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평화공동체-상단메뉴.gif
 
평화통일월요기도회.gif
 

제10차 월요기도회 설교문(권영종 목사)

관리자 2014-05-22 (목) 16:00 9년전 2336  
제10차 평화통일 월요기도회 설교문
 
 
설교 : 권영종 목사(서울남노회 노회장)
 
제목 : 화평케 하는 자
본문 : 마태5:9-12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9-12)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평화를 사랑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화를 만들어 가지 않는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문제는 이 세상 사람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말하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에게 평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평화로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평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평화를 위해 투쟁을 하고,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아직도 무슨 이유로 이 땅에는 전쟁과 미움과 분노만이 가득한 것일까?
뿐만 아니라 왜 우리 마음과 내면 속에는 언제나 갈등과 미움과 분노만 있는 것일까? 이천 년 전 이 땅에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인간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하시고 화해시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죄인으로서 서로 화목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여전히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며, 화해가 아니라 분열이고,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며, 용서가 아니라 분노로 가득차 있습니다. 지구상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보아도 이제는 평화를 그곳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벨평화상을 만들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있고, 평화에 관한 수많은 회의와 시위, 그리고 선언문들이 쏟아져 나온다해도 이 세상은 날로 악해지고 잔인해지며 계속해서 점점 더 무서운 전쟁과 폭력과 파괴만이 증가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언합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빈부의 격차에 따른 평화의 파괴를 말하기도 하고 또 종교간, 국가간 적대감과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평화의 유린을 말하기도 합니다.
정확히 34일 전,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되는 그야말로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였습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이 참으로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사건은 타살입니다. 세월호를 책임지고 있던 선장과 승무원들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모든 기득권 층의 직무유기이자 살상행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누구보다 철저한 회개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보다 그 배에 타고 있다 제일 먼저 배에서 탈출한 선장을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반복해서 방송했던 승무원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 자신이 그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가 마땅히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마땅히 책임져야 할 때 책임을 회피했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이번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간 사람들에게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그들의 가족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감히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평화입니까? 어떻게해야 평화가 도래합니까?
평화란 신약에서는 ‘에이레네’라는 말을 쓰고 구약에서는 ‘샬롬’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의 뜻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 ‘고난과 역경이 지난 후의 성숙함, 완전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평화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정의는 단순히 모든 것이 다 잘되고,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곳, 하나님의 의가 통치되는 곳, 그 나라와 의가 있는 곳이 바로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곳에서는 평화도 사라집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란 단순히 시냇물이 흐르고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아름다운 모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어느 화가가 ‘평화’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은 한가하고 평화스런 농촌의 모습이 아니라 비바람이 치고 폭풍이 부는 무섭고 험악한 날씨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절벽 벼랑 사이에 안심하고 깃들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이토록 두렵고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의 통치를 바라보며 우리 인생의 진정한 구원자이신 그분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언제나 ‘어떻게’입니다. 어떻게 이같은 두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같은 화평을 만들어가고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단지 분열을 싫어하고 전쟁을 싫어하는 의미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의런 의미에서 평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 평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바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화평케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평화를 위해서 내가 오해를 받거나, 손해를 보거나,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바울처럼 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내 목숨까지 내놓아야할 때, 그 자리를 피해 도망하지 않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평화는 절대로 거져 오지 않습니다
제가 우리 교단 평통위원장을 할 때 총회장님을 모시고 북한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평양에서 여러 곳을 방문하는 중에 북한 미술가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에 들렀습니다. 여러 가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유독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어느 미전향 장기수가 적어놓은 조그만 족자였습니다. 그 족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혁명가는 다음 세 가지 각오를 반드시 해야 한다.
첫째, 굶어죽을 각오, 둘째, 맞아죽을 각오, 셋째, 얼어죽을 각오”
저는 그 글귀를 바라보면서 온 몸이 전율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 글귀에 대한 감동이라기 보다는 예수를 내 인생의 구세주라고 믿고 사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혁명가의 희생과 헌신 앞에서 내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도 저렇게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아가는데, 영생을 믿고 부활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였습니다.
성서는 이 땅의 평화는 오직 평화를 위해 핍박을 당하고, 그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우리 기장교단과 기장 목회자들과 기장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세월호 참사로 극명하게 드러난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순과, 무기력할대로 무기력한 한국교회의 현실과,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이제 우리 교단이 다시 한번 성서의 말씀처럼 평화를 위해 핍박을 감당하는 거룩한 역사 를 다시 한번 이루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 모두가 순교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수의 핍박받고 순교한 제자들을 통하여 이 땅의 역사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역설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평화에 대한 핍박의 완벽한 한 예이며 동시에 놀라운 역설입니다. 핍박이 없는 평화는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찬송가 367장 2절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주님이 곤욕을 당하시고, 주님이 핍박을 받으셨으므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마땅히 핍박을 당해야 합니다. 그게 진실로 예수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핍박을 받으셨는데, 지금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아파하는데, 나 홀로 평안히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옳습니다. 거기에 사랑이 있고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이 지금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꺼이 이끌려 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고난당하고 핍박받으려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달려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이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평화와 핍박을 통한 주님의 축복이 사랑하는 우리 기장 교단과 섬기시는 교회와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있는 우리 민족 위에 이 평화의 복음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평화를 주옵소서. 평화를 위해 핍박받고, 복음을 사랑하고, 분단된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바라보며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