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이
마태 2:9-12, 25:31-41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인류의 문명을 이렇게 시대 구분합니다. 자연을 무대삼아 나무 열매를 따먹고 사냥을 하면서 떠돌며 살던 인류에게 제1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을 농경사회라고 말합니다. 제2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시대를 우리는 산업사회라고 부릅니다. 그 후 인류는 제3의 물결을 맞게 되는데, IT산업이 정보화 사회를 주도하면서 이제 세계는 나라의 국경이나 민족을 뛰어넘어 급속히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에밀 토플러는 이제 인류는 제4의 물결의 시대를 맞게 될 거라고 말하면서, 그 시대는 감성과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창조적 역동성이 충만한 영성의 시대는 제도화되고 체계화된 규범적 틀에 갇히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틀을 과감하게 깨트리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인 종교가 규범과 제도, 교리의 틀에 갇히게 된다면 그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희망을 주지도, 구원의 능력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기독교도 쓰여 진 성서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 성서가 미쳐 다 담아내지 못하고 놓쳐버린 배후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이나 성서보다도, 기독교보다도 훨씬 더 크신 분이시며, 역사를 만들어 가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와 목자들과 헤롯대왕의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서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있을 것입니다. 동방박사 이야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기독교 사가들은 제 4의 동방박사가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어쩌면 제4의 동방박사뿐만 아니라 제5, 제6의 동방박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본래 별을 보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 길을 떠났던 동방박사는 본래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4의 박사는 길이 늦어져 아기 예수를 뵙지 못하고, 한 평생을 유대와 애굽을 헤매던 중, 죽기 바로 전에 예루살렘 노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운명하게 되었다는 진기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로 이 세상에 오실 새 왕을 찾아 나서는 길을 주도한 사람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닌 아르타반이란 제4의 동방박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구유를 찾았던 세 명의 박사들도 모두 그의 친구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magi라고 불러지는 옛 바벨론, 페르샤 지역에 살고 있던 배화교 사제들이었습니다. 아르타반은 세 친구와 함께 별이 나타나면 10일째 되는 날 자정에 바벨론의 Borsippa 신전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아르타반은 전 재산을 팔아 왕께 드릴 선물로 푸른 하늘 한조각과 같이 아름다운 청옥, 떠오르는 햇빛보다 더 밝은 홍옥, 눈 덮인 산봉우리 같이 순결한 진주를 샀습니다. 어느 날 밤, 아르타반은 하늘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저 별이 바로 그 징표다. 왕이 오신다. 나는 그를 뵈려 가야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말에 몸을 싣고 하루도 쉬지 않고 10일을 달려 친구들과 약속했던 장소로 달렸습니다. 자정까지 목적지에 이르려면 부지런히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가다보니 넓다란 대추야자 농장이 나타났습니다. 야자수 숲을 막 빠져나가려 하는데 무슨 거무스레한 물체가 보여 발을 멈췄습니다.
말에서 내려 보니 히브리인 포로였습니다. 그는 습지 열병에 걸려 피골이 상접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르타반의 옷 끝을 잡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이 생명부지의 히브리인 포로를 돕느라 한 시간이라도 지체하는 날이면 오늘 자정에 보르시파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과 약속된 순례를 단념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냥 떠나면 그는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아르타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진리와 순결의 신이여, 당신만이 아시는 지혜의 길, 거룩한 길로 저를 인도해 주소서!” 아르타반이 정성껏 그를 간호하고 상비약으로 가져온 약을 먹였더니 몇 시간 후에 정신을 차려 “당신은 누군데 나를 살려 주었느냐”고 말합니다. “나는 엑바타나에 사는 아르타반이란 magi인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대왕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요, 동행하기로 약속했던 박사들이 벌써 떠났을지도 모르니 어서 가야겠소. 내가 가진 떡과 술, 약의 일부를 당신에게 주고 가니 이것으로 힘을 얻거든 바빌론 성 안으로 들어가 거기 사는 히브리인들의 도움을 얻도록 하시오.
그러자 그 유대인 포로는 “나에게 보은의 길은 없으나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소. 당신이 찾아가는 메시아는 예루살렘이 아닌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오. 병자에게 긍휼을 베푼 당신을 주께서 목적지까지 평안히 인도해 주시길 빌 뿐이오.” 자정이 벌써 지났습니다. 말에 오른 아르타반은 몹시 초조해졌습니다. 비호같이 달려 약속장소에 닿았으나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찾아낸 것은 “우리는 자정이 지나기까지 당신을 기다리다가 왕을 찾으려 먼저 떠나니 뒤따라오라”고 쓴 종이 쪽지뿐이었습니다.
아르타반은 바빌론 시내로 들어가 청옥을 팔아 여행비용을 마련하고 말을 낙타로 바꾸어 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들리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직행했는데도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고 떠난 지 사흘 후였습니다. 어느 초가집 문이 열려 있기에 들어가 보니 한 젊은 어머니가 아기를 재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흘 전에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이 요셉의 갖난 아이에게 값진 예물을 드렸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들은 그 날 밤 야간도주해서 애굽으로 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밖에서 여인들의 통곡소리가 들리더니 한 군인이 피 묻은 칼을 들고 들어 닥쳤습니다. 그 병사는 갑자기 낮선 외국인을 보자 멈칫거리는 순간 그 젊은 어머니는 아기를 끌어 앉고 방 모퉁이로 숨었습니다. 아르타반은 “이 집에는 나 혼자요,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이 홍옥을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소.” 이렇게 말하며 그 홍옥을 병사에게 건너 주었습니다. 홍옥을 손에 넣은 병사는 이 집에는 아이가 없다고 크게 소리를 치고는 가버렸습니다.
아르타반은 기도했습니다. “참의 하나님, 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한 어린 목숨을 구하고자 참이 아닌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왕께 드릴 두 번째 예물을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썼나이다.” 구사일생으로 살린 아이를 품에 앉은 젊은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 아이의 목숨을 구해 주셨으니 야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내리시며 당신을 지켜주시고, 그의 얼굴로 당신을 비취사 은혜를 베푸시며, 그의 얼굴을 당신에게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르타반은 서둘려 예수님을 찾아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작은 초막에 고명한 랍비를 찾아가 자기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랍비는 아르타반에게 수난의 메시아 예언을 읽어주면서 하는 말이 “그대가 찾는 왕은 대궐이나 부유한 권력자들 가운데서는 찾지 마십시오. 새 왕은 이 땅을 폭력과 전쟁이 아닌 사랑과 평화로 다스릴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왕을 가난하고, 겸손하고,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르타반은 흉년으로 기근이 심한 곳도 가보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참혹한 곳도 찾아갔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햇빛도 못 보는 죄수들, 노예시장에서 짐승같이 내몰리는 노예들을 보며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 고난의 현장에서 왕은 찾을 수 없었으나, 도와야할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아르타반이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사로잡힌 자를 위로해주는 동안에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아르타반이 고향을 떠난 지 어연 33년,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백발이 되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지 33년이 지났건만 그는 아직도 왕을 찾아 경배하려는 순례자였습니다. 그는 여러 번 예루살렘에 들려 왕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로 온통 예루살렘이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에게 예수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는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고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나사렛 사람인데, 그가 유대인의 왕이다”고 했다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르타반은 그가 33년 전에 그 이상한별이 보여주었고, 옛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분일 거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가 형을 받고 죽기 전에 내게 있는 진주로 그를 속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로마군병 하나가 옷이 찢어지고 머리가 헝클어진 한 소녀를 죽은 개처럼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르타반이 그 불상한 광경을 보고 발을 멈추자 소녀가 재빨리 그가 배화교 사제임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달려와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 사제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순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해주세요. 저도 배화교인의 딸입니다. 제 아버지는 바대인 대상이었는데 돌아가시자 빚 때문에 제가 노예로 팔려가는 길입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노예로부터 저를 구해주세요....... 제발요?”하고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르타반은 그 말을 듣고 떨었습니다. 그는 사랑과 신앙사이에서 갈등으로 번민했습니다. 그 갈등은 히브리 병자를 만났을 때, 베들레헴 아이의 생명을 구할 때에도, 이미 경험한 바 있습니다. 두 번이나 왕에게 드리려고 준비했던 보물을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유용했는데, 세 번째도 사람을 구하느냐? 하나님께 바치느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번도 그의 마음은 가엾은 소녀를 구해 줌이 참 사랑의 행위라고 속삭입니다. 아르타반은 품속에서 진주를 꺼내 그 불쌍한 소녀에게 주면서 “이것은 왕께 드리려고 가지고 온 마지막 보물이다. 이것으로 네 몸을 속량해라.” 그는 왕께 드리려던 마지막 보물까지 가련한 소녀에게 내주었습니다. 이제 왕을 찾으려는 그의 마지막 희망까지도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는 왕을 찾으려고 33년을 하루같이 최선을 다했고, 신앙이 비춰주는 빛을 최후까지 따랐습니다. 그는 왕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이자 지축이 요란하게 흔들렸습니다. 지붕의 기왓장이 날아와 아르타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깊은 상처가 났고, 심하게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흰머리를 소녀의 어깨에 의지한 채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때 아르타반의 입술이 움직이며 말합니다. “아닙니다. 주님! 제가 언제 주님이 주리신 것을 뵙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나그네 되신 것을 뵙고 접대해 드렸으며, 헐벗으신 것을 뵙고 입으실 것을 드렸나이까? 그리고 언제 주님이 병드셨거나 옥에 갇히신 것을 제가 찾아뵈었습니까? 제가 33년 동안 이리저리 헤맸으나 주님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뵈은 일이 없사온데 제가 언제 왕께 수종을 들었나이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사옵니다.
그가 말을 그치자 어디선가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네게 분명히 말한다. 여기 있는 내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 말씀을 들은 아르타반의 얼굴은 마치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눈 덮인 산꼭대기에 비친 진주처럼 찬란하고, 평화스럽게 빛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길 원하십니까?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제4의 동방박사 아르타반의 생애를 통해서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최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왕께 드리며 경배한 것입니다. 우리도 제 4의 동방박사 아르타반이 드렸던 그 예물을 주님께 드리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합시다. 우리는 성탄절 헌금 모두를 가장 어렵고 힘든 형제들을 돕는 일에 쓰려고 합니다. 정성껏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