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7 월 7 일(주일) 오후 7 시 반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누가복음 22 장 41 절 - 44 절
제 목 : 간구기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오늘 주의 거룩한 성전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계속 공부하고 있는데 기도의 순서에 대해서 계속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제일 처음 묵상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체험하고 그 다음에 주의 이름을 부르고 그 다음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회개기도를 드리고 그 다음에는 간구의 기도를 드리는데 간구의 기도에도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가정을 위해 간구를 드리는 차원이 있고 자신의 건강을 위한 간구의 차원도 있으며 부모를 위한 간구의 차원이 있습니다.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의 차원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구에도 제일 먼저 간구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서 다섯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과 기도하신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신 모습을 살펴봅시다. 41 절입니다.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여기서 “저희를”이란 제자들을 말합니다. 제자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셨다는데 얼마큼 가셨을까? 돌을 던질만큼은 성인 남자가 돌을 던지면 보통 40 M나 50 M 사이에 던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서 대명 싸우나 정도의 거리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대명사우나가 있는 곳은 금방 보이지만 예수님이 가신 그곳은 감람산이 있는 곳이니 감람나무로 둘러 쌓여 있어서 보이지 않은 한적한 곳이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시어 기도하러 자주 가시곤 했으니 예수님만 아시는 기도의 장소가 있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보통 성화를 그리는 사람이 그려 놓은 그림에 의하면 평편한 바위가 있고 예수님은 달빛이 비추이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우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 중에 누군가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신 뒤를 따라 스승이 어디로 어떻게 기도하신가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서 조용히 묵상하면서 기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2 장 44 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혼신을 다해서 기도하신 모습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힘쓰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애쓰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언제가 가장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줄 아십니까? 성경을 소리내어 읽을 때 힘이 많이 들까요? 아니면 찬송을 힘차게 부를 때 힘이 많이 들까요? 아니면 교회 청소를 할 때 가장 힘이 많이 들까요? 기도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교회청소는 두시간 씩 할 수 있고 성경도 두 시간씩 계속 읽을 수 있지만 기도를 계속 두시간 씩 하는 것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같이 생사를 결정하는 순간을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 정말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피땀 흘려 기도하실 때 누가 도왔습니까?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함께 있어 예수님의 기도를 도우셨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누가 도왔습니까? 아론과 훌이 도와 모세의 손이 내려지지 않도록 두 팔을 잡아 드렸고 모세가 손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다 보면 그런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날 위하여 기도를 돕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로마서 8 장 26 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때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줄을 모르고 신음만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때 도우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 22 장 43 절을 봅시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님께서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합하여 기도하니 하늘의 사자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여기서 사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말합니다. 사자가 감람산 현지에 파송되어 예수님의 기도를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오늘 본문에는 힘을 돕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피와 땀을 흘려 기도했다면 기진맥진하였을 텐데 사자는 예수님에게 하늘의 힘을 주입하여 드려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전 영신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유연왕 목사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분은 42 일간 금식기도를 하셨는데 자신이 끝까지 금식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주시어 힘을 주셨기에 가능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셨습니까? 보통 사람들의 기도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무엇보다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보통 내 아들 잘되게 해주옵시고 내가 건강하게 해주옵시고 우리 집이 평안하게 하옵시고 내 사업이 흥왕하고 번성케 해주옵시고 길가다 돌이 발에 부딪히지 않게 해 주옵시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주옵시고 오늘 놀러 가는데 비가 오지 않게 해주옵시고 농사가 대풍을 이루게 해주옵시고 그런 기도의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복적인, 복을 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기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 한가지 유념해야 할 일은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시점은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고 있었던 때였는데 범상한 사람은 아니 특출한 사람들이라도 제발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람들은 십자가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다 압니다. 왜냐하면 당시 팔레스틴 갈릴리에서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고 무장항쟁을 하였는데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고 갈릴리 청년 2000 여명이 사로잡혀 로마제국이 개발한 십자가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그 십자가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옆에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법 한데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토록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고 땀방울이 핏방울과 같이 되도록 예수님 기도하실 때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42 절을 봅시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2 절의 기도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입니다. 아버지의 원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뜻에 없습니까? 있습니다. 내 뜻도 있지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 잔이 무엇입니까?” 이 잔은 바로 죽음의 잔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땀 흘려 기도하시면서 하늘 아버지의 비밀하신 뜻은 자신이 인류구원을 위해서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함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라나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의 고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스러운 잔이 자기에게서 옮겨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드릴 때에도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이어든” 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고통의 쓴잔이라도 옮기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일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당할지라도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지라도 하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간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에서 보배로운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는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기도의 모범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 장 9 절에서 13 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제일 처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원을 하고 바로 그 다음에는 간구의 기원으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무슨 간구를 드립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렇습니다. 하늘 뜻을 이루어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뜻을 이루는 기도를 간구의 기원으로 가장 먼저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간구의 기도는 어떤 순서로 해야 합니까? 우리의 간구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먼저 하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간구기도를 할 때 물론 여러 가지 내용의 간구기도를 할 수 있겠지만 제일 먼저 간구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본 뜻은 하늘 뜻을 찾고자함입니다. 내 뜻이 있는데 하늘 뜻을 내 뜻에 맞추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하늘 뜻에 맞추고자 드리는 기도입니다. 오늘 주보 한주간의 명상에 보면 링컨의 태도가 나옵니다. 링컨은 전쟁을 하는 와중에서도 늘 기도하였고 그 바쁜 가운데서도 자신이 존경하는 목사님 앞에서 꿇어앉으면서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내 편이 되기를 간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님의 편이 서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내 입맛에 하나님이 맞추어 주시기를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입맛에 내가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싸이클에 내가 맞추는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날 한국축구팀이 각광을 받는 때가 없었지만 그 보다더 훨씬 이전부터 한국의 교회가 세계 속에 이름이 났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50 대 교회 중에서 23 개가 한국에 있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가장 잘하고 있는 일이 여럿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기도하는 일은 세계 어느 교회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 그 어느 교회에서도 새벽기도가 있는 교회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가 없는 교회가 별반 없습니다. 세계 어느 교회에서 철야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세계 어느 교회에서나 한국교회와 같이 기도를 가장 길게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 비판가들은 말하기를 “기도는 많은데 기도가 없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기도하는 시간도 많고 기도에 관한 프로그램도 많고 기도의 열정은 많으나 정작 하늘 뜻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 기도다운 기도는 없다 그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의 특징은 묵상기도나 임재의 기원을 생략합니다. 바로 기도에 들어가는데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고하는 것도 생략하고 그 다음 하나님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도 생략하고 바로 간구의 기도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간구의 기도를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주시옵소서!”를 반복합니다. 하나님! 승진도 시켜 주시옵시고 떡반죽 그릇을 넘치게 하야 주시옵시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건강케 주시옵시고 만사형통하게 해 주시옵시고 주시옵시고를 연발합니다. 즉 한국 교회 교인들의 기도는 주로 간구기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그 기원도 하늘 뜻을 찾는 기도보다는 내 육신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형통함에 초점을 맞추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에만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습니다. 복을 나리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난 다음에 바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순간도 없이 그저 아멘 하고서 기도를 끝맺어 버립니다. 이러니 기도는 많은데 기도가 없다는 말씀이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하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것은 단지 막연하게 하늘의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가 아닙니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하늘의 뜻을 부족한 저에게 이루어 주옵소서! 할 때 하늘 뜻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 부족한 저에게 하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 제가 가지고 있는 소원은 이렇사오니 이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할 때 두 기도는 비슷한 것 같으니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한 기도는 하늘 뜻이 내 안에 이루어 달라는 기도이고 후자는 하나님이 내 뜻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하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데 그것은 하늘 뜻을 이루는 것이 내 뜻을 이루는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 내 뜻이 더 정확합니까? 하늘 뜻이 정확합니까? 내 뜻이 더 좋습니까? 하늘 뜻이 더 좋습니까? 하늘 아버지의 손이 내 손보다 훨씬 더 크십니다. 나에게 더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 뜻이 더 크고 좋습니다. 궁극적으로 좋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무엇을 주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좋고 훨씬 더 가치있고 훨씬 아름다운 것을 예비하고 주실 것입니다. 내가 내 뜻을 이룸이 숫자로 일백이라면 내 속에 하늘 뜻을 이룸은 그보다도 성서의 숫자로 30 배 60 배 100 배가 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 훨씬 그 이상을 준비하고 우리에게 내려 주시기 때문에 먼저 하늘의 뜻을 찾고 하늘의 뜻대로 이루어주시라고 기도함이 결과적으로는 득이 되는 것입니다. 중동지역의 어떤 왕자가 중한병이 들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왕자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미국으로 치료받으러 갔습니다. 결국 왕자는 미국의 어느 유명한 의사에게서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자를 수술하고 치료한 것은 굉장한 일이지만 도대체 왕자에게 수술비를 얼마나 청구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에게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나? 한 1000 달러 받고 말자! 그런데 옆에 있는 동료는 1000 달러가 돈이냐 기본적인 의료수당, 수술수당을 전부 합하여 적어도 5000 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민 끝에 이 의사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중동에서 선교사로 일하다 온 분이기 때문에 중동의 문화를 잘 알 것 같아서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중동 왕실의 왕자들은 프라이드가 굉장합니다. 그들은 신분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그러니까 액수를 적은 청구서를 보내지 마시고 빈 청구서 아래에다 ”왕자님의 신분에 합당하게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어서 보내십시오. 의사는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자는 7만 5 천달러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1000 달러와 친구가 생각하는 5000 달러하고 왕자가 보내준 7 만 5천 달러는 달라도 한창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간구의 내용보다도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은 훨씬 더 큽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늘의 뜻이 있다고 하여도 그 하늘 뜻을 돌이켜서라도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생떼를 쓰면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좋은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하늘 뜻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찬송가에 보면 그런 기도의 내용이 많습니다. 찬송가는 음악성이 뛰어난 분들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무척 깊은 차원에 들어가신 분들이 만들었습니다. 찬송가 장에 보면 이런 찬송가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품은 뜻 주의 뜻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또 찬송가 217 장 1 절에서 4 절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는 그렇게 먼저 간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로마서 12 장 2 절에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오직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분별할 수 있고 찾을 수 있습니다. “찾으라 찾을 것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늘 뜻을 찾으면 하나님은 성경을 읽어 가는데 찾게 해주시고 기도하는 가운데 음성으로 들려주시기도 하시며 하나님은 사건 속에서 찾게 해주시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은 주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찾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선은 쓰고 어렵고 힘들 수 있지만 결국에는 전체적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언제나 기도하실 때 특별히 간구기도를 하실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는 성숙한 기도를 드리시는 가나안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로 언제나 먼저 하늘 뜻을 구하는 영적 슬기로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기에 앞서 주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하늘 뜻을 먼저 구하였듯이 저희 역시 주 예수님을 닮아가는 기도를 하게 하옵소서. 저희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맞추어 살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축도> 이제는 하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우리가 하늘 뜻을 간구하였을 때 간구한 것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더하여 주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삶 속에서 개입하시어 하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오늘 말씀을 듣고 내 뜻을 이루기에 앞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먼저 찾고 그 뜻에 좇아 살려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이 자리에 나온 모든 성도들에게 넘치게 내려주옵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하옵니다.
부름기도> 저희를 주의 거룩하신 성전으로 불러주시옴을 감사드립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말씀하셨사온데 오늘 이 시간 성전에 나온 주의 거룩한 무리들을 성별하시고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만사형통하게 하시고 성전에 나아올 때 마다 저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시고 그들의 인생은 복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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