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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석

평화의 나라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56 14년전 5731  

(본문: 이사야32:16- 20)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사변이 일어난 지도 벌써 46년, 휴전협정이 맺어진지도 벌써 4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같은 동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며, 군비경쟁과 전쟁준비에 국력을 쏟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때 보도된 바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과거 일본에 투하 되었던 원자 폭탄의 1750배에 해당하는 1020여개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국이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배치하니까 여기에 위협을 느낀 소련 또한 지지 않으려고, SS-20이라는 핵미사일을 배치하여 우리나라에 있는 핵 기지를 공격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북한은 일찍부터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여 벌써 한국, 일본을 공격 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몇 기 소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고 , 그리고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경수로 협상이라는 것도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을 못하게 하고 대신 우리나라와 서방국가들이 북한 경제를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북한이 흉년으로 고생은 하지만, 그러나 전쟁무기  개발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남한도 국방예산이 전체예산의 3분의 1이 된다고 하니, 무기의 양이나 성능이 무시 못 할 수준에 있다고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우리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16억 7천 7백만 달러어치의 재래식 무기를 사들여 세계 2위의 무기 수입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무기들이 다 사용 된다고 하면, 그 때는 북한이고 남한이고 간에 온통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현재 북한의 동포들이 공산정권하에서 탄압과 학대를 받는 것은 물론이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에서 마저도 갈등과 알력, 데모와 화염병, 파업과 쟁의가 계속되고 있으니 어찌 서글프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불안과 전운과 위기가 감도는 이 땅에 언제평화가 찾아  오겠습니까?  입으로는 군비축소를 외치나 뒤로는 비밀리에 전쟁준비에 바쁘고, 평화를 빙자하여 전쟁을 일삼는 이 땅에 언제 평안과 안전이 찾아오겠습니까? 말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당에, 언제 우리에게 평화적인 통일이 오겠습니까?

 

  기독교에 있어 평화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평화의 문제는 오랜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인류의 희망과 소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스신화에는 제우수의 딸 에이레네 라는 평화의 여신이 있었고, 로마신화에도 팍스라는 평화의 여신이 있어 추앙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인사 중에 안녕이라는 말은 바로 평화와 같은 의미요, 유대인들의 인사 샬롬 이라는 말도 평화를 의미 합니다.

특히 기독교에 있어서 평화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의 노래 제목은 영광과 평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간에게는 평화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는 평화의 중심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고 ,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 14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 평화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9에 보면 ,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팔복 중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화평케 하는 자는 글자 그대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인데, 어떤 복을 받느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단순히 마음의 고요와 평안만 얻고 안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사이에 평화를 만들고 화목한 관계를 창조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을 사는 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까? 오늘 대립과 갈등, 탄압과 저항, 분규와 전쟁이 있는 우리의 사회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어떻게 평화운동을 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은 평화를 가져오는데 중요한 지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몇 절 안 되는 짧은 말씀이지만, 그 내용 전체가  평화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18절에는 “내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했고, 20절에는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은 너희는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농촌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기름진 들판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가고, 목동들은 소와 나귀를 몰고 가며, 산 밑에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어 사람들이 쉬고 즐기고 있으니 이 얼마나 평화로운 광경입니까? 조금 고급스러운 문자를 쓴다면 , 참으로 목가적인 평화입니다.  내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다고 한 것은, 충분한 휴식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여러분은 이 아름다운 평화를 만드는 비결을 발견 할 것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은 평화를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설명을 드린다면, 장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때가 되면, 광야와 같고 밭과 같은 세상에 공평과 정의가 실현될 것이고,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면 평화와 태평성대가 오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공동번역성서에는 17절을 이렇게 번역 했습니다. “정의는 평화를 가져오고, 법은 영원한 태평성대를 이루리라.”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 할 것은 “정의가 평화를 가져오고, 정의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가져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과 같은 뜻을 가진 말씀으로 시편85:10에 보면“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했고, 13절에는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 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 가리라”했습니다.

 

평화의 비결은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듣는 것은, 평화의 비결은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화의 대전제는 정의실현입니다. 정의가 먼저 걸어가야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 갑니다. 그러므로 정의가 짓밟히는 곳에서는 평화가 깨어집니다.

우리는 평화 무엇이냐고 할 때 일반적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쟁 없는 상태가 곧 평화는 아닙니다. 아무리 전쟁이 없을지라도 그 사회에 공평과 정의가 시행되지 못하여 대립과 갈등이 있고 탄압과 저항이 일어난다면, 거기는 벌써 평화가 깨어진 상태입니다. 전쟁은 평화를 깨뜨리는 하나의 요인입니다만, 그러나 그 전부는 아닙니다. 전쟁 말고도 평화를 파괴하는 기본적인 요인은 정의를 짓밟는 것입니다. 실은 전쟁도 국제적인 정의를 짓밟은 결과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와 같은 성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에 평화를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려서 정의가 평화를 가져오고, 정의의 발자취를 평화가 따라간다는 성서적인 관점에서 볼 때 ,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나라에 평화를 가져오려면 첫째로 정치적인 부면에서 정의를 실현시켜야 합니다. 정치적인 안정은 나라를 평화롭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불안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정치가 악순환을 반복하고 불안이 계속되어 왔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현장에서 정의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무엇입니까? 정의란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계속 집권당에서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도 제일 큰 권력을 가진 자가 지명하면 될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수도 언제나 여당이 많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불공평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문민정부와 함께 이런 악법이 개정되고, 지금은 검찰과 경찰의 중립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어 평화의 나라가 되도록 우리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나라가 평화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도 정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옛날 선지자 이사야는 부의 독점과 편재를 비판하고 경제 분야의 비정의를 지적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부익부 빈익빈의 심한 격차를 가져왔고, 이 때문에 대립과 갈등, 데모와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농어민과 막 노동자들의 탄식과 절규가 점점 높아 가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못사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소득분배의 균등화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나라 경제계에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음을 의미 합니다. 정의는 공정한 분배에서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분배정의가 실현되어 모든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합니다.

 

평화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과 봉사를 실천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평화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두 사랑과 봉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평화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44)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는, 강도 만난 사람, 특히 알지도 못하고 원수관계에 있는 다른 민족까지 구해 주는 아름다운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사셨고,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권면하기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고 , 네 원수라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했습니다.(롬12:18. 20)

오늘날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세계적인 기구 하나는 국제 적십자입니다. 국제 적십자는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전쟁이나 지진이나 수해나 내란이 있을 때에 가서 도와줍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단체를 만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는 스위스 제네바의 한 평신도, 30세의 청년 뒤낭입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국경, 종교, 국적을 초월하여 부상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실업인 변호사 , 목사, 의사, 퇴역군인 등 다섯 사람이 이 단체를 조직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구가 커져서 지금은 스위스 국가 예산보다 더 많은 예산을 가지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기본정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의 정신에 입각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북한 주민의 가난과 굶주림의 소식을 듣고 묘한 감정에 빠져 있습니다. 저들의 처참한 처지를 생각하면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과거의 잔악한 행동과 지금의 얄미운 행동을 생각하면 그냥 굶어 죽도록 두고 싶은 생각입니다. 실제로 지방자치 단체 투표 때에는 북한을 도운 사람들이 표를 잃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도 사랑을 설교하는 목사이면서도 한 때 북한을 돕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협상에 임하는 북한 지도자들의 억지 주장들 때문이요, 그리고 그냥 두면 북한체제가 빨리 붕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생각은 잘못 되었다고 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정신에 위배되고, 적십자사 정신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를 보면 서독은 우리보다 훨씬 부한 나라이지만 못 사는 동독과 갑작스럽게 합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을 도와 경제를 발전시킨  뒤 어느 때에 가서 통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 평화의 사절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대립과 갈등, 탄압과 저항, 소요와 전쟁이 끊임없는 이 땅에 평화의 사도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면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여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움과 적대감과 복수심으로 가득한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여 평화의 나라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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