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4 월 6 일(화) 오전 4 시 반 강진읍교회 새벽기도회 025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말씀 : 요한복음 19 장 25 절 27 절
제 목 : 예수님 십자가 주변의 사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십자가의 은총이 오늘 모인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현장에는 지극히 적은 사람들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 장 25 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그러면 몇 명이 있는 것입니까? 4 명입니다. 그런데 한명이 더 있습니다. 누가 있을까요? 26 절 전반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여기서 제자가 누구일까요? 분명히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한 제자일 것입니다. 그럼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물론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기 때문에 베드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입니까? 그 제자는 요한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치 수난의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상세하게 십자가 수난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만일 십자가 밑에 있었던 제자가 요한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요한은 그 제자 이름을 요한복음서에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가 자신이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뺐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제자 요한이 무척 겸손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요한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다른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면 사도 요한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그 현장에 부재했다는 것을 알리면서 그 제자의 이름을 말하였을 것인데 제자의 이름을 그저 제자라고 익명으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또한 요한은 자신이 보지 않았다면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증언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그때에는 로마군병들과 구경나온 사람들을 빼면 예수님 편에서는 도합 다섯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 장 55 절에서 56 절입니다. “또 거기에는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갈릴레아에서부터 예수께 시중들며 따라 온 여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있었고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제베데오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마태복음에서도 보면 주로 여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요한을 제외한 제자들은 모두가 다 도망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성경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 밑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다 예수님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 도망 가버리거나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예수님 주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이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눈물로서 예수님의 발밑에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아내었던 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였던 여자들이 끝까지 예수님이 죽으시고 피흘리셨던 그 현장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랑하였던 제자 요한이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요한복음 21 장 20 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돌아 보았더니 예수의 사랑받던 제자가 뒤따라 오고 있었다.” 24 절을 보겠습니다. “그 제자는 d 일을 증언하고 또 글로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이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의 이름이 요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고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던 그 현장에서도 바로 예수님과 같이 있었습니다. 당시 남자제자들은 다 도망쳤는데 도망친 연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로마당국이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에 매달면서 그 제자들도 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아야지 그래야 예수의 씨를 박멸해야 더 이상 나쁜 소문이 돌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다 잡아들인다면 이라는 가정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남자 제자들은 다들 36 계 줄행랑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받던 요한만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현장에 갈 때 자신이 잡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을 감수하면서 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골고다 언덕에 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었을 때 와! 하고 몰려들었습니다. 오병이어로 5 천명을 먹이셨을 때는 와! 하고 몰려들었지만 막상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다들 떨어져 나갔습니다. 5 천명이 몰려 다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겨우 5 명 1000 분의 1 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적을 보려 하거나 복을 받으려는 무리들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였기에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는 현장에도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만일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십자가 역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지닌 돈과 물질만을 보고 결혼한다면 그 사람에게서 물질이 사라졌을 때는 그 사람을 떠나게 됩니다. 진정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가 지닌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그의 약점도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픔과 고통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 분이 혹 능력이 있어서 여러분을 축복할 충분한 하늘의 능력이 있어서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그 분이 가난하고 능력이 없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도 여전히 그 분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상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탄식하며 무기력하게 죽는 그 분을 여러분은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의 십자가 현장에 가서 주님을 뵈옵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나에게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나에게 손해가 올지라도 내가 감수해야 할 희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분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병들고 나에게 시련이 거듭 찾아온다고 해도 여전히 십자가의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님으로 모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여전히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위하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희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시어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의 은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희의 믿음 생활이 주님의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주님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들과 여인들이 주님께서 고통 받았던 골고다 언덕에 까지 주님의 수난의 현장에 함께 하였듯이 저희로 주님 계시는 그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그곳에 저희로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믿음이 변함없는 믿음이 되도록 복내려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에게 잘해 주시고 주님이 나를 축복하기 때문에 나를 형통케 해주시기 때문에만이 아니라 설령 저희에게 시련이 부닥친다고 해도 저희가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해도 여전히 주님은 그래도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사랑이십니다 고백할 수 있는 그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비록 십자가 현장으로 가는 것이 저희에게 죽음이라 할지라도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영생과 복락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주시는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옵시고 주님이 고난 당하시는 현장에 저희도 있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험한 십자가 붙들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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