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는 윤리적 판단에서도 중요합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여도
하는 행위마다 다 선한 성자라면
윤리적 판단이 필요없을 겁니다.
그러나 성자가 아닌 우리들에게는
윤리적 판단을 돕는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나쁜 기독교인들 상당수는 저런 사고력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윤리적 판단에서 나오는 논증을 "행위 논증"이라고 하는데요,
그 일단을 보여주는 글을 발굴(2007년 12월)해서 올립니다.
이 글의 링크 자료이기도 합니다.
당시 BBK 수사 결과가 진상일 수도 있다.
2007년 12월 기장게시판 글
인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략)
이런 사안의 글에서는 주로 두 가지 점이 쟁점이 됩니다. “일면을 보았는지 종합적으로 보았는지 여부”, “제시한 인과 관계가 다양한 경로를 간과한 단순화인지 주류를 스케치해 낸 예측인지 여부”입니다. 링크한 반론도 결국 이 두 가지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토론 초기에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핵심적인 면을 강조하거나 개연성이 큰 인과관계를 제시하지요. 따라서 “이런 측면도 있다” 정도의 반론은 사실상 펀치(punch)가 아니라 쨉(jab)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분석은 설정 모델이 중요합니다. 반론에서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투표자들이 “비양심적이거나 무식하거나” 글이 설정한 모델에 가까울까요, 반론이 설정한 모델에 가까울까요? 유감스럽게도 반론과 같은 숙고를 한 후 투표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미지나 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것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죠.
진실을 밝히는데 있어서도 행위자모델이 중요합니다. 황우석씨같은 스타일을 매우 혐오하지만 저는 줄기세포가 가짜인 것을 그가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가짜 줄기세포를 외국 연구소에 분양하지 않습니다. 실험하면서 들통이 나기 때문이죠. 가짜인 줄을 알면서 그렇게 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특별한 상황이 있거나 아니면 그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검찰에서도 그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짜인 줄 몰랐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BBK와 관련되어서도 저는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광운대의 발언까지 안 가더라도, 해명이 계속 바뀌는 것(선의의 거짓말이든지 악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과 여러 가지 증거와 정황들을 보면 비리에 그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차적으로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러저러한 상황이 있었다”는 방식으로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충분히 설명을 하지 못하면 행위자 모델을 바꿀 수밖에 없지요. 정상적인 모델로는 분석이 안 되는, 고장 난 사람이라고요.
이런저런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풀어주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이당선자는 물론 나라와 역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저는 이장춘 전(前)대사의 위기의식을 십분 이해합니다. 공약과 정책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