당파 심리의 뒤에는 남을 배격하는 마음과 자기를 높이는 독선적인 생각과 의견을 달리하는 자를 원수와 같이 미워하는 죄악이 그 마음을 점령하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선 자기의 불완전한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겸손이 그 마음에서 떠날 때는 독선적인 교만에 사로잡히기 쉬운 것이다. ‘칼빈은 성경해석이 자기와 다르다 하여 셀베토스를 사형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였고, ‘멜랑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이라고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루터아나빱티스트를 극도로 미워하여 이를 잔인하게 압제하는 귀족에게 편들었고, ‘멜랑톤은 유아세례와 그 외 몇가지 견해를 자기와 달리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신자를 사형하는 데 동의하였다. 이 프로테스탄트의 주도인물들을 로마 법정의 전횡에 분개하여 혁명하였으나 자기들이 그 발자취를 재답습하였고, 저들은 성경의 신성과 신앙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궐기하였으나 그 성경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결박하는 도구로 삼았다. 이같은 태도와 심법(心法)은 그 당대에 벌써 루터파와 칼빈파라는 피차 용납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루터파가 사는 동리에는 칼빈파가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이 전퉁과 유습은 오늘날에도 내려오면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교리나, 신학이나, 형식을 보시지 않고 그 마음을 보신다. 마치 박하와 회행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릴 줄 알되 가장 중한 의와 신은 행치 않는다(2323) 함이 그것이 아닌가?
 
3. 당파분열은 생명줄을 끊는다.
 
예수는 원내(줄기), 신자는 가지다. (15:5). 이것은 예수와 신자와의 생명적 연결 영적교류(靈的交流)를 의미하는 말이다. 가지가 원대에서 떨어지면 마른다. 합하는 데 삶이 있고, 분열하는 데 죽음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뤄주시고 두 세사람이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면 내가 그 가운데 같이 하겠다(18:18~20) 하셨다. 백이십 문도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한 결과(1:14) 오순절에 성신이 내렸다(2:1~3). 고넬료 가정은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였다(10:4). 사랑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화평한 곳에 하나님이 계시며, 일치한 마음 위에 하나님이 감응하신다. 만약 설교는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하여, 기도는 상대방을 저주하기 위하여, 찬송은 싸움의 기세를 돋우기 위하여 한다면 이는 예배가 아니오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요, 모독이다. 교인과 교인 사이 교회와 교회 사이에 시기와 질투, 모략과 중상의 화살이 오고 가고 마음마다 칼을 품고 눈에 독기와 저주를 가지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을 것인가? “내가 포도나무를 심고 즙짜는 틀을 두고 망대를 세워 포도 열기를 기다렸더니 포도는 열지 않고 머루가 열렸도다... 이제는 울타리를 헐어 불사르고 담장을 헐어 임의로 밟게 하고 이 땅을 황무케 하리라.(5:2~6)고 한 말씀이 우리에게 응할가 근심한다.
우리는 이미 큰 징계를 받았거니와 다시 더 큰 채찍이 임할까 두려운 것이다.
 
4.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망한다 (5:15)
 
고구려도 당시 동방의 대강국이었다.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물리치고 당나라의 40만 대군을 물리쳐서 그 국위를 크게 떨쳤던 것이다.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은 그 임종때 세 아들을 불러놓고 자기 죽은 후에 삼형제가 서로 단결하여 이 나라를 잘 붙들고 나갈 것을 부탁하고 죽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죽은 후 아들 삼형제는 서로 분쟁하여 필경은 당나라와 신라연합군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분쟁이 올 때 사람의 마음속에 쌓아논 아름다운 신앙의 전당은 무너지고 마귀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이 열려진다. 분쟁이 있는 곳에 하나님과의 생명줄은 끊어지고 사탄이 역사하기에 합당한 분위기는 조성된다. 합동이 올 때 은혜의 줄은 이어지고 사탄의 길은 막힌다. 하나가 될 때 사람의 마음에 새생명이 움트고 천국의 기쁨이 회복된다. 피가 엉키면 고름이 되고 물이 엉키면 버러지가 나는 것 같이 성도와 성도의 교통, 교회와 교회의 교제가 막히고 사이에 담을 쌓으면 거기에 여러 가지 죄악이 발생하고 폭발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사는길도 합동에 있고 민족의 사는 길도 합동에 있다. 교파연합운동은 현대의 반가운 세계적 조류요, ‘에큐메니칼운동은 20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크신 경륜의 발족인 것이다. 전세계의 교회가 이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 나의 중심의 기원(祈願)이다.
 
필자 . 서울 동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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