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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차 월요기도회 설교문(윤교희 목사)

관리자 2014-07-22 (화) 15:44 7년전 2766  
제19차 평화통일 월요기도회 설교문
 
 
설교 : 윤교희 목사(총회 신도위원회, 안양중앙교회)
 
 
제목 :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본문 : 창세기 33장 1-4절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세기 33:1-4)
 
 
우리에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의 노래가 우리들 주변에서 사라진지가 몇 년입니까? 사실 군사정권 시절에 잘못된 강요로 인해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제국주의적인 국민의례들이 사라지면서 정말 중요한 가치들을 동시에 놓쳐버린 것 중에 하나가 통일에 대한 염원입니다.
 
어린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모임이 끝나면 목청껏 불렀던 노래가 우리에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통일이 아주 중요한 가치이고 앞으로 이 나라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중요한 과제임도불구하고 점점 통일에 대한 염원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다행이 우리 교단은 분단의 아픔과 시대의 염원을 마음에 담아 평화통일 월요기도회를 통해서 평화통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누고 통일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기도회를 시작하게 하신 것은 우리교단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고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야곱이라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에 하이라이트 같은 장면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탐욕과 시기, 갈등과 원한으로 얼룩진 형제간의 화해가 아주 드라마틱게 연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도둑질해서 도망간 야곱이 20년 만에 형 에서를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혼자 동생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장정 400명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32장에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합니다. 먼저 형 에서에게 선물을 보냅니다. 자기의 식솔과 재산도 두 떼로 나누어서 가도록 합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서 얍복나루에 홀로 남아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서 에서를 만나러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역사적인 화해의 장면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참 많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얍복나루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에서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화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전부였다면 아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행동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에서와 야곱의 마음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정 400명을 이끌고 동생을 만나러 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가 해 오던 방식대로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 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방법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꺽으시면서 지금까지의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순종하는 야곱을 만들어 가십니다.
 
얍복나루를 건넌 야곱에게서 우리는 얍복나루를 건너기 전의 야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드디어 그의 눈으로 직접 봅니다. 그런데 더 이상 피하지 않습니다. 숨지 않습니다. 항상 가족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에 숨어 있었던 야곱이 가장 앞서 나아가 형을 만나는 모습을 봅니다. 형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형에게로 나아갈 때는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나아갔습니다. 상대방을 향해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는 것은 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더 이상 형을 우습게보거나 막 대할 상대로 여기지 않습니다. 형 에서를 최대한으로 높이며 존중해 주고 자기는 최대한으로 낮추었습니다.이렇게 달라진 야곱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4절에 보면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했습니다. 형이 무서워 몸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해야 했던 형제의 20년만의 만남이 곧바로 극적인 화해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에서가 이렇게 말 합니다: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이것은 "내 땅으로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즉 용서하고 환영한다는 것이며 이제는 같이 살자는 뜻입니다. 20년간 야곱의 마음 한 구석에서 그토록 그를 짓누르고 괴롭혔던, 그리고 외삼촌 라반을 떠난 후로는 더더욱 무섭게 그를 사로잡았던 일들이 일순간의 기우였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통일도 이렇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나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숨어서는 안 됩니다. 피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나 논의는 아주 특별한 사람(진보적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통탄할 일이지를 모른 채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성장하고 세계를 향해서 뻗어 나아가는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알려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야곱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끊으면서까지 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들의 생각에 지경을 넓히지 못하고 환경에 갇혀 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가장 앞서 나아가 통일을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통일을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모여서 드리는 이 평화통일을 월요기도회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확산시켜 나가는 작은 촛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촛불이 모여 큰 들불을 일으켜서 삼천리 방방곡곡에 통일의 들불이 타오는 역사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민족과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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