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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찾은 소 망!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3-07-16 (화) 11:47 11년전 3134  
욥의 절망과 소망 욥기19장 23-29절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심리가 있습니다. 편하기를 원하고 태평 하기를 바라고 건강, 안일, 오늘도 무사히 - 오로지 안전과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절대적 평화란 없습니다.
환란이 있고 고통이 있고 재난과 고난이 따릅니다. 남의 처지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다 죽을 지경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아우성 치고 뺏고 빼앗기며 야단하는 것도 다시간문제요 결국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죽음 이것은 매우 공평합니다.
많이 가진 자도 못 가진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권력을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평안을 바라는 심리, 그러나 고통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실존, 그리고 어떠한 고통도 죽음 앞에서 무의미 함 이 세 가지는 인간 사회에서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현상 입니다.
오늘 우리는 욥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욥은 의인입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1:1)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욥이 고난을 당합니다. 여러분은 욥과 같은 사람은 고통이 없어야한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은 무사태평 하고 형통하고 건강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 이런 욥이 고통을 당합니다. 욥이 다다른 절망의 고비는 무엇 이었습니까? 욥이 발견한 소망은 무엇이었던가?
(1) 욥은 지상의 것에 대해 실망했습니다.
1, 부귀에 대하여 실망했습니다.
욥은 최대의 부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에게 소와 양과 약대와 나귀가 풍성했고 자녀들이 많아 가정이 다복 했으며 동방에서 그의 명성은 제일인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재산이 파산당하는 날이 그렇게 갑자기 올 줄을 몰랐고 그렇게도 일순간에 잿더미 화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건실하고 아름답던 자녀들이 그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세상부귀 영화는 그야말로 일장춘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소망을 둔다는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도 같습니다.
물질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 임시 차용할 성질의 것일 뿐 입니다.
지축이 없는 기둥에 몸의 중심을 맡기면 그 기둥과 함께 쓰러지듯 물질에 중심을 두고 사는 인생은 어이없게 실망하고 만다는 법칙을 깨달은 것입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축복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의 대상이나 신앙의 대상은 아닙니다.
거기에 전 인생을 몰두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몽매무지한 사람입니다.
물질을 주신 하나님이 그 물질을 거둬 가실 때에는 그 보다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2, 인간 자체에 대하여 실망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자 친척들은 발걸음을 끓고 가깝던 친구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그의 집에서 부리던 계집종들을 욥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던 아내는 욥의 숨소리조차 듣기 싫어하고 아이들도 욥을 조롱했습니다.
친구의 신의와 아내의 사랑과 종들의 성실은 욥이 그모든 것을 소유 하 고 있을 때 말이지 욥의 지위와 실권이 상실하는 날에 는 다 상실 되고 만 것입니다.
아내는 남이 되고 친구는 외면하고 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욥은 멸시 받는 날에 그가 과거에 존귀함을 받던 날을 회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사람은 기대 할 수 없다 사람을 지나치게 믿지 말자.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구나.고 욥은 몇 번이고 입속으로 되뇌었을 것입니다.
미소를 짓고 진실을 다짐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서로와의 사이에 이런 문제를 두고 맺어지는 계약에 불과 합니다. 그 계약이 깨어지는 날에 인간 관계도 파괴되는 것을 오히려 정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실망했습니다. 욥은 자신을 갖고 살았습니다. 건강에 자신 있었고 활동에도 자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마지막 보루는 건강 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건강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무엇이든 자기가 뜻하는 바는 성취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여호와께서 한번 치시자 자기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재물과 명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제 건강하나 부지 할 수 없는 나약한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그는 손도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거리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욥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대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입은 그 자체 까지도 자기의 능력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떼시면 성벽이 무너지듯 인간은 자멸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현실의 허무함에 실망했습니다.
현실 보다 매정하고 차가운 것은 없습니다. 어제의 욥과 오늘의 욥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 밤사이에 그가 당한 환경은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가져 왔으므로 그는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멋없이 흘러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화려한 것도 비참한 것도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 입니다.
부귀를 누리는 것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고 세상에서 고 생을 해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닙니다. 다 구름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 보다 야속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또 시간에 속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는 장구한 세월이 대기하고 있을 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인생을 무어라고 말합니까.?
시편190:23절 나의 가는것은 석양 그림자 같고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전도서 6:12에는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 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벧전 1;24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덜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29:8절에는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 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 며 그속에 갈증이 있는것 같이 시온을 치 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욥기8:9절에 는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와 같으니라 고 하 였습니다 벧전 2:11절에 는 나그 네 와 행 인같은 녀 희 를 권 하 노니 영혼 을 거 tm 려 싸 우는 육체의 정 욕을 제어하라고 하 셨습니다.
시간은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맙니다.
이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 세세상의 것은 다 지나감이라.(요일 2:15절 )
1,욥은 절망에서 소망의 열쇠를 발견했습니다.
인생의 구주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알거니와 나의 구주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땅위에 서리로다. (19:25절 욥은 절망의 심연에서 정말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욥은 인생의 구주가 살아 계심을 깨닫고 그가 장차 땅위에 오실것도 알았습니다. 나의 구주가 살아 계시니라. 여기의 구주는 원문에 ‘꼬엘’이라는 말로 기록 되었습니다. 꼬엘 이란 부채를 진 사람이 갚을 길이 없을 때 대신 갚아주는자 또는 무고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해를 입었을 때 대신 원수를 갚아주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꼬엘은 책임을 대행 해 주는 자 무죄를 변호 하는 자 누명을 씻어 주는 자를 말함이니 이 말은 구속자 변호인 대변자로 발전했습니다. 내대신 죄 짐을 지시고 나의 무죄를 변호하시며 나의 오명을 씻어주시는 구속자가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며 장차 이 땅에 속죄주로 오실 것을 내다 본 욥의 신앙이야말로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오실 메시야를 발견 했습니다. 구주를 발견한 이상 그가 아무리 깊은 고난의 골짜기로 떨어졌기로 서니 그가 얻은 수확에 족히 비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떨어져도 좋습니다.
거기서 구주만을 발견하는 날에는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는 줄 믿습니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 을 온전히 구원 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 하심 이니라 . (히7:25)
(2) 인생의 참된 가치를 발견 했습니다.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구원자가 살아계신 것을 발견한 욥은 한 걸음 나아가서 인생의 종말을 바라보았습니다. 피부와 살은 매장 되어 부패 하고 백골마저 진토가 될 지라도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갈 것이다. 의롭다 함을 입은 영혼은 하늘 낙원 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영생관이 욥에게 분명 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최후 목표인 동시에 종교의 궁국 목적 입 니다.
삶의 목적의식은 현실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뭐라 구실을 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행복은 미래 에 있고 내세에 있음을 발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욥은 이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 의 시 인 들 도 덧없는 옛날 영화 의 자 취 를 보고 감 회 깊은 노래 들 을 불렀습니다.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인가 하노라(吉再)
흥망이 유수 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500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손이 눈물겨워 하노라.
호화도 거짓이요 부귀도 꿈이 로다 북망산 언덕에 요령소리 그쳐지면 아무리 뉘웃고 애달아도 미칠 길이 없나니.(金壽長)
욥이 이러한 절규만 한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의 생명이 다 할 때 육체를 떠나 육체 밖에 하나님을 볼 것이다. 죽음의 골짝 저편에 인생의 참된 본향이 있음을 내다 본 것입니다.
욥은 고백 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 ” 나는 죽어가도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내가 고난을 당해도 실패는 했어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은 흐려도 태양은 분명히 저편에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수난자의 소망 이어야합니다.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나의 모든 환경과는 상관없이 나의 구속자는 살아계시다. 이 신앙은 어떤 환경도 흔들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너무 자기중심 입니다.
내일이 잘되면 하나님도 계시는 것 같고 내일이 마음대로 안되면 하나님도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이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소망의 뿌리가 있습니다.
욥은 그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메시야 왕국을 바라 보았던 것입니다.
메시야가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될 그리스도의 왕국을 절망주에서 도 내다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메시야의 나라, 그 분의 통치는 성취 될 것입니다.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 을 해야 하겠습니
3, 천상의 행복을 발견 했습니다.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의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19:27) 욥은 절망의 계곡에 앉아서 살아 계신 생명의 주를 발견하고 장차 자기도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욥은 세상의 쓴맛을 절감한 동시에 하늘나라의 진미를 맛 본 것입니다.
이 땅에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 건너편의 행복을 확신한 자는 죽음의 강을 건너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환란을 두려워 말라 고난을 무서워 말라 환란의 골짜기에서 구주를 만날 수 있고 고통의 계곡에서 천국의 길목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할 일들이 많습니까? 절망을 날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늘에 소망을 발견 할 수 있어 야 합니다. 그 소망을 붙들고 일어 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를 영원 존재임을 발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땅위에서의 영원한 존재는 아닙니다.
욥은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주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리라는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도 나를 반겨 주시는 주님을 살아 계심을 확신하고 나의 갈 길 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내 앞에는 생명의 면류관 이 예비 되어 있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하여 밝아지는 소망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낮에도 별은 있습니다. 그러나 별을 보지는 못합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에야 비로소 영롱한 별 빛을 볼 수 있습니다. 23:10절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이 훈련을 다 겪은 후에야 정금 같이 나오리라.
사단은 절망을 통하여 우리를 절망에 빠트리려고 하고 불신 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더 밝은 소망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속자가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시련을 만나더라도 그를 바라보며 인내 할 수 있습니다.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우리는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내 할 수 있습니다.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우리의 소망은 확실 합니다. 욥이 발견한 진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되는 지혜요 (잠1:7)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빌1:20)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귀착점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곳이 참 안식처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일을 아시며(시91:11)
그가 행 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고전 5:10) 하나님은 적게는 머리 털 (마10:29)
참새 한 마리로부터 크게는 우주를(시33:6-100 지배 하시는 분 이 십니다. (시33;6-10절 )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단5:28) 흥망성쇠를 다 주장 하시는 분이 십니다.
우리도 욥의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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