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믿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마음에 새긴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녹녹치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입고, 가까운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보고 분노하고 좌절한다.
이곳 내일을여는집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 부분 사람 때문에 절망하여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어떤 사람은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하고 이혼 당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부모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채, 고아로 자라 어디 의지할 곳 없이 산천을 떠돌듯 공사판을 떠돌다 이곳에 몸을 잠시 피하기 위해 오신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부모가 애타게 찾고 있지만 다시 재기하기 까지는 부모곁에 가지 않겠다며 자활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한편으로 집에 가고 싶지만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피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눈총이 부담스러워 이곳에 있는 분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돌아갈 집도 없고 가족도 없다. 부모들은 돌아가셨거나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되고, 자녀와 아내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 한 켠에 만나고 싶기도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딱히 대안도 없기 때문에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사람에 따라 가정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데 비해, 가정이라는 것 자체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분들까지 그 편차가 크다. 어쨌든 지금은 가까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가는 가을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일을여는집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분들 가운데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서비스를 주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종사자들도 있고,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와 정성을 모아주는 후원자들도 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희망을 얻는다.
얼마 전 여성노숙인 쉼터에 있는 한 여성이 내게 와 "목사님 고맙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런데 잠시 있다가 또 그렇게 두 차례나 더 마음을 담아 말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맙습니까?"하고 물었다. "모두가 다요"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몇 개월 동안 그 여운이 있다. 특별히 고맙게 한 것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여성의 눈빛, 그리고 그 마음이 내게 큰 인상을 남겼는지 웬지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얼마 후 인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동절기를 맞아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을 통한 난방비 절감 및 입소자 생활환경 개선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쉼터의 모든 창문이나 보일러 등 교체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사업이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도 그 여성분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녀가 좋아하는 얼굴이 떠오른다. 따뜻함이다. 그리고 희망이다.
얼마 전 산하기관에서 희망근로를 하고 있는 김선생을 만나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김선생은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열정적으로 생활했고 그 결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 온 듯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사업이 잘 안되고, 생활이 꼬이면서 하는 일마다 잘 안되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에 정부에서 시행하는 '희망근로'를 하게 된 것 같다. 취업을 할 수 없어 희망근로를 하게 된 것 자체가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희망근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단다. 김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정말 인생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희망근로를 지원한 1000여명 중에 하필 제가 이런 복지기관을 만나고,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돌아돌아 세우고 또 세워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깨닫게 하시네요." '희망근로'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또 다른 세상은 그야말로 김선생에게 '희망'을 주었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하였다. 김선생의 절절한 인생을 듣는 내게도 감동이 일었다. 김선생은 내년부터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남은 인생을 돈을 버는 일에 쓰기보다는 인생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고자 한다. 희망의 물결이 밀려온다. 역시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