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35:20-29)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위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내용입니다. 성막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로서 일종의 천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후에 광야에서 40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그 떠돌이 생활에 알맞도록 쳤다가 걷어가지고 다닐 수 있는 천막을 만들어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성막은 다른 여러 가지 이름, 즉 회막, 여호와의 전, 하나님의 집, 장막으로 불리어졌습니다. 이 성막이 성전의 모체요, 예배당의 전신입니다.
이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들로는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짠 천을 비롯하여, 염소 털, 수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 조각 목, 금. 은. 놋. 보석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성막의 구조를 보면 직사각형의 모양인데, 휘장으로 칸을 막아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했고, 성막을 중심하여 사방으로 마당(뜰)을 만들었는데, 마당 경계에는 기둥들을 세우고 빙 둘러 포장을 쳐서 울타리 구실을 하게 했습니다.
성막에는 예배에 필요한 여러 성물들이 있었는데, 성막 마당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고, 성소에는 떡상과 등대와 향단이 있고, 지성소에는 법괴와 그 위에 속죄소가 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번 씩 들어가서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렸고,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날마다 들어가서 분향하고, 성막 뜰에는 이스라엘의 일반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가서 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온 회중들은 성막과 거기에 필요한 성물들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예물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금으로 된 예물로는 가슴 핀, 귀고리, 가락지, 목걸이 같은 것을 드렸고, 그 외에 각종 실 , 은과 놋, 조각 목, 호마노와 보석들, 기름과 향품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린 예물들이 성막을 짓는데 충족했습니다. 36장에 보면, 가져온 예물들이 쓰기에 남음이 있었고,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는 이렇게 바쳐진 예물들을 손재주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맡겨서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그 중에 브사렐과 오홀리압 두 사람이 뛰어난 장인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정성을 다하여 성막과 성물들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대로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름이 성막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구름은 떠오르기도 했다가 또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앞으로 행진을 했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그냥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이 성막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렇게 구름과 불이 성막위에 머문 것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통하여 은혜와 축복을 내리시고, 백성들의 갈 길을 지시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번 11월 27일은 우리 수원교회가 설립 된지 만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수원교회라는 성막을 세우는 심정으로 본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다.
첫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성막을 위한 예물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성전을 드나들면서 성전과 관계되는 일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21절과 29절에 보면, 사람들은 성막에 필요한 예물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예물이 그렇습니다만, 성전을 짓고, 성전에 필요한 기물을 준비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선교비를지불하기 위하여 드리는 모든 예물은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결코 목사의 생활비를 위한 것도 아니요, 교역자들의 생계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예물은 철저히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물을 드릴 때 사람을 의식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얼마를 하니 나는 얼마를 해야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예물의 정신이 아닙니다. 그 아무개가 싫어서 예물을 드릴 수 없다는 것도 예물의 정신이 아닙니다. 많은 예물을 바쳤다고 자랑하는 것도 예물의 정신에 위배되고, 적은 예물을 바쳤다고 창피해하는 것도 예물의 정신에 위배됩니다. 우리의 예물은 많든지 적든지 수량에 구애 받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둘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의 예물은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예물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5:2에도 보면,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제물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7에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역대상 29:9에 보면,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위하여 모든 물자와 보물을 즐거이 드리고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도움을 준다 할지라도,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제 한다고 할 때에도 자칫 잘 못하면,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잔꾀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위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물은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에서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아까운 마음이나 억지로 하는 마음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물의 내용이나 양을 결정하기 전에는 다소 주저하기도 하고 망설일 수도 있으나, 그러나 결정한 이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셋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예물은 일심협력하여 다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36: 5절과 7절에 보면 백성들이 예물을 드린 결과가 나타나 있는데, 모두들 많이 가지고 와서 쓰기에 넉넉했고 남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막을 지을 당시 그 사람들의 형편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저들은 바로 얼마 전에 애굽에서 탈출한 피난민이 아닙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급히 나오느라고 빵에 누룩도 넣지 못하고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까? 물론 애굽 사람으로부터 은금 패물과 의복을 얻어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나 얼마 안가서 거의 다 소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막과 성물을 위하여 넘치도록 바쳤다는 것은, 저들이 일심협력하고 열성을 다 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고,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고,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비록 적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모이고 또 모이면 많은 것이 됩니다. 한 어린이가 예수님께 드린 보리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사람의 점심 밖에 안 되는 적은 것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예수님께 바쳐졌을 때에 5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니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일심으로 협력하고 최선을 다 하여 바침으로서,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풍족하고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고 남음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넷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각 사람이 드린 예물은 모두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 7장에 보면, 성막을 봉헌하던 날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족장들이 봉헌 예물을 드린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 족장들마다 드린 예물의 내용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나 각 족장들의 이름이 다 기록되었고, 예물의 내용들도 하나씩 하나씩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세밀한 생활과 봉사에도 관심하시고, 또한 우리의 모든 감사와 예물도 기억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자도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고 작은 것이라고 해서 소홀이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에서 유래된 말로 빈자일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는 가난한 자의 등 하나라는 뜻입니다. 4월 초파일이 되면 절에서는 등을 만들어 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큰 등을 여러 개 만들어 달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작은 등을 달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어떤 임금은 큰 등을 여러 개 만들어 달았는데도 불이 꺼져버렸고, 한 가난한 여인이 바친 작은 등은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난한 여인은 구차한 중에서도 정성껏 바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가난한 과부가 엽전 두 푼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이 과부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생활의 전부를 바칠 만큼 성의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예물은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뜻과 정성이 더욱 중요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은 성막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축복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40: 34- 38에 보면,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을 했더니, 그 때부터 구름이 성막을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안에 충만했습니다. 여기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 하겠습니까?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시고 성막을 통하여 은혜와 축복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막을 통하여 인간을 만나시고, 말씀하시고, 인간의 갈 길을 인도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허허 벌판 광야를 통과해야만 되었는데, 너무도 넓어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막에 머물렀던 구름과 불기둥은 저들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또 낮에는 구름이 뜨거운 햇빛을 가리어 주었고, 밤에는 불기둥이 추운 공기를 따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나라의 교육이 발전 된 것은 일찍부터 성막을 통하여 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만든 성막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바쳐 만든 성막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으나, 복은 백성들 자신과 그들 후손이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비밀이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높혀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은 더욱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피난생활 속에서도 성막을 짓고 성물을 만드는 성역에 일심협력하여 참여했던 것처럼, 저 옛날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해방 이후부터 6,25사변에 이르기까지 그 가난과 혼란과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성전을 세우고 성구를 구입하는 성역에 전심전력으로 참여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 성역에 참여하십시다. 특히 교회 설립 50주년 기념사업을 위하여 일심협력하여 참여 하십시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자리에 이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