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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보라,새것이 되었도다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1-16 (일) 08:32 13년전 5007  

제목 :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19, 계 21:1-7


 

사람마다 경제가 문제라고들 합니다. 돈만 있으면 잘 살 수 있고,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미국의 경우 복권에 당첨해서 일확천금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 사람은 단한 사람도 없고, 모두가 불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돈이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편리하게 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강을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 염려가 많아지고, 타락하기 쉽니다. 돈이 진수성찬을 차려 줄 수는 있으나, 건강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돈이 안락한 침대는 가져다주나 단잠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는 하나 겸손하게는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돈이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환경이 변해야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로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는 돈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문제들입니다. 사람만 바로 되면 다 바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워져도 돈이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바꾸어지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동안 수세기에 걸쳐 사회제도를 수도 없이 바꾸어보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왕권시대에서 군주시대로 군주시대에서 민주 사회로 바꾸어가고, 시장은 끝없이 확대되고 있지만, 인간은 살기가 더 힘들어지고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사회적인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심각해졌습니다.

성경은 물질을 추구하지 말고, 인간내면의 가치들, 마음과 양심의 높은 도덕성, 숭고한 정신적 가치, 거룩하고 신비한 영성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종교인은 사람이 변하지 않고는 환경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설령 환경이 변한다 하더라도, 인간내면의 변화 없이는 단순히 환경 그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변화여 새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전 것이 지나가야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지 않고는 그 누구도 새사람은 될 수가 없어요. 성경은 인간문제의 해결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의 출현에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새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4:22-24)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고 있습니다. 새사람은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변화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in christ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이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가지고는 지옥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어요. 천하없어도 옛사람으로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어야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도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떻게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주인이 바꾸어집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주인이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이 나를 조종하고 지배했습니다. 사탄이 때로는 교만하게 하고, 혈기를 부리며, 미워하고, 싸우게 했습니다. 마음에서 용기와 평안을 빼앗아갔습니다. 정욕과 탐욕을 쫓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정과 욕은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사탄은 쫓겨 가고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 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살게 됩니다. 이것을 중생 곧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중생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옛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지는 않고 살려고만 하니 어떻게 중생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2:20) 내 심령 안에서 그리스도가 부활해야합니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살아야 해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 되어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고 가정, 직장, 환경 탓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돈을 벌면, 성공을 하면, 환경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이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한 집사님이 여고시절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한 점쟁이가 자기를 쳐다보면서 “학생, 내가 관상을 잘 보는데,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하더랍니다. 순진한 여학생은 팔자를 고친다는 말에 돈을 주고 점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점쟁이가 하는 말이 “학생이 50이 되면 대통령 부인이 될 상이구먼” 하더랍니다. 얼마나 설레는 말입니까? 그 꿈 많은 여고시절이 아닙니까? 그 때부터 이 학생의 머리에는 영부인이 된다는 의식이 늘 잠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러다가 혼기까지 놓였습니다. 간신히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거요. 영부인이 되려다가 한바트면 시집도 못 갈 번했습니다.

남편을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살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통령은커녕, 대통령 비서도 못될 팔자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점쟁이한테 속았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하고, 괜히 남편이 밉고 원망스럽기까지 한 거예요. 갑자기 세상사가 흥미가 없어지고, 그만 죽고 싶더랍니다.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할 때마다 말씀이 하나하나 깨달아지고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 없이 기쁘고 감사하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벧전 2:9)는 말씀을 공부하는 중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졌구나! 이루어졌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니, 나야말로 영부인 중에 영부인이 아닌 가하는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것에 한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고나니 세상이 모두 새롭게 보이는 거요. 땅을 보니 새 땅이요, 하늘을 봐도 새 하늘입니다. 삶이 온통 감격이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훌륭하게 보이는지 대통령이 부럽지 않고, 잘 자라준 자식들이 한 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더랍니다. 옛사람으로 살면 평생을 살아도 이런 감격은 없습니다. 눈물이요, 한숨이요, 탄식입니다. 고통이요, 괴로움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한번 바꾸어보세요. 인생은 순간적으로 달라집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변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내가 변하는 순간 세상은 단번에 변해버립니다. 내 마음만 바꾸면, 내 생각만 한번 바꾸면 인생은 달라지게 되여 있습니다. 믿습니까?

종교 개혁자 루터에게 한 제자가 찾아와서 “선생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종교개혁에 성공할 수 있으셨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자주 나를 찾아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네, 그리고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나가셔서 문을 열어 주신다네. 마귀가 ‘이 집에 루터가 살고 있지?’ 하고 물으면 예수님께서 ‘잘못 찾아 오셨소.’ 한다네. 사단이 ‘이 집 주인이 루터가 아닙니까?’ 하고 물으면 예수님은 ‘루터는 이미 이사 갔소. 이 집 주인은 나요, 예수란 말이요.’하면 사탄은 기겁을 하고 줄행랑을 친다네.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면 사탄이 건드립니다. 내가 사탄과 대결을 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는 사탄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내 주인이 예수님이 되시면 사탄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가셔서 “이 집 주인은 나요, 예수요.”라고 말하면 사탄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나를 지켜주시니 나는 더 이상 유혹에 빠질 염려가 없습니다. 이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면, 내 안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흔들어 깨웁니다. 마음이 변하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관계가 새로워집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한글학자인 최현배 선생이 우리나라 말을 풀어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사는 것이요,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새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가 새사람이 되면 예수님은 “네가 나를 믿느냐?” 이렇게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고 말씀하신 거예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기 직업을 사랑하면 그 일은 늘 새 일이 됩니다. 새 일을 하면 즐겁습니다. 가슴이 뜁니다. 신명이 납니다. 그러나 자기 직업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의 노예가 됩니다. 일이 고역이고 지겹습니다. 같은 일을 해도 사랑해서 할 때와 사랑 없이 할 때는 천국과 지옥의 차입니다. 가정도 사랑해서 집에 가면 sweet home입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집에 가면 하숙집입니다. 사랑으로 살면 가정은 사는 것이고, 사랑 없이 살면 가정은 사는 것이 아니라, 무덤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늘은 늘 새 하늘이요, 땅은 항상 새 땅입니다. 꽃을 보아도 아름답고, 새 소리를 들어도 즐겁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좋게만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새사람이 되면, 직책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새사람에게는 peace make, 곧 화목케 하는 직책이 주어집니다. 화평을 만들어내고 평화를 증진시켜 가는 것이 새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 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 19-20) 화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화목제물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대신하여 죄인이 되고, 대신하여 수치를 당하고,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되고, 대신하여 죽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랑 가운데서 지음 받은 새사람들이며, 이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살아갈 형제자매들입니다.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 대신 이 세상의 구원과 화평을 위해, 일해야 할 때입니다. 언제나 이 세상은 그들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온 피조세계가 새사람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길 학수고대하고 있어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너희가 저들을 구원하고 평화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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