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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차 월요기도회 설교문(한기양목사)

관리자 2014-07-15 (화) 15:59 9년전 2162  
제18차 평화통일 월요기도회 설교문
 
 
설교 : 한기양 목사(부산노회장, 총회 평화통일위원장)
 
 
제목 : 평화와 칼의 역설
본문 : 예레미야 20:7-13, 마태복음 10:34-39
 
7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렘20:7-13)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4-39)
 
 
하나님의 꾐? 주님의 억지?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가 당한 현실입니다.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예레미야는 가난한 민중들이 계속 힘 있는 자들의 손에 의해 휘둘리는 역사의 퇴보를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진보를 외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의 꾐’에 넘어간 어수룩한 자로, ‘주님의 억지’에 말려든 바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그는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하는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야유와 비난 그리고 조롱을 넘어서서 야훼 하나님의 역사 진보의 승리를 고백하는 예레미야의 비장한 신앙과 확신에 찬 찬양이 오늘 우리의 살아 있는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남북분단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는 비정상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남북분단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저지른 중대한 죄임을 고백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화해용서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권력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 그리고 초대교인들을 박해하였던 것과 같이 참 신앙인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 주인을 가리켜 바알세불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하겠느냐?” 예수님을 향해 사탄의 두목이라고 부르는데, 나를 따르고자 애쓰는 너희들이야 무슨 욕인들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렇습니다. 권력자들이 별의별 방식으로 자신들의 불의를 감추고자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비밀은 절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겪는 오해나 비난은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세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혼과 육신을 동시에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확신이 들면 그 길에 묵묵히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 길이 십자가 죽음의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평화의 외침 속에 담긴 칼의 역설
 
그런데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참으로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말만 따로 떼어내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두 칼을 드는 폭력주의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고,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뺨까지도 돌려대라고 하는 예수님의 원수 사랑과 평화의 정신에 위배되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맞서는 그래서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라는 오늘의 말씀 또한 현재 불화가 있는 가정이 서로를 변호하기 위한 말씀으로 변질될 수도 있고, 나아가 남북분단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말씀으로 오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할 때에는 그 말씀이 성서 전체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잘 파악해서 인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폭력을 사용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 곧 권력자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평화를 꾀한다고 해서 거짓과 불의에 침묵하고 동참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참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짓 평화를 외치는 세상 권력자들에게 불의함에 대항하기 위해 칼을 들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저항의 상징이자 동시에 죽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 권력자들이 가진 더 큰 칼의 희생자가 된다 하더라도 저들의 거짓 평화에 입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평화실현과 가족이기주의
 
자기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라고 하는 말씀 또한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때때로 가족들이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는 말씀이지 가족을 버려한 한다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도 요한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눈앞에 보이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것은 살다보면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과 맞서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제상에 절을 하느냐 절을 하지 않느냐는 그런 낮은 단계에서의 신앙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정의로움과 평화를 위해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각 가정에 적용할 것인가는 각 가정마다 처한 형편과 처지가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 자식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까지도 제 자식으로 사랑할 줄 아는 인류보편 사랑일 것입니다. 숫사자의 경우를 보면 자기 씨앗을 전파하기 위해 암사자가 기르고 있는 새끼 사자들을 죽입니다. 인간 또한 동물이긴 하지만 이를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집안 식구가 자기 원수라는 말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사로운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세습, 탈세, 성폭력 등 이 사회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신도가 고객이 된 지 오래입니다. 예수님은 혁명적이지만 교회는 세속적입니다. 예수님은 희생을 택했으나 교회는 권력을 추구합니다. ‘개독교와 빤스목사’가 난립해도 종북 타령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에 가장 앞장 서는 이들은 다름 아닌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기독교인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이 땅을, 예수님께서 살아간다면 무엇을 하실까요? 예수님은 스스로 지배자가 되지 않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섬겼습니다.”
 
오늘 특별히 우리 기장교단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부산노회가 ‘평화통일 월요기도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부산노회가 단체로 상경할 수 없는 처지여서 노회 임원의 일부만 참석했습니다만, 그래서 이 시각 같은 시간과 같은 순서로 부산노회 김해벧엘교회에서 따로 모여 함께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남북의 평화통일이 지금 우리들 신앙의 핵심임을 다짐하고 함께 기도하자는 의미인 것입니다. 한 주일 이렇게 ‘주의 만찬’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만, 진정한 우리들의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이 기도회는 분명히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세상 민족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이 치욕의 남북분단이 하루 속히 끝나고 화해와 통일의 새 역사가 우리 한반도에 펼쳐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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