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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석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57 14년전 8333  

(본문: 히브리서 4: 12-13)

 


12월 둘째 주일 성서주일을 앞두고 오늘 우리는 성서에 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책 중의 하나가 참서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참서란 사람이나 나라의 앞일을 미리 말하고 점치는 책입니다. 가령 점성술이나 운명 학에 관한 책들, 토정비결이나 정감록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많이 사보는 독자층은 의외로 고등학생들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점쟁이나 무당도 해마다 늘어나서 전국적으로 약 50만 명이나 되리라고 추산합니다. 구정이나 입시철이 되면 문복 가들의 집이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은 명예퇴직자들이 많이 찾아간다고 합니다.

본래 참서는 사회가 혼란하고 나라가 불안 할 때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사회도 건전한 사회가 못 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책들이 국민의 의식 특히 젊은이들의 의식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더욱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서가 일반적으로 국민의식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성실하게 노력해서 개척하기 보다는, 운명이나 팔자  소관에 맡기고 어떤 기적이나 요행으로 한 몫 잡아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우리의 국민성 중에 가장 나쁜 불성실과 요행 심을 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는 요소들이 많지만, 책의 영향은 실로 지대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그들의 사상이 달라지고 생활양식이 달라집니다.  불교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 책들의 영향을 받고, 유교에 관한 서적을 읽는 사람들은 그 책들의 영향을 받고, 기독교에 관한 서적을 읽는 사람들은 그 책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역시 그 책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가끔 숫자를 보게 되면 미신적인 생각에 붙잡힐 때가 있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27번과 28번이 비어있으면 27번에 넣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와 7을 합하면 9가 되는데 , 노름방에서는 9를 갑오라고 해서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름방에 가지도 않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수에 구애를 받지 않고, 수를 따지는 것은 비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인습의 영향을 받아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신적인 생각에 기울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4자를 싫어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책이 주는 영향은 이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입니다.

땅콩박사로 유명한 미국의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흑인으로서는 제일 처음으로 국회에 나가서 자기가 연구한 것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는 땅콩과 고구마를 가지고 수백 가지의 음식물과 생활필수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을 때 모든 국회의원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국회의원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박사께서는 그 모든 것을 어디서 배우셨습니까?”카버 박사는 대답했습니다. “책에서 배웠습니다.” “어떤 책에서 배우셨습니까?” 하고 또 물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책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이 만물을 다 이용하라고 우리에게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겸손한 심정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실천하면, 우리의 영혼이 생명의 양식을 얻는 것은 물론이요, 땅에서 필요한 온갖 귀한 보화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육하는 사람도 성서를 읽고 이 책에서 교육이념을 끌어와야  하고, 정치하는 사람도 이 책에서 정강정책을 끌어와야 하고, 사업하는 사람도 이 책에서 사업의 목표와 원리를 배워야 하고, 공무원이나 노동자도 이 책에서 성실과 봉사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고, 그래야 서로 믿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과 그 역할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첫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성서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했습니다. 성서는 겉으로 보아서는 다른 종류의 책들과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글자가 신들이 쓰는 글자이거나 신의 손가락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만든 종이도 다른 책들과 다름이 없고, 성경에 기록된 글자도 사람들이 만든 문자와 꼭 같습니다.

이 성경의 내용을 보면, 그 속에는 역사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시도 있고, 교훈도 있고, 격언도 있고, 심지어 연애 이야기, 간음에 관한 이야기, 전쟁과 살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추악한 내용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이하에 보면“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21에도 보면“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쓴 것이고, 성경은 인간을 바르게 교육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둘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이 말씀이 어떤 생명체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동시에 그 말씀자체가 생명적인 활동을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그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요, 세상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그의 생명이 깃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씀을 통하여 생명의 활동이 일어납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한 골짜기에 해골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더니, 그 많은 해골들이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생기가 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서, 죽은  것들을 살리시고 새로운 힘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한 개인에게 임할 때, 그가 영적으로 살아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로 얼룩진 과거생활을 청산하고 새 사람 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사기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 마음을 고치고, 깡패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 행실을 고치고, 살인강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회개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각 사람의 인격과 사상과 삶의 자세를 변화시킵니다.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실제 살아있는 인물로서, 그는 배운 것도 없이 인생의 밑바닥을 거닐며 온갖 미운 짓과 난폭한 짓과 추악한 짓을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지금은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상영된바 있는 벤허라는 영화는, 그 내용이 주로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의 대본이 되는 소설을 쓴 사람은 본래 기독교를 반대하던 미국의 군대장관 웰레스라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의 친구요, 무신론자인 잉거솔의 권유를 받아, 기독교를 반대하는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적을 알기위하여 성서를 읽다가, 그는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마침내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셋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행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가지고 그 힘을 행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운동력이란 활동력이나 힘을 말합니다. 에네르기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역사에 심판을 가져오고, 구원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고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갑니다.

과거 유신시대와 군사정권시대에 적은 수의 교회지만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공격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운동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잘 못 되어 가는 역사를 심판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운동력이 있는지, 우리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생각과 뜻과 정신을 속속들이 심판하고 수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격, 우리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우리가 비밀히 간직하고 있는 것까지, 예리하게 심판하고 찔러주고 쪼개준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고, 그리고 이 말씀 앞에는 모든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의 죄를 위장하고 숨기려 해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다 드러나고야 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설교를 듣다가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 목사가 내 비밀을 말할까? 왜, 저 분이 내 사생활을 알고 비난할까? 누가 내 마음을 목사에게 일러 바쳤을까?  등등의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정말 오해입니다. 설교자는 누구의 비밀을 알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전한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 같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심령골수를 찌르고 쪼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설교자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죄를 지적 할 때에, 누가 내 비밀을 알렸구나 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해야 합니다. 설교는 귀에 즐거운 말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죄를 지적받고 마음에 찔림을 받기 위하여 듣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찔림을 받고서도 회개치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많은 믿는 이들 가운데, 그 마음이 완악하고 패역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반대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살고 정당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른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합니다. 예레미야 36장에 보면, 예레미야의 예언을 바룩이 적어 왕 앞에서 읽었더니, 당시 유다의 여호야김 왕은 그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베어 화롯불에 태우고, 예레미야는 옥에 가두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같이 훌륭한 예언자를 감옥에 가두고,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의 말씀은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왕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를 보더라도 불의한 세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주의 종들을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자신도 고요히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많지만, 말씀의 선물이상 더 좋은 선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고, 행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고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 깊이까지 예리하게 심판하시고 찔러 쪼개십니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인도의 한 지도자는 어떤 선교사를 보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정말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면, 인도를 5년 안에 정복 할 것이다.” 이 말은 선교사들이 성경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빈정거림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성경말씀대로 살면 우리 이웃들을 복음으로 정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배우고 묵상하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떡은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들어야 배부르게 됩니다.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집어넣어야 짭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책꽂이에 꽂아만 두거나 선반에 얹어만 두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우리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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