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title_s6_5_2.gif
 

감사절과 퓨리탄 정신 [골 2:6~7] - 정용철 목사

비전2015부 (기타,,목사) 2014-04-23 (수) 19:52 6년전 3309  

2권 제11

 

감사절과 퓨리탄 정신

골로새서 26~7

 

정용철 목사(서울 신암교회 목사)

 

오늘 우리는 해마다 마지하는 일이지만 1958년도 감사절을 맞이하였다. 감사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은 얼마든지 있지만 감사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현대인의 심정이 우리 주위에서 노래를 빼앗아 갔고 웃음을 쫓아 버려서 세익스피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의 인심은 북풍과 얼음장을 방불케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이런 때 우리는 하나의 연중 행사로 감사없는 감사절을 지킬 우려가 없지 않다.

 

이 시간 먼저 우리 마음 속에 오늘은 감사절인데 감사연보는 해야겠고, 내 체면에 적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많이 낼 도리도 없고……하는 무거운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시면 그 마음을 깨끗이 내어 버리시기를 바란다. 물질이란 것은 우리 마음과 정성의 표시가 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물질이 곧 정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많은 물질을 연보했다. 그러나 그 물질 속에 그들의 마음, 정성은 깃들어 있지 아니했다. 그 대신 그 물질 속에는 체면, 보아라! 하는 영예심 그 다음에 오는 이득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절하신다.

 

이제 우리는 찌뿌듯한 생각, 무거운 마음, 불유쾌한 마음을 내버리고 은혜를 감격하는, 은총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를 드리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나아드의 향유를 드린 여인과 엽전 두 푼을 드린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그들이 드린 물질이 많아서거나 값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은혜를 못 잊는 생생한 감격, 붉은 심장이 아름다워서 칭찬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먼저 우리는 헌물(獻物)에 대한 신경을 잠깐 쉬시고 헌심(獻心)에 대한 준비를 갖추시기 바란다.

 

우리가 감사절을 지키려고 할 때 맨 처음 감사절을 지킨 퓨리탄들이 가졌던 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 정신을 추리면 첫째 신앙, 둘째 노동, 셋째 감사라고 할 수 있다.

 

1. 신앙 제일주의. 퓨리탄들을 생각하면 그 일부에 우리가 긍정 못할 점도 없지 않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심만은 우리가 받아야 하고 만대에 빛날 아름다운 것이었다. 당시 영국의 정치는 비록 왕정정치이기는 하나 기반이 서고, 질서가 잡힌 정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경제상태도 국민 전체가 쓸만한 것을 가졌고, 또한 그런 경제질서가 잡혀 있었다. 안정된 경제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정치, 그것은 육신을 쉬는 데나 육신을 배불리는데는 그 이상 더 요구될 것이 없다. 그러나 왜 퓨리탄들은 이런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가? 그들에게는 정치 이상에, 경제 이상에 절실한 내적요구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바르게, 그리고 마음껏 가지고 싶은 욕망이 그것이었다. 영국에서는 그것이 자유롭게 되지 않으니 신앙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 안정된 정치와 경제사회를 떠나 황무지를 향해 갔던 것이다. 동경의 땅, 아메리카가 처음부터 배부르고, 처음부터 안식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했다. 야만에 가까운 인디언들의 위협을 받아야 하고, 가시 넝쿨과 풀뿌리를 헤치노라고 피부를 상해야 하고, 배가 고파야 한다는 것도 각오했다. 다만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을 올바로 가지기 위해서는 가야만 했으므로 대서양의 풍파를 모험했던 것이다.

 

내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까지는 쉴 곳을 찾을 길 없습니다라고 부르짖는 어거스틴의 고백이 아닐지라도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사는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지 못하던 그 생애를 총 결산하는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과거의 생애의 허무와 실패를 탄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좋은 것을 다 같이 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만족하게 하지 못했다. 신앙으로 살자. 신앙으로 살려 순결한 신앙으로 살자.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이 맑음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맑은 양심과 신앙으로 살자. 이것만이 우리 생애를 아름답게 하며 값놓아 줄 것이다.” 신앙의 자유천지를 향해 메이플라워에 몸을 실은 청교도들의 이런 심정은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첫째 보배인 것이다. ()는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2. 노동을 즐기는 마음

 

생소한 땅에 상륙한 퓨리탄들은 막막한 대지 울울한 장글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고생하였다. 그들은 노동하였다. “막연한 이역에서 먹을 것이 없으니 입을 옷이 없으니 앉아서 죽는 날을 기다리자하는 심정은 추호도 없었다. “일하자! 하나님이 내게 주신 힘이 진할 때까지 일하자.” 그들은 땀을 흘리며 일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참이어서 노동하는 그들에게 먹을 것이 생기고 입을 것이 생겼다. 씨를 뿌려 메고 가꾸어 양식을 장만하고 창으로 활로 사냥을 해서 짐승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또 지혜를 연마해서 식물과 동물의 섬유를 취하여 직조를 했다. 상륙한지 일년 만에 자비량을 얻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쓸 물건은 남아 나갔다. 어른부터 어린애까지 노유를 불고하고 개로(皆勞)의 정신, 개척의 정신, 파종의 정신, 건설의 정신을 가지고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일했으니 이것이 둘째 퓨리탄 정신이다.

 

나는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도와줄 것도 없습니다. 나는 드릴 것도 없구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하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직업의 양불양은 있을 수 있으나 노동은 신성하고 또한 노동은 결코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다. 노동하는 사람에게 먹을 것이 있고 드릴 것이 있고 도와줄 것이 있고 감사할 것이 있다.

 

크리스챤은 일해야 한다. 바울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했지만 임하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것이 법칙이다. 가만이 앉아서 누가 가져다 주는 것으로 배불리려 한다던지 때를 건너면서 일하기 싫어 방 구들만 지키는 사람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하신 주님의 정신이 크리스챤의 정신이다. 충분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노동하지 않고 남이 벌어놓 것을 의뢰하는 자에게는 인생의 아름다움도 기쁨도 없는 것이다.

 

3. 감사할 줄 아는 마음

 

퓨리탄들은 신앙하고 노동하고 그리고 감사했다. 아니 신앙했기 때문에, 신앙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었고 노동했기 때문에 감사할 것이 있었다고 해도 좋다. 신앙이 없고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감사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생명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다. 대서양 푸른 바다에 풍랑으로 장사지낼 생명을 살려서 신대륙에 생을 이룩할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감사했다. 그들은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을 감사했고, 부지런히 일한 후에 맺은 열매를 들고 감사했다.

 

바울 선생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런즉 심은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신 하나님뿐이로다”(고전 3:6-7)한 말과 같이 퓨리탄들은 심고 가꾸는 노동은 했지만 자라나게 하고 열매맺게 하신 이는 하나님인 것을 믿고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특히 역경에서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들의 특색이다. 산데서 감사하고, 얻은 데서 감사하고, 그리고 역경에서 감사한 것이 셋째 퓨리탄 정신이었다.

 

오토만(I. Oatman) 목사가 지은 노래

 

모든 세상 풍파 너를 이기어

낙심하는 생각 네게 이를 때

주의 내려 주신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복과 은혜를 세어 보아야 한다. 밤낮 불행하다고만 생각하고 밤낮 궁상만 떠는 사람에게는 노래와 감사가 없다. 근심스러운 환경 속에서 복을 세어보며 노래를 부르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모든 세상 근심걱정 당하여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 보면

두렴 없이 항상 찬송 하겠네

크신 복을 세어 보아라

너의 복을 네가 알리라

 

감사는 신앙의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감사하는 맘이 없으면 참 신앙이 있을 수 없다. 참 신앙이 있는 곳에 감사가 넘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감사의 마음이라고 누가 말했거니와 이해가 있고 열심히 있고 활동이 있어도 감사없는 곳에 산, 따뜻한 신앙이 없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139:14). 감사한 마음은 은혜 받는 그릇이다. 감사가 없는 마음에는 은혜가 임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와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믿음으로 살자. 노동하며 살자. 감사하고 살자.”

 

이것이 퓨리탄의 정신이었다면 그 신앙을 계승하는 우리에게도 신앙, 노동, 감사가 있어야 되겠다.

 

굳게 믿고 부단히 노동하고 감옥에서 감사의 시를 읊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권면해 주신 말씀을 깊이 기억하면서 이 감사절을 지키자.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 츲ҺڻȰ 忩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п ⵶̰߿ 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