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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창 6:9] - 권영진 목사

비전2015부 (기타,,목사) 2014-03-28 (금) 10:12 6년전 3769  
회보 2권 7,8호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창세기 6장 9절
권영진 목사

서론 : 신앙생활에 있어서 「선」j이란 보통 도덕적 의미에서 말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생활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이는 윤리학적인 대상은 되지만 그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니어서 어디까지나 신학적 범주에 속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것은 종교생활을 의미하며 종교생활이란 종교라는 Religio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이므로 이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요, 그와 더불어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저는 의인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더라」하였습니다. 이는 노아의 신앙생활을 평하여 한 말씀입니다. 그 표현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소박하고 단순한 옛날 시인의 표현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 말의 뜻에는 더욱 의미심장한 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 가장도 없고 아무 허식도 없는 표현방법으로써 하등 사색의 번거로움이 없고 인생의 지정에서 나오는 종교적 술어입니다. 종교생활이란 보통 생활한다는 것이 아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고대 족장들은 사회생활에서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였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생활에서 그들의 경건한 생활의 특징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뜻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과 동행한다 함은 「신인간에 인격적 교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제일 원리가 있다. 혹은 우주에 어떤 잠재세력이 있다 하는 따위로는 신앙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격적 실재자이어서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그와 함께 교제하는데서 종교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인격자가 아니라면 종교적이고 영적인 교제가 불가능할 것이며 영적 교제가 없는 곳에는 인격적 고상한 종교가 성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교와 같이 자연력을 신화한대도 그것은 결국 인격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인격적 교제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인격적 교제가 없는 곳에는 신령한 종교 생활이 불가능하며 혹종의 종교가 형성된다고 하더래도 이는 참된 의미에서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들의 미망(迷妄)에 불과합니다. 참된 종교생활은 인격적 실재의 신과의 인격적 교제를 가지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생활 전체가 그와 더불어 같이 사는 생활이요, 그의 간섭과 지도아래 사는 생활입니다. 이는 신의 인격적 간섭과 신의 시범적 지도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그와 함께 살고, 죽어도 그와 더불어 죽는 생활 사사건건이 모두 그의 간섭 아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간섭은 폭군의 명령이 아니요 어디까지나 진실하시고 사랑이신 친구로서의 간섭이며 반려자로서의 간섭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진정 하나님의 간섭하여 주시는 그 은총아래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 욕망과 자기 주장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생활이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란 「하나님과 발을 맞추어 그와 조화된 생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발을 맞춤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활인지요. 하나님의 발걸음, 즉 그 창조적 역사에는 반드시 일정한 율(리듬)이 있습니다. 자연에는 자연율이 있고, 도덕에는 도덕율이 있으며, 음악에는 음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발걸음에 리듬을 맞추어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표현된 진, 선, 미 그 속에는 반드시 그 율이 있어서 그 리듬에 맞지 않으면 진(眞)이 될수 없고, 선(善)일 수도 없으며 미(美)가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근대 예술 철학에서 「미」를 정의하기를 「미는 조화라」하였습니다. 조화가 없는 곳에는 「미」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이란 사실과 부합할 때 「참」일 수 있으며, 「선」 그것도 본래의 도덕율에 부합하고 그와 조화될 때 「선」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천지의 이치에 어긋나서 참이 없고 「선」이 없고 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리듬에 맞추어 살아갈 때 우주의 음악은 조화가 되어 화평한 사회가 될 것이며 아름다운 가정이 이룰 것입니다. 이 조화된 음악이 자기에게 들려올 때 마음에 기쁨이 솟아 오르며 마음의 강폭이 풀어지는 또한 아름다운 덕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 순종하는 생활이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생활이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의 영웅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가졌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어떠한지요? 하나님의 율례에 합당하게 삶으로 우주가 조화된 음악으로 연주되어 가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생활을 영위하여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생활」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하셨으며, 「보내신 자의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별들은 꿀을 치는 것이 그들의 일이요 새들은 그 집을 짓는 것이 그들의 일이며, 짐승들은 그 먹을 것을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이란 다른 동물들과 같지 않은 하나의 역사적 존재자로서의 활동입니다. 자유의지가 부여되고 그 결단을 가질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그 계획에 참가하여 일할 수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할 때에 노동의 의의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뜻이 자기에게 이해될 때 그 노동의 한 고역에서 벗어나서 즐거운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하는 일이 그 사업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고 그 신앙과 맺어있어서 그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바가 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우리는 노동이 얼마나 수고로우며 또한 얼마나 힘든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자기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계셔서 축복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와 함께 일한다고 믿을 때 거기에는 위로와 큰 능력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에 얼마나 큰 장애물과 역경이 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라면 내가 못한다고 징계할 수도 없고 아니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는 일에 사명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로써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

신앙이란 사회생활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인간의 전생활의 영역에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간섭하여 주시는 은총 아래 그 뜻을 순종하고 그 일을 위하여 전 생애를 드린 성별된 생활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어떠한 일에만 혹은 어느 곳에만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나 깨나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엇을 하던지 범사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사나 죽으나 그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떠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삶이 참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떠날 수 없는 하나님의 권속이오, 그의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가져지는 인격적 교제, 이 신령한 교제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오, 하나님의 율례에 순종하여 그 리듬에 맞추어 사는 생활, 그리고 그와 함께 일하는 생활이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필자 : 대전노회장]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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