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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이 사람을 와서 보라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0-11-27 (토) 12:20 14년전 3327  

제목 :이 사람을 와서 보라.

요한4:27-30, 행22:3-15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미국 사람들은 경제가 잘 나가던 클린턴 대통령 때를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저는 미국 제42대 클린턴 대통령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 백악관에 처음 부임하던 날 “색소폰을 불었다”고 합니다. 그가 왜 가장 좋은 날 색소폰을 불었을까요? 클린턴은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중장비 외판원이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유복자로 태어나기 3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를 친정아버지에게 맡기고 간호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청과물 장사를 하던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클린턴이 네 살 되던 해 간호사가 되어 돌아온 어머니는 로저 클린턴과 재혼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계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구타하고, 어린 클린턴을 학대했습니다. 결국 클린턴이 열다섯 살 되던 해 어머니와 계부는 헤어졌습니다. “클린턴은 가슴을 에이는 고통과 우라통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색소폰을 불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고 해요. 그가 토해낸 색소폰 소리야말로 자신의 눈물이자, 한숨이며, 탄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영광이 된 것입니다. 클린턴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색소폰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거센 파도가 일 때마다 제 마음을 안정시켜 해주었습니다. 그 때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인생의 힘이자, 길잡이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삶의 메시지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이 사람을 와 보시오. 이는 그리스도가 아닙니까?”(요4:29) 이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 그동안 행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섯 번 결혼했다가 다섯 번 실패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니,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참으로 모질고 사나운 팔자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욕스런 과거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기를 펴지도 못한 채 숨어서 살아야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이 주님을 만나고 이렇게 변한 것입니다. 그녀의 치욕스럽고, 눈물겨웠던 과거의 아픔은 주님을 만나자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총이었습니다. 상처는 치료받기 전에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일단 치료받게 되면 영광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행한 과거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신 이 분을 와 보시오, 그가 나를 이렇게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삶의 메시지입니까? 이 여인의 삶의 메시지 속에는 거룩한 열정이, 구원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그가 행하신 그 위대한 역사를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믿는 사람들을 보물창고가 되게 하십니다. 믿습니까? 믿는 자들의 삶의 고백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곧 복음입니다. 바울 사도를 보십시오. 지금 바울은 일생일대의 위험한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고 오해를 한 것입니다. 분노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성전 밖으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보고를 받고 급히 달려온 로마 장교 천부장에 의해서 구출되었습니다.

그 때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성난 군중들이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이를 갈며, 죽이려고 성난 이리떼처럼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바울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의 손에 맞아 죽어도 좋습니다. 허나 내 말을 들어 보시오”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정말 놀랍지가 않습니까? 그 절대 절명의 순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삶의 메시지였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요.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증인이 되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소. 아마 여러분들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안 했을 거요. 그런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렇게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소.” 바울은 최후의 순간에 간증을 한 것입니다.

저도 간증할 일이 꽤 많은 사람입니다. 제 인생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는 신학교 1학년 때로 기억이 됩니다. 첫 학기 입학금과 등록금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당장 다음 달 기숙사 식비를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4시간 씩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특히 외국어 공부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저는 영어만 따라가기도 힘든데, 독일어까지 공부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치명타를 가한 것은 악성축농증에 시달리는 일이었습니다. 도저히 공부를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3개월을 버티다가 첫 학기를 끝내지도 못한 채, 학업을 포기하고 낙향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이었습니다. 채플 실에서 기도하다가 가슴이 터지려 하는데 견딜 수가 없어서, 실성한 사람처럼 채플 실 4층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찬송가를 서너 곡 부르다가 지쳐버린 나는 힘없이 백운대를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인수봉 서북쪽에 두 바위가 꼭 독수리 한 쌍의 모양을 하고 서있는데, 그 바위가 제 가슴을 내리쳤습니다. “나는 돌덩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 천, 수 만년 이렇게 변함없이 서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만물의 영장이 아닌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복음의 증거자로 일생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신학생이 된 네가 3개월 만에 그렇게도 비참하게 무너진단 말이냐? 저는 그 순간 백운대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 주님,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잠깐 기도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습니다.” 신기한 일은 이 체험 후에 축농증은 오간 데 없었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대학원까지 계속 6년 동안 공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저를 교단의 부총회장이 되게 해서 백운대 독수리 바위가 가장 선명하게 바라보이는 대지 1만 평이나 되는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를 저를 통해서 우리 교단의 것이 되게 하신 일입니다. 은행 감정가 270억이나 되는 부동산을 절반 가격도 안 되는 120억에 사게 하신 거예요. 이 크리스챤 아카데미 하우스는 경영난으로 서울시가 10월 15일 이 후에 인수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제가 알게 된 것은 10월 5일이었습니다. 10일만 늦었어도 서울시로 넘어갈 아카데미 하우스를, 하나님께서는 절묘하게도 우리 교단이 사도록 역사 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총회장이 된 이후 줄곧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총회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백운데 독수리 바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감을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메시지 속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삶의 에너지와 생명의 역동성, 교훈으로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실패 속에도 있고, 성공 속에도 있습니다. 자기 삶의 메시지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의 메시지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는 사람은 더욱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삶의 메시지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마11:28-30)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 믿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무거운 짐입니까? 진리를 깨닫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었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쉽고, 가벼워 진 것은 아닙니다. 특히 목사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교인을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도, 가벼운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이요, 위로요, 신명나는 일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도 좋은 사람이 있고, 싫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편한 사람이 있고, 거북하고, 대하기 힘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은 어느 날부터인가 모든 사람이 다 좋아진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편해진 거예요.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내가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모든 사람이 좋아지고, 모든 사람이 편해져요. 밉거나 싫은 사람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공해도 기쁘고 실패해도 기뻐요. 성공하면 잘 되어서 기쁘고, 실패하면 주님의 위로와 상급을 받게 되니 기뻐요.

일을 사랑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을 애정을 가지고 대해 보세요. 쉽고, 가벼워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100이라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 힘은 하루에 48시간을 일해도 남을 만큼 큰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슬프게도 이 힘을 다 빼앗겨 버리고, 자기를 위해서는 절반도 채 못 쓴단 말입니다. 염려와 걱정이 빼앗아 갑니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빼앗아갑니다. 의심과 불신, 분 냄과 증오가 빼앗아갑니다. 시기와 질투가 빼앗아갑니다.

언제 힘이 생깁니까? 평안할 때, 기쁠 때, 사랑할 때 힘이 생겨요. 언제 그렇게 됩니까?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을 만날 때, 주님의 말씀이 깨달아 질 때, 성령의 은사가 임할 때, 믿음이 생기고, 사랑이 불붙게 됩니다. 이때는 일이 고역이 아니라 신명이요, 신바람입니다. 놀이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내 인생이 쉽고, 가벼워지는 거예요.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엄청난 일을 하고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지칠 줄 모릅니다. 믿는 사람들의 삶의 메시지 속에는 이웃과 함께 나눌 거룩한 열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항상 거룩한 불이 타고 있습니다.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다”( 시69:9)고 말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고 말합니다. 신앙은 열정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남강 이승훈 선생은 3.1운동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도 다른 사람 모양으로 아랫목에서 흥흥 앓다가 우는 자손에 치어서 그렇게 갈 줄 알았더니, 이제 내 죽을 자리를 찾았다.”며 크게 반겼습니다. 선생님은 성경에서 하나님 사랑과 민족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재산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내놓고 사셨던 분입니다. 선생님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끌려와 마음이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보게 되면, “여보게들! 우리가 본래 처음부터 죽을 각오를 하고 여기에 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러는 가? 우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네.” 이렇게 격려해주었습니다.

일찍이 서양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겁이 많고 나약한 민족으로 알았다가, 3.1운동을 겪으면서 세계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용기와 자제력이 있는 국민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3.1절 이후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지성인들까지 어두운 시기에 빛을 찾아 교회로, 교회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시련을 이겨낼 힘을, 기독교 신앙에서 찾았습니다. 기독교가 어두운 우리 사회에 빛을 준 것입니다.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후로 기독교는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한 때 개신교만 그리스도인이 1,000만을 넘었습니다.

그런 기독교가 근자에 와서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3.1운동 당시30만도 안 되는 작은 수로 전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일제의 위협이 될 만큼 강력한 젊은 사자 같았는데, 지금은 이빨 빠진 늙은 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가 부유해지고 세력화 되면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속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 36주년 창립주일에는 우리 자녀들부터 인도해야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가문을 이루는 꿈을 꼭 성취합시다. 한 사람씩 전도합시다.

우리는 색소폰을 불면서 고난의 세월을 삭혀내며 희망을 키웠던 클린턴의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해야하겠습니다. “나를 변화시켜 새 사람 되게 한 이 사람을 와 보라,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그리스도를 증거 했던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의 선교의 열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님처럼, 하나님 사랑과 나라와 민족 사랑을 위해 자신을 하나님의 제단에 불살라 받쳤던 그 숭고한 희생정신, 순교자정신을 계승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구원하고, 축복하는 기독교로 거듭나게 합시다.( 2010/11/28)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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