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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석

선한 목자 예수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31 14년전 4685  

(본문: 요한복음10:7-16)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라는 말씀이 강조 되어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먹이고 돌보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며, 길 잃은 양들을 찾고, 저녁에는 안전한 우리로 몰아넣습니다. 목자는 잘 걷지 못하는 어린 양들을 팔에 앉고, 병난 양들을 정성껏 치료합니다.

특히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기도 합니다. 사나운 짐승들이 양을 잡아먹거나 도적들이 양을 훔쳐 가면 목자는 양을 지키려고 하다가 때로는 목숨까지 버립니다.  사무엘상17: 34에 보면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자기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다가 사자나 곰이 와서 양들을 물어 가면, 그는 그 것들과 싸워 양들을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사자나 곰을 상대하여 싸운다는 것은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1절과 14절에 보면 “나는 선한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선한 목자가 되는 조건입니다. 선한 목자의 조건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어떻게 목숨을 버리셨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사야 53:6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우리는 다 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자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목자의 말을 듣지 않다가 길을 잃고, 제 생각과 제 고집대로 살던 양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릇 행하여 자신의 길을 가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져버리고 살던 양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죄라는 말의 본래 뜻은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고 빗나갔다는 것이 죄의 본래 뜻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길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목표에서 빗나가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범죄 하여 죄악에 빠져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제 마음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며 탕자와 같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죄의 결과로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서 염려와 근심과 불안과 고통 가운데 살다가 죽음과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짧은 세상을 살면서도 염려와 근심과 불안과 고통 가운데 사는 것은, 우리가 다 양과 같이 그릇행하여 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과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은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와 같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우리 죄인들을 살리시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사야 53:5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5:8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다 양과 같이 그릇행하고 제고집대로 살던 자들이요,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탕자와 같이 살던 자들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와 같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양들이 통과해야 할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구원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나라로 들어 갈 수 있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해석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교나 유교나 마호메트교와 같은 다른 종교를 통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든지 아무종교나 하나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종교나 다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 할 것입니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팔을 크게 휘저으라고, 또 어떤 사람은 다리를 굽혔다 펴면서 발로 힘껏 차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스스로 물에 들어가서 건져 낼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물에 들어가서 건져낸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바른 길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이요, 다른 길은 다 잘못 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외쳤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16:31)

여러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죽음에서 건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주예수를 믿어야 만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둘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  입니다. 

본문 10절 하반 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더 풍성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곧 성령의 교통으로 위로와 평화를 누리고, 기쁨과 소망, 만족과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쉽게 발견하는 것 하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특징은 기쁨과 소망과 찬양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호의호식하고 부자로 살고 대우를 받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굶주리고 박해를 당하고 고난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 비결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풍성한 생명을 얻은데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5: 41절에 보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것까지도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16:25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한 죄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런 삶의 비결은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많이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좋은 것을 가져도 기쁨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있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23:1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임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만족 가운데 사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우리의 선한 목자로 인정합시다. 그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십시다. 그를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으십시다. 그리하여 이 험한 세상에서도 우리가 위로와 평화를 누리고, 기쁨과 소망의 생활을 하고, 만족과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세 번째로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는 선한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자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27에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날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에게 있는 나쁜 버릇은 고집이 세고, 제 마음대로 하려는 것입니다. 양이 위험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은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학교를 지키는 집사님이 양을 길렀는데 하루 밤에는 양을 한 마리 잃어버렸습니다. 수소문하여 양을 기른다는 한 집을 찾아 갔습니다. 마당에 몇 마리의 양이 있었으나 집사님의 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사님은 주인에게 혹시 길 잃은 양을 한 마리 보지 못했냐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그런 양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란에 있던 양 한 마리가 집사님의 목소리를 듣고 쫒아 와서 몸을 비비고 좋아서 어찌 할 줄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잃었던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의 얼굴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자기 집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 중에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딴 길로 가는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않고 세상길을 가는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을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과 고집대로 사는 분은 없습니까? 이 시간 우리 모두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을 때마다 귀 기울여 듣고, 때마다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도 우리  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자는 말씀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은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사람들을 의미하고, 지금 와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양들만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도 관심하십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믿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들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5:3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주인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또 찾은즉 기뻐하여 이웃을 불러 모으고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목자는 양을 위하여 적어도 세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는 먹고 마실 것을 공급하고, 둘째는 가는 길을 인도하며, 셋째는 돌보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의 생명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구원의 길로 인도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선한 목자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고, 그를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아직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에게 순종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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