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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절에 꼭 기억해야 할 네 가지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8-04 (수) 17:13 14년전 2378  
 

2008 년 7 월 20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맥추감사주일


성경본문 : 출애굽기 23 장 16 절 - 19 절          

제       목 : 맥추감사절에 꼭 기억해야 할 네 가지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첫 추수를 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들고 나아온 성도 여러분들 위에, 여러 가지 형편으로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모든 강진읍교회 성도들 위에, 귀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시온 성가대(임마누엘 성가대)와 지휘자와 모든 대원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맥추감사절의 뜻을 생각하기 전에 감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는 “불만”, “불평”, “불안”, “불면” “불신” 이런 불(不)자들이 많습니까? 아니면 “감사”, “감격”, “감동”과 같이 감(感)자 들이 많습니까? 내 인생에 아니 불자들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스스로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생각하면 맞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감사할 감자들이 많은 사람들은 내 인생은 감자들로 인해 앞으로 많이 행복해지겠다 생각하면 맞을 것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노만 필 박사님이 어느 날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중년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주변환경에 대하여 계속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좌석이 불편하고 청소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승무원도 불친절하다는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 중에 남편이 앞에 있는 노만 필 박사에게 인사를 하자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노만 필 박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럼 부인께서는 어떤 것을 제조하고 있습니까? 남편은 웃으면서 제 아내는 불평을 제조하는 공장장이라 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생활 속에서 감사를 제조해내는 공장장입니까? 불평을 제조해 내는 공장장입니까? 그렇다면 감사를 어떻게 제조해 냅니까? <많은 부모들이 제 2 차 세계대전 때 죽은 아들을 추모하면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부인이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우리도 아들을 위해서 그들처럼 헌금해요.”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우리 아들은 살아 있잖아!” “맞아요!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우리 아들의 생명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는 거예요.” 남편은 이같은 부인의 말에 동의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시여,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감사를 어떻게 제조해 냅니까?


<인도 선교사 윌리엄 케리는 강아지가 촛불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8 년 동안 번역해 오던 성경 원고를 한순간에 전부 소실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끔찍한 사고를 당한 캐리는 강아지를 끌고 안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 번역이 부족함을 아시고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불평을 제조해 낼 수 있고 감사를 제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감사의 절기에 성도 여러분들은 불평제조업자가 아니라 감사제조업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희 집안 전통은 그렇습니다. 여섯 자식들이 있습니다만 자식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면 자식들은 공히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기 시작하여야 합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결혼하였으면 어디에 있든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아무렇게나 드리면 안 됩니다. 집안 관습법으로 자식들이 용돈을 드리는 내규가 분명히 있습니다. 첫 번째,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되 지갑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세어 드리거나 그냥 돈만 드리면 안 됩니다. 반드시 깨끗한 봉투에 담아서 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 봉투에 담되 그냥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드리면 안 됩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둘째 아들 며느리 드림” 하고 써서 드려야 합니다. 또 봉투에 글자를 쓸 때 삐뜰빠뜰하게 쓴다든지 간격이 맞지 않고 삐딱하게 쓴다든지 하면 이게 뭐냐 하고 안 받으십니다. 정자로 정성스럽게 써서 드려야 받으십니다. 세 번째, 봉투 안에 드려진 돈을 빳빳한 새 돈이어야 하고 만 원짜리일 경우 세종대왕 모습이 앞으로 나와 있도록 가지런히 해서 드려야 합니다. 네 번째, 무슨 일로 아버지 맘을 상하게 해 드리면 아무리 빳빳한 새 돈을 두께를 두껍게 해 드려도 받지 않으십니다. 한 번은 아버지가 이렇게 하라 하였는데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맘이 토라지시고 삐치셨습니다. 죄송한 맘으로 강진신협에서 100 만원을 빳빳한 새 돈으로 바꾸어 새 봉투에 정성스럽게 “아버지 사랑합니다!” 글자를 써서 드렸는데도 받지 않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님께 용돈을 드리면 그냥 지갑에서 꺼낸 돈이든지 봉투에 들어 있는 돈이든지 아무렇게나 받으시면서 “너도 힘들 것인데!” 하고 잘만 받으시는데 아버지는 돈을 드린다고 해서 무슨 돈이든지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용돈을 받으시는 입장에서 왜 그렇게 고자세로 받으실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용돈을 그렇게 받으시는 뜻이 조금씩 조금씩 깨우쳐 집니다.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는 예법이 있으신데 그것은 자식들에게 부모에게 감사하는 방법을 가르치시고자 한 것입니다. 부모를 아무렇게 여기지 않고 부모님의 은혜를 예절바르게 갚아나가는 방법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배워서 저도 두 자식들이 있습니다만 그 아이들이 결혼하면 용돈을 받되 예법을 가르치면서 받으려 하는데 아버지보다도 한 술을 더 떠서 용돈을 받는 날자를 매달 1 일로 지정하여 제 때에 가지고 오지 않으면 안 받을 예정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예물을 받으실 때 그저 아무렇게나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주는 것이라면 그저 넙죽넙죽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물을 받으시는 예법이 있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 여년간 광야생활을 끝내고 이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들어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에게 바칠 예물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만일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게 될 때에 너희들은 이렇게 이렇게 나에게 예물을 바쳐라!” 하고 예물 바치는 방법을 자상하게 일러주신 것입니다. 그저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이 나서 자발적으로 바치면 좋고, 바치지 않으면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고 하는 그런 방식으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고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빈 창고를 인간들이 바치는 제물로 채우게 하고자 예물을 바치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백성으로 가르치고자 함이었습니다. 두 종류의 어머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생을 희생하여 자식들을 키웠는데 한 어머니는 자식들이 자신에게 효도하고 잘해주면 좋고 잘 안 해 주면 서러운 눈물을 흘리거나 참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다른 한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하였지만 자식이 장성하면 자식들을 무릎꿇쳐 놓고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에게 용돈을 이렇게 이렇게 바쳐라!”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더 좋은 어머니이겠습니까? 자식들에게 은혜만 베풀고 그 은혜를 갚지 않아도 꾹 참는 어머니가 더 좋은 어머니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합당한 요구를 하고 자식으로부터 받아야할 효도를 받는 어머니가 더 좋은 어머니입니다.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것을 가르치는 어머니가 더 좋은 어머니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그저 은혜와 복만 베풀고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합당한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억압 가운데 구출하여 광야로 이끌어내시고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밤낮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지켜주시고 돌보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시어 그곳에 씨를 뿌리게 하시고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그렇게 은혜와 사랑만 베푸시고 마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베푸신 사람과 은혜에 감사로 응답하게 하시고 합당한 요구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을 지키라 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에게 예물을 바치는 방법을 세 가지로 일러 주셨습니다. 이 시간 맥추절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세 가지 방법과 성경 전반에 나오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방법 한 가지 도합 네 가지를 말씀드릴 터이니 성도 여러분들이 예물을 드릴 때 이 네 가지를 꼭 가슴 속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에 기억해야 할 첫 번째 하나님께 가져야 할 예법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3 장 15 절입니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앞에 빈 손으로 나오지 말지니라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 장 20 절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역대상 16 장 29 절에도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찌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결코 빈 손 들고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들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부자는 소를,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 한 마리를 드렸는데 자기 형편에 맞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예물을 들고 갔습니다. 넉넉한 사람이 비둘기를 들고 나오는 법도 없었습니다. 내 생명도 주님께 바칩니다! 찬송하면서 비둘기 한 마리 없이 빈 손으로 나아오는 사람의 찬송과 고백은 그저 넋두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이 필요하고 하늘의 곳간이 비어있기 때문이 빈 손 들고 나아오지 말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두 손에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것에 담긴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말씀하신대로 정성된 마음을 물질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집안 자식들 중매도 서 주고 결혼주례도 해 주고 자식들을 낳았을 때 축복기도도 해 주고 취직도 시켜 주고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 안수기도를 해주어 낫게도 해 주고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지성스럽게 챙겨주었는데 바로 그 은혜 받은 당사자가 딱 한 번 찾아왔는데 빈 손들고 와서 “목사님! 제가 마음으로 목사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목사님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고 말하였다면 속으로 그럴 것입니다. “이 더운 여름에 아이스께끼 한 개라도 사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격해 할텐데!” 빈 손 들고 오면 섭섭하기가 그지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물 속에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수박 한 통을 가지고 왔을 때는 정작 받는 사람은 그 수박의 값어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수박에 담겨진 정성어린 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명절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오면서 빈 손으로 오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가 아니면 부모님께 전혀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만 가지 은혜를 베푸셨는데 내가 단 한 가지도 없이 빈손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쟤는 내가 사랑하면서 그토록 많은 은혜를 베풀었건만 나에게 감사하는 맘이 없으니 이를 어이할꼬!” 하면서 한탄하시고 근심하시지 않겠습니까? 성경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과부는 찢어지게 가난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렙돈 두 닢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3000 원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냥 빈 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그 두 닢을 가지고 왔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그저 빈 손으로 나오지 마시고 무엇인가 주님께 드릴 것을 들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두 손은 왜 있느냐 하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두 손을 만드셨느냐 하면 하나님 앞에 두 손으로 공손히 예물을 들고 나오도록 하기 위하여 두 손을 만드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맥추감사절에만 빈 손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는 언제나 두 손 가득히 예물을 들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에 기억해야 할 두 번째 하나님께 가져야 할 예법입니다.

첫 열매, 첫 소출, 첫 결실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출애굽기 23 장 16 절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게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성경에 보면 유독이 하나님께서 첫 결실을 좋아하시어 첫 번 째 나는 것은 장자이든지 양의 첫 새끼이든지 처음 익은 열매이든지 자신에게로 돌리라 말씀하시고 첫 결실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언 3 장 9 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씨를 뿌리기도 전인데 “너희들 말이야! 앞으로 가나안 옥토에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게 되면 첫 결실은 꼭 나에게 바쳐야 한다”고 한 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3 장 19 절을 보겠습니다.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처음 거둔 것은 반드시 나에게 바쳐라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처음 것을 고집하실까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지난 번 여신도회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데 애호박으로 전을 부쳤는데 여신도회장님이 제일 첨에 부친 것이라고 호박전을 접시에 담아 가지고 왔는데 호박전 위에 푸른 고추 자른 것을 예쁘게 붙여 놓았습니다. 기분이 썩 좋았습니다. 부친 것 중에서 제일 첨에 나온 작품을 자기네 목사님 드린다고 가져온 여신도회와 회장님의 정성이 가상하게 여겨졌습니다.


만일 그 반대였다고 해 봅시다. 여신도회가 주방에서 팥죽을 맛있게 끓였는데 자기들끼리 한그릇씩 두그릇씩 배불리 먹고 난 한참 후에 배를 두드리면서 “아따 맛있게 먹었네! 아 참! 목사님 목양실에 계시지! 한 그릇 가져다 드리자!” 그렇게 했다면 목양실에서 아까부터 팥죽을 끓여서 맛있는 냄새가 풀풀나는 것을 아는데 자기들끼리 돼지같이 다 먹고 난 다음에  한참 뒤에 가져오면 똑 같은 품질의 팥죽이라도 얼씨구나 지화자 좋을시구 하면서 팥죽을 먹겠습니까? 금번에 해병대 간 아들이 휴가를 왔습니다. 오면서 빈 손으로 왔느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봉투를 두 개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자랑스런 아들이!“ 다른 하나는 ”어머니 감사합니다. 자랑스런 아들이!“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아들이 해병대에서 빨간 명찰을 달고 첨 받은 이등병 첫 월급이 93,000 원인데 두 세 달치 월급을 안쓰고 모으고 모아 아빠에게 10 만원, 엄마에게 10 만원을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드릴 때 그냥 드린 것이 아니라 큰 절을 하고 주었습니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여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은 첫 월급을 안쓰고 모아서 봉투에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서 큰 절을 하고 주니 기분이 삼삼하였고 기른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이것은 아빠에게 주지 말고 네가 받은 첫 월급 93,000 원을 하나님 앞에 맥추감사주일 예물로 드려라 하였습니다. 나머지 칠천원은 제가 가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첫 결실을 무척 좋아하십니다. 첫 결실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소중한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가슴은 감동으로 부르르 떨린다는 사실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가슴이 떨릴 때 하늘의 보화의 문도 열린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에 기억해야 할 세 번째 하나님께 가져야 할 예법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3 장 19 절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바치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에게 무엇인가 가져올 때는 최고로 좋은 것 최상의 상등품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인간이 제일 첨 난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은 인간 자신이 먹고 1 등급이 아닌 2 등급이나 3 등급을 드리면 기분이 나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하나님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 1 장 8 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드리는 예물을 받으실 때 최고의 상등품, 최상의 걸작품 받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객관적인 면에서 인정받는 상등품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각자 다르더라도 각자가 자신이 생각하고 인정하는 최고의 것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대접을 받기 원하십니다.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은 최고 VIP 대접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다 하면 내가 가진 것 중에서는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그 다음에 자식이 좋은 것을 가지게 하고 그 다음 다음에 하나님께 드린다면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무척 섭섭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막달아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순나드 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첫 아들 사무엘을 바쳤습니다. 맥추감사의 정신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네 번 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릴 때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즐거이 기쁨으로 드리는 일입니다. 아무리 빈 손들고 나아가지 않더라도 아무리 첫 소출을 하나님께 드리더라도 아무리 가장 좋은 것을 드리더라도 드리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그 예물은 아무 것도 아닌 말짱 도루묵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 장 3 절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그것이 추수감사예물이든 맥추감사예물이든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 그러므로 기쁨과 즐거움이 없이 자원함이 없이 드린다면 그것들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무슨 할부금을 갚아나가듯이 무슨 세금을 내듯이 아까운 마음으로 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 정한 십일조를 내면서 아까운 마음으로 내려면 차라리 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늘의 은혜 감사하고 구속해주신 예수님 사랑하는 맘으로 즐거이 기쁨으로 내야 합니다.


마지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빈 손들고 나아오지 아니하고 첫 소출을 그것도 가장 좋은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즐거이 내는 인생을 사랑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 장 7 절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즐거이 내는 사람을 하나님 사랑하십니다. 잠언 8 장 17 절에서 18 절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부귀도 내려 주시고 장구한 재물도 주시고 의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누구에게나 일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더 감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저 억지로 내는 자보다도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무척 상대적이십니다. 인간이 하는 것에 따라 하나님도 하시는 것이 달라지십니다. 하나님의 상대주의를 한 번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 장 30 절입니다.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께서도 팔이 안으로 구부려 주셔서 하나님께 잘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잘해 주신다 그 말입니다. 인간이 하기에 따라 하나님의 대접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맥추감사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제물만 받고 입을 싹 씻어버리십니까? 아닙니다. 잠언 3 장 9 절에서 10 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감사를 드리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의 창고를 가득히 채우시고 그의 인생에 포도주가 넘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창고”와 “포도즙”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행복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하는 창고요 행복하게 해 주는 포도즙인 것입니다.


저는 강진읍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저는 강진읍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콧노래를 부르며 할렐루야로 찬송하며 입술에서 감사가 끊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강진읍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 사랑하며 보혜사 성령님 사랑하며 삼위일체 하나님께 가장 첫 것을 드리시며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드리시며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창고가 가득 차게 되는 행복과 포도즙의 행복을 누리며 기뻐하며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한 감사를 드리도록 그 예법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출애굽기 말씀처럼 저희로 하나님께 합당하게 감사드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빈 손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양 손 가득히 드릴 예물을 가지고 주께 나아가는 기쁨을 주시옵소서! 저희로 첫 열매를 성별하여 주님께 드리는 즐거움을 주시옵소서! 저희로 가장 좋은 것을 최상품을 준비하여 주님께 드리는 기쁨도 주시옵소서! 저희로 주님께 바치올 때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믿음 되게 하옵소서! 강진읍교회 모든 성도들이 맥추감사의 정신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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