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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동 선생의 통일론

관리자 2012-06-08 (금) 11:30 11년전 3317  

통일로 가는 길

LA의 통일운동가 동초 오인동선생이 뉴욕을 다녀간 후 뉴욕의 초여름은 통일열기로 후끈 합니다. 3월1일과  5월 25일 후러싱 금강산식당에서 동초는 “통일은 경제대박이다”를 강연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남한의 졸부들이 쪽박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킨 명 강의였다.

3.1강연은 “중립화 평화통일 뉴욕본부”의 석운 김경락목사가 주관했습니다. 5.25강연은 “6.15공동선언 실천운동”해외 뉴욕지부의 정광채위원장이 실무를 맡았습니다.

저와 친한 분들이지요. 제가 아는 분들이 통일운동 하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격려하는 글을 쓰고 꼬박꼬박 참석했습니다. 그렇다고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 보러 강남 가는 것이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정형외과의사이자 통일운동가인 오인동 박사가 25일 뉴욕 금강산식당에서 열린 6·15선언 12돌기념 강연회에서 분단 유지 비용으로 통일비용을 만들고 남북경제공동체로 경제부흥을 일으키자고 역설하고 있다. ⓒ Newsroh.com 제공


참석한분들이 거의가 통일꾼들이기에 만장일치로 좋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종교집회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종교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을 신념으로 몰고 갑니다. 따지고 보면 독립운동 민주화운동도 그랬지요. 바위를 깨겠다고 달걀을 집어 던지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의 신념에 하늘이 감동하여 조국은 해방됐고 민주화가 됐다고 봅니다.

평화통일론자들의 주장에 저는 100% 동조하지 않습니다. 통일은 쪽박이 아니라 대박이라는 논리도 견강부회(牽强附會)처럼 들렸습니다. 정부를 제쳐놓고 우리끼리 통일논의하자는 모씨의 주장도 어린애들의 임금놀이처럼 보였고요. 그러나 그들을 훌륭하게 봅니다. 그들의 통일열망 때문에 통일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열국을 돌아다니면서 도덕통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천하통일은 진시황제의 무력으로 이뤄졌습니다. 비스마르크의 대학졸업논문 제목입니다.
“산상수훈으로 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가?”

당시 프로이센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 눌려 지냈습니다. 동네마다 지방마다 토호들이 득세하여 중앙정부는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외교관으로 해외근무를 하면서 비스마르크는 외교도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재상이 된 비스마르크는 철혈정책으로 밀고나갔습니다. 4분5열 된 지역분열을 힘으로 눌러버리고 통일독일을 이룩했습니다. 러시아와 평화조약을 맺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무력으로 굴복시켰습니다.

대한민국의 남북통일은 비스마르크가 온다 해도 불가능합니다. 무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한 세계 4대 군사강국입니다. 남한은 10대 경제대국입니다. 현대전에서는 군사보다 더 강한 무기가 경제입니다. 남북한이 싸우면 둘 다 망합니다.

고려연방제나 연합제로 통일하자고 합니다. 남북연방정부가 외교권 군사권을 행사하고 남북한에게는 실정에 맞는 독립을 주자는 안(案)이지요. 그러면 외교권 군사권을 일본에 빼앗긴 구한말 꼴이 될 겁니다. 모택동보다 몇 배가 많은 군사를 거느린 장개석도 국공합작(國共合作)하다가 망하여 대만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니 연방정부로 통일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가장 좋은 통일정책 같습니다. 남북연합제나 고려연방제는 먼 훗날의 일이고 우선 남북교류부터 하자는 게 햇볕정책입니다.

김대중정부시절의 햇볕정책은 대단했지요. 북한에 남한공장이 세워지고 금강산에 이산가족상봉관이 생겼습니다. 남북한의 예술인들이 평양과 서울을 상호방문 하면서 무대에 섰습니다. 부산아시아 올림픽에는 북한의 응원단이 내려왔습니다. 일 년에 60만 명이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상호비방방송이 사라졌습니다. 통일 된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대로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TV시청도 맘대로 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좋은 쪽으로 흡수되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되는 거였습니다. 독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오자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풍정책을 썼습니다. 그러자 역풍이 불어 금강산관광객이 피살되고 연평도해상에서 남한 잠수함이 격침당했습니다.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버렸어요.

이웃 간에는 친하지 않으면 싸우게 마련입니다. 저는 3년 전 시영아파트를 찾아 돌섬으로 이사 왔습니다. 지저분하고 무서웠습니다. 복도에는 담배공초가 굴러다녔습니다. 엘 리베터에서 만난 흑인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한 달도 못 견딜 것 같았습니다. 햇볕정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떨어진 오물을 줍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합니다. 아파트 옆에 방치된 밭을 얻어 모범농장으로 일궈놨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모두가 친절한 금자씨들 입니다. 며칠 전 제가 사는 삼층 복도에 “Do not drop cigaret pieces"를 붙여봤습니다. 전에는 붙이자마자 찢어버렸어요. 이제는 그냥 놔두더라고요. 덕분에 담배공초도 사라져 버렸고요.

오늘 아침에는 옆 밭 사람들이 몰려와 농사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라댑니다. 제가 가꾸고 있는 에덴농장 아리랑농장은 비록 15평짜리 조각농장들이지만 아름답기가 조경예술 수준이니까요.

고랑은 얼마나 깊게 파느냐? 토마토는 얼마간격으로 심어야 하느냐? 비료는 언제 주느냐? 어린애들처럼 물어옵니다. 전에는 우리농장에 들어와서 농작물을 짓밟아놓고 훔쳐가던 이웃들인데 말입니다. 주먹 쓰는 이들에겐 햇볕정책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햇볕정책 보다 더 확실하게 통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남한이 지금보다도 잘 살면 됩니다. 경제13국에서 경제 7대국쯤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남한으로 흡수통일이 되고 말겁니다. 북한이 잘살아도 통일이 됩니다. 먹고 살만하면 북한에서도 주민들의 민주화요구로 공산 독재정권이 무너져 버리고 말테니까요.

평양으로 가는 길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걸어갑니다. 그래도 모두 평양에 도착하지요. 통일방법이 다를 수 있어요. 그래도 많아야 평양길이 외롭지 않습니다. 

통일운동 하는 분들은 내 돈 드려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비행기표 호텔숙박비를 내면서 LA에서 워싱턴DC에서 달려와 참석합니다. 오인동박사의 통일강연을 듣고 나오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욕에 평통위원들이 수십 명인데 왜 한 사람도 안 왔을까? 그들은 매년 공짜로 청와대 초청받아 대통령과 오찬을 즐기면 저절로 통일이 되는 걸로 아는 모양이지?’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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