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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차 월요기도회 설교문(배태진 목사)

관리자 2014-12-30 (화) 21:45 4년전 2134  
  제39차 평화통일 월요기도회 설교문
 
 
설교 : 배태진 목사(총회 총무)
 
 
제목 :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본문 : 창세기 33장 10절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
 
 
□ 제가 언젠가 광주노회 콜로키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성룡 목사님께서 참석한 이들에게 노래를 하나 가르쳐 주셨습니다. 은신성사모님이 피아노 반주를 하셨는데 그 노래가 이렇습니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이 가사가 좋아서 나중에 강진읍교회 예배를 드릴 때 새신자를 환영하는 노래로 삼았습니다. 형제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악마는 적지않게 보입니다. 만일 우리가 살면서 상대방의 모습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 시기하거나 다투지 않고 쌈하거나 등 돌아서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 것입니다.
 
□ 천도교의 중요사상 중에 인내천이 있습니다. 동학의 교주인 최제우 창시자는 시천주(侍天主)를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내 마음에 모신다는 뜻인데 제 2대 교주인 최시형으로 내려와서 사인여천(사인여천)으로 변했습니다. 즉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3 대 교주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재편하면서 사인여천 사상을 “인내천”으로 곧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사상으로 정립합니다. 물론 동학과 천도교의 사상과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형상론”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으려 함은 어떤 유사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오늘 성경 창세기 33 장 10 절을 보면 야곱의 말 중에서 주의깊게 들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데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야곱에게 에서가 정말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과 같이 보여서 그렇게 말했는지 아니면 형에게 맞아죽을 것 같으니까 극상의 아부를 했는지 모르지만!! 야곱이 만일 아부를 했다면 이것은 아부라기 보다는 언어의 예술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야곱이 꼬리를 확 내리고 완전히 자신을 낮추고 내려가자 에서는 맘이 풀려서 동생 야곱에게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지난 역사에서 보면 야곱과 에서는 형제이긴 하지만 불구대천의 원수였습니다. 형 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동생 야곱은 자신의 장자권을 교묘한 속임수로 빼앗아간 아주 나쁜 놈이요 동생 야곱의 입장에게서 보면 형은 나중에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 아닙니까? 에서와 야곱은 한 피를 나눈 형제이지만 서로 속이고 죽이려했던 원수들이었습니다. 화해는 표면적으로 어디서부터 왔냐 하면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에서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였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듯이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형과의 화해를 마련해 주셨지만 형과의 마주침에서 형과의 화해의 단초는 형을 바라보는 눈길을 달라졌을 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 에서도 동생이 말하는 것을 듣고 동생 야곱의 얼굴을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동생 야곱에 대한 적개심이 아침이 이슬방울 쉬사라짐같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았을 때 화해가 시작되었습니다.
 
□ 저는 마산 칠칠 육군병원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이후에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로 옮겨 거기서 어릴 때를 보냈습니다. 글자를 깨우칠 때부터 담벼락에 써있는 글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찢어죽이자 김일성!” “숨겨주는 인정보다 신고하는 애국심!” 그런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노래를 배웠는데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잡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했던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침 조회 시간에 그런 노래를 많이 불러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들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6.25를 인공이라 불렀는데 인공 때 빨갱이들이 쳐들어와 배씨들을 많이 죽였는데 당시 지주계층이고 기독교인이라 해서 많이 죽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북에서 내려온 인민군들이 죽였느냐 하면 그들은 그래도 인민재판 같은 것을 하고 난 다음에 죽였는데 당시 남한에서 살다가 공산당 쪽에 붙은 이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저들이 죽일 때는 대나무 죽창으로 배씨들을 무참하게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저들에게 잡혔는데 공산당 쪽에 붙은 이들이 저 배씨는 기독교인이지만 우리 프로레타리아들을 잘 대해주고 공산당보다도 더 많이 나눠준 사람이라고 변호를 해주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할머니 얘기에 의하면 그때 인민군에 붙었던 저들이 죽인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는데 아무도 무서워서 치우지 못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다 거두워서 뒷산에 묻어주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일로 병이 생기셔서 췌장염으로 환갑상도 받아보지 못하고 소천하셨습니다.
 
□ 6.25 전쟁으로 4-500 만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1천만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고 했습니다. 북한과 김일성이 6.25를 일으켜서 수백만을 죽이고 남쪽 이승만 정부와 서북청년단도 북쪽에 붙었다고 해서 남쪽 사람들을 많이 죽였는데 그것이 보도연맹, 4.3 제주학살로 역사 속에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쳐죽여야 할 원수로 보고 피로 이 강산을 물들이고 적셨습니다. 지푸라기 보다도 못한 이념 때문에 그것도 미소가 강요한 자기들의 이익 때문에 오천년 역사를 단일민족으로 지내온 이 땅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어져서 서로 죽고 죽였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보다도 훨씬 더 강한 원수와 같이 지난 3년 동안 전쟁하고, 그 이후 반백년이상을 보내온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나중에 화해했지만 남과 북은 화해를 하지 않고 아직도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북을 추종한다고 종북주의자라 하여 일거에 정당도 해산시키고 북쪽에서는 남으로 간 사람들을 배신자라 하고 있습니다. 해방된 후 남과 북이 나뉘어진 지 70 년이 지났고 6.25 전쟁이 끝난지 51 년이 지났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 우리가 평화통일 월요 촛불기도회를 하고 마칠 때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통일이 대단히 갑자기 빨리 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만일 우리 남과 북이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는 가운데 통일이 된다면 엄청난 혼란이 될 것입니다.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현재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채로 통일이 된다면 그런 통일이 민족의 행복을 가져온다든지 삶의 질이 높아지게 한다든지가 아닐 것입니다.
 
□ 저는 남과 북이 야곱이 에서에게 말하였던 대로 형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느낄 때 그때가 통일을 할 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남이 북을 보면서 쳐죽여 무찔러야 할 원수로 보고 북은 남을 보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 통일은 실현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에서 앞에 섰던 야곱의 심정, 야곱의 눈길, 야곱의 아부가 형성되었을 때가 통일이 되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남은 북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고무하며 북은 남을 같은 겨레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남은 북의 형제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북은 남의 자매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발견할 때 그때가 통일이 되어야 할 적기의 카이로스인 것입니다. 서로가 종북주의자 종남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제거하고 서로 이것을 비판하고 저것을 비난한다면 쳐죽여야할 대상이지 오천년을 한솥밥을 먹고 함께 역사를 그동안 공유해 온 것들은 전혀 백안시하는 가운데 통일을 외친다는 것은 참으로 공허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서로 좋아하고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서로 칭찬하고 고무하고 격려하고 서로 자주 만나려 하고 만나서 남의 사람은 남쪽의 잘못된 점을 얘기하고 북은 북대로 북의 잘못된 점을 얘기하고 서로 공감하고 (남-우리가 잘못한거야. 북-아니 우리가 잘못했어) 그러는 가운데 통일의 활로가 열리는 것이지 서로 만나서 서로를 비난만 한다면 거기에서는 통일의 “ㅌ” 자도 시작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이는 찬양이고 고무입니다. 남이 북의 형제와 자매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노래를 부르고 북은 남의 형제와 자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면서 노래를 부를 때 바로 그때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대로 “통일은 다 됐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 한빛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였습니다. 언젠가 유원규 목사님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하여 설교를 하셨는데 제가 기억하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새벽이 언제 오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먼동이 틀 때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니다”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나서 "새가 울 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진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그러면 새벽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그 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 모르는 이들이 너희의 형제와 자매로 보일 때, 그 때 새벽은 오는 것이니라” 우리 민족과 겨레의 통일의 새벽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 야곱이 형 에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 것이 언제였습니까? 정확히 하자면 야곱이 에서를 만난 바로 그때가 아닙니다. 창세기 33 장 10 절 이전에 창세기 32 장에는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형과의 화해를 위해 씨름하는 기도를 하였을 때 바로 그때 은총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에서를 바라보는 마음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갑자기 그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죽자사자하고 씨름하는 기도를 하였을 때 은총의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슴에 야곱의 눈길에 얹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남과 북의 지금의 감정으로는 서로 만나도 또 적대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죽이려고 하는 마음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고 때로는 그 마음이 더욱 증폭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의 야곱을 본받아 21 세기의 야곱이 되어 오늘의 얍복강가라 할 수 있는 38선 앞에서 오늘의 야곱이 되어 화해와 일치를 위해 씨름하는 기도를 할 때 은총의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는 앞길에 브니엘의 태양을 비추어 주시고 남과 북의 마음에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여 주시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얹어 주실 텐데 바로 그때가 우리 민족이 통일할 때요 하나가 될 때입니다. 우리의 현실로는 스가랴 예언자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셨는데 남과 북의 팔천만 겨레의 가슴에 야곱의 가슴이 심어지려면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신 즉 성령님이 이 땅 한반도 위에 운행하셔야만 가능한데 바로 주의 신 주의 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야곱의 씨름하는 기도라고 믿습니다. 저는 기장 평화통일월요기도회가 주의 신을 한반도 위에 운행하게 하는 야곱의 얍복강가의 기도요 기장 평화통일월요기도회가 우리 팔천만 겨레의 눈 속에 형제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케 하는 것이요 기장 평화통일월요기도회가 이 땅 한반도에 브니엘의 태양이 비추이게 하는 촉발점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장 평화통일월요기도회는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독일 라이프니쯔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평화통일기도회가 동서독 위에 주의 신이 움직이게 하였다면 기장 평화통일월요기도회는 한반도 위에 주의 신이 움직이게 하는 오늘의 야곱의 기도, 오늘의 얍복강가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진행되온 39차 월요평화통일기도회 마지막 갈라디아서 6 장 9 절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기장 위에 주의 신으로 운행하셔서 저희로 하여금 평화통일월요기도회를 시작하게 하시고 지속적으로 통일과 민족의 영적 일치를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서 이루어주실 때까지 주님께서 거두게 하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을 그치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로 기도할 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남과 북의 팔천만 겨레 위에 야곱이 에서에게 가진 가슴을 주셔서 돌과 같이 굳어있는 마음을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과 북이 서로 형제와 자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케 되는 크신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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