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 국제 엠네스티 한국위원회 창립사 전문
우리 인생은 광막한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우주가 너무 넓고 크기 때문에 그 크기에 현혹해서 육척단신의 인간은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만도 못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 또 인간들끼리도 어떤 한 인간이 生殺與奪의 권리를 가지면, 자기 이외의 인간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기 때문에 인간을 가축이나 재산 같이 생각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 안에 있으면서도 그 광막한 우주를 초월하여, 그것을 밖에서 관조하고, 인지하고, 계산하고, 의미를 캐고 하는 데서 인간의 존엄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끼리 어떤 권력자가 여타 인간을 무시한다 할지라도, 무시당하는 인간이 그것을 알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 무시하는 권력자를 심판하고 있다는 데에 인간의 두려움이 있다.
인간의 良心과 良知는 인간의 至聖所이다.
그런데 무지한 권력이나 제도가 그것을 짓밟고 더럽히고 거룩한 고장을 불의한 피흘림으로 오염시킨다면 그것은 몸서리치는 저주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앰네스티 인터내쇼날은 이 지구 위에서 인간이 자아의 지성소를 지키고 인간이 양심과 양지에 억울함을 품는 일이 없도록 정의를 구현시키고 폭력 아닌 호소와 설득으로 인간존엄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이다.
지금 인간이 물건 같이 다루어지고, 힘의 계수의 한 단위밖에 안 되고, 우리 개개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자유를 확보하고, 그것이 억울하게 짓밟히는 경우에 전 세계의 양심의 소리가 함께 절규를 보낼 수 있는 세계적인 통로를 마련한다는 것은 전 세계의 인간이 자아의 지성소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당연한 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런던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에 지부와 위원회를 가지고 양심에 충실했기 때문에 수감된 인사의 석방운동, 범죄심사중의 고문행위, 형집행중의 인간학대 등 현저한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시정촉구 등을 세계적인 범위에서 호소, 촉구하는 앰네스티 인터내쇼날의 한국위원회를 창립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로써 우리 한국도 전 세계의 인간정의수호운동, 인간회복운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회 각계각층 인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1972. 3. 28.
초대 이사장 김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