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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고통 같은 기도

관리자 2010-05-10 (월) 11:40 13년전 4498  
강의 고통 같은 기도 [한겨레21 2010.05.07 제809호]
제9공구가 돼버린 두물머리…
멈출 때까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때까지 금식기도, 오체투지, 또 금식기도…

지난해 11월 4대강 사업 공사가 본격화한 이래 전국토의 강은 거대한 ‘살생의 현장’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의 무소불위 정책이 시행됨에도 정작 세간의 관심이 줄었고, 언론 또한 외면하던 차다. 이를 다시 쟁점으로 부활시킨 이들이 바로 종교인들이다. 4대강으로 달려가 기도로, 오체투지로 사업을 막아내고자 한다. 특히 북한강, 남한강은 ‘성지’가 되었다. 개신교·천주교·불교 3대 종단이 이곳에서 강의 신음을 나눈다. 교리가 다를 뿐 모두 한 목소리다.

종교계의 애절한 움직임에 몇 가지 의미가 올돌히 발견된다. 군부독재 시대만큼의 위기감을 내보인다. 4대 종단이 한목소리로 결집된 전례가 그 시절 말곤 드물다는 점부터 방증한다. 과학 논쟁과 환경시민단체 중심의 저항 국면에서 종국엔 시들어가던 쟁점을 ‘생명론’으로 부활시켰다. 가장 합리적이고 선진화되었다는 시대에 낡고 추상적인 낱말로 사회 전반의 근원적 성찰을 요구한다. “생명”과 “종교적 양심”란 사자후를 토한다.

강가의 펄럭이는 천막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컨테이너에서 고단한 몸을 곧추 세우는 그들을 만났다. 말그대로 ‘성지 순례’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 70일째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금식기도가 진행되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의 개신교 기도처.

#1 격문

다산 정약용과 몽양 여운형이 나고 자란 곳, 30여 년 전 팔당댐 공사로 7할의 농토를 잃은 공동체가 생태를 화두 삼아 유기농으로 기적처럼 다시 일어선 곳.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북한강가는 강과 먹을거리가 함께 숨 쉬는 땅이다. 지난 4월27일 그곳을 찾았다. 마을 곳곳에 ‘강을 지켜내자’는 격문이 나붙고, 3m 높이의 물탱크 위로 강바람에 넘어갈 듯 위태로운 임시 기도처가 세워진 지 70일째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유기농이라는 이름 대신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고수부지 공원과 자전거도로로 만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4개월 뒤, 유기농 단지를 지키던 농민 10여 명이 4대강 사업 측량을 반대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교회가 손을 내민 것은 바로 이때다. 이곳의 용진교회는 3·1운동부터 민주화운동까지 103년 동안 농민과 함께해왔다.

김선구 목사가 이끈 작은 시골마을의 생명을 향한 기도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추동했다. 4대강 사업을 현안으로 받아들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태공동체운동본부가 나섰다. 그리고 1인용 텐트로 만들어진 기도처에서 사순절 금식기도회가 시작됐다. 2월17일부터 4월4일 부활절까지 전남 해남, 경남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목회자들이 찾아왔다. 부활절에는 전국에서 모인 목사와 신도 수만 1천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의 중장비는 인근 청평까지 밀고 들어왔다. 2차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4대강 사업이 중단될 때까지”다. 오롯이 종교적 양심에 기댄 이들의 기도는 목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지난 4월24일 국내 최대 교단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반대성명이 나왔다. ‘인권’이 4대강의 붕어 정도로나 취급받던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한 기독교 선언, 남북·이념 갈등이 치솟던 1988년 평화·통일 선언을 내놓은 이후 22년 만의 ‘종교적 항거’다. 중앙집권 형태를 띠는 타 종단과 달리 교파·분파가 다양한 개신교는 한 의견을 모아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교대 예배를 마치고 다음 기도자인 서울교회 배안용 목사와 함께 기도처로 올랐다. 1인용 텐트 안 소반 위에 조그만 십자가가 보였다. 그 아래 성경에는 골로새서 3장 5절 ‘탐욕은 우상숭배’라는 대목이 펼쳐져 있다. “누구보다 나의 잘못을 선언하고 각성하는 시간이에요.” 텐트를 위협하는 강바람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배 목사는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높였다. “바람소리에 빗소리까지 제 목소리를 내는 강을 느끼네요. 행운입니다.”

» 경기 여주 신륵사에 위치한 수경 스님의 여강선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4대강 사업 현장. 강 습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됐다.

#2 현양매구

다음날인 4월28일 아침 7시. 차를 달려 경기 여주군 4대강 사업 한강 제3공구로 접어들자마자 25t 트럭이 바삐 오간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주 신륵사에 위치한 여강선원에 도착했다. 신륵사 경내로 들어서면 파헤쳐지는 남한강의 누런 속과 그곳을 지키는 수경 스님을 대웅전보다 먼저 만난다. 수경 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는 서울 화계사를 떠나 이곳에 자리잡은 지도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스님은 가건물로 만든 선원에서 아예 자리를 털고 나와 천막을 치고 단상을 폈다. 왜 여기에 계시느냐는 우문에 “현양매구”라고 답하신다. 이어가는 말로 비춰보건대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이 바로 현재의 4대강 사업이며, 본인이 화계사를 지키는 것 또한 그런 태도일까 하여 경계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뿐이다. 말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은 힘겹다. 얼굴은 볼부터 귓등까지 벌겋게 부어올랐다. 단 하루도 쉼없이 파헤쳐지는 강 때문인지, 선원의 고행 때문인지 그의 피부병도 쉬 물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흔들림 없던 종단은 여강선원의 존재만으로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4월17일에는 조계종단 차원에서 스님 1천여 명과 신도 1만여 명이 참석하는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를 봉행했다. 또 4월22일 제6교구 본사인 충남 공주 마곡사의 결정으로 금강에 금강선원을 개원했다. 종교끼리 겯고튼다. 같은 날 원불교도 나섰다. 교무 선언에 16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작은 종단이긴 하지만 전체 성직자의 10%니, 다른 종단과 규모 면에서 다르지 않다.

뜻을 모으는 건 종단만이 아니다. 주말이면 여강선원은 수경 스님을 만나기 위한 신도들로 북적인다. 지율 스님이 이끄는 낙동강 순례에도 신도가 늘고 있다. ‘낙동강의 움직이는 선원’이다. 수경 스님은 주말에 자신을 찾은 신도들과 함께 오체투지로 3공구 현장을 누빈다. 기한은 없다. “멈출 때까지”다. 대안도 간명하다. “원래 모습으로”다. ‘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수경 스님을 보고 돌아서는 길, 신륵사 주변 나무 위 까치집은 포클레인의 들썩임으로 비어 있고 그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누런 속내를 드러냈다. 그 순간, 고라니 한마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숲이 사라져 갈 곳을 잃은 모양이다. 자신을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갈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사이를 친구를 대하듯 겁없이 오간다. 아직 고라니가 있다는 것,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것일까. 숨을 곳조차 없이 파헤쳐진 그곳, 그 녀석은 얼마나 버텨내줄까.

»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 평화 미사’가 열리는 경기 양평군의 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3 강제수용

천주교 성직자들이 터를 잡은 곳으로 향했다. 북한강·남한강 두 물길이 하나가 돼 한강으로 흐르는 경기 양평군의 두물머리다. 4월28일 오후 인근 용문산에는 눈이 내렸다. 이곳 또한 두물머리 대신 제9공구라는 이름으로 4대강 사업에 포함됐다. 이곳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북한강·남한강 강가의 기도처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오후 3시, 71일째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 평화 미사’가 시작됐다. 이곳에서 시작된 ‘생명’을 위한 금식기도는 촛불시위, 용산 참사 당시에도 꿈쩍 않던 주교단을 움직였다. 대개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이들이다. 평소라면 주교회의 안건으로 올라가기도 쉽지 않은 현안이 안건으로 채택된 것이다. 주교회의에서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찬반 토론회까지 열어 경청했고 4대강 반대를 천명했다.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는 독재정권 때도 드문 일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주교성명에 사제들은 놀랐다.

두물머리 40여 분의 미사는 기적을 낳고 있었다. 이제 그 기적은 서울 명동성당 앞마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4월27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무기한 미사’가 시작된 지 이틀째다. 밤샘 기도를 위해 설치한 천막이 가톨릭회관 관계자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하지만 미사는 평온했다. 문규현 신부의 절규가 있기 전까지. “‘이 강이 닿는 곳에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성서 말씀을 몇날 며칠 송판에 칼로 새깁니다. 그런데 강이 닿는 모든 곳마다 막아버린다? 그게 어느 미친놈입니까? 모두 죽이자는 건가요?”

정부는 들었을까. 종단 세 곳의 기도처와 명동성당 순례를 마치고 나니 “팔당 유기농단지를 강제 수용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0일 정부 발표였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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