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바보 예수
밥에 대해서 글을 많이 썼다. [시] '평화가 밥이다'를 비롯해서 [목회수기] '사랑의 밥상', '함께 밥 먹읍시다.', '밥 대접', '목사 밥', '메뉴가 확실한 밥상은 단순하다', [개척수기] '밥', 그리고 '밥 = 바보 예수 이야기'까지다.
'밥은 곧 바보 예수'라는 글은 우리 노회 김홍한 목사의 글을 가져온 것이다. 밥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세상에 밥만큼 맛없는 것이 없다. 밥만 먹으면 반 그릇도 먹기 힘들다. 목에서 생목이 올라온다.
또한 세상에 밥만큼 맛있는 것이 없다. 밥은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밥이 질리지 않는 것은 밥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밥은 맛이 없기에 맛이 강한 다른 음식들과 함께 먹어야 먹을 수 있다.
흰 바탕이 주어진 다음에야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요함이 바탕이 되어야 거기에 아름다운 선율이 흐를 수 있다. 맛없는 밥이 있어야 그 위에 맛난 반찬을 올릴 수 있다. 맛없는 밥 없이 어찌 맛깔스런 게장이 맛을 내고 잘 익어 감칠맛 도는 김치가 맛을 낼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무지렁이들이 있어야 잘난 이들이 잘났다고 뽐내고 그 잘남이 잘남 될 수 있다.
엉터리 한글 풀이로 한다면 “밥”은 “바보”의 준말이다. 세상의 바보들이 밥과 같은 이들이다. 한국 현대사의 세 바보가 있다. 바보회를 만든 전태일, 자칭 바보새 함석헌, 타칭 바보 노무현이다. 세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자칭, 타칭 바보들이다.
“밥”의 반대말이 “꿀”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꿀이다. 그래서 참 맛있는 것을 “꿀맛 같다”고 한다. 그런데 꿀은 한 숟가락 이면 족하다. 두 숟가락 퍼먹으면 벌써 입이 거부하고 속까지 달아 괴롭다.
“꿀맛 같다”는 말을 언제 쓸까? 고기 구워먹으면서 꿀 맛 같다고 하지 않는다. 고급 포도주 음미하면서 꿀맛 같다고 하지 않는다. 밥에 이것저것 넣고 숟가락으로 힘껏 비벼서 크게 한입 떠서 입에 넣고는 “꿀맛 같다”고 한다.
밥맛이 꿀맛 같을 때 살맛이 난다. 꿀 맛 같은 밥맛은 밥과 반찬의 조화로 만들어진다. 어느 하나가 많던지 적던지 하면 밥맛이 꿀맛이 안 된다.
밥은 나누어먹어야 제 맛이 난다. 혼자 먹는 밥은 서글프다. 그래서 혼자 먹느니 차라리 안 먹는 경우도 많다. 혼자 먹는 밥은 억지로 먹는 밥이고 어쩔 수 없이 먹는 밥이다.
왜 밥을 혼자 먹으면 안 될까? 예수께서는 “내가 바로 생명의 밥이다.”(요6:35),고 하셨다. 예수가 밥이고 하나님이 밥이기 때문이다. 밥이 예수님이고 밥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밥을 독점하는 것은 예수님을 독점하는 것이다. 세상에 제일 못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독점하고 하나님을 독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진리를 독점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유대교도들이 그 짓을 했다. 오직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있다고 했다. 서양의 기독교가 엄청나게 그 짓을 했다.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고 자신들의 권위를 조금만 해쳐도 이단이라고 처형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또한 그 짓을 했다. 성리학이 아니면 사문난적이라고 죽여 버렸다.
“밥=예수=진리”. 충분히 비약일 수 있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이 말이 일리 있는 말일 수 있는 것은 밥은 단순히 물질 개념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밥상을 앞에 두었는데 문득 밥상위의 음식이 모두 생명임을 알았다. 밥알 하나하나가 모두 생명이고, 멸치 한 마리가 그대로 생명이고, 김치 한 조각이 생명이고, 고기 한 점이 그대로 생명이었다. 순간 눈물이 났다. 과연 내가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을까?. 그 후로 나는 식탐이 사라졌다. 이제는 음식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주어지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먹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삼킨다. 때가 되면 무엇이든 한 끼 최고로 귀한 것인 줄 알고 먹는다. 석유도 생명이고 석탄도 생명이다. 아주 먼 옛날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서 그 시체가 화석된 것이 석유이고 석탄이다.
철들어 세상을 살리는 밥(바보)으로 살자.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라는 별명을 좋아했고, 양지도 바보처럼 시골목회, 한 교회에서 목회 하고 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바보대장이다. 세상의 밥으로 살아 세상을 살리는 삶을 살자.
잔치에는 밥이 있어야 한다. 국수 한 그릇이라도 나누어야 잔치국수 아닌가? NCC 기독교역사문화관 건립 때문에 자주 가는데 밥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먹은 적이 있다. 나중에는 아는 목사에게 전화해서 얻어먹었고 회의 때 얘기해서 이제는 함께 먹는다.
혼자 밥 먹는 이들은 불쌍한 이다. 극심한 기근의 때 어떤 사람들은 아주 몰래 혼자 먹었다. 드러내고 먹으면 빼앗긴다. 같이 먹으면 내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악착같이 몰래 혼자 먹었다. 지금도 옛날, 그 짐승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몰래 혼자 먹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심판의 때, 네가 먹은 그 밥이 죄를 증명하리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고향 디베랴 호수에 내려가서 고기잡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놓으시고 "와서 밥 먹어라"(요한 21:12)고 하셨다. 우리에게 생명의 밥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감동이다. 무슨 긴 말이 필요할까? 스승을 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두 도망간 제자들, 고기나 잡자고 물에 갔지만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손수 고기를 구워놓고 "와서 밥먹어라" 이보다 필요한 말이 무엇일까? 내가 바로 생명의 밥(떡)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