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땅을 팔아 희망을 사라
렘 32:6-15, 롬 15:11-13
당대에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절망의 순간은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벼랑 끝에 몰린 적들이 연합해서 총공세를 해오는데, 수적으로나 전술적으로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대왕은 모든 보물창고와 금고, 곡간을 활짝 열어 수하 장수들에게 전부 나누어주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최후의 순간이 오자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부하들의 충성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바쳐 싸워야할 희망을 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은 유대 민족사의 희망의 끝, 그 희망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때는 주전 587년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미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겹겹이 포위 되어 있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심판을 예언하다가 시위대 감옥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 와서 “내 밭을 사라”는 거예요. 당시에 전답은 아무에게나 팔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팔 수 있는 사람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허지만, 그것은 지나친 요구였습니다. 나라를 잃게 될 것이 확실한데, 나라를 빼앗기게 되면 모두가 종으로 끌려갈 것인데, 전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는 비싼 값을 치루고 이 밭을 삽니다. 왜 그렇게 한 것입니까?
13년 전 우리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가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던 날, 신문들은 일제히 그 날을 ‘경제 국치일’로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그 날부터 우리나라는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되었으니까요. 일만$ 소득을 자랑하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득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숱한 기업들, 금융기관들이 무너지고, 대 재벌이 해체되어 갔습니다. 200만이 넘는 실업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경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 분야가 어느 것 하나 바르게 서 있는 것이 없었고, 모두가 불실이요, 거품이었습니다. 이 나라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희망을 사라, 지금이 희망을 사야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을 내다 팔아 희망을 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절망의 순간에 어떻게 희망을 살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숙부 살롬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너를 위해 그 밭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시대가 어려워지고, 역사가 기울게 되면 민심은 하루아침에 돌변하게 됩니다. 유언비어가 난무합니다.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던 날, $값은 천상부지로 뛰어 올랐고, 외국으로 $를 빼돌리는 재벌, 서둘러 이민을 떠나려는 사람들, 이제 나라가 망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매물이 태산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 누구도 사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전 재산을 주고 필요하지도 안은 땅을 산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백성들의 시선은 한 사람,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국란을 핑계로 자신의 의무를 저버릴 것인가? 그러면 세상은 다 끝나버립니다. 백성들은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밭을 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크게 흔들리던 백성들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쉽게 망하지는 안는가 보다, 설령 망한다 하더라도, 곧 회복되겠구나!”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밭 값으로 은 17세겔을 달아주면서 증인까지 세웠습니다. 증인들과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백성 앞에서 매매계약을 공개적으로 체결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일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너희가 제아무리 어려워도 형제에 대한 의무만은 다 해야 한다. 나라가 망할 것인데 땅은 사서 무엇 하느냐?고 비웃을는지 모르다. 낙심하지 말거라. 곧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희망의 날은 찾아 올 것이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절망에 우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희망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야하겠습니다.
둘째로 예레미야가 이 절망의 때에 밭을 산 것은 자기 자신보다 나라와 민족 공동체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가 어려워지면, 절망의 때가 찾아오면, 서로 자기 먼저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나 하나 죽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에서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 그것이 기업이든, 국가든, 다 내팽개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서로가 나만 살겠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입니까? 몸이 살아야 발도 살고, 손도 사는 것이지, 몸이 죽는데 어떻게 손이 살고, 발이 살 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가 사촌의 밭을 왜 산 것입니까? 이스라엘민족 공동체를 생각해서 산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다고 해서 무너질 나라가 안 무너지겠습니까? 나라는 무너진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신앙까지 무너져서는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 살릴 수 있다면, 나라가 망해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까지 죽어버리면, 그 때는 민족이고, 나라고 다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신앙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네 처지가 제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곤경에 처한 형제의 요구를 물리쳐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예레미야는 사촌의 밭을 샀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신앙이 결국 광풍 앞에 꺼져가는 백성들의 마음에 신앙의 불을 지펴주었고, 그 신앙의 힘이 결국에는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웁니다.
셋째로 예레미야가 절망의 때 밭을 산 것은 절망을 넘어 동터올 새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민족, 국가에도 절망의 때는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이 온다 해서, 그 절망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절망의 때는 지나고, 반드시 희망의 날이 밝아옵니다. 신앙인들은 그 날을 보장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절망의 날에도 밭을 살 수 있고, 전쟁의 소식을 듣고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지금 세계는 큰 불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2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대란은 유럽 전체를 경제침체의 늪 속에 빠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을 IMF 정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금년에는 세계 7대 수출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 저력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우리 국민들은 195,60년대 벌거숭이 산, 청계천 판자촌, 보리 고개로 상징되는 극난한 빈곤으로 허덕이며 살아야했습니다.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식을 많이 낳아 양육했습니다. 소를 팔고, 땅을 팔아 대학을 보냈습니다. 당시 소나 전답은 가난한 농부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 땅을 팔아 희망을 산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민족은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1.2%대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입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믿고 따를 지도자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나라와 민족 공동체는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탐욕에 빠져 기회만 있으면 투기 열풍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투기가 전국을 휩쓸더니 금년에는 주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 주가가 400포인트나 급등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탐욕 때문에 불필요한 주택난을 겪어야 하고, 이들의 무절제한 욕심 때문에 전국이 땅 튀기장이 되더니, 이제 주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햇빛정책이 퍼주기라고 비난하며, 햇빛정책을 포기하더니 급기야는 천한함 사건이 일어나고, 평화롭던 연평도가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해마다 북한보다 10배나 더 많은 막대한 국방비를 쓰고도 미국이 아니면 나라를 지킬 수가 없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남과 북이 전쟁을 하면 우리는 망합니다. 우리가 북한과 싸우지 않고 민족이 함께 공생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힘들지만, 함께 찾아가야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땅을 팔아 희망을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IMF이후 계속 심화되어 가는 양극화 문제, 임시직, 일용직 근로자, 특히 청년실업문제가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위기는 다수의 서민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일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예레미야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땅을 팔아 희망을 사야하겠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치룰 때, 올림픽 상황이 보도 되면서 미국의 TV들은 한 영웅적 스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리피스 조이너 (Griffith Joyner)라는 흑인 여성 말입니다. 그녀는 육상 선수로써 금메달 3개와 은메달 한 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가 방송망을 타고 소개 되었습니다. 본래 그녀는 로스안젤레스 남쪽의 빈민가에서 11명의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끼니 잇기가 어려워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살아가는 소녀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언제나 친구들을 피하여 구석에서 우울증에 걸린 소녀처럼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결정적인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당시 흑인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권투 챔피언 슈거레이 (Suger Ray)가 조이너의 학급에 와서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끝내고 가장 우울해 보이는 조이너에게 가까이 가서 “얘야, 너 어디 아프니”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다 싫어요. 나는 집도 싫고, 학교도 싫어요.”하고 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슈거레이는 그 소녀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너, 좋아하는 것 없니?”하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조이너는 눈을 반짝이면서 “저는 뛰는 것은 좋아해요”하고 말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서 뛰어 보아라, 너도 나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어. 꿈을 가진 자가 부자란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꼭 쥐어 주었습니다.
슈거레이의 이 애정 어린 한 마디 말이 이 어린 소녀의 인생의 하늘에 별이 떠오르게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88서울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고, 지금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하나로 맹렬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를 않습니까? 우리가 희망을 가지게 되면,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꿈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역사의 산 증인들이 아닙니까? 13년 전 우리나라가 IMF 국란에 처했을 때, 전 국민이 참여한 금모으기 운동은 절망을 이겨내겠다는 민족의지의 강렬한 표현이었습니다. 그 후 11년 만에 찾아온 금융대란도 우리는 훌륭하게 극복해내고 이제 세계 7대 수출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꿈을 가지십시오. 지금은 북한과 서로 싸우고 있지만 머지않아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의 국군이 한 막사에서 잠을 자며,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북한 땅을 경유해서 중국과 러시아로, 아프리카와 유럽대륙으로 내달리는 고속전철 시대의 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FTA가 두렵고 초조하게 느껴지겠지만, 머지않아 세계를 우리들의 활동무대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세계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 길읍시다. 그 아이들은 우리민족의 미래가 되고, 희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혹 절망의 순간이 온다 해도 결코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솟구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절망의 끝에서 땅을 팔아 희망을 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절망의 순간 부하들의 충성심을 샀습니다. 절망의 날에 희망을 사세요.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