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7: 36- 50)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시몬이라고 하는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아 가셨을 때에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비록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아 가셨지만 , 정중한 환영은 받으시지 못 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당시 유대인의 풍속에 의하면 손님이 어느 가정에 들어가면 먼저 주인이 문간에 서서 손님의 얼굴이나 손에 입을 맞추어 환영을 표시하고, 다음에는 하인들이 손님의 발을 씻겨주고, 그리고 손님이 연회석에 앉으면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4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이런 극진한 환영을 받으시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입을 맞추지도 않았고 발도 씻기지도 않았고 값싼 기름도 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그 연회석에서 예수님은 뜻밖에도 그 동네에 사는 이름 모를 한 여인으로부터 뜨거운 환영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37, 38절에 이 여인이 죄인이었다고 기록 한 것을 보면 , 이 여인의 신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이 어떤 죄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복음서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을 미루어 보면, 당시 이방 사회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매춘부, 쉽게 말해서 창녀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으니 예수님으로서는 다소 불명예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기괴한 일은 이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떨어지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를 풀어 머리털로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몸에 향유를 부었겠습니까? 그 이유가 본문에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 전체의 내용이나 전후 문맥을 보면 아마 이 여인이 과거 어느 때에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감화를 받아 회개하고 과거의 부끄러운 생활을 청산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네 죄가 용서 받았다는 사죄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시몬으로서는,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인의 행동을 그냥 두고만 보는 예수님이 못 마땅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저 예수가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인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리고 시몬은 비싼 향유를 허비하는 이 여인의 분별없는 행동도 비난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불편한 마음을 아시고, 한 비유를 들어 여인의 행동을 변호 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돈 놀이 하는 사람에게 두 사람이 빚을 졌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돈놀이 하는 사람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다. 그러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돈놀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겠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시몬은 대답했습니다. “더 많이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더 사랑하겠지요?”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 말씀하시고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극진한 사랑을 내게 보인 것은, 그 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이다. 적게 용서 받은 자는 적게 사랑 하느니라”
무슨 말씀이냐 하면, 과거 창녀와 같은 죄인으로 살았던 이 여인이 용서를 받은 것은 많은 빚을 탕감 받은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많은죄를 용서 받은 이 여인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예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발에다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이 모든 행위가 자신의 큰 죄를 용서 받은데 대한 사랑과 감사의 표시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빚을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첫째로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도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일생을 두고 갚고 또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그게 무슨 빚입니까? 그것은 바로 죄라는 빚입니다. 영어로는 빚이라는 단어와 죄라는 단어가 같습니다. debt이라는 단어는 빚이라는 뜻도 있고 죄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나 사람에게 지은 죄는 여러분이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보시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여러분, 창녀만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도 다 죄인입니다. 우리도 음녀와 같은 죄인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물욕과 정욕을 따라 살던 자 들입니다. 우리도 배를 신으로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하던 자들입니다. 우리도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자들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멸망 할 자들이요 지옥의 자식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죄가 주홍과 같고 진홍과 같이 붉을지라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 그리고 예수를 우리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씻어 주십니다.
우리도 눈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둘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도 눈물의 제사를 드리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이 여인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었습니다. 이 여인이 흘린 눈물은 지난날 그의 죄에 대한 깊은 참회의 눈물이요, 동시에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망극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과거 이 여인의 눈은 죄가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눈은 남성들을 보고 음욕을 품게 되었고, 그의 눈은 남성들을 유인하는 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눈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눈물의 샘이 되었습니다. 그의 죄에 대한 참회의 눈물은 예수님의 발을 적실 정도로 강물과 같이 흘러 넘쳤습니다.
여러분! 이런 참회의 눈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시편51:17에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마음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한 심령과 참회의 눈물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감사의 눈물도 바쳐야 합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그의 죄에 대한 참회와 함께, 더 나아가 자기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사람으로 대접해 주시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뜨거운 사랑 앞에서는 감사의 눈물을 쏟는 것입니다. 이 눈물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눈물이요, 받은바 은혜를 잊지 못하는 감격의 눈물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크신 은혜로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의 백성이 되었으니 날마다 감사의 눈물을 드립시다.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며 헌신합시다.
본문을 통해 셋째로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자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여인은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과거에 아름답게 땋아 장식했던 머리였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발을 씻는 수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머리를 얼마나 정성껏 손질하고 가꾸십니까? 고데와 퍼머를하고, 기름을 바르고 예쁜 장식을 하지 않습니까? 혹시 누가 잘못하여 머리카락이 조금 헝클어지면 얼마나 기분 나빠 하십니까? 과거 매춘부로서 살았던 이 여인이 얼마나 머리를 아름답게 꾸몄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발을 씻는 걸레로 삼았습니다. 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며, 헌신하는 표현입니까? 자신의 귀중한 것 전부를 바치는 정성이요 사랑이요 헌신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당시 사람들은 손님에게 사랑과 환영의 표시로 손이나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손도 아닌 발에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낮추는 겸비의 행동이며 동시에 주님을 위해서는 가장 비천한 일도 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발에다 입을 맞추는 것은 사랑과 헌신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나는 당신의 종으로서 당신을 영원히 섬기겠다는 결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도 이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존경과 환영과 헌신의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내 머리털도 아끼지 아니하며, 주님을 위해서는 가장 비천한 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귀중한 예물을 주님께 봉헌 합시다.
본문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도 귀중한 예물을 주님께 봉헌하자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발에 입을 맞춘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향유가 얼마나 귀중하고 값비싼 것이냐 하면 서민들은 전혀 사용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베다니 가정의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때, 가롯 유다는 이것을 팔면 300데나리온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과 같은 액수이니,300데나리온은 노동자 1년치 품삯과 같은 액수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있어서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최상 최고의 것을 예수님께 드리려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서만 머무는 감사는 반신불수와 같습니다. 입술에만 붙은 감사는 얄미운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에는 예물도 따라야 합니다. 예물을 바치되 최상, 최고의 것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마음만으로서 말 만으로서만 사랑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 하셨습니다. 우리의 감사도 생각과 말로서만은 부족합니다. 우리의 예물을 바치고 우리의 몸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의 최상최고의 것을 바쳐야 합니다.
왜 우리가 최상최고의 것으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도 큰 빚을 탕감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두고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주님께서 대신 갚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는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혹시 바리새인 시몬과 같이 예수님을 푸대접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은 했으나 정중하게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볼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고,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값싼 감람유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 자처했고, 세상적인 견문과 지식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을 냉대했고 ,보통사람들이 하는 환영이나 대접도 안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상식과 지식도 갖추고, 교회 안에서도 알만한 것은 아는 사람 중에 의외로 가슴이 차갑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뜨거운 봉사와 헌신도 비난합니다. 왜 예산은 그렇게 많이 세우며, 왜 최상최고의 것으로 해야 하느냐고 비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십시다. 우리의 죄를 탕감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눈물의 회개와 눈물의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기고 발에 입을 맞출 수 있는 사랑과 헌신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최상최고의 것으로 주님께 예물을 드려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