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43: 14- 21)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정한 여신도회 주일입니다. 여신도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격려하고 후원하는 것이 여신도회 주일을 제정한 취지입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교회 안에는 평신도들의 모임인 신도회가 있습니다. 신도회는 평신도 상호간에 사귐과 친교를 도모하면서, 함께 배우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목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남신도회와 여신도회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여신도회는 각 연령층에 따라 9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직까지 신도회에 가입하지 않으신 분들은 할 수 있는 대로 가입하셔서, 친교와 봉사와 전도에 함께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에 전국 여신도회 연합회가 제정한 주제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주제는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그대로 인용한 말씀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새 일을 행하리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평상시에는 일어나지도 않는 새로운 일, 일반적으로는 볼 수도 없고 생겨나지도 않는 새로운 일, 사람으로서는 할 수도 없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는 그 새 일은 어떤 일이겠습니까? 그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605년에 바벨론의 침략을 받은 이후 포로로 잡혀가서 약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셔서, 포로 된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모여 살던 곳은 그발 강가 델아빕이라는 곳이었는데, 델아빕의 원 뜻은 “폭풍과 홍수의 언덕”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폭풍과 홍수가 밀어닥치는 강가에 떼를 지어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중노동을 하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눈물과 한숨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픔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나라도 이 불쌍한 포로민들을 도울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 절망의 순간에 천래의 음성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들려왔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풀어주시고 고국 이스라엘로 돌라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전 일을 다시 기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포로생활 할 때의 그 악몽을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날에 포로민으로 끌려가서 매를 맞고 천대를 받던 일을 기억하지 말고, 배고픔과 중노동으로 괴로웠던 일들을 생각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사, 고난 받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새 일을 행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 일의 내용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배를 타고 도망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모든 갈대아 사람들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갈대아는 바벨론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바벨론 사람들이 자기들의 배를 타고 도망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넓은 들판에 길을 내어 편안히 통행하게 하고, 사막에 강을 내어 물을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이제 곧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한 광야와 사막이었습니다. 광야와 사막에는 물도 없고 길이 없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는 열사의 벌판을 지나간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고 고생스러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시원한 물을 마시며 안전하게 길을 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즉 주전 536년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 시키시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때의 감격과 기쁨을 시편 126편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 노래에서 볼 수 있는 대로 포로에서 해방된 백성들은 마치 꿈꾸는 것 같았고,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웃음과 찬양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포로의 귀환은 하나님이 행하신 대사였음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대사를 행하셨다는 것은, 우리 본문에서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리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이와 같은 본문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같이 강한나라도 망하게 하시고, 절망적인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포로민들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강자를 망하게 하시고 억눌림 당하는 자들을 해방시키시고 자유케 하십니다. 우리나라를 36년간 압제했던 일본 사람들을 바다건너 도망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무서운 군사독재와 유신정권을 무너지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앞으로 삼팔선도 무너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통일을 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도 주장하십니다. 사무엘상 2: 6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려가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 도다.”(6-8)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요 복의 근원입니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를 멀리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화를 내리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 복 받는 자리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둘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만물을 살리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본래 광야와 사막에는 길이 없고 물이 없습니다. 광야와 사막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생명체가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광야와 사막은 곧 죽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살 수 없는 그 곳에 길을 내셔서 사람들이 지날 수 있게 하며, 사막에 강을 내셔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그 불모의 땅에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셔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곳에 사람들도 살고 들짐승들도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사람에게 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과 모든 자연 계까지 미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강물이 오염되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땅들이 오염되어 땅에서 자란 식물들을 먹은 사람들의 생명도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도 온갖 죄악으로 오염되어 멸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광야와 사막과 같이 황폐되어가고, 우리 인간들의 마음과 영혼이 광야와 사막과 같이 황폐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새 일은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7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것처럼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신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행하신 새 일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1장 이하에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고, 아픔이나 질병이 없고, 이별과 눈물이 없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거기서 세세토록 왕노릇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축복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들어야 할 말씀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 그의 사업에 참여케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터에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은 저들이 하나님의 새 일에 참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새 일을 행하실 때는 언제나 사람을 불러 쓰셨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하실 때에도 사람을 불러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그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는 바로 파사왕 고레스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일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 될 때에도 , 하나님은 모세라는 인물을 선택하여 출애굽의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바울 같은 인물들을 선택하여 일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교사들을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9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새 일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새 일도 역시 억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고 환난 당한 자들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통일국가를 세우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여 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전도가 바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 여신도들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했습니다. 특히 우리 교단 여신도회는 민주화 운동과 함께 생명문화운동에 힘써 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위하여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을 바쳐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